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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으로 말하다

내가 겪은 군대 이야기

그 여자들의 물결 일다 2014.08.14 11:43

군 창고에서 일어나는 일들 

: 육군으로 군생활을 마친 한 예비역 병장의 고백

 
자기 언어를 갖는다는 것. 언제부턴가 나는 이 문제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나’의 경험과 현실을 돌아보는 것이었고 남성성, 권력, 폭력 등을 성찰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결코 피해갈 수 없는 무언가가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바로, 군대.

 

여기에서의 나는? 남성 예비역 병장이다. 좀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나의 이야기를 함께 나누게 되었다. 혼자서 조금씩 생각만 해왔던 이야기, 이제는 그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한다. 나의 군대 이야기를.

 

군대가 사람 만든다?

 

그는 좋은 사람이었다. 흔히 말하는 인간적인 사람으로, 정이 참 많았다. 춤과 랩에 뛰어난 소질이 있기도 했다. 장기자랑 시간이 있는 날이면 그는 모든 이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국방색 우비에 군용 모자를 눌러쓰고 화려한 춤과 랩을 선보이던 그는, 영락없는 비공인 가수였다. 난 그가 춤추는 모습을 볼 때마다 한참동안 넋을 잃었다. ‘와, 대단하다.’ 그렇다. 한마디로 그는 대단한 사람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취침 점호시간이었던가. 그와 절친하던 어떤 선임병이 내무실장에게 끌려가 꾸지람을 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얼마 뒤, 그가 나를 비롯한 내 동기들에게 창고로 집합을 하라고 했다. 창고.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창고는 보일러실과 함께 군대에서 없어서는 안 될 공간이다. 각종 군수물품이 저장되어 있고, 따뜻한 일상을 보장해주는 공간들이다. 그렇게 ‘없어서는 안 될’ 공간은 역설적이게도 ‘있어서는 안 될’ 행위들을 보장해준다. 바로 구타와 가혹행위.

 

나와 내 동기들은 정해진 시간에 창고로 갔고, 그가 우리들 앞에 섰다. 그의 첫마디가 어렴풋이 기억난다. “나도 이러고 싶지 않다.” 그는 예상했던대로 선임병이 꾸지람을 들었던 일을 이야기했고, 그로 인해 오늘 집합시킨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우리들에 대한 질책이 이어졌다. “000 병장님이 그 짬밥에 그렇게 망신을 당해야겠냐? 너희들이 좀 잘해야 될 거 아니야!” 약간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하지만 난 생각했다. ‘몇 가지 험한 말을 하곤 그만 둘 거야. 그가 우릴 때리지는 않을 거야. 그는 그럴 사람이 아니야. 그는 좋은 사람이야.’

 

“퍽!” 그는 내 옆에 있던 동기의 복부를 군화로 힘껏 내쳤다. 내 동기는 뒤로 한참 밀려났다. 난 생각했다. ‘이럴 수가. 그가 우릴 때리다니!’ 좀처럼 믿겨지지 않았다. “퍽!” 그의 군화가 또 다시 공기를 가른다. 이번에 맞은 동기는 뒤로 고꾸라졌다. 그리고 드디어 내 차례. “퍽!” 그는 오른발 군화로 내 복부를 가격했고 난 뒤로 밀려났다. 그리고 한동안 숨쉬기가 힘들었다. 그의 군화 세례는 나머지 사람들에게도 이어졌고, 그 모습을 보며 난 반항심을 느끼기도 했다(사실 그와 싸운다면 이길 자신도 있었다).

 

그랬다. 난, 아팠다. 군화에 온 힘을 실은 발차기에 난 분명 아픔을 느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아팠던 건 내 마음이었다. 그렇게 ‘좋은’ 사람도 이렇게 때릴 수 있다니. 그 사실에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다. 이 글을 쓰면서 그때 맞았던 곳을 만져본다. 그 군화가 남긴 물리적인 흔적은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 그러나 난 지금도 이렇게 아파하고 있고 그래서 이 글을 쓰고 있다.

 

군에 있을 때 유일하게 경험한 물리적 폭력(‘유일하게’란 표현을 쓸 수 있다는 게 다행인지, 불행인지 잘 모르겠다). 그 유일한 경험이 그렇게 ‘좋은’ 사람과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은, 아직도 내게 커다란 생채기로 남아있다. 군대란 아무리 ‘좋은’ 사람도 ‘나쁜’ 사람으로 만들 수 있는 곳이었다. 그래서 “군대가 사람 만든다”는 말이 나는 좀 그렇다.

 

‘군기를 잡는다’는 명분

 

그는 모범 사병이었다. 일도 잘했고 운동도 잘했다. 후임병들을 잘 챙겨줬고, 선임병들에게도 비교적 인정을 받고 있던 사람이었다. 목소리가 좋았고 말도 잘 하는 편이었다. 언젠가 내가 어떤 실수를 한 적이 있는데, 그때 화를 내지 않고 다정한 말투로 다독여주던 게 생각난다. 그에게는 일종의 카리스마가 있었다. 한마디로 그는 괜찮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였을까. 아마도 그가 내무실장이 되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내무실장이라는 책임감에서 그랬을까. 그는 이전과는 다르게 점점 폭력적으로 변해갔다. 후임병들에게 폭언을 일삼기 시작했고 공포 분위기를 자주 조성했다. 뭐라고 정확히 설명할 순 없지만, 그는 후임병들에게 점점 가혹해져갔다. 여기저기서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고 내무실 생활은 각박해져갔다.

 

그러던 어느 날.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그때 난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며칠을 고민하던 나는 드디어 일을 벌이기로 했다. 바로 ‘투서’를 하는 것이었다. 사실 그건 ‘비겁한’ 일이었다. 뭔가를 일러바친다는 것은 ‘남자들 세계’에서 째째한 일이었다. 또한 그것은 ‘배신자’가 되는 일이었다. 조금만 더 참으면 되는데 괜히 일을 크게 벌이는 것은 모두를 배반하는 것이기도 했다. 동시에 그건 ‘위험한’ 일이었다. 만약 내가 신고를 한 걸 알게 된다면, 그가 나를 가만히 둘 것인가.

 

하지만 난 결국, 일을 냈다. 쪽지에 그가 후임병들에게 가혹행위를 일삼고 있으며, 공식적으로 모든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볼 것을 요청한다고 적었다. 그런 내용의 쪽지를 여러 개 만들어 당시 화장실에 있던 서너 개의 투서함(소원수리함)에 모두 넣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당시 소대장이 금방 발견할 수 있도록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이 글을 쓰면서 그때 느꼈던 불안감과 긴박함이 다시금 살아나는 것 같다. 특히 소대장 책상 위에 쪽지를 올려놓을 때는 참으로 많이 떨었던 것 같다. 다른 사람이 먼저 이걸 발견하면 어쩌나 하고.

 

그리고 얼마가 지났을까. 소대장으로부터 집합 명령이 떨어졌다. 나 역시 내무실로 갔는데 가는 길에 그를 볼 수 있었다. 군장을 맨 채 연병장을 돌고 있는 그를. ‘아,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나는 떨리는 가슴으로 내무실로 갔다. 모두가 웅성거리고 있었다. 그때, 평소에 친하게 지내지는 않았지만 나를 괜찮게 생각해주던 어떤 선임병이 다가왔다. 그는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성주, 너지!”

 

그것은 물음표가 아닌, 느낌표의 어감이었다. 사실 난 평소 조용하게 지내긴 했지만, 가끔씩 반항기를 보여왔기 때문에 그렇게 말했던 것 같다. 그때 가슴이 얼마나 쿵쾅거렸는지, 눈동자가 얼마나 떨렸는지, 지금도 기억난다. 그 선임병은 대답없는 나를 다그치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나라는 걸 알았을 것이다. 심하게 떨리던 내 눈동자가 이미 모든 걸 말하고 있었으니까.

 

이상하게도 그 뒤에 어떻게 일이 진행되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확실한 것은, 그가 분명 처벌을 받았다는 것이다. ‘남자답지 못하게’ 일러바쳤던 그 일은, 분명히 효과가 있었다. 그런데 한 가지 놀라웠던 것은, 알고 보니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투서함에 쪽지를 넣었다는 사실이었다. 다만 그게 발견되지 않고 있다가, 내가 소대장 책상에 쪽지를 올려놓는 바람에 드러났던 것이다. 뭐랄까, 그 사실을 알고 난 일종의 연대의식을 느끼기도 했고, 나만 힘들어했던 게 아니었구나하는 생각에 마냥 서글퍼지기도 했다.

 

덧붙여 고백하건대, 그때 내가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그의 ‘보복’이었던 것 같다. 다행히 그는 누가 일러바쳤는지를 집요하게 따지지는 않았지만, 난 그가 제대할 때까지 그 점이 항상 두려웠다. 한편으로는 ‘남자답지 못했다’는 사실에 자괴감을 느꼈다. 군대에서의 가혹행위란 군기를 잡기 위한 일반적인(?) 수단인데, 나만 괜히 민감하게 반응해서 혹은 (군대에서 항상 강조하는) 인내심이 부족해서 그렇게 튀는 행동을 한 건 아닌가 라는 생각에 괴로워했다. 물론 지금은 그 인내심이 부족했던 게 오히려 다행이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경험한 구타와 가혹행위. 제한적이긴 하지만 이를 통해 느낀 것은, 군대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폭력이 ‘군기를 잡는다’는 명분으로 정당화된다는 점이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그 이야기를 과연 믿어도 되는지 자꾸만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더 이상 상처를 주고받는 일이 없기를 진심으로 바란다(한편 ‘군기 잡기’라는 명분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최근에 문제가 된 체육대학의 폭력 문제도 마찬가지다).

 

매우 공교롭게도, 이 글의 초고를 쓴 날 밤 군화로 나를 가격했던 그가 꿈에 나타났다. 그는 어딘가에 앉아있었고 말이 없었다. 표정은 어두웠다. 그가 왜 꿈에 나타났을까. ▣ 박강성주 2007/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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