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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으로 말하다

장애여성에겐 남다른 의미의 ‘독립’

그 여자들의 물결 일다 2008. 12. 9. 11:05

다큐멘터리 <거북이 시스터즈> 안팎의 이야기

 

사람들은 대부분 독립을 꿈꾼다. 물리적 독립, 경제적 독립, 정신적 독립 등을 포함해서 말이다. 남성들은 어릴 때부터 주체적인 삶을 교육받고 지원 받는 데 반해 여성들에게 독립은 ‘많은 것들과 싸워서 쟁취해 얻어야 하는 것’이다.

 

사실 ‘독립’이란 개념에 대해서는 저마다 다르게 생각한다. 단순히 ‘혼자 사는 것’이 독립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분명한 점은 사람들이 독립을 원하는 이유가 자신의 삶에서 보다 많은 선택권을 가지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집의 공간배치라든지, 식사 해결, 귀가 시간 등에 대해 본인이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고 싶은 마음이 곧 독립에 대한 의지로 이어진다.

 

독립에 대한 이야기는 간단하지 않다. 그것은 자신의 삶 전체를 풀어놓아야 가능한 이야기이다. 그런 의미에서 ‘장애여성의 독립’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곧 장애여성들의 일상적인 삶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독립’을 향해 가는 세 사람

 

다큐멘터리 거북이 시스터즈의 한 장면

장애여성들은 살아가면서 사소한 것 하나에도 선택권을 갖지 못한 경우가 많으며, 가진다 해도 그 선택의 폭은 지극히 좁다. 장애여성의 삶 자체가 심한 통제를 받는 것이다. 따라서 장애여성들에게 있어서 독립은 더욱 성취하기 힘든 목표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여성들 중에는 성인이 되고 나서야 비로소 집 밖을 나올 수 있었던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나 장애여성들 역시 독립의 의지를 갖고 있으며, 그것을 준비하거나 실현시켜가고 있는 이들도 있다.

장애여성공감과 여성영상집단 ‘움’이 제작한 다큐멘터리
<거북이 시스터즈>(2003)는 장애여성의 독립생활을 담고 있다. 장애여성인권운동을 하며 알게 된 1급 장애여성 영희, 정영란, 박순천씨는 고덕동에서 6년째 함께 살고 있다. 카메라는 세 사람의 일상을 가까이에서 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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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이 시스터즈>는 장애여성의 독립 조건 중 하나가 ‘이동’이라고 말한다. 외출할 때, 친구를 만나러 갈 때조차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이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들의 일상이다.

독립의 조건 중 또 하나는 ‘집’이다
. 경제적인 어려움도 크지만 자신들이 살 집을 ‘선택’할 수 없다는 어려움이 또 있다. 계단도 없어야 하고, 장애 특성에 따른 여러 가지 조건들이 맞는 곳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세 사람은 결국 전세금을 올려달라는 주인집의 요청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러다 큰방이 물이 세서 공사를 하느라 이사를 해야 하는 상황에 이른다
. 짐을 전부 뺐다가 다시 넣어야 하는 것이다. 이삿짐센터에서 처음과 다른 사람들을 보내주는 바람에 또 오랜 시간을 들여 물건들을 일일이 제자리에 놓아야 하는 어려움을 겪는다. 순천씨는 (물건을 정리하는 데) 1년은 걸릴 거라며 한숨을 쉰다.

가족들의 반대를 비롯해 많은 어려움을 뚫고 독립생활을 시작한 세 사람이 그것을 유지하는 과정 또한 만만치 않다
. ‘안전’의 문제도 심각하다. <거북이 시스터즈>의 주인공들 역시 수상한 남자의 시선을 느끼거나 심한 욕설을 듣기도 했다. (몇 차례나 신고한 끝에 경찰서에서 무인경비시스템을 무료로 설치할 수 있게 해줬다.)

장애여성의 결혼에 대한 환상 유포 '경계'
 

장애여성공감이 영화 제작을 기념하여 개최한 ‘장애여성과 독립’ 영상토론회에선 ‘독립’을 둘러싼 다양한 논의가 진행됐다
.

이 다큐멘터리의 주인공 중 한 명인
정영란씨는 27살이 되던 해 정기적인 첫 외출을 시작했다. 그리고 사회와 접촉을 시작한지 4년 만에, 사춘기 때부터 고민해오던 독립을 실행에 옮겼다. 본인의 의지가 강했기에 부모님을 설득할 수 있었던 것이다.

고덕동에서 꾸려 가는 삶에 대해 정씨는 ‘장애인공동체’와는 다르다고 강조했다
. “공동체나 그룹홈은 장애인들이 주체적으로 자신의 삶을 이끌어 가는 곳이 아니다. 하지만 독립생활은 내게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고,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경제적인 면에서도 내가 애써야 한다”고 그 차이점을 설명했다.

아직도 많은 부모들이 딸을 결혼시키는 것이 ‘독립시키는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다
. 그런데 장애여성들에 대해서는 ‘결혼을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결혼을 하면 다행’으로 여긴다. 그렇다면 장애여성들에게 결혼은 과연 독립적인 생활을 가져다주는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독립을 더욱 멀어지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장애여성공감
박주희 운영회원은 “장애여성은 ‘완벽한’ 결혼생활을 일궈내기 위해선 가사노동·양육·탁아를 다른 사람들이 도와주어야 한다. 따라서 주변에서는 여전히 그 사람을 독립적인 존재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박주희
씨는 “매스컴에서 장애여성의 결혼에 대한 환상을 유포하고 있다. 특히 장애여성과 비장애남성이 결혼한 경우 마냥 행복한 삶으로 그려낸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실제로 각종 매체에서는 장애여성과 결혼한 ‘착한’ 비장애남성의 이야기를 대단한 화제로 그려내면서, 남편에게는 칭찬의 목소리를, 아내에게는 부러움의 눈길을 주곤 한다.

이희연
씨는 보행이 가능한 장애여성이다. 희연씨에게 독립은 “필수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과제 같은 것”이다. 부모님이 자신을 끝까지 책임지고, 동생이 그 다음으로 책임지리라 기대되는 사회적 인식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것이다. 몇 년 전에 학교 앞에서 하숙을 하며 6개월 정도 반독립상태로 생활한 경험이 앞으로 독립의 지침서가 될 것 같다고 한다.

이희연
씨는 “사람들은 비장애여성이 독립한다고 하면 일단 부럽다, 대단하다는 시선으로 보는데 반해 장애여성들의 독립은 굉장히 불쌍하게 보기 때문에 이런 시선이 심적인 부담으로 작용한다”고 덧붙였다.

‘장애 정도’가 어떻든 독립은 중요해

장애여성이 독립을 하는데 있어서는
이동권 보장, 경제적 지원, 가족들의 지지 등 기본적인 것뿐만 아니라 더욱 섬세하고 다양한 조건들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독립의 가능성은 장애의 정도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조건들이 얼마나 갖추어졌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독립은 결국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가꾸어갈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 장애여성 혹은 비장애여성과 함께 사는 장애여성, 혼자 사는 장애여성, 결혼한 장애여성, 혼자 아이를 키우는 장애여성이 독립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더욱 많은 논의가 이루어지길 기대한다.
ⓒwww.ildaro.com [일다] 강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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