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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교회 무대에 올린 "환타스틱" 동성애
 
[일다는 장년층 레즈비언들의 삶과 진솔한 목소리를 담기 위해 ‘그루터기’ 회원들의 글을 6회에 걸쳐 연재하였습니다. ‘그루터기’는 공동체를 지향하는 35세 이상 여성이반모임입니다.]

지난 주에는 여성교회 19주년을 맞아 축하예배가 있었다. 매년 맞이하는 생일 예배에는 연극이 상연되었는데, 올해 연극의 주제는 “여성교회의 꿈”이었다. 그 중에서도 크리스와 나는 성적소수자의 이야기를 이인극으로 올렸다. 대사도 다 외우지 못한 짧고 어수룩한 연극이었지만, 크리스와 나의 경험이 들어있는 연극이었다. 대본도 함께 썼다.

여성교회의 20대들이 교회에 품은 꿈을 펼쳐 보인 연극이 있었고, 남양주 이주노동자여성센터에서 온 이주노동자/여성은 “이주여성/노동자와 효녀심청의 이야기”를 무대에 올렸다.
 
“결혼여성이민자들의 이야기”는 계획에 있었지만 아쉽게도 무대에 오르지 못했고, 대신 결혼여성이민자들의 삶에 대한 짧은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씨받이”라는 말과 “돈을 주고 사왔다”는 말이 아프게 들렸다. 내가 이고 있는 하늘 아래.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라 했던가. 연극은 어떤 진지한 논문보다도, 연구결과보다도 마음을 움직인다. 잘 모르던 이야기, 알려고도 하지 않았던 이야기들이 가깝게 다가온다. 말 그대로 눈 앞에 펼쳐진다. 관객이 앉아 있는 것과 같은 높이의 무대에 서서, 나는 미약한 흔들림을 느꼈다. 떨림을 느꼈다.
 
생전 처음 레즈비언을 보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분명히. 잘 드러나지 않지만 공존하고 있는 다른 세상을 봤기를, 견고한 이 세상에 난 작은 틈을 봤기를.
 
그 사이에 나는 먼저 자신을 느낀다. 남들의 시선이 닿기 전, 내가 먼저 내 모습을 보고 목소리를 듣는다. 무대에 서고 목소리를 높이고 즐거워하는 내 모습을 본다. 깔아 놓은 멍석 위에서 춤을 추는 나를 본다. 이 작은 무대의 작은 파장을 더 많은 곳으로 가져갈 수 있다면, 내가 이고 있는 하늘 아래, 혼자서 꿈을 꾼다.
 
꿈의 틈새를 비집고 크리스의 목소리가 들린다.

“우리 이 연극을 좀 더 잘 만들어서 다른 곳에서도 하자!”

“연습을 훨씬 더 열심히 하자.”
“대본도 다시 쓰자.”
“좀더 길게 늘리자.”
“우리가 가는 곳에 따라서 대본의 내용을 조금씩 고쳐야 할 거야.”

잘못 들으면 달달 볶는 것처럼 들리는 크리스의 의욕에 찬 목소리가 오늘은 아주 달갑다. 고개를 끄덕인다.

“응, 우리 꼭 해보자.”
 

지금 대본을 다시 정리해 보니 꽤나 노골적인데다가 예술적으로 덜 떨어진 내용이다. 하지만 크리스와 삼순이의 의기는 꺾이지 않는다. 이런 면에서 낙관적인 커플이라고나 할까! 내년에는 좀더 준비하고 연습해서 새로운 내용으로 올리자고, 누가 시키지도 않는데 둘이서 먼저 손 맞잡고 약속한다.

제목이 “환타스틱” 동성애인 이유는, 남들이 보는 것처럼 “환타스틱, 로맨틱”한 것이 동성애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부장제와 이성애주의가 촘촘하게 지배하는 세상에 작은 틈을 내는 우리들의 일상이 나름 “환타스틱”해서이다. [일다] 삼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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