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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한 국가의 민낯을 고발하는 ‘밀양아리랑’
<밀양을 살다>가 기록한 진실 
 

올해 1월과 2월, 송전탑 반대 싸움을 하고 있는 밀양주민들의 구술기록 작업에 참여하기 위해 밀양에 세 차례 방문했다. 기록노동자, 작가, 인권활동가 등으로 구성된 열다섯 명의 기록자들은 열일곱 명의 밀양주민들이 살아온 삶의 궤적을 더듬어가며, 밀양 송전탑 반대싸움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기를 희망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책이 <밀양을 살다-밀양이 전하는 열다섯 편의 아리랑>(오월의 봄, 2014)이다.

 

보라, 한국전력이 무엇을 빼앗으려 하는지 

 

▲  <밀양을 살다-밀양이 전하는 열다섯 편의 아리랑>(오월의 봄, 2014) 
 

기록자들이 주목했던 것은 무엇보다 주민들의 ‘삶’이었다. 송전탑 싸움이 밀양주민들의 삶 속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라는 질문을 던진 것이다. 제각기 다른 삶을 살아온 열일곱 주민들의 이야기 속에서 나는 먼저, ‘땅’이 가진 의미를 헤아려 보게 되었다.

 

그들에게 땅은 조상이 물려준, 대를 이어 살아온 ‘역사’가 담긴 곳이다. 어린 시절의 추억이 담긴 ‘고향’이고, 앞으로 살아갈 ‘미래’이다. 당장의 먹을거리를 얻고 생계를 유지하는 ‘일터’이다. 외지에 나간 아들, 딸뿐만 아니라 손자손녀들이 언제든지 찾아와 머물러 ‘쉴 수 있는 곳’이며, 노년의 자신들 뿐 아니라 자식들의 생활을 위해 급할 때는 팔아 돈으로 바꿀 ‘저금’ 같은 곳이다. 또한 그저 바라만 보아도 아름답고, 내 아픈 몸과 마음을 어루만져 아물게 하는 ‘치유자’이기도 하다.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평생을 고생해 이제 겨우 손에 쥔 작은 ‘평화’다.

 

한국전력공사가 핵발전소 건설로 이익을 취할 누군가에게 봉사하기 위해 초고압송전탑 건설을 밀어붙이며 밀양주민들에게서 빼앗아가는 것은 바로 이런 것들이다.

 

송전탑을 줄지어 세워 밤에도 대낮처럼 불을 밝히는 도시의 사람들에게 땅은 그저 ‘숫자’에 불과할지 모른다. 아니, 설령 투자 가치로만 환산되는 것이 땅이 가진 의미의 전부라고 해보자. 밀양에 송전탑이 들어서게 되면 주민들이 가장 ‘눈에 띄게’ 입게 되는 피해는 재산권의 상실이다. 수억 원을 받을 수도 있는 땅이 속된 말로 ‘휴지조각’이 되는 것이다. 등이 굽도록 평생 땅을 일궈 살아온 농민들에게 가당키나 한 말인가. 이들의 재산권은 이토록 쉽게 짓밟혀도 되는 것인가.

 

<밀양을 살다>에서 일제 강점기, 6.25전쟁을 겪은 87살의 김말해 할매는 밀양 송전탑 싸움을 가리켜 “이건 전쟁이다. 이 전쟁이 제일 큰 전쟁이다.” 라고 혀를 내두른다. 과장하는 말같이 들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전쟁’이라는 표현은 밀양주민들에게는 단순한 비유를 넘어선다.

 

‘전쟁’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둘 이상의 서로 대립하는 집단에서 무력이나 폭력을 통해서 상대의 의지를 강제하고, 일방적으로 이쪽의 의사를 강요하는 행위나 상태가 바로 ‘전쟁’이다. 한국전력공사와 정부, 그리고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는 밀양주민 사이에 일어나는 일은 정확히 이 사전적인 뜻에 부합하는 ‘전쟁’이다.

 

처음부터 ‘대화’는 없었다

 

<밀양을 살다>에서 내가 기록자로 함께한 단장면 용회마을 주민 구미현 씨는 송전탑이 집 가까이 들어서는 것을 알게 된 경위를 이렇게 이야기한다.

 

“여기 보면은 저기 보이죠. (집 마당에서 바위를 손으로 가리키며) 병풍바위거든예. 저 바위가. 우리 주민들이 기준으로 삼는 게 병풍바윈데. 병풍바위 저 너머로 산 뒤로 넘어갔다는 그 송전철탑이 사실은 병풍바위 앞을 지나가는 거예요.

 

우리 동네 분들이 왜 그렇게 믿고 있었냐하면, 여기가 원래 굉장히 가까웠대요. 한 이삼백 미터 거리밖에 안됐는데 한전에서 뒤로 물려주겠다 그랬데요. 뒤로 물려주면서 이 동네에서 (찬성) 도장을 좀 찍어준 모양이라. 한전의 거짓말이죠. 조금 물려줘놓고 많이 물려준 것처럼 핸거죠. 그래서 우리가 많이 안 물러갔다, 너무 동네하고 가깝다 (말하니까) 동네 분들이 다 놀랜거죠.”

 

주민들은 한전 측이 처음부터 합리적인 대화를 할 생각이 없었다는 점에 분노한다. 한전은 송전탑 건설이라는 자신들의 목표를 밀어붙이기 위한 ‘특별한 기술’들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데 거리낌이 없었다. 책에는 기록되지 않았지만, 구미현 씨는 이런 이야기를 들려줬다.

 

“한전이 이런 경험이 많더라고예. 처음에 우리 동네에 실지로 공사는 안하면서 거의 한두 달을 매일 들어오더라고예. 주민들이 쇠사슬 치고 막고 있으면, 그 너머에서 주민들한테 이런 저런 말을 던지면서 우리끼리 하는 반응을 관찰해요. 그러면서 어떤 사람을 찍을 것인가 거기서 다 성향 분석을 한다네요.

 

공표, 세모, 꽃표(X표). 공표는 자기들이 약간만 하면 자기편이 된다는 거죠. 그 사람들을 파고드는 거죠. 참 신기하게도 잘도 알아챕디다. 왜 평소 동네 분들한테 하는 게 너무 이기적이고 좀 외면 받는 그런 사람들 있잖아예. 그런 사람들부터 딱 찍어내서 자기편으로 만들데예. 그리고 꽃표(X표)에 드는 사람은 전혀 손을 안댑디다. 세모에 들은 사람들 있잖아요. 그런 사람들은 개개인이 파고들고. 특히 여기 현지 살던 사람하고 (이주해 들어온) 우리하고 사이를 갈라놓으려고 하는데, 여러 가지 인맥을 다 통해서 하는 거죠.

 

만약에 마을에 사는 어르신의 자제가 밀양시청의 하청을 받아서 공사를 한다든가 그러면 밀양시청을 통해서 그 아들이 동네로 들어와서 집집이 다 찾아다니는 거죠. ‘외지에서 들어온 사람 믿지 마라. 저 사람은 어정쩡하게 해놓고 그냥 떠날 사람이다. 사람들 이렇게 일으켜놔놓고는 자기들은 이상해지면 떠날 사람이다.’ 이런 식으로 이간질하는 거죠.”

 

잔인한 국가의 민낯을 고발하는 ‘밀양아리랑’

 

시골의 마을공동체는 굉장히 중요하다. 거의 대부분 마을주민들은 어릴 적부터 함께 지내온 이들이다. 혈연으로도 맺어져 있고, 몇 대째를 이어서 살아온 이들도 있다. 한전은 이러한 마을공동체를 파괴하는데 거리낌이 없었다.

 

‘주민들과 합의하고 있다’고 선전하기 위해 송전탑에서 멀리 떨어진 위치에 있는 주민들을 ‘보상금’으로 회유한다. 송전탑 예정지에서 가까운 곳에 사는 주민들은 조금의 ‘위로금’에 불과할 돈을 받고 송전탑 가까이 있는 사람의 고통에 눈감은 이들에 대한 원망과 배신감을 가슴에 깊이 새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잔인한 방식으로 끊어지는 것이다.

 

한전을 비호하는 국가 권력은 실제로 전혀 민주 정부의 그것이라 볼 수 없는 방식으로 주민들을 협박하고 밀어붙이고 있다. 지팡이로 느릿느릿 걷는 ‘할매’ 몇을 막으려고 ‘무장한 젊은 경찰’들이 몇백 명씩 동원된다. 용회마을 구미현 씨 부부는 만취한 사복경찰에게 미란다원칙에 대한 고지도 없이 현장도 아닌 곳에서 연행된 적이 있다.

 

<밀양을 살다>가 출판된 후, 책을 들고 101번 송전탑 예정지에 있는 농성 현장을 찾았다. 움막에서 만난 용회마을 주민 송루시아 씨는 “사람이 죽었는데도 송전탑 건설을 밀어붙일 때 정말 깊이 절망했다”고 탄식했다. 이미 밀양에서는 두 명의 주민이 ‘송전탑에 반대한다’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밀양주민들은 이 연이은 죽음에 정부나 한국전력공사가 조금은 달리 생각할 줄 알았다. 이들에게 ‘사람의 생명은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와 한전은 고인이 외친 죽음의 의미마저 송전탑과 관계없는 것으로 왜곡하려 들었다.

 

돈보다는 생명이라고 ‘순진하게’ 믿고 있는 밀양의 시골 할매와 할배들은 이 잔인한 국가를 지금 이순간도 몸서리치게 겪어내고 있다. 이들에게 국가는 왜 필요한 것이며, 정부는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가.

 

이들이 살아내고 있는 밀양은 단순히 한 지역의 이름을 넘어서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대한민국의 모습이다. 밀양 송전탑 싸움의 실체적 진실을 드러내는 열다섯편의 아리랑에 우리가 머리와 가슴을 열고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이다.  ▣ 박희정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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