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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많이 받으면 과로로 쓰러져도 괜찮다? 

 

“이번에 또 앰뷸런스가 왔어요.”

 

대형로펌 A에서 일하는 1년 차 ‘어쏘시스턴트 변호사’(회사에 고용된 신입 변호사로 연차가 쌓여 회사에서 독립적으로 일하는 파트너 변호사에게 업무를 할당받아 일한다) ㄱ씨는 회사에 앰뷸런스가 왔다고 했다. 한 어쏘시스턴트 변호사가 과로로 쓰러졌기 때문이다. ㄱ씨는 이런 일이 종종 있다고 덧붙였다. 

 

▲  전문직이라 불리는 화이트칼라 노동자들이 밀집한 서울 강남의 테헤란로. 고층빌딩이 빼곡하다.   © 이지영 
 

ㄱ씨 또한 과도한 업무량에 시달리고 있다. 오전 9시 반에 출근해 다음날 오전 1시쯤 퇴근한다. 매주 토요일이나 일요일 둘 중 하루를 회사에 나와서 일한다. ㄱ씨의 평균 한달 업무시간은 210시간. 현재 ㄱ씨의 소원은 밤 10시에 퇴근하는 것, 그리고 토요일과 일요일 모두 쉬어보는 것이다.

 

ㄱ씨는 “그래도 우리 로펌은 나은 편이다” 라고 말했다. “얼마 전 B로펌에서 우리 로펌으로 옮긴 분이 계신데, 그 분은 B로펌에서 한 달에 250시간씩 일했다고 한다”는 것이다.

 

실제 대형로펌 B에서는 벌써 과로사만 3명 째다. 이 로펌은 설립된 지 약 20년 정도 되었는데, 7년에 한 명씩 과로사한 꼴이다. B로펌은 자사 변호사들의 업무 시간이 가장 많다는 걸 고객들에게 홍보하고 있다.

 

공정노동연합(Fair Lavor Association)이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과도한 업무량과 노동자의 연쇄자살로 악명이 높은 중국의 팍스콘 공장의 경우, 노동 시간은 한 달에 약 240시간이다. 한국의 대형로펌의 노동 시간은 팍스콘 못지 않은 셈이다.

 

업계1위라는 C로펌에서 일반관리직으로 일하는 ㄴ씨는 변호사들의 타임시트(어쏘시스턴트 변호사들은 자신들이 얼마 동안 일했는지 노동시간을 타임시트에 적는다)를 볼 때마다 ‘이러다가 변호사들 죽을 것 같다’며 걱정한다. ㄴ씨는 일하다 링거를 꽂는 건 로펌 변호사들에게 특이한 현상이 아니라고 했다.

 

변호사들이 로펌에서 퇴직하는 비율은 높은 편이다. C로펌의 ㄴ씨는 “신입 변호사의 퇴직 비율이 60퍼센트 정도 된다. 개업을 위해 나가는 변호사들도 있지만, 업무량에 못 이겨 사내변호사나 공직으로 옮기는 변호사가 많다”며, “신입 변호사의 퇴직이 잦아, (그 소식은) 회사 인트라넷 뉴스에도 뜨지 않는다”고 말했다. 신입 변호사의 퇴직은 뉴스거리도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일이 로펌에서만 일어날까? D회계법인에서 일하는 ㄷ씨도 과로에 시달리고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ㄷ씨는 3개월 연속으로 하루 3,4시간밖에 못 자고 일한 적도 있다고 털어놓았다.

 

‘최소한의 인력으로 최고의 효율 내기’

 

보통 노동 착취라고 하면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를 떠올린다. 그러나 변호사, 회계사, 대기업 노동자 같은 고임금 화이트칼라 노동자도 노동 착취에서 자유롭지는 않다. 그것도 좀더 교묘한 방식으로 말이다.  

 

일례로 사용자와 근로자 간 고용 관계를 맺는데 있어서 기본 중의 기본인 계약서를 대형로펌에서는 쓰지 않는다고 한다. A로펌의 ㄱ씨는 “대다수 대형로펌에서는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는다.” 라고 말한다.

 

“계약서에는 대체로 사용자의 의무를 명시하는 경우가 많다. 월급을 얼마를 주고, 업무를 하다 노동자가 다치면 어떻게 보상해줄 지와 같은 내용들이다. 그런데 계약서를 쓰지 않으면 사용자가 의무 이행을 소홀히 해도, 노동자는 반박하기 힘들다. 결국 다른 노동자들은 다 쓰는 계약서를 정작 변호사 노동자는 못 쓴다.”
 

▲ 점심 시간에 밖에 나와 담배를 피우거나 담소를 나누는 직장인들. ©이지영 
 

한국노총 중앙연구원에서 발간한 <화이트칼라 노동자의 고용 및 노동조합 의식 실태 연구>(2006)에 따르면, IMF 구제금융 요청 시기 이후로 화이트칼라 노동자의 근로 조건이 더욱 나빠졌다고 한다. 경기 불황으로 매출이 불안정해지면서 ‘최대한 적은 인력으로 최대한의 효율 내기’가 로펌과 회계법인, 대기업에도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구직난으로 인해 노동자는 퇴직이나 이직을 결정하기 어렵다.

 

이 연구 결과에 따르면, 피실험자인 고임금의 화이트칼라 노동자들 모두 토요일이나 일요일에 초과업무를 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보상은 받지 못한다고 답했다.

 

통신사인 E대기업에서 일하는 ㄹ씨의 경우도, 불황으로 매출이 떨어지면서 사측이 인건비를 줄이려고 적은 인력으로 과중한 업무를 맡겨 결국 과로로 허리를 다쳐 물리치료를 받았다. 동료들도 한 번씩 링거를 맞았다고 한다. ㄹ씨는 “퇴사를 하려 했으나 다시 회사를 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대기업에 서류를 넣었지만 통과된 곳이 한 곳도 없었”기 때문이다.

 

화이트칼라는 왜 노동조합을 만들지 않을까

 

고임금 화이트칼라의 노동 착취를 해소하려면, 이들을 대변할 집단이 필요하다는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바로 노동조합이다.

 

<화이트칼라 노동자의 고용 및 노동조합 의식 실태 연구>에 따르면, 경제 위기 때 조직화되어 있었던 블루칼라들은 노조를 통해 자신들의 이익을 주장했지만, 화이트칼라들은 그런 조직이 없어 사용자의 대량 해고에 무력했다고 나와 있다. 2006년 8월 기준으로 화이트칼라 노동자의 노조 조직률은 15.6%이며, 고임금 전문직의 비중은 그 중에서도 10%밖에 차지하지 않는다.

 

2004년 4월, 두산인프라코어에서는 경영 위기를 빌미로 한 해고에 맞서기 위해 사무직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그러나 노조에 가입한 사무직 노동자들에게 회사가 인사 승진에 있어서 불이익을 주자, 현재는 많은 사무직 노동자가 탈퇴한 상태이다.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화이트칼라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 것은 아니다. 지금 일하는 직장에 노조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절반(50.6%)에 달했다. 생산직(51.6%)에 버금가게 높은 수치다. 그러나 이 보고서는 연구 대상자들 대부분 노조를 스스로 설립하려는 의지가 미약했다고 기술하고 있다.

 

실제로 D회계법인에 다니는 ㄷ씨는 “파업하면 회사에 가장 큰 타격을 줄 수 있는 게 고임금의 화이트칼라다. 대체가능한 노동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전문 지식을 가지고 있는 노동자가 얼마나 되겠나” 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아무도 선뜻 앞장서질 못한다. 누군가 나서길 바라지, 내가 나서서 희생하기는 원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또, 무노조 방침을 가진 대기업에 다니는 ㅁ씨는 “내가 노조를 만든다고 해서, 거기에 참여하는 사람이 있을까? 누군가와 연대해서 싸운다는 경험을 별로 해본 적도 없다”고 털어놓았다.

 

요즘 같은 취업난에 배부른 소리?
 

▲ 화이트칼라 노동자 층이 많은 서울 삼성동 풍경.    © 이지영 
 

‘나 혼자 참으면 된다’는 인식도 고임금 화이트칼라들이 조직화하는데 방해 요소가 된다. 바버라 에런라이크는 <희망의 배신>에서 ‘화이트칼라는 규율을 잘 지켜도 해직을 당하면, 해직을 한 회사를 원망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이야기한다.

 

서울 서초동에서 한 법무법인을 운영하는 ㅂ씨는 “장애를 가진 가족, 경제적으로 어려운 집안 등의 환경을 탓하지 않고, 열심히 공부해 이 자리까지 왔다”며, 고임금 화이트칼라들이 사회를 지적하기보다 개인적인 문제로 축소시키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사회를 원망하기 전에 스스로 노력해라, 라는 사회의 이데올로기에 누구보다 잘 적응해온 이들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라고.

 

고임금 화이트칼라들을 만나 인터뷰했을 때, 노동자끼리 연대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우리가 좀 개인적이다’ 라는 식의 답변이 많았다. 노동권을 보장하지 않는 회사, 혹은 노동자가 연대하는 것을 방해하는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지적하기보다, 개인의 문제로 먼저 바라본 것이다.

 

한편, 노동시장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연봉을 받으니까 그런 노동 강도를 견딜 수 있어야 한다는 인식 때문에, 화이트칼라의 노동권에 대한 대중들의 공감도가 부족하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는 이유이다. 고임금이 그 모든 고생을 보상해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ㅅ씨는 “이번에 과장으로 승진했지만 중소기업 직장인으로서 힘든 건 여전히 있다”며, “직장인은 누구나 힘든데 고임금을 받으면서 힘들다고 한다면 배가 부른 것 같다”고 말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공인회계사를 준비하다 대기업 취업으로 돌아선 ㅇ 씨는 “직장이 있다는 것만 해도 안정된 생활이 보장된 거라고 생각한다”며, “거기다 고임금을 받는 직장이라면 요즘 같은 취업난에 다른 사람보다 나은 상황 아닐까” 라고 말했다.

 

노동권 보장받지 못하는 ‘고용된 전문직’들

 

그러나 고임금이든 저임금이든, 노동자라면 과로한 노동에 시달리지 않을 권리가 있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사용자에 고용된 근로자라면 상대적으로 ‘약자의 지위’에 서게 된다고 나와 있다.

 

근로기준법에서는 또한 8시간 근로 시간을 기준으로 두고 있으며, 연장 근로를 할 시 당사자와 합의하여 1주일에 12시간 일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현재 고임금 화이트칼라는 법에서 명시한 근로 시간을 한참 초과한 셈이다.

 

D회계법인에 근무하는 ㄷ씨는 사람들이 고임금 화이트칼라의 노동권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게 되는 원인이 대중매체에도 있다고 지적한다. “TV에서 전문직이라고 하면 엄청난 부를 누리고 권력을 갖고 있는 이미지로 비추지만, 그런 시대는 지났다”는 것. “고용된 전문직들이 노동권 보장의 사각 지대에 있다는 현실을 조명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 이지영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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