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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즘 새지평

북한사람들에겐 낯선 ‘돈의 의미’

그 여자들의 물결 일다 2014. 4. 25. 09:00

<북과 남을 가로지르다>② 한국에서의 첫 은행거래 

 

※ 10여년 전, 한국으로 와서 살고 있는 북한이주여성 효주 씨가 북한의 서민문화와 남한에서 겪은 경험을 전하는 <북과 남을 가로지르다> 칼럼이 연재됩니다.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을 지원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일다 www.ildaro.com

 

북한의 은행 이야기

 

한국에는 전국 곳곳의 어느 거리를 가봐도 ‘은행’이라는 간판을 자주 보게 된다. OO은행, 간판만 다를뿐 내용은 똑같은 곳. 은행. 처음 듣는 소리도 아니고 낯설지도 않은 곳이기는 하나, 실제로 은행 거래라는 것을 해본 건 세상에 태어나 처음 있는 일이었다. 

 

▲  북한의 화폐. 아래는 2009년 ‘화폐개혁’ 이후 발생된 신 화폐. 
 

북한에도 은행은 있지만, 이곳과 달리 도, 시, 군에 하나씩 있다. 동이나 구에는 자그마한 지점이 하나씩 있지만, 은행 직원이 나와서 일을 보는 것이 아니고 동사무소에서 은행 지점 일을 겸해서 본다.

 

은행이라고 하면 돈을 적금시키는 곳인 줄만 알았는데, 현금 인출도 하는 곳이라는 걸 한국에 와서야 알게 됐다. 한국에서처럼 카드로 인출기에서 입금, 조회, 인출, 이체를 하지는 않지만, 북에서는 직접 은행 직원을 통해서 이 일을 하는데,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지는 않는다. 아니, 돈이 없어서 이용할 일이 없다고 해야 정확한 말이 되겠다.

 

1980년대 후반기부터 북한에서는 ‘은행에 돈이 돌지않는다’는 소문이 돌았다. 동사무소 직원들이 나와서 매 세대당 10원씩 의무적으로 적금할 것을 강요한 적이 있었다. 매일 동사무소 직원들이 한 명씩 나와서 반장들을 대동하고 집집마다 돌며 한 달에 얼마씩 적금할 수 있는지 이름(사인)을 적으라고 했다. 못한다고 할 수도 없고 해서 이름만 적고 실제 적금은 못하는 세대가 많았다.

 

나도 그런 사람 중의 한 사람이었다. 내가 은행이라는 곳에 들어가 본 기억을 더듬어 보면, 남편의 재해보험을 찾기 위해 매일 직원처럼 출근한 적이 있었다. 여기서 잠깐, 북에서 재해보험을 찾던 그 때의 상황을 이야기해보려 한다.

 

‘남편 꼭 살리시오’…재해보험금을 받다

 

북한에서도 은행에서 매달 월급을 내줄 때 직장에서 사회보험금을 제하고 준다.(급여명세서에 ‘재해’라고 적혀있다. 한국에 와서 ‘보험’이라고 부른다는 것을 알았다.) 당시 남편이 만성 신장염에 걸려 병원을 전전긍긍하다 일을 못하고 장기 환자로 집에서 통근 치료를 받고 있었다. 신장이식이나 투석을 받았으면 좀더 오래 살 수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워낙 열악한 의료시설에서는 가당치도 않았다.

 

이 사실을 알게된 지인이 나에게 혹시 은행에서 재해보험금(북에서 농민이나 노동자가 재해, 질병, 부상으로 노동 능력을 상실한 경우 받을 수 있는 일시 보조금)을 탔냐고 물었다. ‘그런 것도 있는가’ 하고 물었더니, 모두 몰라서 못 타먹는다고 하면서 은행에 가서 한번 물어보라고 했다. 주저없이 다음날 군에 있는 은행에 찾아가서 보니, 필요한 서류를 떼오라는 종이가 현관 옆에 붙어있었다.

 

담당 직원에게 다가가 자세한 설명을 듣고 난 후, 서류를 내면 금방 돈이 나오냐고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대기자가 너무 많아서 3년씩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다며, 기대는 하지 말라고 하였다. 은행에 돈이 돌지 않아서 어쩌다 밀린 월급을 주게되는 경우에는 재해보험을 타야 할 가족들이 줄을 설 지경이라며, 언제 나갈지 모르는 월급 날에만 기회가 있다고 했다.

 

한숨이 나왔지만, 끈기 하나는 누구한테도 지지 않는 나였다. 재해보험을 타려면 세 명의 증인이 있어야 한다고 하였다. 부지런히 다니며 그 날로 서류를 떼서 은행에 가져다 주고는, 다음날부터 은행에 출근하기 시작했다. 문 열기 전에 찾아가서 퇴근할 때까지 직원들에게 눈도장을 찍고 매일매일 기다렸다. 은행 직원들도 나를 보면서 지긋지긋 했을 것이다.

 

그곳에 출근하다시피 하면서 보험금을 타기 위해 드나드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그 보험금을 타서 약을 사려다가 끝내 이루지 못하고 숨을 거뒀다는 이야기도 여럿에게 들었다. 모두 가슴아픈 사연들을 가지고 있었고, 당장 돈이 필요한 당사자들도 많았지만, 내 처지 역시 급했다. 한 번의 기회를 놓치면 언제 또 이런 기회가 올 지 몰랐다.

 

월급날! 드디어 직장 통계원들이 보험료를 수납하기 위해 은행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담당 은행 직원이 카운터 앞에 와 있으라고 내게 눈짓을 했다. 한참이 지났다. 각 직장 통계원들이 왔다간 후 조금 여유가 있을 때, 은행 직원이 나를 보며 “참 대단한 끈기와 인내심을 가졌소. 하긴 이런 정신이 아니면 백날이 가도 못 타먹지. 대단하오.” 라고 말하면서 640원을 내주었다. 지금까지 나같은 사람은 본 적이 없다나… 아무튼 나는 15일 만에 보험료를 타냈다.

 

직원이 “남편 꼭 살리시오” 라고 인사말로 나를 격려해주었다. 나는 고맙다는 인사를 전 직원들에게 돌아가며 한 후 은행문을 나섰다. 나도 몰랐고, 남편도 몰랐고, 북한주민 대부분이 모르는 그 일을 해낸 것이었다. 이런 정보를 알려준 그 지인에게 다시 한번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신기했던 남한에서의 첫 은행 거래

 

이제, 한국에 와서 처음으로 은행에 갔던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그때 다니던 교회의 목사 사모님이 은행에 갈 때는 도장과 신분증을 꼭 가져가야 한다고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처음으로 내 힘으로 직접 번 돈을 은행에 적금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막 설렜다. 

 

▲ 한국에서 처음 은행에 들어갔을 때.  © 효주 
 

은행이라고 하면, 북한의 은행처럼 생각했다. 내가 가 본 북한의 은행은 실내가 비좁고 직원들의 표정은 무뚝뚝하고 말투도 퉁명스러웠다. 현금과 도장, 통장, 신분증을 가지고 은행에 들어서니, 나처럼 일을 보러온 사람들이 여러 명 있었다. 그런데 은행 안에서 업무를 보는 사람들은 어린 여성들이었고, 미소를 지었고, 하는 말도 이뻤다. 그 모습들을 보니 기분이 좋아졌다.

 

한참 후 내 차례가 되어 떨리는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가지고 간 현금과 통장, 도장을 올려놓았다. 직원이 “안녕하세요? 고객님, 적금을 도와드릴까요?” 하고 묻는다. 나는 그저 머리만 끄덕였다. 직원이 내가 가져간 통장을 들여다 보더니 “고객님, 이 통장은 그냥 보통통장이네요! 적금통장 하나 만들어 드릴까요?” 한다. 통장이 또 필요한가, 하며 이해가 안된다는 표정을 하고 있는데, 직원이 나에게 보통통장과 적금통장의 다른 점에 대해 설명을 해준다.

 

무슨 소리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그냥 해 달라고 하였다. 직원은 종이 한 장을 나에게 주며 표시한 대로 작성하라고 하였다. ‘통장 만드는데 이런게 왜 필요하지?’ 하는 생각을 하며 쓰라는 대로 다 작성을 했다. 그랬더니 직원이 내 신분증과 그 종이를 가지고 뒤에 있는 네모난 큰 통에 그걸 올려놓았는데, 윙 소리가 나면서 종이가 빠져나왔다. 신기했지만, 너무 촌티 나게 행동하는 것 같아서 나름 점잖게 보이려 노력하며 눈으로만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정착금’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탈북자들

 

내가 한국에 왔을 당시, 탈북자들에게 정부에서 정착금을 준다는 것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었다. 중국에서 만났던 지인들이 얼핏 했던 말이 기억났지만, ‘남이 주는 돈이 다 그렇지’ 라는 생각에 금방 잊고 지냈다.

 

한국에서 정착 생활이 시작되는 시점에 정부에서는 정말로 정착금이라는 이름으로 돈을 주었다. 그 사실은 내가 정착지에 도착해 동사무소에 가서 임대아파트를 배정받고, 임대료와 관리비를 지불한 후 담당자가 통장과 도장을 내어주며 잘 보관하고 있으라고 할 때서야 알았다.

 

통장을 열어보니 숫자가 여러 개였다. 그것도 ‘0’이 많았다. 나로선 기절할 액수였다. 일십백천만…. 만 단위가 넘어가다니, 내 생애 이런 큰 돈을 쥐어보다니, 정말 이 세상에서 나 혼자 부자가 된 기분이었다. 후에 안 일이지만, 그 돈은 한국에서는 부자의 옆에도 서지 못하는 액수였다. 하지만 나는 마음 속으로는 늘 부자로 살아왔던 것 같다.

 

그 후에 한국으로 온 탈북자에게 주는 정착금의 액수는 내가 받은 정착금보다 몇 배 올랐다. 탈북자들이 받는 정착금은 남한 사회에 정착하는 첫 단계로, 이곳에 정착하여 직장을 잡아 돈을 벌 수 있을 때까지 1~2년 동안 생활비로 쓰도록 정부에서 주는 돈이다.

 

그러나 정착금을 받은 탈북자들은 그런 큰 돈을 한 번도 쥐어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그리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지 개념이 없기 때문에), 갑자기 생긴 돈에 마음을 빼앗긴다. 생애 처음으로 큰 돈을 받은 탈북자들은 남한 사회의 풍요롭고 화려하고 예쁜 것들에 현혹되어 정신을 못 차리고 먹고 마시고 놀고 사들이기 시작한다.

 

남자들은 취직을 할 생각은 안 하고 밤이고 낮이고 술을 먹고 마시고, 자기들끼리 싸우며 아파트 단지를 시끄럽게 하고, 경찰차들이 수시로 드나든다. 여자들은 북한에서는 써보지 못한 고급화장품들과 예쁜 옷들, 가방, 신발에 마음을 빼앗겨 돈을 다 써버린다. 냉장고와 TV를 교회에서 지원받고서도, 결국 자기 마음에 드는 걸로 다시 사는 경우도 보았다.

 

그 정착금이 어찌보면 죽음을 무릅쓰고 사선을 넘어온 자신들의 몸숨 값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았을 탈북자도 있을까.

 

남한사람에게 사기 당하는 경우도 종종 있어

 

남한에 온지 얼마 안되는 탈북자들을 좋은 마음으로 도와주려는 사람들도 있지만, 반면에 다른 마음을 먹고 다가오는 남한 사람들도 있다. 남한 사회에 대해 잘 모른다는 점을 이용해, 탈북자들의 외로운 마음을 위로하는 척 다가와서는 은근슬쩍 ‘돈이 당장 필요하다’, ‘일주일 있다가 돈이 들어오는데, 지금 당장 써야하니 있으면 빌려달라’고 한다.

 

그때의 상황은 돈을 안 빌려주겠다고 하면 당장 무슨 일이라도 날 것처럼 사색이 된 얼굴을 하고 있다. 그럼 어쩔 수 없이 돈을 빌려주게 된다. 나름, 빌리는 사람도 처음에는 신용을 지켜야 한다는 규칙이 있는지, 빌린 돈을 갚겠다는 날자에 금방 갚고 더 가까운 사이가 된다. 이런 과정을 두세 번 반복하면서 빌리는 돈의 액수도 늘어나고, 결국 전화번호도 바꿔 연락이 끊기고 돈도 떼이고 만다.

 

그런데 이런 일이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똑같은 방법으로 반복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다. 이 세상에는 좋은 사람도 많지만 나쁜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다. 사회생활을 하게 되면 나 말고 아무도 믿지 말라고, 그렇게 교육을 받았건만, 인간인지라 다른 인간의 달콤한 말에 넘어가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이런 일이 많이 일어나다 보니, 정부에서도 정착금을 주되 한꺼번에 주는 것이 아니라 3년 동안 분기마다 나누어주는 방안을 내놓게 되었다. 그리고 지방에 사는 탈북자들이 2년 동안 이동 없이 한 곳에 머물러있게 되면, 지방정착금으로 세대주나 혼자 사는 사람에 한해 7백만 원을 준다. 아마 2년 동안 한곳에 있다 보면 정도 들고, 생활도 안정이 되고, 일자리도 마련할 수 있는 계기가 되리라는 타산도 있었을 것이다.

 

탈북자들은 정착금을 받은 이후에도 각 지방 노동부와 시청, 동사무소, 사회복지과의 지속적인 관리를 받는다. 사회 정착에 필요한 교육도 받고, 컴퓨터도 배우고, 미용이나 전기 사용 등등에 대해서도 배운다.

 

북한에서 좀 배웠다는 사람들은 한국에 와서도 좋은 곳에 취직을 하곤 있다. 당시 난 이런 생각을 했다. 북한에서 잘 먹고 잘 살고 좋은 직장을 가졌던 사람들은 한국에 와서도 같은 길을 가고 있구나, 라고. 나같은 사람은 한국에 왔다고 해서 인생이 전화위복이 될 순 없다는 것을…. 그렇게 사는 사람들이 TV에 나와서 북한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하는 말을 들으면 좀 우습고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물질 지원보다 ‘다름에 대한 이해’가 필요

 

현재 한국에 정착하고 있는 탈북자의 수는 무려 2만4천600여명에 달한다고 한다. 탈북자들도 여러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왔기 때문에, 한국에서 살아가는 방식도 각양각색이다. 그러나 그 많은 탈북자들이 한국에서 잘 살아갈 것이라는 기대는 안하는 편이 좋다. 탈북자 열명 중 여덟 명은 한국 정착생활에 실패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우리는 일생을 다른 체제를 살다가 온 사람들이다. 한국 사람들이 탈북자들의 이러한 상황을 잘 알 수는 없겠지만, 만약 함께 살아가는 이방인들을 도와줄 마음이 있다면 물질적인 지원보다는 그들이 살아가는데 과연 무엇이 필요하고, 그들의 삶에 쟁점이 될 만한 것들이 무엇인지 잘 파악하고 분석해보았으면 한다.

 

내 생각에, 물질은 욕심을 낳을 뿐이다. 새로운 세상에서 잘 적응하느냐 못하느냐는 내가 갖고 있는 재능과 열정, 인내와 노력에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탈북자들에게는 ‘자본주의 사회’, 즉 한국 사회의 문화와 근성, 인간성에 대해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하는 게 숙제일 것이다. 한국에 정착하는 탈북자들이 부디 새롭게 접하는 낯선 세상이지만, 사선을 넘었던 그 용기를 잃지 말고 꿋꿋하게 버티고 잘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 일다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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