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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르타뉴에서 보낸 편지] 3월은 완연한 봄 

 

‘하늘을 나는 교실’의 필자 정인진 님이 프랑스의 서북부 브르타뉴 지방에서 머물면서 보고 느낀 것들을 기록한 ‘브르타뉴에서 보낸 편지’가 연재됩니다. www.ildaro.com 

 

브르타뉴는 3월에 들어서면 완연한 봄이다. 여전히 자주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고, 밤에는 선뜩선뜩 한기를 느끼게 해도, 지천으로 꽃이 피기 시작한다. 아삐네 호숫가와 게리내 산책로는 물론, 동네 공터와 들판에는 낮게 땅에 웅크리고 있던 들꽃들이 분주하게 고개를 내민다. 그 중 민들레나 제비꽃은 익히 자주 보아온 터라 크게 놀라지 않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이른 봄에 볼 수 있는 ‘봄까치’를 발견했을 때는 반가운 마음에 고개를 깊숙이 숙여 쓰다듬기까지 했다.

 

한국에 있는 우리 동네에서 가장 먼저 봄을 알리는 꽃이 봄까치였다. 산자락 생강나무나 시립도서관 앞 산수유꽃이 꽃망울을 맺기도 전, 하천 가장자리 볕 좋은 곳엔 봄까치들이 청보라 빛 꽃을 피운다. 봄소식을 가장 먼저 알려서 ‘봄까치’인가? ‘큰개불알 꽃’이라는 봄까치의 또 다른 이름은 깜찍스러운 꽃에 어울리지 않아, 소리 내어 말하기조차 꺼려진다. 앙징스러운 귀여운 꽃에, 왜 그렇게 흉물스런 이름을 붙인 걸까.

 

봄의 전령사 ‘야생 프림베르’  

 

브르타뉴에서 가장 먼저 봄을 알리는 ‘야생 프림베르’    © 정인진 
 

브르타뉴에서 가장 먼저 봄을 알리는 꽃은 ‘야생 프림베르’(primevere sauvage)이다. 프림베르는 원예종으로도 많이 계발되어, 봄이면 한국 화원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다. 원예종은 색깔이 화려하고 다양해서 화단을 장식할 때 많이 쓰인다. 야생 프림베르도 원예종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연노란 빛깔에 좀더 소박하고 단정한 느낌을 준다.

 

야생 프림베르가 봄의 전령사라는 사실은, 함께 살고 있는 친구의 한 프랑스 교수님이 알려주었다. 수십 년을 이 지역에서 사셨으니 맞지 않겠냐며 친구와 나는 입을 모았는데, 작년 3월 여전히 건초들로 우거진 풀섶 겉에서 야생 프림베르를 발견하고는 역시 교수님 말이 맞았다며 재잘거렸다. 그 때 본 야생 프림베르는 그 해 우리가 브르타뉴에서 최초로 발견한 봄꽃이었다.

 

평소 습관대로라면 썩썩 손으로라도 흙을 헤집고 캐올 법도 한데, 나는 눈부신 물빛 노란 꽃을 넋을 잃고 바라보기만 했다. 야생 프림베르는 ‘이런 꽃은 혼자만 보아서는 절대로 안되겠다’는 생각을 절로 들게 했다. 많은 이웃들과 봄소식을 나눠야 한다며, 거침없는 욕심을 쉽게 거둬들이고 꽃을 뒤로 하고 돌아서는데 전혀 아쉽지 않았다. 흔하게 볼 수 있는 꽃은 아닌 것인지, 그 어디서도 더 이상 발견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 후에도 내내 그 꽃을 캐오지 않은 걸 정말 잘했다고 얼마나 많이 생각했는지 모른다.

 

야생 프림베르가 꽃을 피우기 무섭게 뒤따라 피는 들꽃은 ‘약용 프림베르’(primevere officinale)이다. 약용 프림베르도 프림베르의 일종으로, 이파리는 거의 비슷하지만 꽃은 전혀 다르게 생겼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이 들꽃은 잎과 꽃, 뿌리까지 여러 질병에 효능을 지녔다고 한다. 주로 물에 달여 마시는데, 꽃과 잎은 류머티즘 통증을 완화시켜 주며, 뿌리는 이뇨 작용을 돕고 호흡기 질환에도 효과가 있단다. 또 뿌리를 달여서 농축한 물을 습포제에 적셔 타박상 부위에 올려 놓으면, 멍을 빼주고 부종을 완화시켜준다고 한다.

 

약용 프림베르의 대중적인 이름은 ‘꾸꾸’(coucou)이다. ‘꾸꾸’는 불어로 뻐꾸기를 뜻하기도 한다. 뻐꾸기가 ‘꾸꾸’하고 울어서 그랬을까? 프랑스 사람들은 밖에서 안으로 들어올 때, 혹은 누군가에게 자기의 등장을 알릴 때면 “꾸꾸!” 하고 외친다. “나 왔어!”의 아주 귀여운 표현이랄까.  

 

▲  ‘꾸꾸’라고 불리는 ‘약용 프림베르’     © 정인진 
 

약용 프림베르는 겨울이 물러설 때 봄이 “꾸꾸!”하면서 우리 앞에 “짠!” 모습을 나타내는 듯하다. 꾸꾸는 아삐네 호수 가장자리는 물론 볕이 좋은 밭둑에도 지천으로 피어있어, 나는 지난해 망설이지 않고 숟가락까지 들고 나가 꽃을 뽑아왔다. 그것을 아파트 화단 빈터에 심었는데, 거름도 없는 거친 흙에서 정말 잘 자랐다.

 

꾸꾸를 화단에 심을 때, 다른 들꽃도 여럿 캐 와서 옮겨 심었는데, 얼마 되지 않아 아파트의 정원사 아저씨는 내가 심은 아이들을 모두 뽑아버리고 ‘꾸꾸’만 그대로 놓아두었다. 내게는 모두 처음 보는 진귀한 꽃들이 여기 사람들에게는 잡초에 지나지 않는 건지도 모르겠다. 나는 꾸꾸만이라도 화초 대접 받은 걸 다행으로 여기며, 아파트를 드나들면서 늦은 봄까지 그 꽃을 즐겼다.

 

봄의 한복판, ‘부활절동이’ 빠끄레뜨

 

부활절이 다가올 무렵이면, 브르타뉴의 온 들판에는 ‘빠끄레뜨’(paquerette)가 핀다. 빠끄레뜨는 흰색의 아주 작은 데이지꽃인데, 부활절을 뜻하는 불어의 ‘Paque’에 ‘귀염둥이’들에게 붙여주는 ‘~ette’가 결합되어 ‘paquerette’(빠끄레뜨)가 되었다. 우리 말로 번역하면 ‘부활절동이’쯤 될 것 같다. ‘부활절동이’라는 이름답게 부활절 무렵이면, 브르타뉴뿐 아니라 프랑스 전역이 이 꽃으로 뒤덮인다.

 

햇볕이 좋기로 유명한 남부 프랑스에는 겨울에도 빠끄레뜨가 핀다. 나는 십여 년 전 어학연수 때 프랑스 남부에서 이 꽃을 처음 보았다. 꽃이 피는 따뜻한 겨울이 싫어서 아주 추운 곳으로 떠나야겠다고 결심한 것이, 바로 빠끄레뜨 때문이었다. 당시에는 코트를 입고 다니면서 빠끄레뜨를 바라보는 것조차 괴로웠다. 겨울에는 코끝이 시리도록 추운, 우리나라 겨울 같은 곳에서 살고 싶다고 결심하고, 어학연수를 마치기 무섭게 본격적인 공부를 하러 떠난 곳이 프랑스의 최북단 ‘노르’(Nord) 지역이었다. 그곳도 한국의 겨울만큼 엄청나게 춥지는 않았지만, 추운 겨울을 즐기기엔 부족함이 없었다. 

 

화분에 담아온 빠끄레뜨, 빠끄레뜨는 화분에서도 잘 자란다.    © 정인진 
 

비가 많이 내리는 긴 겨울이 지나 만물이 다시 피어나는 부활의 계절인 ‘부활절’이 다가오면, 북부 프랑스의 들판은 빠끄레뜨로 가득 찼다. 나는 그때서야 북부 프랑스에서 가장 먼저 봄소식을 전해주는 빠끄레뜨를 감동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 브르타뉴에서 빠끄레뜨를 만난 것이다. 이곳에서 빠끄레뜨는 봄의 전령사는 아니지만, 그래도 여전히 부활절 무렵, 봄의 한복판에서 가장 빛나는 모습을 하고 있다. 우리 동네에도 풀밭이나 공원, 시민운동장의 잔디밭 같은, 온갖 데에 빠끄레뜨가 핀다.

 

이 꽃은 잔디 깎는 기계가 지나가더라도 땅에 꼭 붙어 아주 낮게 자라기 때문에 꽃대는 잘려도 잎들은 잘 베이지 않는다. 약간씩 베이더라도 생존하는 데 치명적이지 않다. 꽃봉오리들 역시 고개를 깊숙이 숙이고 있어, 하루나 이틀만 지나면 썩썩 밀어부친 잔디밭에는 하얀 빠끄레트 꽃들이 고개를 바짝 내밀며 활짝 피어 있곤 한다. 그의 씩씩함이, 꿋꿋함이 마음에 쏙 들어 더 귀엽고 반갑다.

 

여왕 ‘꼬끌리꼬’의 강렬한 유혹

 

그러나 ‘꾸꾸’나 ‘빠끄레뜨’가 내 맘에 아무리 든다고 해도, 나를 가장 꼼짝 못하게 하는 건 뭐니 뭐니 해도 꼬끌리꼬(coquelicot)다. 그는 나를 열정과 욕망으로 거침없이 이끈다. 개양귀비라고 번역되는 꼬끌리꼬는 5월이면 브르타뉴 온 들에 지천으로 피기 시작한다. 그러고는 9월까지 여름 내내 피어 있다.

 

어렸을 때, 달력에 인쇄되어 있던 모네의 “꼬끌리꼬”란 제목의 그림 속 빨간 꽃을 난 실재하는 것이라고 믿지 않았다. ‘세상에 저런 풍경이 어떻게 있을 수가 있겠어! 화가의 상상이겠지…’ 라고 생각하며 철이 들고 어른이 되었다.

 

그러다가 프랑스에 처음 도착하게 된 6월 말, 집 근처 공터에서 처음으로 맞닥뜨린 풍경은 바로 모네의 그림 속 그 풍경이었다. 나는 입을 제대로 다물지 못한 채, 꼬끌리꼬로 뒤덮인 들판을 바라보았다. 숨이 멎을 듯했다. 그러고 나서 주변을 둘러보니, 온 데가 꼬끌리꼬였다. 집 앞, 언덕, 학교, 길가…. 흙이 조금이라도 드러난 빈터만 있으면, 그 곳에는 어김없이 맑은 진홍빛 꼬끌리꼬가 자리를 틀고 있었다.

 

▲   5월이면 브르타뉴 온 들판에 꼬끌리꼬가 핀다. 앞의 노란 꽃은 ’야생 겨자’다.  © 정인진 
 

그렇게 집만 나서면 지천에 꼬끌리꼬가 피어 있었건만, 기어이 ‘내 꽃’을 갖고 싶다는 욕심이 발동해 빈 플라스틱 용기에 꼬끌리꼬를 한 뿌리 캐서 심었다. 그러나 꼬끌리꼬는 절대로 내 손에 잡혀주지 않았다. 화분에 심긴 꼬끌리꼬는 채 이틀이 되지 않아 누렇게 시들고 말았다. ‘세상에는 내가 아무리 갖고 싶어도 절대로 가질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걸 알려준 이가 바로 꼬끌리꼬였다.

 

그리고 다시 브르타뉴에 와서 나는 ‘꾸꾸’와 함께 꼬끌리꼬도 여러 뿌리 캐 와 화단에 심었다. 화분에서는 안되지만, 화단에서는 가능할지도 몰랐다. 예상대로, 아무 데서나 잘 자라는 꼬끌리꼬는 화단에 가장 먼저 자리잡고 예쁜 꽃까지 피웠다. 그러나 정원사 아저씨가 잡초로 생각하고 뽑아버린 것들에는 꼬끌리꼬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그렇게 꼬끌리꼬를 소유하기 위한 두 번째 시도도 실패로 돌아갔다.

 

손에 쥐려고 하지 말라고, 꼭 자기 것이 아니어도 세상 속,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내 것’이 아니겠냐고 애써 생각하다가도 꼬끌리꼬 앞에만 서면 깡그리 잊어버리고 만다. 분이나 화단에 심는 대신 이번에는 사진에 담고, 한국 우리 동네 하천 가에 뿌려보겠다며 씨를 받느라고 엄청 분주했다. 한국의 하천 가에서 과연 성공할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하천 가 둑에 꼬끌리꼬가 한 가득 피어있는 상상을 하며, 혼자 히죽히죽 한참을 웃었다.

 

봄 들꽃들이 열어 보여주는 건 새로운 계절만은 아니다. 새로운 생각과 세상으로 나를 이끌기도 하고, 저 밑바닥 내 욕망을 적나라하게 비춰주기도 한다. 그런 봄이 다시 왔다. 그 한가운데, 다시 내가 서 있다.  ▣ 정인진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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