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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페 버스정류장] 시를 남긴 사람들 

 

※ 경북 상주시 함창읍 함창버스터미널 맞은편에 있는 “카페 버스정류장”.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머무는 이 까페의 문을 연 박계해 선생님은 “학교를 떠나 산골로 들어간 한 여자의 귀촌일기” <빈집에 깃들다>의 저자입니다. www.ildaro.com

 
지난 주말에는 먼데서 온 손님들이 대부분이어서 개업 즈음의 풍경을 다시 보는 듯 했다. 입구가 어딘지 몰라서 헤매고, 신발을 벗어야 하는 것에 당황했다. 그들은 주로 구미, 김천, 대구 등 -그러니까 Y신문 구독자가 많은 지역-에서 왔다고 했다.
 
“신문보고 왔어요.”
“네에, 고맙습니다.”
 

현관문을 가득 채울 만큼 덩치가 큰 중년의 남자는 이렇게 말했다.
“하늘나라 계신 엄마가 버스에서 내릴 것 같은 곳이라기에 바로 시동 걸고 달려 왔어요.”
“아, 그 시를 읽고 오셨군요.”
 
Y신문에 우리 카페가 소개된 것이다. 기자는 화장실벽에 붙어있는 시가 참 좋다며 카메라에 담아갔고 그것을 기사에 실었다.
 
“그 시의 전문을 보여 드릴게요.”
나는 구미에서 왔다는 그를 화장실로 안내했다. 그는 벽을 향해 스마트 폰을 세워 시가 적힌 종이에 초점을 맞추었다.
 
 버스정류장
 
 기다림에 익숙해야하는 곳
 친정 왔다 돌아가는 누이가
 뒤를 몇 번 돌아보고
 남겨둠과 떠나감에 익숙해지는 곳
 언젠가 하늘나라 계신 엄마가
 버스에서 내릴 것 같은 곳
 
 그 곁에 누이를 기다리듯
 동그랗게 앉아있는
 카페 버스정류장
 

그는 기사에서 우리 카페의 주 메뉴로 추천한 대추차를 주문하였고 나는 차를 건네며 그의 앞에 마주 앉았다. 어쩐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시의 한 구절에 꽂힐 만큼 감성적인 성정은 손톱만치도 감지되지 않는, 우직한 황소를 연상시키는 그의 눈시울과 코끝이 시선을 주기 민망할 만큼 붉어져 있었던 것이다.
 
“잘못 살았어요.”
 
그는 대뜸 그렇게 말문을 열었다. 그건 구미에서 여기까지 오는 동안, 저렇게 눈동자가 붉어지며 내린 결론이리라고 나는 생각했다.
 
“우린, 인생을 다 망쳤어요. 뭐가 있어요, 우리한테. 자식도 아내도 다 우리를 보고 아무것도 한 게 없다고 하는데.”
 
그가 ‘우리’라고 말하는 것은 그를 포함한 남자들 -나의 아버지이기도 하고 남편이기도 하고 오빠이기도 한 그들-을 다 이름이리라. 뜨거운 김이 오르던 차는 이제 싸늘하게 식어가고 있었다. 나는 식기 전에 들기를 권했으나 그는 찻잔을 잠시 응시하다가 계속해서 중얼거리듯 말했다.
 
“참... 열심히 살았는데... 쉬지 않고 일했는데... 이 나이에, 직장에서도 가시방석인데, 자식도 아내도 다 네가 가족을 위해 한 게 뭐냐고 해요. 그래요, 술도 많이 먹었어요. 하지만 우리 사회가 그렇게 생겨먹은 걸 어떡해요. 직장생활 하다보면 어울려서 술도 먹어야 되고 그러는 거지, 승진도 걸려있고... 관계를 잘해야 되는 거거든요. 월급만 갖다 주면 다냐고 하는데 우리가 철인도 아니고 어떻게 다 잘해요.”
 
그리고 그는 시선을 테이블 끝으로 떨어뜨렸다. 나는 식어버린 차를 그의 앞으로 미는 시늉을 하였고, 가슴속의 상처를 한 구절의 시로 응급처치 한 채 달려온 그의 손은 그제야 찻잔을 들었다. 나무껍질 마냥 딱딱하고 커다란 손이었다.
 
<그 시는 일 년 전, 정확히는 2013년 1월 9일에 카페 일층 홀 구석자리에서 태어났다.
 
우리는 그날 시모임 중이었는데, 시는 외우기만 하면 그 사람의 것이 되고 모두가 다 퍼 가더라도 줄어들지 않거니와 돈도 들지 않는다는... 둥의, 시 암송하기에 대한 예찬이 연결고리가 되어 옆 테이블에서 차를 마시던 그와 자연스레 함께하게 되었다.
 
말하기보다 귀 기울여 듣는 편이던 그는, 좋은 시간을 갖게 해 준데 대한 답례라며 수첩에 휘갈겨 쓴 즉흥시를 낭송해주었다. 나는 그 시를 우리 카페에 써 붙여도 좋으냐고 물었고 그는 시가 적힌 페이지를 찢어서 건네주었다. 그를 다시 보지는 못했지만 시는 남아 이렇게 우리 카페가 가야 할 길을 말해주고 있다.>
 
그날 밤 잠에 끌려들어가면서 나는, 시가 적힌 수많은 엽서가 만국기처럼 바람에 흔들리는 카페 옥상에서, 마당의 꽃들이 시의 향기를 피워 올리고 새들이 작은 부리로 감나무 이파리에 시를 쓰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 사이로 눈가가 촉촉한 사람들이 속속 들어서는 순간을 보았다.
 
그들이 교사가 되고, 부모가 되고, 사장이 되고, 대통령이 되어 자신의 제자들이, 자식들이, 직원들이, 국민들이 그 뒤를 이어 시의 사람들이 되기를 염원하는 어느 순간도 보았다.
 
완전한 잠, 완전한 꿈이었다.
 
P.S. 나는 그 꿈의 한 조각만이라도 갖고 싶었으므로 벌떡 일어나 카페 현관에 내 걸 홍보문을 썼다. 


“자신의 애송시를 손 글씨로 적은 엽서를 보내주세요. 언젠가 당신이 오시면 당신이 보내준 엽서가 카페의 어느 자리에선가 반기며 기다리고 있겠지요. 주소: 경북 상주시 함창읍 구향리 169-19 카페 버스정류장 앞.” ▣ 박계해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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