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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페 버스정류장] 여중생들의 공연 후기
※ 경북 상주시 함창읍 함창버스터미널 맞은편에 있는 “카페 버스정류장”.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머무는 이 까페의 문을 연 박계해 선생님은 “학교를 떠나 산골로 들어간 한 여자의 귀촌일기” <빈집에 깃들다>의 저자입니다.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수업을 나가던 여자중학교의 축제에 공연을 올리는 것을 끝으로 올해 방과 후 수업이 마무리되었다. 공연에 이어 남은 축제 프로그램이 많았으므로 뒤풀이 날을 기약하고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 겨울이 오는 저녁 무렵의 카페 버스정류장 초입 © 일다
그래서 주말에 우리 카페에 모여 평가회 겸 뒤풀이를 했다. 피자, 통닭, 탕수육과 짜장면을 실컷 먹은 다음, 쵸코라떼 한잔씩을 들고 둥글게 모여 앉았다. 공연을 한 소감과 스스로 매겨보는 점수 발표하기 등, 평가회를 진행하면서 나는 회경의 불참에 계속 마음이 쓰였다. 그날 공연을 마치고 회경과 이야기를 좀 나누어야 했는데 무대인사가 끝나자 회경은 어딘가로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회경이는 왜 안 왔니? 핸드폰도 안 받네?”
“회경이, 공연 끝나고 엄청 울었어요. 공연 중간에도 막 뒤에서 조금씩 울었고요, 무대인사 끝나고 바로 없어졌어요.”
“왜?”
“제가 회경이래도 너무 속상했을 것 같아요.”
아이들이 앞 다투어 들려주는 내용은 이랬다.
“무대에 불이 들어오자마자 앞줄에 앉은 언니들이 막 욕을 했어요. 침을 뱉는 언니도 있었고요.”
“맞아요. 욕하는 내용도 다 들리고........ 우리도 주눅이 들어서 쫄아드는 줄 알았는데 그래도 에라 모르겠다 하고 연습한 대로 하긴 했어요.”
“아냐, 난 신경 쓰여서 제대로 못했어. 언니들이 계속 그러니까 대사도 버벅거리고 신경이 얼마나 쓰였는지 몰라요.”
“맞아, 나한테도 화장 이상하다고 하고, 못생긴 게 옷도 이상하게 입었다고.......”
“배역 때문에 아줌마 옷 입었는데 그것 갖고 욕하고........”
“공연에는 관심도 없고 트집 잡으려고 작정을 한 것 같았어.”
아이들이 공연 초반에 보이던 활기가 후반에 들어서자 풍선에 바람 빠지듯 꺼져갔던 것이 무엇 때문인지 알 것 같았다. 회경은 아예 돌처럼 딱딱해져 있어서 차마 쳐다보기가 민망하였다. 선생님들은 모두 맨 뒤의 의자에 앉아계셨으니 무대 앞의 작은 소란을 눈치 채지 못했을 것이었다.
아이들 말로는 자기들한테는 조금 그랬는데 회경이한테는 평소에 무슨 감정이라도 있는지 일거수일투족을 다 비웃었다고 했다. 그래도 잘 참아서 다행이었다고, 자기들 같으면 그 자리에서 무대 아래로 달려가 싸움이라도 했을 것 같다고.
회경이 모범생은 아닌 줄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소위 노는 아이도 아니었다. 아이들은 회경이 평소에 칼라렌즈를 끼거나 옷차림이 좀 튀는 게 문제인 것 같다고 했다. 노는 언니들은 자기들보다 짧은 치마를 입거나 멋을 부리는 후배들을 손봐주려고 벼르므로 자신들은 항상 주의한다고. 그리고 우리가 당했으니까 3학년이 되면 우리가 그럴게 분명하다고, 악순환이 계속되는 거라고 진단까지 했다.
아이들이 돌아가고 나는 다시 카페의 주인장이 되었다. 그들이 빠져나간 흔적을 정리하고 자리에 앉자 가슴이 조금 쓰려옴과 동시에 회경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늘 무기력한 저를 보고 선생님이 그러셨죠. 이번 한번만 미쳐봐, 끝장을 봐, 망가져봐, 너를 던져. 공연이 끝난 후 너는 더 이상 권태롭지 않을 거야.
정말 그럴 생각이었어요. 이 지겨움을, 지루함을 떨쳐내고 싶어서 연극반을 찾아간 거였고, 짧지 않은 기간을 연습에 참여했고, 드디어 무대에 오르게 된 것이었으니까요. 중학생이 되고나서 이렇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한 것은 연극뿐이었고, 대사를 하는 동안은 늘 멀미처럼 목 언저리를 간질이던 ‘지겹다’는 중얼거림을 멈출 수 있었으니까요.
선생님도 아시죠? 처음 수업에 참여했던 날의 제 무기력한 모습. 그리고 점점 마음을 열어가던 모습. 드디어는 약간의 배짱도 생기고 갈라지는 목소리를 겁내지 않고 소리칠 수 있었고....... 아, 춤도 췄잖아요. 아시죠? 저에게 그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첫 연습을 마치고 돌아가면서 한마디씩 할때 저는 사는 게 지겨워 죽겠다고 했고,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당신도 그랬다고, 학창시절이 너무 지겨웠다고 그러셨지요. 그때 나도 지금의 너처럼 연극을 만났더라면 가슴 두근거리며 삶에 대한 기대를 가졌을 거라고.
어른들이 으레 하는 말일지라도 그 말에 혹한 것은, 제 발로 찾아간 것이 말해주듯 더 이상 이렇게 살 수는 없다는 절박함 때문이었어요. 그래서 그래, 한번 해보자....... 했던 거죠.
지금은 후회가 돼요. 불쑥 연극반에 넣어달라고 찾아간 그날이, 목소리가 갈라지는 우스꽝스러움을 배짱으로 극복하려했던 일이며, 아, 무엇보다도 무대 위에서 너무 짧은 치마를 입었던 일....... 왜 그랬을까요? 제 역할에 그 정도는 전혀 문제될 게 없다던 선생님 말씀을 듣지 말았어야 했다는 생각도 해요.
선생님 말처럼 진실한 연기, 열정적인 연기를 하면 나의 적들조차도 감동시킬 수 있었을 테죠. 내 어눌한 연기로는 동정 외에는 기대할 게 없었던 것을. 아, 공연을 하기전의 나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축제가 끝나고 난 다음날 아침에 학교에 가기가 죽기보다 싫었어요. 그런데도 나는 학교에 가야만 하고, 그래야만 하는 현실을 이해할 수 없어 다시 지겨움이 목구멍으로 밀려올라왔어요.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죠. 아, 지겹다.......
뒤풀이를 겸한 마지막 수업이라고 꼭 오라 하셨는데, 문자까지 여러 번 보내셨는데....... 안가서 죄송해요. 하지만 빤한 자리에 가고 싶지 않았어요. 보나마나 선생님은 ‘잘했다, 잘했어!’ 하실 거고 아이들은 ‘이런 게 좋았네, 안 좋았네.......’ 하겠죠. 그리고 피자랑 통닭을 먹고 선생님이 만들어 주시는 쵸코라떼를 한 잔씩 한 다음 집으로 가겠죠.
지겨워요. 앞으로 얼마나 더 지겨워져야 이 지겨움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회경의 목소리는 여기서 멎었지만 나는 열심히 귀를 기울여 잘 들리지 않는 한마디를 기어이 들었다.
‘그래도 선생님 잘못은 아니니까 괜히 마음 불편해하지 마세요. 아셨죠?’ ▣ 박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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