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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 매력에 반하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그 여자들의 물결 일다 2013.09.23 07:30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까페 버스정류장] 24. 막다른 선택 

경북 상주시 함창읍 함창버스터미널 맞은편에 있는 “카페 버스정류장”.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머무는 이 까페의 문을 연 박계해 선생님은 '학교를 떠나 산골로 들어간 한 여자의 귀촌일기' <빈집에 깃들다> 저자입니다. - www.ildaro.com 
 
탁탁탁탁.......
카페 마당에서 빠른 발자국 소리가 났다. 카페 바를 잠시 비우고 홀 소파에서 신문을 보던 나는 손님을 맞기 위해 벌떡 일어나 현관 쪽으로 갔다. 달려 들어온 발소리의 주인공은 긴 생머리가 바닥에 닿을 만큼 고개를 푹 수그리고 허둥대며 운동화 끈을 풀고 있었다.

딸아이와 또래인, 카페 맞은편 고등학교의 교사 K였다. 
“아메......... 아메리.....”
그녀는 붉게 부풀어 오른 눈두덩이 민망한 듯 시선을 엉뚱한 데로 보내며 웅얼거렸다. 채 끝내지 못한 말 끝에 흑, 하고 흐느낌을 삼키는 소리가 났다.
“네, 아메리카노. 아이구, 우리 선생님, 울려고 오셨구나.”
그러자 그녀는 그만 흑흑흑 소리를 내며 얼굴을 감싸 쥐더니 계단을 뛰어올라 이층 홀로 갔다.

오디오의 볼륨을 잔뜩 올리고 수건에 물을 적셔서 들고 올라갔다. 그녀는 테이블에 납작 엎드려서 커진 음악소리에 힘입어 대성통곡을 하고 있었다. 수건을 건네자 ‘오아으이아(고맙습니다)’하며 수건을 받아들더니 얼굴에 대고는 또 으앙~,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계단을 내려오는데 현관에서 또 누군가가 고개를 푹 수그리고 운동화 끈을 풀고 있었다. 동료교사 B였다. 나는 손가락으로 이층을 가리켰고 그녀는 그 와중에도 ‘카페라떼, 시럽 빼고요’라고 주문을 하곤 후다닥 계단을 뛰어올랐다.
 
오디오의 볼륨을 다시 낮추고 차를 준비해서 올라갔다. 나는 가득 채운 시럽 잔을 들어 보이며 ‘이럴 땐 달콤하게 시럽 잔뜩, 어때요?’하고 물었다. 마음이 좀 진정 된 듯 쑥스럽게 눈인사를 건넨 그녀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눈썹 끝이 촉촉한 채 빨대를 물고 아이스커피를 쭉 빨아들이는 모습은 짠하기보다 사랑스러웠다.
 
나도 K처럼 울었던 순간이 있었고, B처럼 달래준 동료교사가 있었다. 학생 때문이거나 선배교사 때문이거나 연인 때문이거나, 하여간 누구 때문엔가 무엇 때문엔가 가슴이 터질 것만 같이 마음이 상해서 달려가 울던 곳은 주로 교사화장실이었다. 당시는 화장실 환경이 나빴기에 대걸레냄새와 지린내가 섞여났고 세면대는 녹물로 불그스름했다.
 
이십 대의 나는 무난한 사람처럼 잘 웃었지만 몸속 수분이 온통 눈물의 농도로 장전되어 있었다. 눈물의 기원은 미움이었고 미움의 기원은 내가 받은 상처였다.
 
가족이기주의자가 될 수 없어 현실을 외면했던 아버지와 가족이기주의자로만 사느라 인간의  품격을 상실한 사람처럼 보였던 엄마, 가정경제를 도탄에 빠뜨린 오빠, 결혼을 핑계로 혼란 속을 빠져 나간 언니들, 편 가르기와 알량한 자리다툼으로 핏대를 세우던 선배교사들, 관계의 그물로 나의 지느러미에 상처를 입힌 그들을, 다 미워했다.
 
실은 그 누구도 나에게 상처를 준 적 없다는 것을, 상처는 나의 선택이었으며, 미움도 사랑의 다른 모습이란 것을 이제는 안다. 그리고 그것을 아는 동안 인생은 이미 노을 지는 시간에 다다르고 말았다. 내 아버지가 그러했고 언니오빠가 그러했으며, 내 아이들이 그래야 하듯이.

▲ 한 잡지 인터뷰어가 꿈이 뭐냐는 질문을 했을 때 ‘꿈이 없다’고 답했다. 
 
내가 경조사나 동창회, 심지어는 가족모임도 즐겨하지 않는 것은 20대의 많은 날들을 관계의 그물에 걸려 마음껏 헤엄칠 수 없었던 데 진저리가 난 탓이다. 어쩌면 그 때보다 그물코는 더 촘촘해졌지만 나는 이제 그물에 걸리지 않는다. 이제 무리를 따라 먼 바다까지 나가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현실이 지겹거나 지쳤을 때마다 막다른 선택을 하곤 했다. 취업이 그랬고 연애가 그랬고 결혼이 그랬고 임신이 그랬고 직장을 그만둔 것이며 귀농을 한 것이며 이혼까지가 다 그랬다. 카페를 시작한 것 역시.
 
어떤 잡지 인터뷰어가 꿈이 뭐냐는 질문을 했을 때 내 대답은 ‘꿈이 없다’였다. 분수에 맞지 않거나 이룰 수 없는 꿈은 꾸지 않았기 때문에 원하는 건 언제나 할 수 있었다고.
 
그는 이 인터뷰 내용에 ‘살아서 사라지는 꿈’이라는 멋진 제목을 달았다. 어쩌면 -해석하기 나름이므로- 그것은 사실일지도 모른다. ‘막다른 선택’이야말로 ‘현실도피’라는 꿈을 당장에 이룰 수 있는 유일한 길이므로.

“잘 썼습니다.”
K는 젖은 수건을 돌려주며 맑게 웃었다.

자박자박, 카페마당을 돌아나가는 발자국 소리.  ▣ 박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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