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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페 버스정류장] 22. 세월이 흘러 다시 만나는 아이들
경북 상주시 함창읍 함창버스터미널 맞은편에 있는 “카페 버스정류장”.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머무는 이 까페의 문을 연 박계해 선생님은 '학교를 떠나 산골로 들어간 한 여자의 귀촌일기' <빈집에 깃들다> 저자입니다. - www.ildaro.com
7월 둘째 주 금요일 밤 열시 무렵. 낯선 전화번호.
“박계해 선생님 핸드폰 맞습니까?”
“네! 그런데요?”
“아, 선생님! 저 민숩니다. 저, 기억하시겠습니까?”
“얼굴 보면 알겠지. 18년 동안 민수란 이름을 가진 아이가 한둘이었어야지.”
단박에 반말이 나왔다.
“저 다닐 때 형규가 학생회장을 했고, 유라가 부회장을 했는데요.”
“글쎄, 그런 친구들이 있었던 건 같은데…….”
둘이 말을 주고받는 동안 수화기 저편에선 사내 녀석들의 목소리가 왁자지껄 하였다. 누군가가 핸드폰을 뺏는가 싶더니,
“선생님, 저는 경혼데요, 오늘 저희들 동기회 했거든요, 한잔하다가 선생님 얘기가 나와서 어찌어찌 연락처까지 찾아서 전화 드렸습니다.”
그 역시 기억이 가물가물했지만 인사를 건넸다.
“아, 반갑다. 잘 살고 있느냐?”
“예!”
우렁찬 대답에 이어 들려오는 목소리가 바뀌어 있었다.
“인귭니다. 선생님, 건강하시지요?”
그리고 또 다른 목소리들.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들은 이제 서른다섯 살이라 했다. 머리 맞대고 헤아려 보았는지 자기들이 중학생 때 내 나이가 지금 자기들 나이와 같다는 말도 했다. 시집 장가 간 친구들은 일찌감치 집으로 돌아가고 ‘반기는 이 없는 불쌍한 노총각들만 남아 한잔 빨고 있다’며, 여름이 끝나기 전에 꼭 찾아뵙겠다, 했다.
이렇게 문득 전화를 걸어오기도 하지만 먼 길을 달려 찾아오는 제자도 더러 있다.
▲ 나를 만나러 이곳 까페 버스정류장까지 먼 길을 달려 찾아오는 제자들도 더러 있다. © 일다
“어서 오세요!”
처음 보는 젊은 남자였다. 그는 반갑게 맞는 나를 은근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씨익 웃었고, 나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그의 눈을 마주 보았다.
“하하하, 저 모르시겠어요?”
“아……. 죄송합니다. 기억이……. 안 나네요.”
“저 현입니다. 선생님!”
“아! 현?”
맞장구부터 친 다음 찬찬히 바라보니 어린 그의 얼굴이 어렴풋이 포개진다.
“맞아, 맞아, 김 현! 아, 현이구나.”
“여보, 우리 선생님이셔.”
여자와 여자의 손을 잡고 나를 올려다보던 어린 딸이 공손하게 인사를 한다.
우린 오미자차가 담긴 유리잔을 술잔처럼 부딪치며 만남을 자축했다.
현은 ‘이제 겨우 밥술이나 먹게 됐다’고 했다. 대입도 재수, 사업도 재수, 연애까지 재수를 했다며,
“선생님이 저한테 ‘너는 한 박자씩 늦지만 끝까지 해 내는 아이’라고 하셨어요. 생활기록부에도 느리지만 포기하지 않는다고 쓰셨고요. 실패할 때마다 그 말씀이 저를 붙들어 줬습니다.”
그의 느릿느릿한 말투와 소리 없이 씨익 웃는 입매를 보자 예전의 모습이 고스란히 떠올랐다. 말 머리에 꼭 쉼표를 찍었으며, 아이들이 책상을 치며 포복절도를 할 때도 그저 이빨 한두 개가 보일락 말락 희미하게 미소만 짓던.
그의 말을 듣자 내 머릿속에는 만년필로 휘갈겨 쓴 문장 하나가 떠올랐다.
‘참으로 착한 아이입니다. 너무나 아름다운 마음씨입니다.’
국민학교 6학년 통지표 뒷면에 우리 선생님이 쓴 글이었다. 교사통신란에 적힌 그 뜬금없는 문장이 민망해서 누가 볼세라 가방 밑바닥에 숨기던 일이며, 날아가 버릴 듯 날렵하게 휘갈겨 쓴 기러기 떼 같은 파란 글씨가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 분의 성품으로 보아 누구의 통지표에도 성적이 올랐네, 내렸네 하는 글을 쓰지는 않으셨을 것이다. 확인한 바는 없지만 친구들의 통지표 뒷면에도 그렇게 따뜻한 말을 남겼을 것이 분명하다. 어린이는 누구나 착하고 아름다운 마음씨를 가졌을 것이고 선생님은 먼 훗날에도 우리가 어린이의 마음을 간직하길 바라셨으리라.
여름이 끝나기 전에 꼭 오겠다던 불쌍한 노총각들은 성급하게도 일주일만에 나타났다. 이번 주말의 피난처로 우리 카페를 택했다는 것이었다. 당연히 우스개로 하는 소리지만 들어보니 피난이라 할만도 했다.
“주말만 되면 엄마 친구 아들의 결혼식이 있거든요. 거기만 갔다 오면 엄마 혈압이 상승해요.”
서른 중반이 되자 날마다 귀가길이 무서울 지경인데, 특히 토요일 밤에 집에 있으면 모친의 ‘철천지 웬수떵거리’가 되어버린다고 했다.
장래 희망란에 무엇을 쓸까 망설이던 열다섯 살의 소년들은 그렇게, ‘남들처럼 결혼해서 밥술이나 벌어올 수 있는 삶’을 향해 가고 있었다. (박계해)
* 여성 저널리스트들의 유쾌한 실험! <일다>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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