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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전의 밀양 송전탑 공사 재개, 그 후⑥ _ 르포작가 희정
밀양과 관련하여 가장 마음 불편했던 순간은 몸으로 치고받는 싸움의 현장에 있지 않았다. 분향소나 농성장에도 있지 않았다. 밀양 시내에서였다.
주민들이 경찰서장을 면담하길 원했다. 故 유한숙 씨 분향소 근처에 있던 경찰서장을 주민들이 본 것이다. 한참의 실랑이 끝에 자리를 피해갈 수 없던 경찰서장은 대표 한 사람하고만 대화를 하겠다고 했다. 평밭 마을주민 한 명이 경찰버스에 올렸다. 이야기는 고조되고, 소리가 전해지지 않는 창 너머에서도 언성이 높아짐을 알 수 있었다. 이를 본 한 경찰이 중얼거렸다.
“저 할머니 또 벗겠네. 벗어.”
‘내가 옷을 벗을 때는 그 마음은 어땠겠노?’
▲ 765송전탑 반대 대책위
지난 5월, 부북면 평밭마을 송전탑 부지 농성장에 한전 간부들이 들이닥쳤다. 고작 노인 셋이 있었다. 뚫고 가야 하는데, 그 길에 경찰만 수십 명이었다.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저쪽에서 밀면 이쪽은 개구리마냥 자빠졌다.
또 벗는다며 비아냥의 대상이 된 노인과 그때 이야기를 한 적 있다.
“그 자리에 내가 숨을 뚝 멈춰야겠는데 그럴 순 없꼬 옷을 벗었어. 옷을 벗어가꼬 이렇게 (옷으로) 치고 들어갔어. ‘손대지마라 성추행이다, 이 새끼들아’ 하면서. 그 모습을 보고 82세 할매가 내가 너무 불쌍하니깐 같이 홀딱 벗어뿐기라. 내가 옷을 벗을 때는 그 마음은 어땠겠노? 정말로 땅이 꺼지고 하늘이 무너지는 그런 심정으로 옷을 벗었어.”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주민 한 명이 또 명을 달리했다. 이치우 어르신의 분신이 2년도 지나지 않아서였다. 그러나 분향소 하나 곱게 세울 수가 없었다. 천막을 세우지 못하게 경찰은 물품을 빼앗아 갔다. 주민들이 주저앉아 천막비닐을 덮자 그마저 찢어버렸다. 주민들 머리 위로 칼이 그어졌다. 그때도 숨을 뚝 멈춰야겠는데 할 수가 없어 노인은 옷을 벗었다. 밀양 시내 한복판이었다.
그러니 ‘벗는다, 벗어’는 그리 쉽게 뱉어도 되는 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쉽게 뱉어졌고, 그 말을 들어야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화가 났고 미웠고 수치스러웠고 불편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밀양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지금이 아닌 시간이 지난 후, 이 사람들은 지금의 기억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갈까.
밀양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사람이 죽었다. 그러나 변한 것은 없다. 마을에 경찰이 들어왔다. 벚꽃이 길목에 지붕을 만들어 참 예뻤던 마을 초입에 세어보니 6군데나 의경이 버티고 섰다. 마을은 나뉘었다. 사람을 나누는데 이제는 돈조차 필요 없었다. 한전이 살짝 손을 잡는 제스처만 취해도, 마을 누군가 싱거운 소리만 해도, 사람들은 엉켜버렸다. 아프게 오래 싸운 대가였다. 공사 자재를 나르기 위해 마을 위로 지난다는 헬기의 소음으로 인해 잠 못 들었다. 잠 못 드는 밤에는 후회와 상처들이 머리를 할퀴고 지나갔다.
송전탑은 무서운 속도로 세워진다. 심지어 자재가 들어간 지 6일 만에 동화마을 96번 송전탑은 모습을 드러냈다. 삼성의 속도경영 뺨 때릴 이 추진력은 날림공사이거나 우선 송전탑 모양이라도 갖춰 놓자는 심보일 가능성이 크다. 무엇을 의도하는지는 빤하다. 노인들은 뒷산에 솟아오른 송전탑을 보며 생각한다. ‘이제 끝난 건가.’ 아직 끝난 게 아니다 하지만, 어디에다가 싸움을 지속할 힘을 붙잡아 두어야할지 의문이 든다. 한전이 바라는 것은 바로 그 패배감, 정확히는 패배감으로 인한 포기이다.
그래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한다. “내가 죽어야 이 문제가 해결되겠다”며 몸에 불을 붙여도, “살아서 그것을 볼 바에야 죽는 게 낫다”며 독극물을 마셔도, 국가는 조금도 뒤로 물러서지 않는다. 한전에 바랄 수도, 경찰이라는 공권력을 믿을 수도 없는 주민들은 국회를 바라보지만, 국회는 지난 달 30일 법제사법위에서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송주법(송.변전시설 주변지역 보상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을 가결시켰다. 유한숙 어르신이 송전선에서 33미터까지만 보상이 된다는 말에 제초제를 마신지 한 달도 지나지 않아서다.
국회에 발등이 찍혔다. (송주법은 내용 면에서 기존 송전선 주변 지역 주민들의 피해보상 문제를 제외하고 있다는 점, 보상 범위를 765kV 송전선에서 33미터 등으로 정한 기준이 자의적이라는 점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오히려 송주법은 밀양 투쟁이 끝났음을 알리는 한전 홍보에 이용되고 있다. 이제는 형식적인 대화의 자리조차 만들어지지 않는다.
‘후회가 될 것 같아 싸운다’는 그 말
끝인가 싶은 막막함은 밀양 주민만 느끼는 것이 아니었다. 나 또한 밀양 문제를 거론하는 것이 불편했는데, 유한숙 어르신의 죽음 이후부터 그러했다. 당혹스러웠기 때문이다. 결코 바란 적 없으며, 오히려 비슷한 일이 또 벌어질까 우려했으나, 그럼에도 사람이 목숨을 던졌을 때 일어나는 파장에 대해 믿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경찰은 송전탑 때문이라는 고인의 마지막 말을 듣고도 개인 문제로 인한 비관 자살이라고 발표했다. 보수 언론이라는 협조자들은 이를 그대로 보도했다. 공사는 단 하루도 멈추지 않았다. 고작 분향소 하나 세우려 하는데, 시내에 경찰이 깔리고 사람이 아래 깔렸다. 나는 당혹스러웠다. 안 되는 건가. 엄밀하게 말하자면 당혹한 패배감이었다.
가끔은 무서웠다. 밀양의 사람들은 후에 어떻게 살아가게 될까. 나는 어느덧 싸움의 끝을 그리고 있었다. 밀양 주민들은 말했다. 송전탑이 사라지면, 지금 받은 상처는 한낮에 꾼 악몽처럼 사라질 것이라고. 그러나 송전탑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나는 물었다. ‘용서할 수 있으시겠어요?’ 질문을 받은 주민이 나를 빤히 봤다. 그런 질문은 처음 받아보는데, 생각도 해 본 일이 없는데…. 이건 작은 것 하나 우리의 의지대로 이뤄진 것이 아니잖아요. 우리가 눌리고 속아서 만들어진 거잖아요. 그녀는 표정을 고쳐 말했다.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용서할 수 없는 기억이 잊힐 때까지 기다리기에는 이들의 남은 시간이 너무 짧다,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럼에도 밀양 하면 떠오른 감정은 두려움과 당혹감만은 아니었다. 어떤 주민의 말이 나를 잡았다. 유한숙 어르신의 일이 있기 전이었다. 농성장을 지킬 여력이 마을에 있지 않았다. 한전은 5월부터 사람들을 괴롭혀 왔다. 요즘 농촌은 농한기가 따로 없다고 했다. 비닐하우스 농사를 많이들 했다. 1년 내내 일이 넘쳤다. 그런 농사일이 밀릴 대로 밀리고 팔지 못하게 된 작물이 넘쳤다. 농성장에 지킨다고 공사를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공사 현장 근처로 갈 수조차 없었다. 종일 자리를 지키는 것, 그뿐이었다. 그래서 농성장을 접거나 옮기는 것이 어떻겠냐는 의견이 하나둘 나왔다. 힘을 집중하자는 말이었다. 한 주민이 농성장을 접는 것은 반대했다. 그녀는 말했다.
“지금 제대로 안 싸우면 너무 후회가 될 거 같아요.”
그 말이 종종 떠올랐다. 국가 폭력은 사람을 돈으로 나누고 힘으로 제압했다. 언론을 통해 여론을 통제했다. 도시건 농촌이건, 철거민이건 철도공무원이건, 그 누구도 국가 정책에 반한다면 소통 없는 처벌이 가능한 사회에 살고 있다는 막연한 피로 속에서도 그 말 한 마디가, 그 말을 하던 단정하고 곧은 품새가 떠올랐다.
지금, 밀양의 목소리에 답해야 한다
▲ 2차 밀양 희망버스 홍보 웹자보. myhopebus@gmail.com
경찰이 마을에 들어와 만든, 내게는 역사책에서만 본 그 무서운 5.18도 생각나게 하고 4.3도 떠올리게 하는 풍경 사이로 작은 농성장에 있다. 그 안에서 노인들이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죽였다. 농도 나오고 흉도 나온다. 유머도 있고 오랜 기억도 끄집어 내진다.
“우리 아버님은 술 하나 마심 다음날 보약 한 첩 드시고, 술 한 접 드시면 다음날 닭 하나 잡아먹고 그러셨어. 오래 살다 가셨지.” 쭈글한 얼굴로 그네들보다 더 쭈글했을 ‘나많은 사람(나이 많은 사람)’을 떠올리는 대화에서 죽기에는 참 아까운 생을 본다. 그네들이 머무는 농성장에는 언제든 들어가겠다며 만든 구덩이가 파여 있다. 그게 무덤임을 안다.
나는 밀양에 무엇이 필요한지 모르겠다. 그러나 누구의 말대로 ‘방관자’가 아닌 ‘방어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지금 밀양 주민들에게는 방어자들이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방관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에 대해 알고 목소리를 내어주는 방어자들이 필요한 것입니다. 국가폭력에 대해 “멈춰”라고 말해주는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하승수) 그것 이상은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내게 무엇이 필요한지는 안다. 밀양에 가해지는 폭력은 나를 공포스럽게 한다. 폭력이 단순한 매질이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그것은 소외와 무력감이 주는 모욕과 함께한다. 나는 그것이 두렵다. 내 일이 아니라고 등을 돌리고 안온한 패배감에 둘러싸이고 싶다. 그럼에도 내 뒷머리를 잡는 것은 ‘후회가 될 것 같아 싸운다’는 그 말이다. 송전탑 아래에서 자신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 하는 말. 내가 막연히 걱정하고 두려워하는 그 미래의 삶이 아닌,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후회하지 않기 위해 솟아난 송전탑을 마주하여 싸운다는 소식이 들려오기 때문이다.
밀양에만 방어자들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도 방어자가 필요하다. 안온함으로 도망치지 않기 위해 힘을 모아줄 방어자가 필요하다. 그리고 밀양의 목소리에 답하는 것이 지금 최대의 방어이다. ▣ 희정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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