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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만 없었으면…’ 소송 잇따르는 일본
- 후쿠시마 원전 사고 재판의 현재
“국가로부터 방치당한 채 세월이 흐르는 것이 제일 괴롭다.”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로 구 경계지역이 된 고향을 떠나 가나가와현으로 피난한 남성의 말이다. 원전 사고로부터 3년. 오염수와 방사능은 계속 누출되어 14만 명의 사람들을 사랑했던 땅에서 내몰고 있다.
일본은 ‘귀환’ 촉진을 목표로 삼았고, 올해 4월부터는 구 경계구역의 일부 피난 지시가 해제되었다. 높은 비율로 아이들이 갑상선암이나 의혹 진단 내려져도 원전 사고와의 인과 관계는 인정되지 않는다. 일본 정부도, 도쿄전력도 ‘원전 재가동’, 심지어 ‘원전 수출’에 의욕을 불태우고 있다. 마치 원전 사고가 없었던 것처럼.
원전 사고를 없었던 일로 하고 싶어하는 국가와 도쿄전력에 책임을 추궁하고, 빼앗긴 것들을 명확하게 하고 앞으로의 인생을 이어가려고 사법부에 호소하는 사람들이 있다. 국가와 도쿄전력을 상대로 형사고소, 배상소송을 하고 있는 원전 사고 관련 재판의 지금을 쫓는다.
국가와 도쿄전력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
▲ 낙농업을 하던 간노 시게키요 씨는 ‘의욕이 사라졌다’ 등의 낙서를 우사에 남긴 채 자살했다. ©야스다 유키오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피해주민들으로 구성된 ‘후쿠시마 원전 고소단’은 원전 사고를 일으키고 피해를 확대시킨 도쿄전력의 대표이사, 원자력안전보안원과 원자력안전위원회 전문가 등 33인, 그리고 법인으로서의 도쿄전력을 상대로 ‘업무상 과실치사상죄’, ‘공해죄’, ‘격발물 파열죄’로 후쿠시마 지방검찰청에 고소했다.
2012년 6월 11일, 1천324명의 후쿠시마 현민이 1차 고소를 하고, 같은 해 11월 15일에는 전국 단위, 나아가 해외에서 1만3천262명이 2차 고소를 진행했다.
고소가 후쿠시마지검에서 도쿄지검으로 이송된 직후인 2013년 9월 9일, 도쿄지검이 불기소처분을 결정하였다. 고소단은 같은 해 10월 16일과 11월 22일에 도쿄검찰심사회에 심사불복을 신청했다.
방사능오염수 해양 방출의 책임을 묻다
한편 2013년 9월 3일, 후쿠시마원전 고소단은 단장과 두 명의 부단장이 도쿄전력 후쿠시마 제1원전, 방사능오염수 해양 방출 사건에 관련하여 도쿄전력의 신구 경영진 32명과 법인으로서 도쿄전력을 ‘인간의 건강에 관한 공해범죄의 처벌에 관한 법률’(공해죄법)의 피의 사실로 후쿠시마현 경찰에 형사고발했다.
고발의 핵심은 다음의 네 가지 사실이다. 1) 2011년 6월 시점에서 도쿄전력은 오염수 대책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서수벽 계획안까지 작성했다. 2) 그러나 서수벽에 많은 경비가 들기 때문에 경영 파탄을 우려해 보류하였다. 3) 오염수탱크로부터의 누출과 감시 체제 개선을 정부나 규제당국에게 재차, 삼차 지적당하면서 이를 게을리했다. 4) 오염수 관련 상황에 대해 정부나 도쿄전력 스스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상정 외’가 아니다.
후쿠시마현 경찰은 같은 해 10월 11일, 고발장을 수리하고 특별수사팀을 편성하여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유서 남긴 낙농인…‘원전만 없었으면’ 소송
▲ 텅 비어버린 간노 시게키요 씨의 우사 © 야스다 유키오
후쿠시마현 소마시 다마노에서 낙농업을 하던 간노 시게키요 씨(당시 54세)가 자살한 것은 2011년 6월 10일의 일이다.
부인 간노 바네사 어볼드 씨와 두 자녀는 간노 씨의 자살이 후쿠시마 원전 사고 관련사이므로, 2013년 5월 30일 도쿄전력에 1억2천6백만엔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도쿄지방법원에 제기했다.
간노 씨는 2대째 낙농업을 하며 약 40마리의 젖소를 키우고, 분뇨를 이용한 퇴비를 판매하는 등 안정적인 경영 기반을 닦을 계획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원전 사고 후인 3월 20일, 소마시의 원유도 출하가 정지되고(1개월 후에 해제), 다마노 지구에서는 시간당 1-2밀리시벨트의 방사선량(같은 해 6월 18일 측정)이 측정되었다.
두 자녀와 부인 바네사 씨가 고향인 필리핀에 귀국한 사이에, 정신적으로 궁지에 몰린 간노 씨는 “원전만 없었으면”이라는 유서를 남기고 퇴비공장에서 자살하였다.
재판에서 원전 사고와 자살의 인과관계를 증명하기 위해, 인접한 이타테무라에서 낙농업을 경영하다 원전 사고 후에 휴업한 하세가와 겐이치 씨 등의 진술서가 제출되었다. 또 정신과 의사인 노다 마사카게 씨가 ‘우울증’ 진단을 내린 감정서, 간노 씨가 죽기 직전에 소마시 생활환경과 시민생활계에 경영과 생활을 상담하러 갔을 때, 담당자가 적은 메모 등도 제출되었다.
하세가와 겐이치 씨의 진술서에는 “앞이 보이지 않는 암흑에 내다꽂혔을 때, 누군가 자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습니다” 라는 글이 있다. 그리고 소마시의 상담 메모에는 간노 씨가 정신적인 케어를 필요로 한다고 적혀있다.
소송을 맡은 야스다 유키오 변호사는 “소마시의 다마노는 방사선량이 높은데도 피난 지역으로 지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국가나 도쿄전력으로부터 지원도 없었다. 간노 씨는 목장을 세울 장래의 계획이 무산된 데 큰 충격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바네사 씨는 유족연금만으로는 생활이 불가능해 도쿄전력에 보상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아 제소에 이르렀다. 국가나 도쿄전력으로부터 지원이 있었다면 제소까지는 가지 않았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어린이를 지켜라” 집단 대피권 요구
2013년 12월, 후쿠시마현 현민 건강관리조사 검토위원회가 열렸다. 건강진단에서 갑상선 2차 검사을 통해 악성 내지는 양성이 의심된다는 소견을 받은 어린이는 총 74명이다.(영유아와 어린이는 방사능 피해를 가장 쉽게, 많이 입는 집단이다.) 그 전 2013년 9월말 58명에서 16명이 증가했다. 지금까지 34명이 수술을 받았고, 33명의 어린이가 갑상선암 확정 진단을 받았다.
사고 직후 일본 정부는 초중학교의 방사선 안전 기준을 연간 1밀리시벨트에서 20밀리시벨트로 상향 조정했다. 지금까지 어린이들은 매일 저선량 피폭이나 내부피폭에 노출되어 있었다.
▲ 2014년 2월 22일에 도쿄 신주쿠에서 ‘후쿠시마 집단소개 재판 모임’ 주최로 집회가 열렸다. © 페민
2011년 6월, 후쿠시마현 고리야마시의 초중학생이 고리야마시를 상대로 ‘집단 소개(疎開, 피난, 대피)를 요구하는 가처분 절차를 제기했다. 당시 후쿠시마에서는 피난하려고 하거나 어린이에게 급식 대신 도시락을 들려보내면 “고향을 버리는 짓”, “자기만 살겠다는 행동”이라고 비난 받는 분위기였다고 고젠 씨는 전한다.
그런 가운데 일곱 가족이 ‘아이를 지키고 싶다’는 생각으로 재판을 청구했다. 집단 소개를 요구한 것은 ‘어린이들의 커뮤니티를 지키기 위해서’, 그리고 피난이라는 말을 꺼낼 수도 없었던 사람들이 “피난 가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이다.
이에 대해 2011년 12월, 후쿠시마지방법원은 ‘100밀리시벨트까지는 안전’하다는 이유로 기각 판결을 내렸지만, 2013년 4월 센다이고등법원은 이들의 주장을 기각하기는 했으나 중요 사실을 인정했다.
첫째, 체르노빌 원전 사고 후의 피해 상황으로 비춰보면 ‘특히 아동의 생명, 신체, 건강에 중대한 사태 진행이 염려된다’는 점이다. 둘째, 제염 등 방사성 물질을 무해하게 만들거나 완전하게 봉인하는 과학기술이 개발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셋째, 피폭의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는 다른 지역으로 가는 방법 외에는 길이 없다는 점이다.
이러한 점들을 인정했음에도 재판의 결과는 ‘기각’이었다. 판결을 들은 원고들은 “자유롭게 피난할 수 없어 소송을 한 것에 대한 무책임한 판결”이라고 말했다.
‘핵의 공포에서 벗어나 살 권리’ 원전 메이커 소송
“원전 피해자에 대한 배상금에는 우리의 전기요금과 세금이 쓰이고 있는데, 정작 ‘원전 메이커’에 어떤 책임도 묻지 않는 것은 이상하다. 게다가 원전 수출이라니”.
올해 1월말, 원자로 제조사인 미국의 제너럴일렉트릭(GE), 도시바, 히타치 등 3사를 상대로 원고 1인당 100엔의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이 도쿄지방법원에 제기되었다. 원고로는 후쿠시마현 주민을 포함해 국내에서 1천50명, 해외 33개국에서 340명이 참가하여 해외에서도 주목받는 소송이다.
소송 사무국장인 재일조선인 2세인 최승구 씨는 “오랜 동안 지역에서 재일조선인과 관련된 운동을 하고 있었는데, 3.11 사태를 계기로 민족, 국경과 상관없이 이 사회를 바꿔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전 폭발 영상을 보고 불안을 느낀 세계인 누구나 원고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원자로 결함으로 참혹한 사고를 일으켜도 원자력배상법 상 전력회사는 과실 유무에 상관없이 책임을 지지 않으며(집중책임제도), 제조물 책임법(PL법) 상에서도 ‘배제’된다고 규정되어 있다.
소송 모임은 책임집중제도에 따라 불법 행위를 원인으로 하는 배상 청구가 불가능한 것, 헌법 29조 1항의 재산권이 침해당하거나 헌법 13조의 행복추구권 등으로부터 파생되는 ‘원자력의 공포에서 벗어나 살 권리’=‘노 누크스(No Nukes)권’이 침해당하기 때문에 원자력배상법이 ‘위헌’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원자력배상법 5조는 전력회사가 고의적 제3자에게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 소송단은 원전 메이커가 1970년대부터 GE의 기술자가 후쿠시마 제1원전의 구조상 결함을 고발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방치했다며, 이 구상권을 대위 청구하고 있기도 하다. 원전 메이커의 사고에 대한 고의성에도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3월 10일에는 2차 소송도 제기하여 원고는 국내외에서 1천500명을 넘을 것으로 보인다. 향후 도쿄지방법원에 요망서와 국내외 서명을 제출할 예정이다. (원전 메이커 소송 사이트: ermite.just-size.net/makersosho) ※ <일다>와 제휴 관계를 맺고 있는 일본의 여성언론 <페민>에서 제공한 기사입니다. 고주영님이 번역하였습니다. ▣ 일다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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