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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전의 밀양 송전탑 공사 재개, 그 후⑤ 희정_르포작가
 

솔직히 지금도 의문이다. 밀양 소식에 익숙해질 만한데도 불현듯이 짜증 섞인 의문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왜 그렇게까지 한전은 송전탑을 지으려 할까. 그 오랜 반대에도, 이 많은 희생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또 한 분의 밀양 어르신이 죽음을 택한 날
 
송전탑 들어올 땅에 사는 사람이, “살아서 그것을 볼 바에야 죽는 게 낫다”며 제초제를 마시고 죽음을 택한 날 아침에도 한전의 공사는 멈추지 않았다. (밀양 상동면 고정마을 유 모 어른께서 음독자살을 기도하여 6일 오전 3시 50분에 운명하셨다.) 새로 공사가 들어간 골안마을 송전탑 부지로 가려던 한전 소속 인부들은 주민들에 의해 길이 막히자 샛길을 이용해 산까지 탔다. 한전은 올해까지 5개의 송전탑 건설을 완료하겠다고 밝혔다. “사람이 죽었는데 너희가 어떻게 이럴 수 있냐” 주민들의 외침에도 송전탑 공사는 강행되고 있다.

▲  밀양 유 모 어른께서 죽음을 택한 날 아침에도 한전의 송전탑 공사는 멈추지 않았다.  © 안상 
 
밀양 지역만 왜 그리 반대가 심하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밀양 주민들은 송전탑과 송전선이 지날 동선을 일일이 설명해준다. 마을에 너무 가깝다. 어떤 송전탑은 마을을 빙 두르고 있고, 어떤 송전탑은 아예 논밭으로 지난다. 돌아가신 유 모 어르신의 집도 송전탑과의 거리가 불과 180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았다.
 
이것이 특이한 일인가? 그렇지 않다. 이미 송전탑이 세워진 다른 지역을 보면, 농장 뒤에 송전탑을 이고 산다. 불과 100미터 거리를 두고 송전탑과 집이 마주하고 있다. 높으신 분들 땅을 피하고, 공사비용을 저렴하게 하려다 보니 송전탑이 그리 지나간다. 그래도 별탈 없이 지내왔다. 돈으로 막고 힘으로 막았다. 그래서 한전은 뜨악해 한다. 왜 밀양만 반대를 할까? 한전도 나름의 의문이 있다. 그러니 뜨악한 반대 따윈 무시하고 싶다.
 
그럼에도 주민들은 몇 해째 송전탑 건설을 막고 있다. 몸으로 막는 것을 넘어, 생목숨을 바쳐 막는다. 사태가 이정까지 왔다면, 어느 정도 양보할 만한데 한전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우회를 하면 지어야 하는 송전탑이 늘어나서 안 된다고 한다. 지중화는 돈이 들어 안 된다고 한다. 부품 불량 문제로 인해 신고리 원전을 재가동하려면 한참이나 남았으니 그 동안 머리를 맞대고 방법을 강구해보자 해도, 안 된다고 한다.
 
한전이 저리 강고하니, 이쪽도 의문만 커진다. 그렇게 비용 절약이 중요하다면서 정작 한전 자신들의 부채는 청산하지 못할까. 기업에 헐값으로 전기를 팔아 넘기며 손해를 지속하고 있을까. 전력 낭비를 막는 방향을 취하지 않고 돈 드는 송전탑과 발전소를 자꾸만 짓는 것일까. 답답한 속이 ‘송전탑 건설이 정말 필요한가’에까지 의심을 품게 했다.
 
일본…원전이 멈춰도 정전 사태는 없었다
 
의문의 답은 옆 나라에서 발견하게 된다. 2011년 3월, 인류 역사에 기리 남을 사건이 일본에서 터졌다. 스리마일, 체르노빌에 이어 후쿠시마에서 원전 사고가 일어났다. 2년이 지난 지금도 매일 방사능 오염수가 300t 이상 바다로 흘러가고 있다. 일본 정부가 아무리 감추려 해도, 전 세계는 알고 있었다. 일본은 회복하기 힘들 정도로 방사능에 오염되었다.
 
사고 직후 일본의 핵발전소(원전)는 멈추었다. 잠시, 그것뿐이었다. 일본 정부는 방사능 수치를 은폐하는데 열을 올렸고, 슬슬 원전 재가동 이야기가 정치인들의 입을 통해 나오고 있다. 재가동의 근거는 ‘전력난’이다.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이유가 아닌가?
 
전력난이라. 2개를 제외한 일본 내 모든 원전이 멈추었음에도 여태껏 정전 한번 발생한 적이 없다. 심지어 올해 들어 일본의 10개 전력회사 가운데 5개사가 흑자를 냈다. 원전을 운영하지 않고도 전력회사의 실적이 개선된 것이다. 고이즈미 전 총리까지 나서 ‘원전 재가동 반대’ 의사를 펼친다. 총리 시절, 원전을 적극적으로 이용하자고 주장했던 보수적인 정치인이 거의 전향에 가까운 정치적 입장을 내세우고 있다. 그를 돌아서게 할 만큼 원전 사고 피해가 컸던 것이다.
 
그럼에도 일본 정부와 몇몇 기업들은 원전 재가동을 노리고 있다. 원전을 멈추지 못한다. 왜 멈추지 못하는가? 일본 국민들과 전 세계가 의문을 가졌고, 종종 나오던 단어가 ‘원전 마피아’이다. 원전을 통해 부당한 이익을 얻는 범죄집단, 마피아의 힘이 국가의 에너지 정책에 뻗치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에서 원전 마피아 소식이 들려올 때만 해도 ‘저런 게 있긴 있구나’ 정도였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세계 여러 국가들이 원전 건설 재검토를 선언할 즈음, 한국 정부는 ‘한국식 원전’은 안전하다는 발표를 했다. 국민들이 방사능을 배출시킨다는 요오드를 찾고 다시마를 사재기 하고 있을 때였다. 일부 양심 있는 전문가들은 우리 원전과 일본 원전의 차이는 거의 없다고 밝혔다. 간접인지 직접인지, 냉각 방식 차이 하나였다. 일본에서 난 사고가 한국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는 소리였지만, 그 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힘 있는 정부는 ‘안전한 한국식 원전’을 외치며, 30년 넘게 사용한 고리, 월성 원전 1호기 등에 재가동 결정을 내렸다. 국가 패망을 좌우하는 위험을 보고도, 노후하다 못해 폐쇄를 앞두고 있던 원전의 수명을 야금 늘린 게였다. 그러니까 원전 사고의 위험은 일본만의 것이 아니었다. 원전 마피아도 남의 문제가 아니었다. 
 
송전탑을 계속 지어야 사는 ‘원전 마피아’   
 
때마침 신고리, 영광 원전 불량부품 문제가 터졌다. 무려 290가지 품목, 8천601개 부품이 불량으로 확인되었다. 위조된 품질인증서, 성적서 또한 드러났다. 부품의 고압, 고열 테스트에 냉각수가 아닌 수돗물을 사용했다고 한다. 미진한 검사, 위조된 성적서, 불량부품의 결과는 미작동이었다. 신고리 1호기 같은 경우 시운전 도중에만 8번의 고장이 발생했다.
 
국내 운영 중인 21개 원전 중 고장이 한 차례도 나지 않은 곳은, 없다. 2000년 이후 한 해 평균 원전 고장 횟수는 10번. 앞서 언급된, 고령을 자랑하는 월성 1호기는 고장 횟수만 50여 번이다. 고장 사고의 원인 중 얼마간은 로비로 들어온 불량부품 덕일 것이다. 일본과 같이 자연재해나 화재 등이 발생했을 때 부품이 작동하지 않는다면, 핵발전소는 그 순간 원자폭탄이라 불러도 좋다. 한번 집어넣으면 4년을 끓는 것이 핵 원료라 했다. 그것이 외부로 누출된다.

▲ 국내 원전 중 고장나지 않은 곳은 없다. 신고리 1호기는 시운전 중에만 8번 고장이 났다. © 안상 
 
불량부품 비리로 인해, 신고리 3호기도 중단되었다.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수출을 위해 반드시 세워져야 한다던(더불어 밀양의 송전탑도 기필코 세워져야 한다던) 신고리 3호기였다. 가동에 제동을 건 이는, 정작 이 말을 한 장본인들이다.
 
한국 언론도 이제 심심찮게 ‘원전 마피아’라는 단어를 쓴다. 원전 마피아란 원전 산업계를 둘러싼 관료, 학계, 기업들의 공생 관계를 일컫는 말이었다. 이들이 가진 독점성과 폐쇄성이 비리를 가능케 했다는 것이다. 여론이 들썩이자, 정홍원 국무총리조차 국정감사에서 ‘원전 비리의 뿌리가 폐쇄적인 순혈주의에서 기인’한다고 인정했다.
 
원전을 둘러싼 성벽은 높다. 성벽 안 사람들은 영업기밀, 전문영역이라는 말을 외며, 바깥사람들이 성벽 안을 들여다보는 것을 꺼린다. 원전 하나를 건설하는데 들어가는 부품은 300만 개. 비용만 2조~3조이다. 엄청난 금액의 돈을 보이지 않는 벽 뒤에서 세다 보면 한두 장씩 비기 마련이다.
 
원자력발전소는 우리가 막연히 생각하듯 엘리트 공학자의 이론과 공식만으로 구성되지 않는다. 원자력발전소 건설은 거대 토목, 건설회사가 들어와야 가능한 일이고, 숱한 정부 승인이 필요한 일이다. 거대 건설기업과 전력업계 기업은 물론, 이들을 최대 광고주로 모시고 있는 언론사. 퇴직 후에 원전 관련 기업으로 재취업을 기대하는 관계 부처의 관료들. 정치헌금을 기대하는 정치가들. 교수 자리를 유지하고 싶어하는 원자력 전공 학자들. 이들이 원전을 둘러싸고 모인다.
 
발전소 건설이란, 정부가 공인하고 법이 지켜주는 사업이다. 리스크 없는 돈놀음이 흔한 기회는 아니다. 그러니 먹이사슬로 얽혀 똘똘 뭉친다. 내부 카르텔이 형성되고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는 이들은 성벽 밖으로 내동댕이쳐진다.
 
얼마 전,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밀양 송전탑 반대 싸움에 연대하는 사람들을 '외부세력'이라 지칭하며 어디서나 싸움을 만드는 몰이꾼 취급을 했다. 그런데 정작 몰이꾼은, 원전과 국가 에너지 산업을 둘러싸고 있는 이들이다. 원전 마피아, 이들은 원전에서 떨어지는 돈을 따라 몰이를 한다. 50조라는 어마한 손해를 보고 있으면서도 이상하게 기업에 퍼주기를 멈추지 않는 한전도, 저 안 어딘가에서 자신의 몫을 다하고 있을 것이다.
 
송전탑을 세우지 않는다면, 발전소 수를 줄인다면, 원전 마피아의 입지는 줄어든다. 좁혀진 성벽에서 누군가는 옷을 벗고 나가야 한다. 그러지 않기 위해 전력시설은 꼭 건설돼야 하고, 전력공급량은 늘 확대돼야 하는 것이다. 누가 목숨을 잃든 말든.
 
핵발전소 23개를 안고 사는 삶이 부유한가?
 
어쩌면 우리는 원전 마피아들 덕분에 (누진세 걱정은 좀 했지만) 전기를 편하게 써왔는지 모른다. 그들이 끈끈한 유대감을 갖고 핵발전소 안전 신화를 되풀이 한 덕분에 우리는 의심할 필요가 없었다. 발전소가 세워지든 송전선이 지나든 그것이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생각하지 않았다. 우리의 관심은 오직, 원활한 전기 공급이었다.
 
실은, 전기에 그다지 관심이 있지도 않았다. 우리의 관심사는 전기가 만들어내는 부유함. OECD국가 중 경쟁력이 몇 위인지, 수출이 몇 위인지, 그것이 우리의 관심사였다. ‘수출 100만 달러’를 외치던 시절부터 ‘경제 대통령’을 뽑아놓은 지금까지 무엇이 희생되고 어디가 폐허가 되는지에 무심했다. 저 멀리 있는 누군가의 고통만이 아니었다. 내 자신의 고통에도 무감했다.
 
기업 경쟁력을 위해 유연한 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래서 비정규직화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했다. 계약직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일회용품 부속품으로 여기는 지위를 받아들였다. 더 세련된 도시를 만들기 위해 낡은 건물들은 쓸어버려야 한다 했다. 그곳에 살던 이들의 저항은 무시했다. 용산 망루 불길 속에서, 한 동네에서 몇 십 년 터를 잡고 금은방을 하고 식당을 한 사람들이 죽거나 떠났다.
 
그렇게 발전해왔다. 높은 이들의 주판에서 1억 1조가 굴러가고, 송전탑은 농민들이 논밭을 기어 마련한 한 평 두 평 재산으로 세워진다. 도시의 휘황찬란한 건물은 권리금도 쥐지 못하고 쫓겨난 점포 주인들의 눈물로 올라간다. “밤이 너무 밝아 원망스럽기보다는 슬프다”는 도시의 풍경은 그리 만들어진다. 우리는 그 발전을 누리는 자이지만, 그 발전이 요구하는 희생을 언제 요구 받을지 모르는 평범한 개인들이다.
 
그럼에도 ‘한강의 기적’은 아직도 기적이고, 여전히 사람들은 그 기적이 다시 오기를 염원한다. 40년이 지났지만, “우리 모두 박정희가 열어놓은 역사의 철길에서 한 치도 궤도를 벗어나지 못”(<밀양 노인들의 싸움은 '서울 노예 해방' 선언> 중에서, 프레시안, 장석준 진보신당 부대표)했다. 밀양 주민들의 싸움이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도 핵폭탄 같은 원전 23개를 안고 사는 삶이 부유하다고 믿었을 것이다.
 
제대로 살아갈 방법을 알려준 밀양 주민들  

▲ 밀양의 농민들은 우리에게 제대로 살아갈 방법을 알려주었다.  © 안상 
 
“우리가 돈을 달라고 하나. 쌀을 달라나. 밥을 달라나. 우리 재미있게 오순도순 엎드려 사는데 이대로만 살게 해 달라. 이대로만."
 
전투적인 싸움으로 인해 야전사령관이라는 별명이 붙은, 평밭마을 한옥순씨의 말이다. 밀양 주민들은 원하는 것이 없다. 원래의 상태로 돌려놓아라. 아무 일도 없던 그 시절로 돌아가자. 그 바람이 통하지 않아 싸움이 멈추지 않는다. 사람이 죽고 죽고, 많은 수가 흙 바닥에 끌려 나와도, 변한 것은 없다.
 
그럼에도 달라진 사실이 있다면, 눈물 바람으로 “우리 이대로만 살게 해주라”던 밀양의 농민들의 싸움이 우리 모두에게 제대로 살아갈 방법을 알려주었다는 것이다. 더 이상 도시가 주변부 지역의 자원에 기생하는 전력공급 체계를 유지해서는 안 된다. 도시와 기업은 자가발전 전기 생산을 고민해야 한다. 전기소비량에 제어를 걸어야 한다. 에너지 전반에 대한 고민 없이 발전소를 더 짓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해서는 안 된다. 핵은 지양되어야 한다. 재생에너지 등 대안을 찾아야 한다. 그것들이 밀양에 의해 말하여졌다.
 
그럼에도 여전히 밀양 주민들의 가장 큰 소원은, ‘오순도순 엎드려’ 살던 예전의 삶을 되찾는 것이다. 그 삶을 유지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알았을 뿐이다.
 
매주 토요일마다 열린 밀양 촛불집회에서 사회자가 한 말이 기억에 오래 남는다. 밀양주민들이 우리에게 준 가르침이 아닐까 하여서다.
 
“법은 당신들의 손에서 놀지만, 법이 존재해야 하는 그 정신을 만드는 것은 우리입니다.”
 
시골 무지랭이라 스스로를 부르던 밀양 주민들이 우리에게 새로운 삶을 일깨워주고 있다.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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