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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한전의 밀양 송전탑 공사 재개, 그 후④ 
 
 
원자력발전소가 들어오면 부자 된다고 꽹과리 치고 좋아하던 시절이 있었다. ‘공해라도 좀 배불리 먹고 싶다’던 시절이었다. ‘수출 100만 달러’를 목표로 달렸고, ‘산업역군’들이 토한 피에는 환기시설이 없어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한 실밥들이 엉켜있었다. 닭장 같은 방직공장에서 역군들이 밤을 새워 일할 때, 그네들의 인권과 행복 따위는 경제발전을 위해 반납되었다.
 
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을 보면,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도록 강제하라는 방직공들의 요구에 공무원이 이렇게 답한다. “1980년대가 되면 당신들 자가용 굴리고 잘 살 수 있는 나라가 돼.” 그러니 인내하라 했다. 허리띠를 졸라매라 했다. 그 말을 하는 공무원의 허리띠는 멀쩡해 보였다. 방직공장의 사장도, 수출 100만 달러를 목표로 달려가는 기업의 고용주들의 허리도 갑갑해 보이지 않았다. 그들이 졸라매려는 허리띠의 주인은 정해져 있었다.
 
‘서울의 전기 식민지’…발전소, 송전탑 아래 사람들  

▲ 전력자급률 1-2%인 도시에 전기를 보내기 위해 영남권이 발전소와 송전탑을 받아들여야 한다? ©밀양 765kv송전탑 반대대책위원회 
 
허리띠 덕분인지, 대다수가 자가용 하나쯤은 가지고 있는 시절이 되었다. 빌딩은 높아져만 가고 집들은 커져만 갔다. 무엇이든 부족했던 시절은 상상이 잘 가지 않았다. 물질은 풍요로웠다. 전기마저 예외는 아니었다. 밤조차 밝았다. 도시의 밤을 밝히기 위해 전기는 쉬지 않고 달렸다.
 
그러나 우리는 전기가 ‘수백km를 지나면서 얼마나 많은 곳을 폐허로 만들어 버리는지’(한국일보 2013년 5월 21일자 박경미 칼럼 “밀양 송전탑건설과 민주주의”에서 인용)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전기가 달리는 길목에 송전탑이 세워지고, 그 시작점에 발전소가 놓였다. 그곳에도 사람이 산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었다. 아니 기억한 적 없었다.
 
발전소 주변에는 분진이 날리고, 바다가 오염되고, 핵폐기장 지반에 금이 간다는 무서운 우려에 그곳 사람들은 두려워했다. 송전탑 아래 주민들은 암을 유발한다는 전자파를 두려워했다.
 
두려움은 긴 싸움으로 이어졌고, 밀양 주민들의 악 쓰는 소리가 우리의 귀에까지 들려오고야 ‘보상금 때문에 저러는 거야?’ 힐끔거렸다. 사람 하나가 스스로 목숨을 끊고 노인들이 흙 바닥에 질질 끌려 나오고서야 ‘저기 문제가 있긴 있나 보네’ 하며 고개를 돌렸다.
 
도시민들의 반성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온 것은 그 즈음이었다. 수도권에서 소비하는 전기는 전체 전력생산량의 38%. 밀양이 속한 경상남도 지역이 사용하는 전기량의 4배를 서울이라는 도시가 소비했다. 그러나 서울에 세워진 발전소는 고작 하나(당인 화력발전소). 밀양 송전탑이 전송하는 전기가 수도권으로 간다, 대구로 간다, 한전의 말은 자꾸 바뀌지만, 변하지 않은 사실은 전력자급률 1-2%인 도시에 전기를 보내기 위해 이미 전력자급률 190%로 포화상태인 영남권이 발전소와 송전탑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서울의 전기 식민지’라는 말이 돌았다.
 
밀양 노인들은 화가 나 “전기가 그리 좋으면 송전탑을 서울로 다 가지고 가라”고 했다. 그래 놓고도 “사람 많은 데가 전기 많이 쓴다고 거기다가 세우라는 것도 잘못된 기다” 하다,  “도시의 밤이 너무 밝아 원망스럽기보다는 슬프다”고 했다.
 
밀양 주민들이 슬퍼하는 휘황찬란한 도시의 뒷골목에는 진짜 슬픔이 있었다. 겨울마다 노인 한 둘쯤 얼어 죽었다. 전기장판조차 켤 수가 없어 몸이 차갑게 굳어갔다. 그들의 몸이 얼어가는 동안에도 도시의 전력 수요는 치솟았다. 사용량이 넘쳐 도시에 대규모 정전사태가 일어난 해도 있었다. 휘청거리는 사치와 목까지 요구하는 빈곤이 공존하는 도시였다. 전기는 도시에서조차 공평하지 않았다.
 
강제로 땅 빼앗는 개발정책, 대기업만 승승장구
 
에너지 수요가 늘어나자, 정부는 전력 예비율을 높이겠다고 했다. 2012년 정부가 발표한 제6차 전력 수급기본 계획에는 화력발전 공급량을 1,580만㎾까지 확대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현재 남한의 핵발전소는 23개, 화력과 가스열병합 발전소도 170여 개, 그에 따라 세워진 송전탑 수가 3만 9천여 개다. 이것으로 부족하다 했다.
 
더불어 ‘횃불을 밝히며 야간 공사를 해서라도 올 12월 신고리 원전 3호기에서 생산된 전기를 가정과 일터로 차질 없이 내보낼 수 있도록’(한국전력 부사장이 공사 재개를 앞두고 낸 대 호소문 일부) 밀양 송전탑 공사를 강행하겠다고 밝혔다. 밀양 주민들이 말하는 대안(송전탑 우회나 지중화)을 고려하기에는 전력대란이 걱정된다고 했다. 주민들이 이에 반대하자, 3천여 명의 경찰을 주둔시켰다. ‘전력난’을 대비한 ‘빠른 공사 재개’만이 정부와 한전의 유일한 답이었다.
 
이러한 정부의 태도는 꽤 유서가 깊다. 1978년 만들어진 이래, 현존하는 <전원개발촉진법>에서 그 근원을 찾을 수 있다. 송전탑 건설에 있어 기본이 되는 이 법은 정부의 승인만으로 전원 사업자가 <도로법> <산지관리법> <농지법> <원자력 안전법> 등 19개 법률의 규제 사항을 자동적으로 면제받도록 하였다. 심지어 사업자에게 토지강제 수용권까지 주어졌다. 땅 소유자가 동의하지 않아도 땅을 강제 수용하여 공사를 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밀양에 주둔한 경찰과 한전 직원들이 합법적인 공사라며 큰소리 칠 수 있는 까닭이었다.
 
박정희 정권 아래 만들어진 이 법은, 전력산업 발전에 거치적거리는 것을 최대한 제거하겠다는 국가 의지의 산물이었다. ‘자가용 굴리고 잘 살 수 있는’ 경제발전의 동력이기도 했다. 기반산업인 에너지를 국가의 통제 하에 저렴한 가격에 기업에 내주고, 기업은 이를 바탕으로 최소한의 비용으로 상품을 만들어 수출했다. 그것이 경제발전이었다.
 
최소한의 생산비를 위해서 국가는 많은 것을 억압했다. 임금과 복지를 낮추어 노동자들의 허리띠를 졸라매었다. 저임금을 유지하기 위해 노동자의 주식인 농산물의 가격 상승을 통제했다. 농사가 돈이 될 수 없었다. 농민들은 도시로 가 임금노동자가 되고, 고향에 남은 이들은 그래도 한평생 땅에 엎드려 살았다. 안 먹고 안 입고, 돈이 생기면 논밭을 샀다. 30년이 지나 이제는 먹고 살 만해지니, 논밭에 송전탑이 들어온다 그랬다. 토지를 강제 수용하고, 몇 푼의 보상금으로 만족하라 했다. 그러는 사이 은총을 받은 기업들은 승승장구 성장해갔다.
 
50조 부채 안고 있는 한전이 주장하는 ‘효율’ 

▲ 11월 30일 밀양 희망버스 "우리가 밀양이다"   
 
자동차․금속․조선 등 수출 위주의 제조업, 그것도 대기업 위주의 발전 전략은 에너지만이 아닌 여러 갑을 문제를 만들어왔지만, 에너지 정책만 본다면 산업용 전기소비량 국제 사회 4위라는 기록을 내었다. 수출 위주의 제조업 발전전략 하에 정부가 세울 수 있는 에너지 정책이라고는 ‘공급확대’ 밖에 없었다.
 
더 나아가 이제 에너지 소비는 경제발전과 무관하게 성장세였다. 세계금융위기로 대부분 국가들의 산업 활동이 줄어든 2009년, 한국만 산업용 전기 사용이 12.9% 증가한 것이다. 늘어난 전기 수요는 줄어들 줄 몰랐다. 기업은 전기 사용을 줄일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국내 전력수요량 1위라는 현대제철을 보면, 한해 사용하는 전기가 550만 메가와트이다. 이것은 원자력발전소 하나가 생산하는 전기량과 맞먹는다. 현대제철 당진공장 하나가 쓰는 전기가 부산시의 전력량을 웃돈다고 한다. 현대제철은 몇 해 전만해도 석유와 가스로 돌리던 용광로를 전기로 움직이도록 개조했다. 전기가 값싸기 때문이다. 심지어 전기 용광로가 석유나 가스를 사용할 때보다 에너지 효율이 더 떨어지지만, 개의치 않았다.
 
한전은 전기를 원가보다 저렴하게 제공한다. 대기업들에겐 계절별, 시간대별로 다양하게 할인 혜택도 준다. 높은 전력을 사용할수록 가격을 저렴하게 책정한다. 전기 사용이 줄어들었을 경우에 격려금도 준다. 그 비용이 한 해 500억 원이다. 배려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한전은 민자 발전소에서 1kw당 평균 163원에 전기 구입해, 기업에 평균 93원에 전기 공급(2012년 기준)한다. 민자 발전소란 한전의 자회사인 ‘한국수력원자력’에 전기를 제공하는 ‘현대 포스코에너지’, ‘sk에너제이션’ 등의 기업을 가리킨다. 이들은 현대, 삼성, SK 기업의 자회사들이다. 한전은 대기업에게 비싼 값에 전기를 사들여, 다시 대기업에 싸게 되판다. 기업은 이중으로 이익을 가져가고, 한전은 이중 부담을 안는다.
 
밑 빠진 독인 한전은 50조의 부채를 안고 있다. 재정상태가 나쁘니, 한전은 소비를 줄이고 싶어 한다. 효율을 찾게 된다. 한전에 입장에서는 밀양 주민들이 그토록 반대하는 765KV 송전탑이 ‘효율’이다. 기존 345KV 송전탑보다 3배의 효율을 가지는 송전탑. 전압이 높기에 손실되는 전류도 적고, 소요되는 용지도 최소화할 수 있다. 비용절감이고, 국내 기술의 도약이다. 3배 높은 전압이 가져올 몇 배나 높아질 위험 같은 것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송전탑을 짓는 과정에서도 효율을 따지게 된다. 그래서 마을 가까이에 송전탑이 세워진다. 마을과 멀리 떨어진 산에 송전탑을 지으면 헬기로 장비를 이동해야 하는데, 소방헬기 대여 비용이 만만치 않다. 운송 도로를 새로 내는 것도 문제이다. 땅을 사들여 도로를 만들어야 한다. 한전을 계산한다. 마을 인근에 송전탑을 세우고 보상액을 몇 푼 더 얹어주는 것이 싸게 먹힌다. 계산 끝에, 마을 사람들을 붙잡고 돈을 세며 설득한다.
 
마을 주민들이 이야기하는 대안은 귀담아 듣지 않는다. 송전탑 우회도, 지중화 건설도 논의할 수가 없다. 민주주의적 해결이란 시간이 들고 품이 드는 법이다. 품과 시간은 곧 돈이다. 한전은 돈을 아껴야 한다. 민주적인 해결은 없다. 푼돈으로 해결을 보려 한다. 원만히 해결되지 않아도, 그들 뒤에는 국가가 있다. 법도 공권력도 그들의 편이다. 3천 명의 경찰이 한 지역에 주둔하는, 야만이 나온다.
 
야만에 겁을 먹고 모욕당한 지역 주민들은 분노에 떤다. 그러나 국가와 한전은 전기 수급이 원활해질 것이라는 말을 앵무새처럼 반복한다. 인내하라 한다. 허리띠를 졸라매라 한다. 그 말을 하는 한국전력 사장 허리띠는 멀쩡해 보인다. 정부 관료의 허리띠도 갑갑해 보이지 않는다. 언제나 그렇듯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사람들은 늘 정해져 있었다. ▣ 희정_르포작가

[밀양 희망버스] http://cafe.daum.net/happylabor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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