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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페 버스정류장] 태섭이 보내온 사진  
 
※ 경북 상주시 함창읍 함창버스터미널 맞은편에 있는 “카페 버스정류장”.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머무는 이 까페의 문을 연 박계해 선생님은 “학교를 떠나 산골로 들어간 한 여자의 귀촌일기” <빈집에 깃들다>의 저자입니다. www.ildaro.com
 
“서흐새핸님, 여허기 하라샨~~~ .”
“뭐라고?” 
“바, 라, 하미 마하니히........”
“지금 전화기 상태가 안 좋으니까 끊고 내가 걸게.”
 
그리고 전화를 걸었는데 받지 않더니 잠시 후 문자가 왔다. ‘바람 때문에 전화하기가 힘들어요. 옆 사람에게 제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어요.’라는 메모가 달린 사진이었다. 머리칼과 옷자락이 온통 뒤로 달리고 있는 모습에서 태섭의 목소리를 조각내 버린 것의 정체가 세찬 바람임을 알았다.
 
내게는 언제나 중학교 3학년인 태섭은 삼십대에 접어든 건장한 청년의 모습으로 활짝 웃고 있었다. 추위에 얼룩진 얼굴빛이건만 마치 난롯가에서 불을 쪼이는 듯 여유롭게 보였다.
 
5대 독자 태섭의 성적은 아버지의 기도와 달리 늘 꼴찌 언저리였다. 운동 신경이 발달한 그는 사실 축구선수가 되고 싶었지만 체격 조건이나 지구력 등을 감안하여 선택한 운동이 씨름이었다. 사실, 그의 선택 이었다기보다도 아버지의 고뇌에 찬 결단이었다.
 
주말마다 아버지와 함께 이발소와 목욕탕을 드나들므로 머리카락 길이는 언제나 3센티를 넘지 않았고 매무새는 정갈하였다. 그가 그런 아이여서가 아니라 그의 아버지가 그런 아버지여서였다.
 
국어, 수학, 영어, 과학, 사회, 미술, 음악........ 일주일에 두 번 있는 체육 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에 그는 그저 반듯하게 앉아있었다. 열심히 공부하느라 그런 것이 아니라 운동을 한다고 교육 과정을 등한시하면 안 된다는 아버지의 뜻이었다.  
 
그는 지겨움으로 붉게 물든 눈동자를 미안해하며, 선생님의 가르침을 잘 알아듣지 못하는 자신을 한심해 하며, 자신을 위해 헌신하는 부모님의 기대에 못 미치는 것을 괴로워하는 아이들 중 하나였다. 그런 그를 보면 마치 그 시절의 나를 보는 듯만 하여 마음이 짠해지곤 했다.
 
그만했을 때 나 역시 배움에 대한 아무런 마음가짐이 없었으므로, 생각보다 공부를 잘 하지 못하면 선생님이 속상할까봐 신경 쓰는 아이였다. 내가 하품을 하면 선생님이 자신의 재미없는 수업을 반성할까봐 애가 쓰였고, 아이들이 딴 짓을 하면 선생님이 괴로울까봐 마음을 졸이는 아이였다. 그런데 대부분의 수업은 지겹고 따분했고 그런 자신이 한심하여 자학하느라 기운을 소진했다. 혼자가 되기 전에는 결코 나 자신이 될 수 없을 만큼 주체성이 없는, 정말이지 한심한 아이였다.
 
자신의 속도를 지킬 수 없어 배움의 기쁨에 도달하지 못한 아이에게 학교의 역할은 무엇일까. 배운다는 것은 지겹고, 지겹고, 지겨운 것임을 배웠다고나 할까. 태섭의 아버지가 그토록 염려한 아이의 장래가 직업에 관한 것이었다면 태섭은 꼭 학교를 다닐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학교를 다니는 것보다 훨씬 더 효율적인 길을 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귀농을 한 지 오년 쯤 된 어느 날, 자정이 훌쩍 지난 시간에 태섭의 전화를 받았다. (물론 그는 매년 명절이나 스승의 날 등에 꼬박 꼬박 안부전화를 하고 자신의 근황도 들려주곤 했다.) 그의 목소리는 처음으로 술과 눈물에 젖어있었다. 며칠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자기가 어떻게 하면 좋을지 선생님이 말해보라고.
 
잠이 덜 깬 나는 그저, 힘내..... 인생은 그런 거야....... 따위의 말만 늘어놓으며 그의 넋두리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태섭은 전문직이라고 이름 붙이기 애매한 이런 저런 일을 전전하다가 전자제품 배달 설치 기사로 자리를 잡았다. 이젠 더 이상 헤매지 말자, 는 굳은 각오로 버티다 보니 삼년이 흘렀고 그사이 몸이 망가져서 약병과 파스 껍질이 수북이 쌓여간다고 했다.
 
“오늘은 대형 냉장고를 메고 삼층까지 올라가는데 갑자기 화가 막 나는 거예요. 지각, 조퇴, 결석도 한 번 하지 않고 열심히 학교를 다닌 것이며, 일요일에도 모래판에 연습하러 나갔던 일 같은 게.”
“그러게, 땡땡이도 좀 치고 그랬으면 덜 억울했을 텐데 말이야.” 

▲ 카페 버스정류장 곳곳에 낙서된 문장 중 하나. 
 
이렇게 전화로 이야기를 나눈 것이 불과 열흘 쯤 지났는데 오늘 이렇게 제주도의 바람 속에 서 있는 그의 모습을 보게 된 것이다. 그 날 태섭의 목소리는 열에 들떠 있었다.
 
“선생님이 그랬잖아요. 하고 싶은 건 해 보라고. 그래서 저, 이 일 그만둘까 해요.”
“하고 싶은 게 뭔데.”
“여행이요. 한 번도 여행을 못 갔어요.”
“어디를 여행하고 싶어?”
“어디든요. 외국 여행도 하고 싶고....... 그렇지만 먼저 제주도를 가볼래요.”
 
그는 ‘선생님처럼 귀농을 하려고 돈을 모으는 중이었다’ 고 했다. 그런데 이렇게 살다간 나중에 또 후회만 남을 것 같아서 지금 하고 싶은 걸 한 다음에 다시 생각해 보겠다는 것이었다.
 
“그래, 그래라. 지금 하고 있는 일은 그만두어도 언제든 다시 할 수 있는 일이니까 아무런 문제가 없잖아.”
 
며칠 후, 그는 비행기 티켓을 끊어 두었다며 떠나기 전에 시간을 내어 선생님의 카페에 가보고 싶다, 했고 나는 기다리겠다고 했다. 그리고 잊고 있었는데 이렇게 사진으로 만나게 된 것이었다.
 
나는 카페 곳곳에 낙서되어 있는 문장들 중 하나를 사진으로 찍어 그에게 전송하였다.
 
‘행동은 절망의 해독제다.’ - 존 바에즈   ▣ 박계해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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