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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르타뉴에서 보낸 편지] 겨울, 프랑스의 명절이 된 종교축일들   
  
‘교육일기’와 ‘하늘을 나는 교실’의 필자 정인진 님이 프랑스의 서북부 브르타뉴 지방에서 머물면서 보고 느낀 것들을 기록한 ‘브르타뉴에서 보낸 편지’가 연재됩니다. www.ildaro.com 
 
1월은 ‘걀레트 데 루와’의 달
 

프랑스의 1월은 ‘걀레트 데 루와’(galette des rois. ‘왕의 파이’라는 뜻)로 시작한다. 이것은 주현절(1월 6일. ‘주님이 나타난 날’이라는 뜻)과 관련된 풍습인데, 서구 기독교에서 주현절은 예수 탄생을 축하하며 동방박사들이 아기예수를 경배하러 온 날로 삼고 있다. 이를 기념해 프랑스 사람들은 ‘걀레트 데 루와’라고 불리는 파이를 먹는데, 이 풍습은 1월 내내 전국적으로 이어진다. 

▲ '걀레트 데 루와' 한 조각과 왕관, 이 조각 속에 페브가 들어있다면 왕관을 쓰게 될 것이다.  © 정인진

 

이 파이는 후식으로, 가족이나 친구들이 둘러앉아 사과주를 곁들여 먹는 것이 특징이다. 걀레트 데 루와는 지역과 문화에 따라 형태도 다양하고 재료도 다양하다. 흔히 슈퍼에서 살 수 있는 건 버터와 설탕이 엄청 들어간 페스츄리 밀가루 반죽 속에 아몬드 크림이 담겨 있다. 그러나 옛날부터 집에서 만들어 먹었던 걀레트 데 루아는 아몬드 크림만 쓴 건 아니었고 과일이나 크림, 초콜렛 등 다양한 재료들로 파이 속을 채웠다고 한다.
 
내 생각에 걀레트 데 루와의 가장 큰 즐거움은 역시 ‘페브(feve) 뽑기’가 아닌가 싶다. 파이를 조각 내, 각자 원하는 조각을 고른다. 조각 속에 ‘페브’라고 부르는 손톱만한 사기인형을 뽑은 사람이 그날의 ‘루와’, 즉 ‘왕’이 되는 놀이이다. 왕으로 뽑힌 사람은 파이와 함께 포장 속에 들어있는 황금빛 종이왕관을 쓰는 행운도 누린다. 옛날에는 집집마다 이 왕관을 직접 만들기도 했고, 또 어떤 집은 장인이 만든 왕관을 갖고 있기도 했단다. 그러다가 20세기 후반, 제과점에서 일회용 종이왕관이 담긴 걀레트를 팔기 시작하면서부터 ‘걀레트 데 루와’는 지금처럼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두었게 되었다.
 
페브 역시, 옛날에는 지난 해 썼던 것을 다시 사용하는 식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판매되는 걀레트 속 다양하고 재미있는 페브들이 사람들을 부른다. 이것들은 인기 캐릭터일 때도 있고, 시리즈를 이루기도 한다. 예전에 월드컵이 프랑스에서 열렸을 때는 프랑스 축구팀 멤버들이 페브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페브라는 단어에는 ‘콩’의 의미도 담겨 있는데, 혹시 가난한 서민들은 걀레트 속에 콩을 넣었던 건 아닐까? 아니면, 걀레트 속에 넣는 인형이 콩알만해서 페브라 이름붙인 걸까? 이런 의문은 그저 외국인인 나 혼자 갖는 물음일뿐이고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다. 아무튼 요즘은 골동품 상점에 한가득 쌓여있는 페브들이, 프랑스 사람들이 얼마나 이 파이를 좋아하는지 알려준다.

 

▲  프랑스의 골동품 시장에 가보면, 쓰고 난 페브(feve)가 늘 이렇게 가득 쌓여있다.   © 정인진 
 
나도 유학 시절 매년 1월이 되면 기숙사 친구들과 질리도록 이 파이를 먹었다. 그날 왕으로 뽑힌 사람이 다음날 다시 걀레트 데 루와를 사오는 식으로, 1월 내내 이 파이를 먹곤 했다. 저녁마다 친구들과 걀레트 데 루와를 갈라먹으며 왁자하니 떠드는 사이, 어느새 1월이 훌쩍 지나있었다.
 
뭐니뭐니 해도 크리스마스!
 
프랑스에서 종교축일로 가장 중요한 날은 누가 뭐래도 크리스마스가 으뜸일 것이다. 12월로 접어들면 이곳 사람들은 크리스마스 준비로 매우 분주하다. 도시마다 화려한 등불로 거리를 장식하고 시청 앞에는 대형 크리스마스 트리가 세워진다. 또 시의 가장 큰 광장에는 크리스마스를 맞아 놀이동산이 펼쳐지기도 하고 크리스마스 장이 서는 곳도 있다.
 
각 가정에서도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며 다양한 행사를 연다. 집집마다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들고, 아이들은 크리스마스까지 하루하루 날짜를 넘기는 귀여운 캐릭터가 그려진 달력을 받는다. 또 집안에선 ‘크레슈’(creche)라고 불리는 예수탄생 장면을 형상화한 인형들로 꾸민 미니어쳐를 만든다. 꼭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보통 크레슈에는 마리아와 요셉, 목동, 동방박사들, 소, 당나귀, 양 등 예수가 탄생할 때 주변에 있었을 만한 사람과 동물들이 등장한다.
 
재밌는 것은 아기예수가 누워있었을 구유가 비워진 채 크리스마스 전날까지 있다가, 크리스마스가 되면 그 구유에 아기예수 인형을 놓는다는 것이다. 프랑스에서 유학생활을 시작했던 첫 해, 세들어 살던 집 할머니가 꾸민 크레슈에 아기예수가 없는 것에 놀라 ‘왜, 예수가 없느냐?’ 물었더니, 할머니가 해주신 대답이었다. 할머니 말씀대로 크레슈에 아기예수가 놓인 것은 크리스마스가 지나서였다.

 

 

▲ 거대한 크리스마스 트리와, 크리스마스를 기념하여 열린 시장 풍경(2012년 스트라스브르)  © 정인진 

 
성당을 열심히 다니는 사람들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나 프랑스에서 크리스마스는 가장 큰 명절임에 틀림없다. 전국민이 부모를 만나기 위해 이동하는 때가 바로 이때다. 프랑스에선 크리스마스에 부모님댁에서 가족들이 모인다. 크리스마스 이브 저녁식사에는 모두 성장을 하고, 그동안 잘 쓰지 않았던 고급 접시와 은식기들로 꾸며진 식탁에 둘러 앉는다.
 
이때, 전체요리로 ‘거위간’(foie gras)을 즐겨 먹는다. 거위간은 값도 엄청나게 비싸지만, 거위를 잔인하게 학대해서 생산하는 만큼 의식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문제 제기되고 있는 음식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거위간은 크리스마스 메뉴로 인기가 높은 것 같다. 주요리로는 닭이나 칠면조 같은 가금류(volaille)가 대표적이고, 연어나 굴, ‘부댕’(boudin)이라고 불리는 순대 같은 것들도 크리스마스 음식으로 인기가 높다. 후식은 쵸콜렛을 씌워 장작을 꼭 닮게 만든 장작케잌(buche)을 먹는다. 이 장작케잌은 동화의 소재로도 등장할만큼 크리스마스에 먹는 음식으로 유명하다.
 
개인적으로 크리스마스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은, 크리스마스 자정 미사 후에 먹는 핫쵸코와 브리오슈(brioche)가 아닌가 싶다. 신앙심 깊은 미리암 가족들과 살 때, 크리스마스 자정 미사에 초대받은 적이 있다. 밤 늦게 미사를 마치고 미리암의 가족들과 성당의 담임 신부와 보조 신부까지 그녀 부모님 댁에 모여 따끈한 핫쵸코와 브리오슈로 다과회를 가졌다. ‘깊은 밤에 왠 핫쵸코? 게다가 브리오슈는 좀!’ 이렇게 생각하며 시큰둥하게 받아들었는데, 생각보다 새벽 브리오슈와 핫쵸코는 잘 어울리는 맛난 간식이었다.
 
카니발의 절정 ‘마르디 그라’ 축제
 
프랑스에서 주현절은 바로 카니발(carnaval)로 이어진다. 보통 카니발은 주현절인 1월 6일부터 사순절 전날인 화요일까지를 말하는데, 이 축제의 마지막 날이 바로 ‘마르디 그라’(Mardi gras)이다. ‘마르디 그라’는 프랑스에는 2월 말이나 3월 초가 된다. 카니발은 기독교에서는 사순절과 연결된다. 이 기간은 부활절 40일 전 ‘재의 수요일’부터 ‘성토요일’까지로, 예수가 광야에서 40일 동안 금식을 하며 사탄과 싸운 기간을 기념하는 행사이다.
 
서기 4세기 경부터는 사십일의 사순절 동안 엄격한 금식이 행해져 왔다. 특히, 사순절에는 고기나 생선 같은 기름진 음식을 철저하게 금한다. 카니발은 ‘사육제’라고 번역되는데, 사순절을 앞두고 며칠 동안 축제를 벌이며, 영양을 비축하기 위해 가축들을 잡아먹었던 것에서 유래한다. 카니발의 마지막 날은 ‘재의 수요일’ 바로 전날인 화요일로, 불어로는 ‘마르디 그라’라 불리운다. ‘화요일’을 뜻하는 ‘마르디’와 ‘기름진’을 뜻하는 ‘그라’로, 기름진 음식을 마지막으로 먹을 수 있는 날인 것이다.
 
물론, 오늘날은 이런 금식은 하지 않는다. 그래도 전통이 남아, 프랑스 각지에서는 카니발 기간에는 갖가지 문화 행사와 가장 행렬이 펼쳐진다. 옛날에는 어땠는지 모르지만, 오늘날 ‘마르디 그라’에는 도너츠와 와플, 크래프 등과 같은 달콤하고 고소한 먹을 거리들을 즐긴다.
 
예전에 살았던 북부 프랑스의 릴 근처에 ‘덩케르크’(Dunkerque)라는 도시가 있다. 그곳은 카니발 기간만 되면, 동네마다 돌아가면서 축제가 열려 프랑스에서도 카니발로 명성이 자자한 곳이다. 유학시절에 카니발을 구경하기 위해 덩케르크에 간 적이 있다. 그러나 당시 내가 입수한 정보는 덩케르그 시에서 열리는 축제가 아니라 근처의 작은 마을 축제라는 걸 도착해서야 알았다.
 
애써서 이곳까지 왔는데 그냥 갈 수 없어서, 춥고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나쁜 날씨를 무릅쓰고 다시 버스를 타고 그 작은 마을로 갔다. 기대한 것보다 형편없이 초라한 가장 행렬 규모 때문에 여간 실망스러운 게 아니었다. 행렬에 끼어 나도 함께 걸었다. 시청에서는 행렬을 향해 ‘훈제 청어’를 던져주기도 했다. 유쾌한 분위기를 위안 삼아 즐거운 구경거리였다고 생각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에 몸을 실었는데, 등에 맨 배낭 뚜껑은 열려 있고 지갑이 없었다. 이런 기억 때문에 카니발에 대한 인상이 좋을리 없었고, 덩케르크의 대단하다는 카니발에는 더 이상 가려고 시도하지도 않았다.
 

 

▲ 렌의 ‘마르디 그라’(Mardi gras) 기념 가장 행렬 (2012년)    © 정인진 

 
그런데 렌에서 맞은 첫 2월, 카니발의 절정인 ‘마르디 그라’ 행사가 펼쳐진다는 소식을 듣고 시큰둥해하는 친구까지 꼬득여 구경을 갔다. 북불에서 진정한(?) 카니발을 보지 못했던 차에, ‘렌에서 드디어 멋진 카니발을 경험하겠구나’ 생각하며 그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러나 막상 시내에서 만난 카니발 가장 행렬은 초라하기 이를 데 없었다.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변장한 한 무리가 북과 피리를 연주하며 지나갔을 뿐이었다. 채 50여 명이나 될까 말까한 인파 속에는 자녀들을 귀엽게 변장시켜 데리고 나온 어른들이 몇몇 눈에 띄었는데, 어린이들에게나 즐거운 축제가 될 것 같았다. 나는 이 어린이들을 보는 것이 그나마 즐거워, 허락을 얻어 사진을 몇 장 찍었다. 행렬 속 사람들 역시 관광객처럼 보이는 동양인들이 구경나온 것이 반가운 듯, 오픈 카에 탄 여왕은 우리를 향해 색종이 가루를 던졌다.
 
그날 ‘마르디 그라’ 축제는 한국이나 프랑스나 전통적인 축제가 얼마나 쇠락해가고 있는지, 다시 한번 확인하는 기회였다.
 
프랑스에서는 이렇게 ‘마르디 그라’까지 끝나면, 곧 부활절이 온다. 완전히 겨울이 끝난 것이다. 전통적으로 농사를 지으며 살아온 프랑스인들에게 이 세 종교축일은 어쩜 농한기인 겨울을 즐겁게 보내는 방식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겨우내 흥겨운 시간을 보내고, 놀이를 마치고 농사를 시작하면 부활절이 온다. 만물이 다시 살아나는 진정한 부활, 그렇게 오는 봄을 맞이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 정인진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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