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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르타뉴에서 보낸 편지> 24. 아마와 대마, 직물산업 이야기 
 
‘교육일기’와 ‘하늘을 나는 교실’의 필자 정인진 님이 프랑스의 서북부 브르타뉴 지방에서 머물면서 보고 느낀 것들을 기록한 ‘브르타뉴에서 보낸 편지’가 연재됩니다. www.ildaro.com  
 
여성들의 땀이 깃든 브르타뉴 마직물 산업  
 
브르타뉴의 도시들을 방문할 때마다 공통적으로 거론되는 이야기 중 하나는 16~18세기에 직물 산업이 활짝 꽃피웠지만, 산업혁명 이후 기계화의 물결 속에서 하나같이 쇠락의 길을 걸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브르타뉴 전역에 직물 산업이 호황을 이룬 시기가 있었다.

▲ 아마(lin) 줄기, 가장 먼저 밑에 있는 얼개빗으로 줄기 끝에 달린 꼬투리들을 털어낸다. © 정인진  
 
브르타뉴에서 성업한 직물 산업은 마직물 산업이었다. 아마(lin)와 대마(chanvre)를 재배하고 이것들을 가지고 천을 짰다. 그리고 생산된 섬유를 교역하는 상인들로 도시들은 큰 부를 이루었다. 브르타뉴에서는 근해의 비옥한 토지와 내륙의 척박한 땅, 도시와 항구 가릴 것 없이 섬유 생산과 관련된 다양한 공정을 담당하는 조직들이 형성되어 있었다.
 
당시 브르타뉴의 섬유 산업은 유럽에서도 최고 수준이었으며, 품질 면에서 매우 높은 평가를 받았다. 브르타뉴의 직조기술을 배우러 플랑드르의 노동자들까지 왔다고 한다. 이 마직물은 영국, 네델란드, 스페인과 같은 유럽뿐 아니라 아메리카 대륙까지 수출되었으며, 옷감, 침대보, 배의 돛, 곡물자루 등으로 널리 쓰였다. 당시 브르타뉴에서 생산된 직물은 모두 손으로 직접 짠 것이었다.
 
파종에서 직물 생산까지, 고되고 섬세한 공정
 
이 중에서도 아마는 브르타뉴 전역에 걸쳐 폭넓게 재배되었다. 고고학자들에 의해 발견된 가장 오래된 옷감은 아마로 짠 것으로, 기원전 3만 6천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인도 북부가 원산지인 아마는 1년생 식물로, 브르타뉴에서는 3~4월에 씨를 뿌려 7월에 수확했다. 브르타뉴의 온화한 기후와 높은 강수량, 북부 해안의 진흙 땅은 아마 생산에 매우 적합했다.
 
아마씨를 파종할 때는 약 1미터 간격으로 씨가 땅 깊숙이 잘 자리잡도록 힘껏 뿌린다. 새들이 특히 좋아해, 힘껏 뿌린 뒤에도 쇠스랑으로 한두 차례 흙을 덮어주어야 한다. 파종한 뒤, 아마가 4~5cm 자랐을 때는 잡초 뽑기가 뒤따랐다. 이 일은 무릎을 꿇고 하는 매우 고된 작업이었고, 주로 여성들이 맡았다.
 
아마는 1m~1.2m 길이로 자란다. 한 뿌리에 호리호리하고 얇은 잎을 가진 줄기들이 여러 개 뻗어 있다. 그 끝에 다섯 장 꽃잎을 가진 푸른색 꽃이 피는데, 채 몇 시간 안되어 시든다고 한다. 열매는 타원형 캡슐 형태로 10알 정도 맺힌다. 꼬투리에 꽃이 피는 7월이 수확기이다. 아마는 섬유질이 손상되지 않으면서도 최대한 길게 수확하기 위해 손으로 직접 뽑았다.

▲ 펙틴이 제거된 아마 줄기에서 섬유질을 분리하는 과정. 모를래의 La Maison a pondalez 전시. 
 
이렇게 뽑은 아마가 직물이 되기 위해서, 아마의 섬유질은 여러 차례 변형을 거쳐야 한다. 먼저 꼬투리들을 제거한 아마 줄기들을 흐르는 물에 담가놓는, ‘침적’(rouissage) 과정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아마를 물구덩이나 벽돌로 물길을 낸 곳에 담가놓았는데, 이것은 섬유질을 연결하고 있는 펙틴을 녹이기 위해서였다. 침적 과정을 거친 아마는 여러 줄기를 쥐고, 손잡이가 달린 작업대에서 섬유질을 분리해 내는 공정을 거쳤다. 분리된 섬유질은 빗으로 잘 빗긴다.
 
이것이 끝이 아니다. 이 섬유질을 가지고 실을 만들어야 한다. 이 작업 역시 여성의 일로 널리 퍼져 있었다. 브르타뉴에서는 시골 도시 가리지 않고 많은 여성들이 실 잣는 일을 했다. 실 잣는 솜씨에 따라 섬유질의 꼬기와 늘림이 실의 굵기를 결정했다. 여성들의 손을 거쳐 잘 빗겨진 섬유질은 무거운 실 꾸러미로 재탄생 했다. 이를 위해 춥고 비 오는 계절 동안 여성들은 오랜 시간 물레 앞에 앉아있어야 했다.
 
이렇게 생산된 아마 실을 희게 하기 위해서는 탄닌이 없는 너도밤나무(hetre) 재를 사용해 수 차례 세탁을 거쳤다. 나무나 돌로 된 원형의 큰 통에 재가 든 주머니와 실 꾸러미를 교대로 쌓고, 거기에 뜨거운 물을 붓는다. 이 과정을 반복하면서 아마 실을 세탁했는데, 실이 희면 흴수록 좋은 값을 받을 수 있었다.
 
두꺼운 실은 밧줄로 만들어졌고, 그보다 얇은 실은 베틀을 거쳐 천으로 짜졌다. 브르타뉴에서는 직조 역시 도시나 시골 어디에서나 행해졌다. 19세기까지 브르타뉴의 직조 산업은 모두 수공예 산업이었다. 손으로 120미터의 천을 짜기 위해서는 한 달의 시간이 걸렸다. 이렇게 생산된 아마천들은 품질에 따라 분류되어 짐으로 꾸려져 옮겨졌다.
 
한편, 대마는 감자를 담는 자루나 배의 돛으로 만들어졌다. 대마는 거친 재질에도 불구하고 매우 유용하게 쓰였다. 특히, 양모를 약간 섞으면 질기고 따뜻한 셔츠를 만들기에 아주 좋았다고 한다.
 
‘밤에 빨래하는 여인들’에 관한 전설
 
과거 마직물 산업은 브르타뉴의 문화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오늘날도 그 문화유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그 한 예가 바로 빨래터다. 피니스테르(Finistere) 지역에는 ‘캉디’(kanndi: 빨래하는 집)라 불리는 빨래터들이 존재한다. 코트다르모르(Cotes d’Armor) 지역에도 침적 과정에 사용되었던 연못 형태의 빨래터가 곳곳에 있다. 또 일에빌렌느(Ille-et-Vilaine) 지역엔 대마를 손질하는데 필요한 화덕(four)들이 산재해있다고 한다. 도시마다 문화유적으로 정해져 잘 보존되고 있다.

▲ 게므네-쉬르-스코르프의 한 빨래터. 침적 과정에 사용된 연못 형태 빨래터로 추정된다.  
 
이런 곳에는 어김없이 전설이 깃들어 있고, 과거 빨래터에서 일했던 여성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설화들로 가득하다. 특히 브르타뉴 전역에 전해오는 ‘밤에 빨래하는 여인들’(Les lavandieres de nuit)에 대한 이야기는 매우 유명하다. 그녀들은 밤에 빨래터나 연못에서 빨래를 하는 귀신들이다. 보통사람보다 키가 크고 힘이 세며, 그 지방의 복장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들이 ‘밤에 빨래하는 여인’이 된 것은 더러운 수의를 입힌 채 매장되었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생전에 비누를 아끼기 위해 주문 받은 사람들의 옷감을 돌로 치대어 망가뜨렸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또 빨래터에서 너무 수다를 떨어 영원히 빨래하는 형벌을 받게 되었다고 하기도 한다.
 
정확한 이유는 알 길이 없지만, 중요한 건 그녀들은 ‘죽음을 예고하는 자들’이라는 것이다. 밤에 그녀들이 잘 다니는 길목을 지나는 것은 매우 위험하며, 특히 이들은 빨래터 근처에 남자가 지나갈 때면, 짜는 것을 도와달라고 젖은 침대보를 내민다고 한다. 이때 반대 방향으로 짜주면, 빨래감은 물론 이 남자들의 몸까지 뒤틀려 온몸이 배배 꼬이고 사지가 부러진 채 다음날 시체로 발견된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혹시 ‘밤에 빨래하는 여인’의 요청을 받게 된다면, 꼭 같은 방향으로 돌려 물이 짜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계속 같은 방향으로 짜다가 빨래하는 여인이 지치면, 재빨리 도망치는 것만이 살아남는 길이라고 권하고 있다.
 
빨래터와 함께 ‘앙클로 파루와시알’(enclos paroissial)이라고 불리는 브르타뉴식 성당은 마직물 산업과 깊은 연관이 있다. ‘앙클로 파루와시알’은 울타리로 둘러싸인 화려한 가톨릭 교회 영지로, 그 안에는 성당과 묘지, 커다란 십자가가 세워져 있다. 브르타뉴의 마직물 산업의 이익은 교회에까지 혜택이 돌아갔다. 즉 부자나 서민 가릴 것 없이 바친 헌금으로 교회 안의 재단은 성화들과 값비싼 장식품들로 채워졌고, 교회 건물은 화려한 종탑과 조각들로 꾸며졌다.
 
새롭게 조명되고 계승되는 마직물 산업
 
그러다가 17세기부터 프랑스가 유럽 다른 국가들과 대립하면서, 유럽과 미국의 상인들의 발길이 끊기게 된다. 이렇게 파국이 시작되었다. 프랑스 내에서는 어업에 종사하는 배들이 증기 기관으로 대치되면서, 19세기에 들어 돛의 수요량이 절반으로 줄었다. 게다가 영국의 산업혁명 이후, 섬유산업이 기계화되면서 브르타뉴의 섬유 수공업은 완전히 망하게 된다.
 
18세기에 2만 5천명에 이르렀던, 손으로 옷감 짜는 기술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은 현재 몇몇 장인들을 제외하고 모두 사라졌다.
 
그러나 오늘날 이런 수작업이 별 유용성이 없다 하더라도 전통을 계승할 가치가 있다는 데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에 의해 ‘베길: 브르타뉴의 아마와 대마’(Route des toiles: Lin& Chanvre en Bretagne, www.linchanvrebretagne.org)라는 프로젝트가 전개되고 있다. 여기서는 아마를 수확하는 것에서부터 과거 방식의 직물 짜기까지 직접 체험할 수 있고, 직물 산업과 관련된 유적지도 탐방할 수 있다. 또 아마, 대마 산업이 오늘날에는 어떻게 변모해 가고 있는지도 배울 수 있다.
 
현재 브르타뉴에서는 해마다 2천 핵타르의 아마와 2백 핵타르의 대마가 생산된다고 한다. 이들은 땅의 힘을 기르기 위해 7~8년 단위로 윤작을 할 때 활용되고 있으며, 여전히 섬유나 밧줄로 만들어지고 있다. 특히 아마씨는 식용류나 빵의 잡곡으로도 인기가 높다. 또 미용이나 친환경 건축재료로도 이용되고 있다.  ▣ 정인진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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