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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들하십니까”조차 허락되지 않는 사람들
*너울_ <꽃을 던지고 싶다> 저자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지난 18일 한 장의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로 페이스북과 트위터에는 소란이 일어났다.
“성매매하러 온 한 남성이 자신도 ‘안녕들’ 자보를 썼다며 자랑스럽게 얘기를 했는데 제대로 호응하지 않아 주먹질을 당했다. 돈을 냈으니 무엇이든 해도 된다는 논리에, 구타당하고 욕먹은 나는 괜찮지 않다. (중략) 낙태를 하고도 돈을 벌기 위해 오늘도 성매매를 하러 간다. 더 이상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 나는 안녕하지 못하다. 나도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이 대자보에는 수천 개의 댓글이 달렸고, 어떤 이는 대자보 조작설을 제기하면서 “안녕들하십니까” 운동을 폄하하기 위한 조작이라고 대자보를 내릴 것을 요구하기도 하였다. 또 누군가는 돈을 받고 불법을 저지르는 여성이니까 구매자의 폭력은 참아야 한다고 했고, 폭력을 당했을 때 왜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냐며 이해할 수 없다는 태도를 보이기도 하였다.
대자보의 주인공 여성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어보았다.
그녀는 대자보를 쓰게 된 이유에 대해, 자신은 5년간 성판매를 하고 있지만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시민으로, 학생으로, 여러 가지 사회 현안에 목소리를 내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이마트의 불법 노조 사찰 사건이 터지고 이마트 불매운동이 번지던 시기에 이마트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기도 했었지만, 사람들이 자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주었던 적이 없다고 한다.
그러다가 고려대 학생의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에 사람들이 호응하고 그 메시지를 들어주는 것을 보고서, 자신도 글을 써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단다. 고려대 학생에게 보여준 사람들의 호응을 자신에게도 보여줄지 궁금했다고 한다.
아마도 자신의 목소리에 침묵하는 사람들의 반응을 보며, 그녀는 ‘말을 해야 하는 사람은 따로 있는가?’ 라는 질문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그녀의 바람처럼 사람들은 성판매 여성의 목소리에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그 반응은 부정적이거나, 부정적인 반응들에 대응하는 형식이었다. 사람들의 반응을 예상했느냐는 질문에, 그녀는 이렇게까지 논란이 될지 몰랐다고 웃음을 보였다. 그 댓글들을 직접 보았던 나는, 그런 논란 속에서 혹시 상처받지 않았는지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그녀는 폭력에 익숙한 삶을 살고 있기 때문에 그런 말에는 상처를 받지 않았지만, 자신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고 성노동자는 “안녕들하십니까”를 폄하하는 존재로, 말을 해서는 안 되는 존재로 취급받는 것이 서운하다고 했다.
성판매 여성을 향한 세상의 시선에 대해 그녀는 말을 이어갔다. 성노동을 한다고 하면 사람들은 왜 하게 되었는지 물어본다고 한다. 마치 영화 속 비련의 여주인공같은 사연들을 기대하는 것 같다고.
물론 사람들은 저마다 사연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러나 어쩌다 청소노동자가 되었느냐, 어쩌다 선생님이 되었냐 하는 질문이 흔치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판매를 하는 여성들은 끊임없이 이러한 질문을 받는다. 당신은 어쩌다 성판매를 하게 되었냐고. 그녀는 이러한 질문 자체가 자신에겐 차별이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성노동자가 스스로를 성노동자로 칭하지 못할 만큼의 부끄러움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며, 말 못할 사연이 있어야만 이를 기준으로 자발적이냐 비자발적이냐를 판단하곤 한다. 그러나 자발이냐 비자발이냐를 떠나서, 현재 그 일을 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중요하다고 그녀는 말했다. 그리고 이 일을 하는 동안 안전하고 싶다는 바람이 있을 뿐이라고.
▲ 이번 논란을 거치며 그녀는 두번째 대자보를 거리에 붙였다. www.ildaro.com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에 호응하지 않았다고 폭력을 휘둘렀던 성구매 남성에 대해 물어보았다. 그녀는 성판매를 하다보면 폭력은 일상적인 일이 된다고 했다. 그리고 성판매가 불법인 상황에서, 폭력을 당했다고 경찰에 신고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했다.
무엇보다 이러한 사실을 대자보에 쓰게 된 것은, 진보라고 하는 남성들조차 여성주의 의식이 없다는 사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녀는 자신이 성노동자임을 밝히자, 자신이 함께 활동하는 진보적 조직에서조차 성폭력을 경험했다고 한다.
진보 진영에서조차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는 성폭력 사건은 이제 이슈화하기조차 민망할 정도로 빈번한 일이다. 그런데 그 흔한 일이 피해자에게는 마치 세상을 잃어버리는 것과 같은 경험이 되고 만다. 믿었던 동료, 자신이 가장 안전하다고 여겼던 활동 공간, 그리고 그 속의 관계들이 모두 어긋나 버리는 그 사건이다. 그녀는 그것을 말하고 싶었다고 했다. 성판매하는 자신도 이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그 날의 폭력은 다른 때의 폭력에 비하면, 자신이 경험하고 있는 폭력들에 비하면, 사소한 폭력에 해당했다며 애써 웃어넘겼다.
그녀는 성판매를 할 때 콘돔을 써야 한다는 사실을 알지만, 그에 응하는 구매남성을 만나는 일은 쉽지 않다고 했다. 애교를 부리고 협상을 해보아도, 결국 그녀는 구매남의 처분을 기다려야 하는 입장이다. 사후피임약을 처방받기 전에 산부인과에 가게 되면 모멸감이 밀려온다고 한다. 오픈된 공간에서 “사후피임약 처방받으러 오셨다고요?” 라는 말을 들으며 주위에서 쏟아지는 시선들을 받을 때, 그 시선들에 전혀 익숙해지지 않고 여전히 아프다고.
그녀는 이번 논란을 거치며 생각한 것들을 정리하여 거리에 다시 두 번째 대자보를 붙였다. 그녀의 두 번째 대자보는 어떤 반응을 불러올 것인지, 그 논란 속에서 그녀가 상처받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자신과는 다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 이야기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소통’이다. 불통인 사회에서 그녀가 전하고자 하는 말에 귀 기울이고 헤아리는 것이, 사회에서 배제된 사람들과 소통하는 법 아닐까? 성판매 여성도 대자보를 쓸 수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논란 자체가, 우리 사회가 무엇이 부족한 지를 보여주고 있다. 누군가의 목소리는 배제되어버리는 사회, 이러한 사회에서 과연 우리는 안녕할 수 있을 것인가? ▣ 너울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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