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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받은 식탁] 지적장애 김경남, 뇌성마비 장희영씨와 함께 
 
장애인과 함께 식당을 찾아가 식사하며 공평한 밥상에 대해 생각해보는 기획 “차별받은 식탁”이 4회 연재됩니다. 일다와 제휴 관계인 비마이너(beminor.com) 조은별 전 기자가 취재하였으며,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을 지원받아 작성되었습니다. www.ildaro.com

 

식당 앞의 문턱, 돈의 문턱에 걸리다

 

세상에 음식점은 참 많다. 돈만 있으면 한 끼에 10만 원이 넘는 비싼 밥도 먹을 수 있고, 짧은 시간에 싼 값에 대충 때울 수 있는 김밥전문점도 있다. 많고 많은 식당 중에서 휠체어를 타고 들어갈 수 있는, 계단이 없고 문턱이 없는 곳은 얼마나 될까? 그런데 때로 문턱이 없는 식당에는 음식값이 부담스러워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기도 한다.

 

중앙생활보장위원회가 정한 2010년 최저생계비에는 외식비가 포함되어 있다. 3개월에 한 번씩 금액은 1인 기준 8천880원, 4인 가구 기준 2만 4천원이다. 가장 흔히 접하는 외식의 대명사 삼겹살도 1인분에 1만 원이 넘는 시대인데, 네 명의 식구가 3개월에 한 번 2인분 조금 넘게 주문해야 하는 현실인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무슨 음식을 먹으며 외식을 즐길 수 있을까. 진정한 의미에서 문턱 없는 밥상. 모두에게 공평한 밥상은 어느 곳에 있을까?
 

▲ 노들장애인야학에서 출발해 전동 휠체어를 타고 한 쌀국수 식당으로 향하는 장희영씨와 조사랑 야학교사. 뒤에는 야학교사 한명희씨가 김경남씨와 양산을 쓰고 걷고 있다.     © 비마이너

 

지난 여름, 편의시설을 갖춘 맛집에서 식사를 하기로 하고 장희영씨와 김경남씨를 만났다. 희영씨는 뇌성마비장애인으로 전동휠체어를 탄다. 경남씨는 지적장애인이다. 두 사람은 한때 장애인시설에서 함께 생활했고, 자립생활도 함께 시작했다. 지금도 서울 길음동 근처의 한 임대아파트에서 함께 산다.

 

경남씨가 다니는 서울 종로구 동숭동에 있는 노들장애인야학에서 늦은 2시에 점심을 먹기로 했다. 희영씨와는 초면이라 노들장애인야학의 한명희, 조사랑 교사도 동행했다.

 

“예전에 장애인극단에서 활동하면서 회식한 적이 있었어. 쌀국수 식당이었는데, 한 번 더 먹고 싶어.”

 

만나자마자 희영씨가 음식을 정했다. 처음 취재의 목적을 설명했을 때부터 희영씨는 먹고 싶은 음식을 정해놓고 온 게 틀림없다. 우리는 그 쌀국수집으로 이동했다. 과연 희영씨가 말한 쌀국수집에는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을까?

 

동숭동, 일명 대학로 거리를 걸었다. 지나가면서 보이는 건물이나 식당들은 꼭 계단이 두세 칸 이상 있다. ‘옛날 건물이라서’라고 무심코 넘기던 것들이지만, ‘옛날에는 장애인이 없었나? 왜 불필요한 계단까지 만들었을까?’ 하고 되묻게 된다.

 

▲ 식당 정문은 턱이 있어서, 경사로가 놓인 후문으로 들어갔다.  © 비마이너 
 
10분여를 걸어 도착한 쌀국수 식당. 언뜻 보기에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정문 앞에 약 7cm가량의 턱이 자리 잡고 있었다.

 

“여기를 들어갈 수 있어요?”라고 묻자, 희영씨는 말없이 식당 입구 오른쪽으로 가더니 조그만 식당 후문을 찾아냈다. “여기에 경사로가 놓인 문이 있어.”

 

정문으로 당당하게 입장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지만, 그나마 들어갈 수 있는 곳을 찾은 건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식당에 들어선 순간, 휠체어가 들어가기엔 너무 조밀하게 놓여 있는 의자와 식탁을 보고 한숨이 절로 나왔다. 빈 의자를 대충 치우고 간신히 앉을 자리를 찾아서 점원에게 메뉴판과 마실 물을 받았다. 여기까지면 일단 오늘 식사의 절반은 성공이다.

 

“외식 한 번도 안하고, 하루 두 끼만 먹어”

 

메뉴판을 받아 든 희영씨는 차돌박이 쌀국수를 고른다. 이제 경남씨가 음식을 고를 차례다. 글을 읽지 못하는 경남씨를 위해 명희 교사가 “경남언니는 국수가 좋아, 밥이 좋아?”라고 메뉴 정하는 것을 거든다.

 

“국수면 국물 있는 국수가 좋아? 없는 국수가 좋아? 국물이 하얀 게 좋아 빨간 게 좋아?” 빨간 국수가 좋다는 경남씨. “경남언니 짬뽕 좋아하니까.” 이렇게 메뉴는 정해졌다.

 

이날 우리 네 사람이 주문한 음식 가격은 매콤한 해산물 쌀국수 1만 500원, 해산물 팟타이 1만 1천원, 쌀국수 4개와 전채요리, 월남쌈으로 구성된 패밀리 4인세트 5만 9천원 등 총 8만 500원이다.

 

식사가 나오자 모두 기분이 들떴다. 전에 쌀국수를 먹어본 적이 있는지 묻기도 하고, 양파를 먹었더니 코가 뻥 뚫린다며 재잘재잘 식사를 시작했다.

 

경남씨는 월남쌈을 처음 본 듯 멍하니 바라봤다. 주로 먹는 음식은 짬뽕과 낙지볶음밥이라는 경남씨는 야학에 매번 만 원을 들고 와 시켜먹는다고 했다.
 

▲ 식사하며 얘기 나누는 한명희, 조사랑 야학교사와 장희영씨.  © 비마이너 
 
희영씨와 경남씨의 한 달 식비는 각각 15만 원~20만 원 정도. 저녁을 밖에서 사 먹는 경남씨가 5만 원 정도 더 든다. 두 사람이 각각 받는 수급비 46만 원에 장애인연금 17만 원을 더한 63만원 가량이 개인의 생활비이다. 이 금액으로 집세도 나누어 내고, 밥값과 관리비 통신비 등을 내면 남는 것이 없을 것 같았는데, 두 사람은 놀랍게도 저축까지 하고 있었다.

 

희영씨는 정말 알뜰한 사람이었다. 아껴 쓰고 아껴 먹고 아껴 입고 무엇이든 아끼는 삶을 살았다.

 

“식비를 조금만 쓰면 가능한 일이야. 그 대신 외식을 한 번도 안 하고, 하루에 두 끼만 먹어. 옷도 시장에서 5천 원짜리 사 입고. 사실 이렇게 사는 것은 힘들지. 수급비가 80만 원 정도로 올라서 장애인연금까지 합해 한 달에 100만 원 정도 받았으면 좋겠어.”

 

명희 교사가 놀란 표정으로 “식비 15만원의 비밀은 외식을 절대 하지 않는 거구나!”라고 했고, 모두 씁쓸한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사 먹을 걸 집에서 만들어 먹으면 훨씬 싸니까.”라고 희영씨는 담담하게 대답한다.

 

경남씨의 돈도 희영씨가 관리해준다. 지적장애가 있는 경남씨가 직접 돈을 관리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르기 때문이다. 남의 돈을 관리하는 것인 만큼, 희영씨는 정말 깨끗하게 관리하려 노력한다고.

 

“내가 하는 거랑 똑같이 해. 내가 5만 원 저축하면 경남이도 5만 원 하고. 내가 옷 한 벌 사면 경남이도 옷 한 벌 사는 식으로.”

 

경남씨에게 무슨 음식을 가장 좋아하느냐고 묻자 “설렁탕”이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경남씨가 설렁탕을 사 먹을 수 있는 날은 얼마 되지 않는다. 아껴야 살 수 있으니까.

 

내 인생 ‘최악의 식탁’은 시설에서 나온 계란찜

 

“경남언니. 뜨거운 물에 이 동그란 종이를 살짝 담갔다가 꺼내서 고기랑 채소랑 넣고 돌돌 말아 싸 먹으면 돼. 방법이 너무 복잡하지?”

 

여러 번 설명해도 이해하지 못하는 경남씨에게 조사랑 교사가 대신 월남쌈을 싸줬다. 상추쌈을 먹듯이 싸면 된다고 설명했지만, 처음 보는 음식을 먹는 것은 경남씨에게 낯설고 어려운 일이다.

 

밥을 먹으며 그동안 살면서 먹은 ‘최악의 식탁’에 관한 얘기가 나왔다. 희영씨는 시설에 있었을 때 나온 계란찜이 자신이 먹었던 최악의 식탁이라고 했다.

 

“계란찜이 딱 한 숟가락 나왔어. 누구를 놀리는 것도 아니고, 물론 바빠서 대충 퍼주다 보니까 그럴 수도 있지만…. 김치도 썩어서 못 먹게 생긴 걸 먹이고. 아무튼 시설에서의 식사가 정말 최악이었어.”

 

어떻게 밥을 먹는지, 어디서 먹는지, 무엇을 먹는지는 중요하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생활인 의식주 중 하나인 ‘식’이 때에 따라서는 최악의 식탁으로 삶을 괴롭히기도 한다. 아마 그 계란찜은 영원히 희영씨를 따라다니는 최악의 식탁이지 않을까.
 

▲ 뇌성마비 장애가 있는 장희영씨와 지적장애를 가진 김경남씨.  두 사람은 한때 장애인시설에서 함께 생활했고, 자립생활도 함께 시작했다.  지금도 서울 길음동 근처의 한 임대아파트에서 함께 산다.   ©비마이너 

 

식사를 마치고 오늘의 외식이 어땠는지, 외식 장소로 선택한 이 쌀국수 식당에 얼마의 점수를 매기겠는지 물었다.

 

희영씨는 별 5개 만점에 4개를 줬다. 입구의 문턱이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 자체가 만족스럽다고.

 

“오늘은 뱃속이 놀랄 것 같아. 너무 잘 먹어서. 그런데 내 돈 주고는 못 사 먹을 것 같아. 외식하기엔 돈이 없으니까.”

 

경남씨는 별점을 매기는 대신에 내 몫의 쌀국수까지 먹는 것으로 답했다. 식당의 평가가 나쁘지 않다. 절반의 식사도 성공이다.

 

식사가 끝나고 나오는 길에 외식은 절대 하지 않는다는 희영씨가 웃으면서 말했다.

 

“혹시 수급비 외에 돈이 생기면 쌀국수 먹으러 한 번 더 와야겠어. 쌀국수를 이렇게 좋아하니, 베트남이라도 갔다 와야 할까?”  ▣ 조은별 (비마이너)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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