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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족성폭력 피해자의 치유를 돕는 길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친족성폭력’ 이야기> 마지막 회 
 
※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기관 ‘열림터’(성폭력피해자 쉼터) 활동가들이 ‘친족성폭력’ 생존자들과 만나온 경험을 토대로, 사회가 친족성폭력을 어떻게 바라보고 생존자의 삶을 이해하며 범죄를 예방해가야 할지 모색해보는 연재가 8회로 마무리되었습니다. www.ildaro.com 
 
친족성폭력 생존자는 낯설고 이상한 사람이 아니다
 
<열림터>는 2009년 SH공사로부터 공동생활가정을 무상으로 임대받아 이사를 준비했다. 그러나 새로 입주할 동네의 주민들에게 <열림터>의 이사 소식이 알려지며, 성폭력쉼터가 혐오시설로 인식되어 주민들이 수차례 구청에 민원을 제기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그 해는 사회적으로 공분을 일으킨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고, 아동성폭력의 심각성에 대한 전 국민적 공감대가 확산되던 시기였다. 그러나 성폭력생존자들이 거주하는 쉼터는 이웃들에게 ‘혐오시설’로 여겨졌던 것이다.
 
결국 쉼터의 위치가 공개되어, <열림터>는 이사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쾌적하고 편안한 환경을 기대하던 생활인들의 심리적 스트레스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성폭력이 ‘나와 내 주변에서도 발생할 수 있는 일’로 다가오지 않는 사회에서, 성폭력생존자는 낯설고 이상한 사람들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열림터>는 사람들이 모르는 “친족성폭력 이야기” 연재를 통해, 친족성폭력 실태를 알리고 왜곡된 정보와 인식을 전환하며, 친족성폭력을 예방하고 생존자를 지원하는데 필요한 개선책을 모색하고자 했다. 성폭력이 국민안전을 위해하는 4대악으로 규정되고 사회 이슈가 되면서 정책적인 개선이 이루어지고 생존자 지원제도 등에도 변화가 생겼지만, 친족성폭력과 생존자에 대한 인식의 변화 수준은 여전히 아쉬운 부분이다.
 
피해가 지속되고 은폐되는 특수한 정황들
 
친족성폭력 피해는 대부분 어린 시절부터 시작되어 청소년기나 성인기까지 지속된다. 그중 한 번 이상의 지속적인 피해를 입은 경우가 절반이 넘고, 이 경우 횟수를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많은 피해를 입은 사람이 대다수이다. 어린 나이에 겪는 친족성폭력은 그것을 폭력이라고 인지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기도 한다. 가해자들은 가족이나 친인척이라는 관계에서 오는 높은 신뢰와 친밀감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피해를 인식하고 난 후 생존자들이 느끼는 무력감은 더욱 커져서, 지속적인 피해에 노출될 위험이 높다.
 
피해 사실이 바깥으로 알려지기 어렵다는 점도, 피해를 지속시키는 원인이다. 다른 가족이 바로 아는 경우가 드물고, 알게 되더라도 가족 간의 비밀로 하려는 경향이 있다. 아빠나 오빠처럼 친밀한 관계의 사람을 ‘성폭력가해자’라고 이야기한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고, 자신으로 인해 가족 관계가 깨어지는 것이 두려워, 혼자서 참고 사는 것을 택하는 경우도 많다.
 
가해자는 뚜렷한 증거가 남기 어려운 성폭력의 특성을 악용하여, 피해 사실을 용기 있게 말한 생존자를 거짓말쟁이로 몰아가거나, 오히려 피해자의 행실을 탓하며 비난하기도 하는데, 주변의 이러한 반응이 생존자에게는 2차 피해를 발생시킨다.
 
친족성폭력이 발생하는 상황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면 ‘정말 성폭력인지 몰랐는지’, ‘알았는데 왜 일찍 얘기하지 못했는지’ 또는 ‘같이 즐긴 것은 아닌지’ 등에 대한 의문을 갖게 된다. 이러한 생각들이 가해자가 아닌 생존자에게 성폭력의 책임을 지우게 된다.
 
십대 피해자가 학습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성폭력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7조에는 성폭력피해자가 주소를 옮기지 않아도 학교를 전학할 수 있도록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고등학교의 입학 전학 및 편입학의 허가 여부를 일부 학교를 제외하고 교육 과정 이수에 지장이 없는 범위에서 ‘학교장’이 결정하도록 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89조 때문에, 실업계나 특성화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친족성폭력생존자들이 전학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학업이 중단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성폭력을 겪지 않기 위해 거주지를 옮기면서 학교에 가지 못하게 되는 상황에서, ‘출석일수 부족’을 이유로 전학을 거절당하기도 한다.
 
피해학생의 학업 의지나, 성폭력 피해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출석하지 못한 정황을 이해해주기보다는, ‘쉼터에서 살고 있는 성폭력피해자’인지 여부가 전학을 결정하는 중요한 조건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학교 측의 태도는 성폭력생존자의 일상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생존자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없으면, 이와 같은 학습권 침해는 계속될 것이다. 학습 중단 상황을 구제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친족성폭력 가해자와 가족들은 생존자를 찾기 위한 방법으로, 피해자가 다니던 학교를 찾아와 전학 간 학교를 알려달라는 요구를 반복하면서 선생님들을 괴롭히기도 한다. 비밀전학을 했는데도 생존자가 전학한 학교를 찾아오는 위험한 일들도 계속 일어나고 있다. 학교가 노출된 경우 피해자는 두려움과 불안을 느껴 학교생활이 위축된다. 또, 위협이 심할 경우 또 다시 학교를 옮겨야 하는 상황에 처하기도 한다.
 
학교에서는 성폭력 피해학생에 대한 지원 절차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 할뿐만 아니라, 가해자가 ‘보호자’ 신분을 내세우며 피해자의 전학 사항에 대한 정보를 요구할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모르고 있는 경우도 많다. 생존자가 학교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매뉴얼을 마련하고 전국의 학교에 보급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 매년 전국의 성폭력 쉼터에서 겪고 있는, 학교를 둘러싼 이런 문제들을 더 이상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십대 생존자들이 성폭력 피해가 발생하는 집을 벗어나기 어려워하는 이유 중에는 ‘집을 떠나서도 학교를 계속 다닐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큰 부분을 차지한다. 학업을 지속하고 싶어 하는 십대 생존자에게 안전한 학습 환경을 제공하는 것은 사회가 마땅히 지원해야 할 책무이다.
 
가해자는 여전히 ‘법적 보호자’
 
보호자가 바로 성폭력가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쉼터에서 생활하는 생존자들에게 행정적으로 가해자의 동의와 개입이 요구되는 경우가 많다. 처음 주민등록증을 만들 때, 주민등록상 주소지 관할의 주민센터에서만 발급받을 수 있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친족성폭력 생존자는 가해자의 집요한 추적 때문에 쉽사리 주소지를 옮기지 못한다. 옮기는 경우에는 주소지 열람 제한을 청구하지만, 그럼에도 정보가 노출되는 사례가 빈번하다. 신변 보호를 위해 주소를 이전하지 못하는 상황이, 행정 절차에서는 이해받지 못하고 있다.
 
주민등록증을 발급받기 위해서는 가해자와 가족들이 살고 있는 주거지 근처의 주민센터로 찾아가야 하기 때문에, 그들을 만나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오롯이 생존자가 감당하고 있다. 십대 친족성폭력 생존자가 주로 입소하는 <열림터>에서 매년 반복해서 부딪히는 문제이다. 쉼터에서 비교적 가까운 곳은 활동가와 함께 당일 다녀올 수 있지만, 타 지역일 경우엔 쉽지 않다. 학교에 결석하지 않기 위해 방학 때로 일정을 맞추거나, 다른 경우에도 시기를 조율해야 하는 문제가 지속되고 있다.
 
통장을 개설할 때도, 집에서 급하게 나오느라 신분증이 없을 때 본인을 증명할 방법이 없다. 전학을 한 학생은 새 학생증을 발급받은 후 가능하지만, 학교 밖 십대의 경우에는 신분증을 만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주소를 옮겨야 한다. 은행에 시설 입소 확인 서류를 제출하고, 시설장이 동행하더라도 법적 보호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거절당한다.
 
쉼터에 입소한 미성년 친족성폭력 생존자의 휴대폰은 가해자 명의로 된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가해자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휴대폰 사용을 중단하기도 한다. 경제활동으로 돈을 마련했다 하더라도, 법적보호자가 없는 십대 생존자는 본인 명의로 휴대폰을 개통할 수 없다. 우려스러운 것은, 법적보호자인 가해자가 생존자의 휴대폰 사용 내역을 요청할 때 통신사가 이를 거부하거나 방지할 수 있는 법적 장치가 없다는 점이다.
 
가해자를 피해 쉼터에 입소했을지라도, 친족성폭력 생존자의 ‘법적인 보호자’로서의 권한은 여전히 쉼터 측보다 가해자 측에 더 많은 부분 주어져 있는 현실이다. 성폭력생존자 쉼터가 단순히 생존자의 의식주를 제공하는 역할을 넘어, 생존자의 생활에 필요한 전반적인 지원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성폭력생존자의 치유와 회복은 ‘일상의 회복’을 바탕으로 이뤄져야 비로소 가능하기 때문이다.
 
수사,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 인권을 보호하려면
  

“가족과 절연하는 것은 힘겹다. 그런데 기적을 기다리는 것은 더욱 더 고된 일이다.” - 엘렌 베스, 로라 데이비스 『아주 특별한 용기』 중에서.
 
가해자가 가족이나 친척이기 때문에, 생존자들은 가해자에 대한 극도의 분노를 느끼기도 하지만 동시에 연민을 느끼는 양가감정을 갖는다. 또, 다른 가족과의 관계 때문에 가해자에 대한 고소를 쉽게 결정하지 못하기도 한다. 가족을 고소했다는 죄책감뿐만 아니라, 가해자 외의 다른 가족들에 대한 걱정과 죄책감으로 불안한 마음을 가지기도 한다. 가해자뿐만 아니라 다른 가족들도, 가족 내에 일어난 성폭력 사건을 수치스러워하거나 부인하고 싶어하면서 피해자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리거나 원망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러나 법적 대응을 한 피해자들은 그동안 자신이 혹시 잘못한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한 기분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점에서, 법적 대응이 주는 치유의 효과가 존재한다. 또 가해자 외의 가족들도 피해자가 법적 대응을 시작하면, 더 이상 피해자에게 잘못을 돌리지 못하고 가해자의 범죄 사실에 초점을 맞추게 되기도 한다.
 
형사사법 절차에서 친족성폭력 생존자에 대한 ‘2차 피해’를 방지하고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사건 발생 초기부터 수사 및 재판 과정까지 다양한 방안이 지속적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하지만 제도를 마련하고 실행하는 현장에서 무엇보다 ‘친족성폭력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특히 담당 수사 기관과 사법부에서 친족성폭력의 특성을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는 점은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성폭력생존자의 진술은 법정에서 가장 중요한 증거로 활용되는데, 이를 진행하는 기관과 담당자가 친족성폭력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 경우, 생존자는 곧바로 2차 피해를 겪게 되기 때문이다. 업무가 순환보직제로 운영되는 것도, 전문성을 저해하는 요인이다. 생존자를 이해하고 가해자에 대한 법적 처벌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도록, 관계 기관의 올바른 인식과 전문성 확보가 절실하다.
 
2013년부터 실시되고 있는 피해자 국선변호사 제도는, 소송 당사자인 생존자가 국선변호사의 지원을 받아 자신의 사건에서 주체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데 의의가 있다. 생존자를 지원하는 변호사는 생존자의 심리 상태를 이해하고 가족 관계에 대해서도 이해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형식적인 교육만으로는 결코 친족성폭력에 대한 전문성이 확보되기 어렵다. 더불어 국선변호사를 순차적으로 배정하는 방식을 생존자가 직접 변호사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등의 제도의 변화가 필요하다.
 
가해자와 분리되어야 하는데, 쉼터가 부족하다
 
가족이나 친족 안에서 발생하는 친족성폭력은, 사건을 인지하는 즉시 가해자와 생존자를 분리해야 한다. 추후 발생할 수 있는 피해를 막기 위해서다. 친족성폭력이 발생하면 대개의 경우 가해자가 아닌 생존자가 생활하던 곳에서 나오게 된다. 다른 가족의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성폭력 쉼터로 연계되어야 한다.
 
그런데 2014년 현재 성폭력 쉼터는 전국적으로 23개소가 설치, 운영 중이다. 가정폭력 쉼터가 약 60여 개인데 비해서도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게다가 전국의 쉼터마다 ‘장애’ 유무나 ‘친족성폭력’ 유무, 또 ‘피해자의 연령’에 따라 보호 인원과 보호 기간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보호가 필요한 생존자들이 갈 곳이 없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생존자들의 보호와 자립을 지원하는 쉼터가 전국적으로 더욱 확대 설치되어야 한다.
 
친족성폭력은 특정한 누군가에게 발생하는 사건이 아닌,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고 또 일어날 수 있는 범죄라는 사회적 인식이 필요하다. 취약하고 무력한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 사건 이후 지속되는 삶에서 의지를 가진 생존자로서 사회 속에서 역량을 키워나갈 수 있도록 사회적 관심과 지지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친족성폭력과 생존자에 대한 왜곡된 시선과 편견으로부터 변화하기 위한 일상의 노력이 계속될 때에야, 비로소 성폭력을 예방하고 대처할 수 있는 사회가 가능해진다. ▣ 공명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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