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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백의 발견] 아이 셋 키우는 싱글맘 E님 인터뷰
경력 단절이라는 꼬리표는 왜 여성에게만 붙을까? 여성들은 왜 노동시장으로부터 단절을 겪게 된 것일까? 출산과 양육만이 경력 단절의 이유일까? 한국여성민우회 여성노동팀에서 여성들의 공백(경력 단절)의 문제와 현실을 알아내기 위해 ‘일하는 여성’들과 만나, 여성노동의 핵심적인 문제들을 짚어보는 인터뷰를 일다와 공동 연재합니다. www.ildaro.com
까페에서 ‘자활근로 중’
민우회 사무실 근처 자주 가는 카페에, 못 뵈던 분이 커피를 내려 주시기에 인사를 하며 어떻게 여기서 일하게 되었는지 여쭤보았다. 중년에 자그마한 체구로 동그란 안경이 잘 어울리는 51세의 E님. 커피 맛도 왠지 전보다 더 나아진 것 같다. 혹시나 하고 그 동안 일해온 경험들, 살아온 이야기를 해주실 수 있는지 여쭤보니, “할 말 많죠. 눈물 없이는 들을 수도 없어요.” 라고 이야기한다.
▲ 아이 셋 키우는 싱글맘 E님은 일해도 빈곤에서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을 말했다. © 일다
며칠 뒤 다시 방문한 카페에서, 아이 셋을 키우며 30년 동안 달려오신 E님의 노동이야기를 들었다. ‘눈물’보다는 ‘제도와 현실 간의 괴리’ 혹은 경력단절 여성이면서 동시에 노동자가 아닌 적이 없었던 시간들에 대한, 물음표 가득한 인터뷰였다.
카페 계산대에는 ‘자활근로 중이니 서툴러도 양해해달라’는 표지가 붙어있다. 전부터 카페에 일할 사람을 구한다고 해서 새로 채용된 분인 줄 알았는데, 자활근로라니 생소하다. 자활근로사업은 국가나 지방정부가 저소득층 실업자에게 사회적 일자리를 제공하거나 공동체 창업을 유도해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해주는 사업이다. 그렇다면 E님은 어떻게 이 바리스타 일을 하게 된 걸까?
“취업성공 패키지라고 노동부에서 교육 훈련을 시킨 다음에 구청에서 취업 알선을 연결해서 오게 되었어요.”
취업성공 패키지. 고용노동부에서 진행하는 것으로, 빈곤층을 대상으로 빈곤으로부터 벗어나게 하기 위해 일자리를 지원하는 사업이다. 저소득층에 속한 일할 능력이 있는 이들에게 교육과 훈련을 시켜주고 일자리 연결도 해준다고 한다. 각종 교육훈련 프로그램을 1년 정도 거친 후 지금은 직업훈련 차원에서 카페에 바리스타로 오게 된 것.
바리스타 외에도 J님은 한식 조리, 출장 뷔페를 배우셨단다. 그래서 지금까지 만났던 다른 경력단절 여성들처럼 자격증을 따셨겠거니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머리 아픈 건 안 한다고. 자격증 따는 건 안 한다고 그랬어요. 그래도 요리는 배워두면 여자니까 다 써먹을 때가 많을 테니까. 특별히 할 게 많지가 않고 뭐 커피나 요리 밖에 없어서” 몇 가지만 배웠다고 했다.
사실 배우기만 하고 굳이 자격증까지 따지 않은 게 오히려 현명한 선택일 수도 있을 만큼, 자격증을 취득해도 취업이 잘 되지 않는 게 요즘 상황이다. 되더라도 계약직을 전전하거나 ‘프리랜서’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열악한 특수고용 일자리들이 상당수다.
아이 셋에, 가정의 유일한 생계부양자인 E님. 일을 배우는 동안 생계는 어떻게 유지한 것일까. 취업성공 패키지 교육을 받는 기간 동안에도 기초생활보장법에 따라 4인 가구 최저생계비에 맞춰서 생활비를 보조 받았으니 가능했던 일이었다.
공장, 하숙집, 세탁체인점, 옷 수선까지
공장에서 생산직으로 일했던 게 E님의 첫 번째 일이었다. 친언니가 운영하던 공장에서 5년 정도 일하면서 돈을 벌었다. 당시 노동 조건은 어땠는지, 4대 보험은 보장되었는지 여쭤보았다. “맨날 야근하고, 철야하고 힘들었죠. 그 시절엔 4대 보험 되는 데가 없었죠. 벌써 30년 전 얘기고 1980년대 초니까, 그 때는 퇴직금만 줘도 감사했죠. 퇴직금 주는데도 거의 없었어요.”
공장 생활을 정리하고 비디오대여점을 하던 지인 소개로 당시 호황이던 비디오대여점을 2년 정도 했다고 한다. 그리고 결혼하면서 남편과 당구장을 같이 운영하다가, 이혼하고 혼자 하숙집과 세탁체인점을 했단다. 사업 수완이 좋아서인지 그때 꽤 많은 돈을 벌었다. 세탁체인점을 운영하면서는 더 돈벌이가 되는 옷 수선 일도 ‘욕심 내서’ 하게 되었다.
“세탁체인점 같은 경우에는 6:4로 본사랑 나누면 남는 게 별로 없잖아. 아~ 수선을 해야 남는구나, 미싱 일을 해보지도 않았는데 미싱 기계를 일단 들여놨어요. 손님이 양복바지 3개를 갖고 왔더라고. 바지단 수선해달라고. 딱 막상 받아 드니까 막막해서 다른 세탁소에다 맡겼어. 내가 아직 기술이 부족해서 (일감이) 들어오면 여기다 다 맡길 테니까 좀 싸게 해달라고. 그리고서 밤새도록 보고 연구를 했어요.
오랜 된 기술자들은 척보고 척척 잘라서 금방금방 하지만 나는 완전 초보자니까 1mm도 틀리지 않게 정확하게 맞춰서 자르고 수선을 하니까 다 잘했다고 하더라고. 수선 잘못했다는 소리는 한번도 들어본 적 없었어요. 그런데 정확하게 하다 보니까 너무 늦어. 그러다 보니 일은 자꾸 쌓이고. 밤늦게까지 하는 건 뭐 다반사고, 이 일 하다가 쓰러졌어요. 119에 실려 갔을 정도였지.”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어 자활을 시작하다
이렇게 쓰러질 정도로 열심히 일하며 살다가 “보통 가정처럼 아이한테 아빠도 만들어주고,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살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나도 그만 돈 벌고 남편이 벌어주는 돈으로 살고 싶어서” 재혼을 하게 되었다.
“남편이 돈 벌어다 주면 그걸로 살림만 하는 삶. 지극히 평범했던 삶이 그리웠는데. 밖에 나가서 산업 전선에서 너무 발 동동거리기 싫고 정말 평범하게 살고 싶었는데, 그게 나한테 큰 욕심이었나 봐요.”
숨가쁘게 근 20년 동안 노동해온 E님에게 필요했던 건 쉼이었다. 그러나 그 쉼도 잠시, 남편의 사업 실패로 3년 만에 다시 나가서 일을 해야 했다. 빚더미와 셋째 아이를 임신한 상태의 E님만 남았다.
“셋째 아이가 기어 다니기 시작할 때부터 어린이집에 맡겼어요. 셋째 아이부터는 무료라는 게 그때부터 시작이었거든요. 당장 취직할 때도 없고 해서 광고 전단지를 돌렸어. 전단지를 돌리다가 어떤 애기엄마가 전단지 돌리는데 얼마냐고 말을 붙이더라고. 근데 그 엄마 덕분에 기초생활 수급자나 자활 이런 걸 알게 된 거에요. 그 전에는 이런 제도가 있는지도 몰랐고, 내 힘으로만 살아야 되는구나 생각하고 매일매일 눈물 쏟으면서 그랬지.”
우연히 알게 된 주변 이웃에게 얻은 정보로 “동사무소에 가서 사정 얘기를 했더니, 근로 능력이 있다고 처음에는 안 된다는 거예요. 애를 셋이나 혼자 키우는데. 그랬더니 자활이라도 알아보라고 하더라고요.” 다행히 얼마 뒤 기초수급자가 되었고, 그 후 시작한 일이 ‘옥상녹화’(도심 건물 옥상에 잔지를 깔거나 녹지를 마련해 식물 등을 가꾸는 사업) 자활이었다. 아이들 유치원비도 무료라서 맡겨놓고, 전일제 자활 일을 할 수 있게 된 것.
그러나 어느 정도 안정을 찾기도 전에 자활근로를 그만두라는 압박을 받았다. (자활근로사업은 창업이나 취업 등 자립을 위한 준비 프로그램으로, 참여한 사람들이 근로능력을 키워 노동시장에서 자립하는 것이 사업의 성과와 직결되어 있다.)
“자활사업단에서 자꾸 취업하라고 하더라고요. 취업할 데가 있어야 하지. 나이도 꽤 됐잖아, 사십 대 후반이었는데. 하도 나가라고 해서 3년 정도 하고 나왔어요.”
어중간하게 돈 벌면 수급혜택 못 받게되니까…
▲ 빈곤 문제를 해결하려면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노동을 할 수 있도록 보다 구체적이고 상황에 맞는 정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 일다
임금노동시장은 여전히 아내가 살림을 하고 가족을 돌보며, 남편의 수입에 의존하는 특정한 종류의 가족에만 들어맞게 짜여있다. 그렇기 때문에 E님의 경우처럼 여성이 혼자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상황은 ‘전일제 남성중심’의 노동시장 안에서 고려되거나 수용되기 어렵다. E님이 집에서 아이들을 돌보며 생계까지 책임질 수 있는 현실적인 방편은, 이미 습득된 미싱 기술로 집 안에서 가공, 조립하는 일이었다.
리본을 박는 미싱 부업. 그나마 3년의 ‘공백’ 기간에 나중에 도움이 될까 싶어서 미싱 일을 배우고 패턴사 자격증을 따놓은 덕이다. 일할 수 있었던 것은 다행이었으나, 미싱 일을 하는 사이 찾아온 갱년기 증상 때문에 힘들었다고 한다.
“정말 많이 힘들었어요. 일할 때 손발 붓는 건 예사고 일단 얼굴이 빨게 지는 게 정말 싫어. 금방 더웠다, 금방 추웠다 그러고 금방 피곤해지고. 하루 종일 일을 하니까 저녁때 되면 발 팅팅 부어있고 아침에 일어나면은 손 퉁퉁 부어있고.”
건강에 이상이 생겼을 땐 쉬어가며 일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생계와 아이 양육을 위해서는 맡겨진 일들을 해내야 할 수밖에 없으니, 아프다고 해서 일을 그만 둘 수 없었다.
당시에 미싱 부업을 하면 한 달에 70만원정도 벌었다. 더 벌기에는 몸 상태가 안 좋기도 했지만, 어느 정도 이상을 벌게 되면 기초수급자로서 받는 혜택을 얻지 못할 수 있기 때문에 딱 적정 수준으로만 벌어야 했단다.
“잘 살게 되어서 수급자에서 벗어나면 괜찮은데, 어중간하게 돈을 벌면 의료혜택이나 애들 교육혜택이 아예 없어져 버려요. 그러면 일 안하고 수급 혜택을 받는 게 돈을 더 많이 버는 (방법인) 거예요.”
다른 저소득층 중년여성의 인터뷰에서도, 이러한 현실과 제도 간의 괴리를 확인할 수 있었다. 기초생활보장제도의 본래 취지대로 ‘자립’을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하는데, 지금의 정책은 오히려 낮은 수준의 삶에 계속 머물게 만든다.
이러한 아이러니를 수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전부터 각계 각층에서 제기되었다. 생계급여 선정 기준을 지금처럼 최저생계비와 같은 절대적 빈곤선에서 ‘중위 소득’(전국 모든 가구를 소득 기준으로 일렬로 세웠을 때 ‘가운데 소득’)과 같은 상대적 빈곤선을 도입하고, ‘맞춤형 급여 체계’로 개편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정부는 내년부터 최저생계비 제도를 폐지하고 ‘맞춤형 개별급여’로 전환하겠다고 밝혔고, 그에 따라 생계, 주거, 의료, 교육 급여를 별도로 받게 되면서 기초수급 대상자가 60만명 가량 늘 것이라고 전망하였다. 그러나 실제 복지 예산은 그에 턱없이 못 미쳐, 결과적으로 수급 혜택을 받지 못하는 빈곤층이 확대될 것이라는 우려를 낳고 있다.
어려웠던 시기에 기초수급자 대상자가 된 것은 E님이 일을 통해 아이들을 키우며 생계를 꾸릴 수 있게 한 점에서 큰 도움이었다. 그러나 삶의 고비란 어느 때 어떻게 올지 모르는 상황. E님과 같은 여성노동자에게 사회 안전망이 고작 기초수급 밖에 없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저소득층, ‘여성가장’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노동자로서 건강하게 안정적인 일을 지속할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비빌 언덕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빈곤 문제 해결의 핵심은 단지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각 대상에 따라 지속 가능한 노동을 할 수 있도록 보다 구체적이고 상황에 맞는 정책이 다양하게 마련되어야만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겠는가.
카페에서 자활근로를 하게 된 지 한 달이 채 안된 E님. 앞으로 어떤 삶을 계획하는지 여쭤보았다.
“비빌 언덕이 있어야지 뭔가 생각도 있고 계획도 있고 한데, 아무것도 없으니까 사실 계획 같은 건 못 세워요. 지금은 나이도 많고 애들은 어리고. 아무것도 받쳐져 있는 게 없어요.”
3년의 기간을 제외하고 30년 동안 내내 일해 온 E님. 그러나 일관되지 않은 일의 경험, 문서화되지 않은 노동의 시간은 ‘경력 단절’이나 마찬가지였다. 바로 이 지점이 ‘경력 단절’ 여성에 대한 다양한 이해와 정교한 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그 동안 만나온 ‘경력 단절’ 경험을 가진 여성들의 이야기는 하나하나 ‘다른’ 이야기였다. 그렇기 때문에 뒷받침되어야 할 정책도 여성노동자가 처한 여러 상황들을 복합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이다. E님의 노동을 지속시킬 수 있는 비빌 언덕. 나아가 여성노동자라면 누구든, 각각의 현실에 맞는 비빌 언덕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 강선미 www.ildaro.com
※ 이 기사는 한국여성민우회 블로그(womenlink1987.tistory.com)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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