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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받은 식탁] 청각장애인 안세준, 김세현씨와 식당에서 나눈 이야기 
 
장애인과 함께 식당을 찾아가 식사하며 공평한 밥상에 대해 생각해보는 기획 “차별받은 식탁”이 4회 연재됩니다. 일다와 제휴 관계인 비마이너(beminor.com) 조은별 전 기자가 취재하였으며,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을 지원받아 작성되었습니다. –편집자 주
 
벽에 걸린 메뉴판, 대충 손으로 ‘아무거나’ 주문하죠
 
2011년 장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수화를 사용하는 청각장애인은 전체 청각장애인의 4.6%에 불과, 백 명 중 네 명꼴이다.
 
뉴질랜드에서는 수어법을 만들어 공식 언어로 영어, 마오리어, 수어를 정했다. 학생들도 학교에서 선택과목으로 수어를 배울 수 있다. 미국에서도 교육 과정으로 제2외국어 선택해 원하는 학생들에게 수화를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아직 어떠한 전문 법률이나 교육 과정에서 수화는 없다.
 
그렇다면 현실적으로 식당 등에서 청각장애인에게 제공되는 편의시설은 무엇일까? 그들은 어떤 외식을, 어떻게 즐기고 있을까? 

▲ 혜화역에서 만난 세 사람. 수화통역사 김철환씨, 청각장애인 안세준씨와 김세현씨. ©비마이너 
 
서울 종로구 동숭동의 혜화역 2번 출구 앞에서, 청각장애인 김세현씨와 안세준씨를 수화통역사 김철환씨와 함께 만났다. “국물 있는 음식이면 다 괜찮습니다”라는 통역을 듣고, 근처에 있는 한 샤브샤브 식당으로 이동했다.
 
저녁시간이었지만 그렇게 붐비지는 않았다. 바로 자리를 잡고 메뉴판을 봤다. 음식 그림과 설명이 돼 있어 메뉴를 이해하기 쉬웠다.
 
“그래도 이 집은 메뉴 설명과 사진이 있어서 나은 편이죠. (테이블마다) 메뉴판이 있는 것도 좋고. 다른 음식점은 벽에 메뉴판이 걸려 있잖아요. 보통 메뉴판을 (손으로) 가리켜서 주문하는데, 벽에 걸려 있으면 불가능하니 대충 소통이 안 돼도 아무거나 먹는 거죠.”
 
‘아무거나’가 세현씨와 세준씨가 식당에서 제일 많이 주문하는 음식이었다. 옆의 사람 것을 보고 자기도 같은 것을 달라고 한다든지, 메뉴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없기 때문에 메뉴판 아무거나 가리켜 시키고, 듣는 사람이 다른 음식을 말해도 그냥 주문할 수밖에 없는 음식. 그저 벽에만 걸려 있는 메뉴판이 청각장애인에게는 차별적이었다는 느낌이 일단 충격이다.
 
“메뉴판에 음식 이름만 쭉 쓰여 있어도 잘 모르는 것들이 있어요. 사진까지 함께 있으면 좀 편하죠. 짐작이 가니까. 다른 식당에서는 메모지에 적어서 주문하기도 하지만, 그냥 대충 손으로 찍죠. 모르는 음식이라도 그냥 시켜요.”
 
‘내가 수화 쓰는 게 부끄러웠나 봐요’
 
세현씨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직원이 다가왔다. 메뉴 소개를 해주려는지, 보고 있는 메뉴판을 가리키며 이런저런 설명을 덧붙였다. 하지만 세현씨는 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자신이 청각장애인임을 알지 못하는 많은 식당 직원들에게 익숙한 듯.
 
어렵사리 메뉴를 골랐다. ‘아무거나’를 말하며 다 괜찮다고 한 그들은 금액을 걱정했다. 특히나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인 세현씨는 식대 걱정이 컸다.
 
“연잎 밥을 먹어도 될까요? 그럼 대나무 밥도 하나 더 시키고 싶은데.”

▲ 이야기를 나누는 안세준씨와 김세현씨. 청각장애인은 손으로 말하기 때문에 식사 속도가 느리다. '빨리빨리' 외치는 한국의 식당 문화에선 밥을 먹기 어렵다.   © 비마이너 
 
식사가 나오자, 세준씨는 ‘빨리빨리’를 외치며 줄이 길게 서 있는 식당에서는 청각장애인이 밥을 먹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청각장애인은 밥을 먹으면서 말하기가 어렵잖아요. 손으로 말하니까. 그래서 식사 속도가 느린데, 점심 시간에 장사가 잘되는 식당에서 밥을 먹으면 빨리 먹어야 하는데 그런 게 어려우니까 잘 안 가려고 해요.”
 
세준씨는 예전에 자녀와 외식하러 갔다가 씁쓸한 경험을 했다고 한다.
 
“나는 소리를 못 들으니까 내 목소리가 어떤지 모르는데, 가끔 급할 때 소리를 지르고는 하잖아요. 그런데 그 목소리가 애들은 창피했나 봐요. 그래서 소리는 내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그때 알았어요. 내 목소리가 이상하다고 느낀다는 걸.”
 
자신이 낼 수 있는 유일한 음성조차 조심해야 하고 본능적인 ‘목소리’조차 내지 않기 위해 의식해야 하는 이들은 말없이 식사를 이어갔다.
 
“예전에 친언니가 밥을 사준다고 해서 나갔는데 수화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거예요. 문자로만 대화하자고 하고, 수화통역사를 부른다고 해도 부르지 말라고 하고. 수화를 쓰는 게 부끄러웠나 봐요. 그런데 문자로 얘기가 안 되니 결국 수화통역사를 불렀죠. 그 뒤로 언니를 만나지 않아요.”
 
세현씨도 그런 경험이 있었다. ‘건청인’(비장애인)이 단순하게 생각하는 것보다 청각장애인에게 가해지는 차별과 억압은 더 많이 존재했다. 청각장애인은 그냥 봐서는 장애가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장애를 숨길 수 있다고(또는 숨겨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폭력이었다.
 
식탁에 호출 벨이 없으면 우린…
 
샤브샤브 국물 육수를 추가하고 싶었지만 식탁에 호출 벨이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세현씨는 팔을 흔들기도 하고 손뼉을 치기도 하며 직원의 눈에 띄려 노력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결국 수화통역사 김철환씨가 대신 직원을 불렀다.
 
세현씨는 식탁에 호출 벨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호출 벨 하나만 있어도 훨씬 수월한데, 목소리를 낼 수도 없고 손뼉을 계속 칠 수도 없고 힘들죠. 음식 더 달라고 하는 것도 소통이 어려우니까 대충 입 모양으로 말하고 손짓해가면서 하는 거죠.”
 
샤브샤브 국물에 채소를 넣고 고기를 살짝 익혀 먹고, 칼국수도 넣어 먹었다. 식사가 거의 끝날 즈음 세현씨는 불현듯 아이들 생각이 났나 보다.
 
“우리 아들은 샐러드를 좋아하거든요. 매일 한 통씩 만들어 먹기도 하고, 딸도 외식하는 걸 좋아해요. 가끔 거리를 걷다 사달라고 조를 때가 있지만 돈 걱정 때문에 못 본 척하고 지나가는데, 오늘 맛있는 걸 먹으니 자꾸 생각이 나네요.”

▲ 청각장애인에게는 호출 벨과 사진이 포함된 메뉴판을 갖춘 식당이 필요하다.  © 비마이너 
 
식사를 마쳤다. ‘호출 벨’과 ‘메뉴 사진’이 포함돼 있는 메뉴판을 외식의 1순위로 꼽은 세현씨는 이 식당이 굉장히 양호한 편이라는 듯 만족을 표했다.
 
“음식 맛도 괜찮았어요. 호출 벨이 없었던 게 좀 아쉽지만 메뉴판에 사진도 있었고, 나머지는 다 만족스러워요. 아! 마지막에 넣어 먹었던 죽이 조금 별로였어요.”
 
맛있게 음식을 먹기 위해서는 일단 먹고 싶은 음식을 주문해야 한다. 흔히들 식당에서 ‘저기요’ 혹은 ‘주문할게요’를 외치며 원하는 음식을 고르지만, 다른 식탁에서는 목소리를 낼지 손뼉을 칠지 고민하며 ‘아무거나’를 가리키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언제쯤 일명 빅맥 송이라 불리는 ‘참깨 빵 위에 순쇠고기 패티 두 장 특별한 소스 양상추, 치즈, 피클, 양파까지~’ 같이, 원하는 주문을 할 수 있을까. [비마이너 beminor.com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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