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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즘 새지평

성폭력 피해자들 “안녕하지 못합니다”

그 여자들의 물결 일다 2013.12.19 09:00

안녕들하십니까 종북몰이’와 자살, 해고를 감수해야 말할 수 있는 사회에서 

※ 너울 <꽃을 던지고 싶다 -아동성폭력 피해자로 산다는 것> 저자. www.ildaro.com 
 
사회 서비스직의 알바노동밖에 허락되지 않아
 
‘안녕’이라는 말은 ‘아무 탈 없이 편안함’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 ‘안녕’이라는 말이 사회에 절절하게 울려 퍼지고 있는 것을 보면, 안녕하지 못한 세상인 것 같습니다. ‘안녕하냐’는 인사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김하는 시기입니다.
 
여성주의 저널 <일다>, 그리고 이 사회를 살아가는 여성분 안녕들하십니까?
 
성폭력 피해경험 그 ‘이후’를 살아가야 하는 저는 안녕하지 못합니다. 성폭력 피해자들이 ‘생존자’라고 불리는 이유는, 사회적인 시선으로 인해 살아가기가 힘들기 때문일 거라는 막연한 생각이 아니라, 일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생존자로 살아가는 일은 결코 녹록하지 않은 것이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어릴 적부터 폭력 환경에서 성장한 저는 사회생활을 하고 직장생활을 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낍니다. 특히 동료나 후배, 직원의 입장에서 갑자기 성적인 대상으로, 전인적 존재인 여성이 ‘몸’으로 환원되어버리곤 하는 한국의 문화에서, 언제든 성폭력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경험한 저로서는 남성들과 함께하는 직장생활 자체가 공포에 가까웠습니다. 오랜 치유의 과정을 거치고 사회 일원으로 직장을 다니고 안정적인 일상을 만들어가고자 하는 저의 꿈이 현실에서 이뤄지는 게 불가능하다는 걸 알게 된 저는, 안녕하지 못합니다.
 
경력의 부재, 그리고 적지 않은 나이로 인해 일을 구할 때 저에게 돌아오는 질문은 ‘그 나이 먹도록 뭐했어요?’라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의 삶의 속도는 똑같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획일적인 기준을 만들어서 그것에 맞지 않으면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하는 사회가 저를 안녕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고용이 불안정한 사회로 가고 있는 현실 속에서 여성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비정규직과 시간제 일자리가 대안이 되어버린 상황에서, 저와 같은 치유의 시간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능력과 상관없이 사회 서비스직의 알바 노동밖에 허락하지 않는 것 같아 불안합니다. 성 산업에 종사하는 여성들이 탈(脫)성매매하여 다른 일자리를 구하기를 주저하게 만들고, 아내구타의 피해여성이 폭력가정에서의 탈출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노동시장의 상황이 저를 안녕하지 못하게 합니다.
 
내 삶을 위협하는 의료영리화, 철도민영화 조짐을 보며
 
저는 불면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불면증은 밤에 잠을 못 자는 것과 다릅니다. ‘밤에 못 자면 낮에 졸릴 때 자면 되지’ 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요즘 저는 하루에 잠드는 시간은 2시간 남짓이고 대부분 시간은 잠을 자지 못합니다. 몸은 피곤을 호소하지만 뇌의 각성 효과는 오히려 뛰어나서, 불면의 시기에 각성된 뇌는 기억들을 하나 하나 세세하게 만들고 우울감을 불러옵니다.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들의 많은 수가 불면증 환자라는 통계만 보아도, 불면증이 얼마나 사람을 괴롭게 하는 것인지 알 수 있을 겁니다.
 
불면증이 심해지면 정신과에 가서 수면유도제를 처방 받게 됩니다.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일주일 분의 약을 처방 받는데 진료비와 약제비가 5만원 이상이 들어갑니다. 그런데 지금 정부가 비영리 의료법인이 자회사를 설립하여 부대사업을 하는 것을 허용하겠다고 합니다. 정부는 의료기관의 수익 구조를 개선하고 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한 방안이지 의료민영화와는 무관하다고 애써 주장하지만, 시민단체뿐 아니라 의료계에서도 이것이 영리병원으로 가기 전 단계이며 의료계를 영리화하려는 것이라고 반대하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병원을 경영하겠다는 것이지요. 병원이 수익을 추구하는 회사가 되면 결국 환자들에게 부담이 가중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저는 불안합니다. 이제는 불면의 시기를 보내면서도 병원비를 감당하지 못해 병원조차 가지 못하게 될 것 같아, 안녕하지 못합니다. 일 년에 두어 차례 입원을 반복해야 했던 저는, 저와 같은 생존자들이 고통을 혼자 감당해야 할 것 같아 두렵습니다.
 
공공요금의 인상으로, 도시 한 귀퉁이에서 살고 있는 저는 안녕하지 못합니다. 

▲ "철도민영화 무엇이 문제인가?" 영상 중에서    © 전국철도노동조합 
 
최근 철도노동자들의 파업에 대해, 정부는 불법파업으로 규정하고 강경 대응한다는 입장을 밝혔지요. 파업의 이유는, 코레일이 수서발 KTX의 자회사를 설립한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초기 투자 비용이 많이 드는 철도사업은 공적 서비스 부담 명목의 세금으로 만들어집니다. 그 기반을 만들어놓고, 수익이 남는 부분에 대해 자회사 형식으로 빌어 민영화하려는 움직임으로 보입니다. 국민의 세금으로 만든 초기 투자를 무시하고, 공공 서비스인 철도를 민영화하려는 것에 대해 반대하는 노조원들에게 징계가 내려졌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모두 정치의 결과물입니다. 그런데 그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는 순간, ‘종북’으로 몰리거나 해고를 당하는 위협을 감수해야 하는 사회가 되어버린 것 같아, 안녕하지 못합니다. 자신의 고향과 터전을 지키기 위해 자살을 선택해야 했던 밀양의 어르신들을 보면서 안녕할 수가 없습니다. 노동자들의 권리인 쟁의권도 인정받지 못하고, 표현의 자유를 침해 받는 사회에서, 사회적 약자인 제가 안전한 공간은 존재하지 않을 것 같아 안녕하지 못합니다.
 
4대악(惡) 규정, 성폭력에 대한 관심은 커졌지만
 
박근혜 정권이 규정한 4대악(惡) 중의 하나로 ‘성폭력’이 들어갔기 때문인지, 그 어느 때보다 생존자인 저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고 느낍니다. 갑자기 방송사들에서 출연을 요청 받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얼마 전에 ‘당당하게 얼굴을 드러내라’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성폭력 피해자들은 두 가지의 상반된 주문을 듣게 됩니다. ‘죄인도 아닌데 당당하게 드러내라’거나 아니면 ‘창피하니 조용하게 살아라’하는 것입니다. 둘 다 저의 입장인 아닌, 사회의 편견을 저에게 강요하는 말일 뿐입니다. 자신들이 필요할 때는 ‘당당하게 드러내라’라고 하고, 보호할 가치가 없는 피해자(연약한 아이가 아닌 성인이거나, 강간에 미치지 못하는 범죄 피해자이거나, 혹은 노는 여자로 보일 경우)에게는 관심 두지 않거나 침묵하라고 합니다.
 
성폭력 피해생존자들은 범죄자도 아니고 피해자일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해자들이 죄인처럼 살아야 하는 사회에서, 우리는 안녕하지 못합니다. 사회에서 성폭력 피해자들이 자신의 경험을 드러냈을 때 반응들은 안전하지 못합니다. 성폭력 가해자들이 영상을 찍고 그것으로 피해자를 협박하여 다시 성폭력을 저지르는 사건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피해자가 다시금 생활을 위협받게 되는 사회, 그리고 ‘다르다’는 것이 낙인이 되는 사회에서 결코 성폭력 생존자는 안녕하지 않습니다.
 
성폭력이 무엇인지 알려고 하거나 사회적으로 그 의미에 대해 논의하고 합의하려는 노력도 없이, 그저 성폭력을 반대만 하는 한국의 정치 현실에서, 저는 더욱 더 침묵을 강요받게 될 것 같아 안전하지 못합니다.
 
성폭력 피해자인 제가 살아내는 ‘이후’의 삶 속에서 폭력을 접하지 않을 수 있어야만, 또 각각 개인의 다름이 존중되는 문화여야만, 저의 경험이 인정을 받고 제가 삶을 주도적으로 만들어 갈 수 있는 기반이 생깁니다. 약자를 보호의 대상으로 삼는 것만이 아니라, 약자가 되지 않을 수 있는 평등한 정치를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지금 일상적으로 약자에 대한 폭력이 이루어지는 사회에서 성폭력 생존자인 저 역시, 결코 안녕할 수 없습니다.  ▣ 너울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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