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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와 고통이 맞물리는 ‘사랑의 화학반응’에 대해

사랑은 참 힘든 일입니다. 연애 말입니다. 하지만 사랑만큼의 매혹이 또 없는지라 우리는 고통을 감수하면서도 사랑에 뛰어듭니다. 주체할 수 없이 빠져들기도 하지요. 많은 사람들은 사랑을 기다리거나 사랑을 하면서도 사랑의 유통기한에 관한 뇌 연구결과를 궁금해합니다. 또 많은 사람들은 사랑했던 사실을 망각한 채 사랑을 의심합니다.
 
사랑, 사랑, 누가 말했던가요. 설탕과 크림을 잔뜩 부은 인스턴트 커피 맛이 곧 사랑이라 믿는 것은 허황이겠지요. 어쩌면 직접 심혈을 기울여 뽑은 달고 씁쓸하면서도 시큼한 커피 맛이 연애의 맛에 더 가깝겠지요. 이 오묘한 맛은 사람을 사로잡기 충분한지라, 어떤 심리학자는 ‘사랑중독’이라는 말을 쓰기도 합니다. 사랑이란 없는 것도 아니고 있는 것도 아닌데, 어쩌면 우리는 사랑을 제대로 보지 못한 채 중독되어 있을 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에릭슨이라는 심리학자는 인간성장의 여덟 단계를 설명하면서 20대와 30대는 친밀감을 추구하고 의미 있는 관계를 찾는 과제를 가진다고 했습니다. 물론 연애에만 국한된 친밀감을 말하는 것은 아니지요. 사람 만나기를 두려워하든, 사람이 싫어 마음을 꽁꽁 걸어 잠갔던 간에, 사람들의 아주 깊은 내면에는 관계에 관한 갖가지 갈등과 욕구가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세상과 만나고 헤어지기까지의 긴 인생 동안 의미 있는 누군가가 되고 싶으며, 의미 있는 누군가를 필요로 합니다. 연애도 그 과정 중 하나이겠지요.
 
연애를 하려 한다면 관계를 맺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연애도 관계인데, 관계 중에서도 아주 섬세한 관계로 꼽히지요. 연애할 때 오고 가는 사랑이란 아주 매력적이고 화려한 감정으로 다가오기 때문에, 우리는 때로 사랑에 요구되는 역량을 기르려는 연습을 하기보다는 겉으로 드러나는 매력에 치중합니다. 또한 솔직한 모습이 탄로났다고 여겨질 때에는 도망가거나 감추려 하면서 되려 사랑을 잃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랑을 잃으면 마음이 얼마나 아픕니까.
 
괴로움의 대상은 과연 무엇인가: 멜랑과 콜리의 이야기
 
심리학에서는 관계를 얘기할 때, 어린 시절에 관계에 대한 안정적인 표상이 자리 잡혔는가를 묻습니다. 관계표상이란 무얼까요? 과거에 중요한 사람들과 경험했던 관계의 기억이 하나의 상으로서 마음 안에 자리잡은 것입니다. 이것은 관계와 관련된 기능을 합니다.
 
관계표상은 관계 안에서 유발되는 다양한 감정의 기원이 됩니다. 우리는 이 관계표상에 근거하여 관계가 어떨 것이라고 예상하며, 만약 관계 안에서 어떤 상황이 발생하면 역시 관계표상에 입각하여 상황을 해석하고 대처하게 됩니다.
 
서로 바빠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연인이 있습니다. 멜랑은 콜리와 드디어 만날 날을 약속하면서 전화를 하는데, 이놈이 심드렁한 목소리로 “일이 늦게 끝날 것 같아”라고 말합니다. 멜랑은 갑자기 끝없는 절망감에 휩싸입니다. 콜리가 자기를 보고 싶지 않아서 약속을 미룬다고 생각하고, 만나지 못한 사이 사랑이 식어버린 것은 아닌가 걱정합니다.
 
멜랑에게는 관계에서 버려지는데 대한 불안감이 심했기 때문에, 사소한 미적거림이라도 거절처럼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멜랑은 자기는 늘 거절당하고 버려지고 사랑 받을 만한 구석이 없다고 느끼고 있었으며, 그의 관계표상 안에서 상대방은 차갑고, 거부적이며, 그에게 싫증을 느끼는 누군가 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이 식었다고 믿고, 이미 콜리에게는 다른 멋진 누군가가 생겼을지 모른다는 상상에 이르면서, 관계는 이제 끝났다는 확신에 도달하게 됩니다.
 
이렇게 관계표상이 불안정하면 관계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힘들어집니다. 콜리는 콜리라는 개인 그 자체가 아닌, 멜랑이 가진 관계표상의 반영물이 됩니다.
 
과거에 우리에게 상처를 주었던 양육자나 매몰차게 떠나간 옛 연인은 가슴 시린 대상표상으로 남아 훗날 사랑하는 역량에 영향을 미칩니다. 멜랑은 집이 어려워 부모님이 밤낮으로 일을 해야 했습니다. 멜랑은 어린 시절 학예발표회 때 끝내 오지 않았던 부모님을 애타게 기다리던 기억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멜랑은 집에서는 어린 동생을 돌보아야 했으며, 밤늦게 부모님이 돌아오면 혹여 피곤하시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면서 아이로서 당연한 욕구마저 숨겨야 했습니다. “늦을 것 같다”는 콜리의 말에, 멜랑은 부모님이 온다 해놓고는 오지 않았던 발표회가 떠올랐던 겁니다.
 
멜랑은 콜리에게 차가운 목소리로 “그럼 만나지 말자”고 전합니다. 멜랑은 아마도 이렇게 버림받는 느낌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 자기 욕구를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하고 항상 차가운 사람으로 돌변하면서 상황을 피하고자 했을 겁니다. 마치 콜리가 곧 떠나버리기라도 하듯이, 멜랑은 선수를 쳐 자기가 먼저 떠났다는 식으로 대꾸하면서 버림받는 두려움을 방지하고자 합니다.
 
하지만 콜리는 일이 늦게 끝나 멜랑을 일찍 볼 수 없다는 마음에 애가 탔을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만나지 말자’는 멜랑의 차가운 태도에 화가 솟구칩니다. 콜리의 어머니는 아프고 우울했었고, 엄마를 원하는 콜리에게 늘 차갑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타이르곤 했습니다. 콜리는 필요했던 자리에 엄마가 없었던 사실에 화가 났지만, 한편으로는 엄마가 갑자기 죽어버릴 까봐 두려웠습니다. 멜랑의 차가운 목소리를 듣자마자, 콜리는 엄마에 대한 두려움과 분노가 돌아옴을 느낍니다. 콜리는 자기의 애타는 마음을 몰라주는 멜랑에게 화가 나 “그럼 관두자”고 말하곤 전화를 끊습니다.
 
불안과 왜곡, 반복되는 연애관계의 패턴
 
관계는 왜곡되고 과격해지며, 두려움과 불안에 휩싸여 불안정해집니다. 이 관계 안에서 연인은 온전한 상대로 존재하지 않고, 다만 나의 관계표상으로서 존재합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만약 사랑 때문에 괴롭다면, 괴로움의 대상이 무엇인지 곰곰이 살펴보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괴로움을 유발하는 사람이 우리가 사랑하는 상대방인지, 혹은 나의 대상표상인지 말입니다. 멜랑과 콜리의 상황은 다양한 형태로 변형되어 곧 우리 자신의 이야기가 됩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이미 일어난 과거의 사건에 대해서는 손을 쓸 도리가 없습니다. 멜랑은 집안형편이 어려웠고, 콜리의 어머니는 아팠습니다. 그 대신 우리의 가슴 아픈 기억을 알아차리고, 그것 때문에 힘들었던 나 자신을 위로해줄 수는 있습니다. 그리고 고통에 대처했던 우리의 습관을 바꿈으로써 훗날로 고통이 번지지 않게 막을 수 있습니다.
 
영이라는 심리학자는 우리 각자는 과거의 기억 때문에 고통을 반복하는 삶의 패턴을 살아가게 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서 각자 나름대로의 대처법을 만들었는데, 도리어 그 대처법이 고통을 영속화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버림받을까 봐 두려워 먼저 차갑게 돌아섰던 멜랑의 대처법처럼 말입니다. 멜랑은 늘 관계에서 먼저 돌아섰기 때문에 멜랑이 그토록 바라던 오래된 따뜻한 관계는 지켜나가기 힘들지 모릅니다.
 
또 콜리는 자기 엄마 같은 누군가에게 마음이 끌려 늘 엄마 같은 사람을 만났고, 엄마처럼 차가운 사람에게 상처를 입어 화를 낸 채 관계를 끝맺곤 했습니다. 이렇게 연애관계에서 패턴이 반복되고 서로 상처와 고통이 맞물리는 사람끼리 만나게 되는 현상을 심리학에서는 ‘사랑의 화학반응’이라고 말하지요.
 
상처를 방어하기보다 진실한 욕구를 표현하는 노력
 
영은 심리치료를 통해서 자기 과거를 탐색하고 애도하며, 건강하지 못했던 대처법을 인식하고 건강한 대처법을 익히면서 고통스러운 화학반응을 예방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멜랑은 아무도 오지 않았던 발표회 기억을 슬퍼하고, 자기 욕구를 내색하지 못한 채 늘 어른스럽게 살아야 했던 어린 시절을 애도합니다. 그리고 차갑게 돌아서기 보다는 “네가 너무나 보고 싶으니 늦게라도 만나고 싶다”는 마음을 표현합니다. 콜리는 엄마가 언제 떠날지 몰라 두려워 화도 못 냈던 어린 시절을 위로 받습니다. 그래서 “일이 늦게 끝나 너를 먼저 보지 못해 너무나 아쉽다”고 말합니다.
 
그럼 멜랑은 있지도 않은 콜리의 새로운 상대를 상상하며 질투하고 괴로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실은 질투하는 그 대상도 멜랑 자신이 꿈꾸고 소망하는 자기 모습, 즉 버림받지 않을 정도로 멋진 누군가라는 상상의 대상이겠지요. 콜리는 자기가 화를 냈기 때문에 결국 멜랑이 사라져버리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시달리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서로가 서로의 어린 시절을 위로해줄 수 있다면 더 좋은 일이 없겠지요.
 
사람은 두려움이 생기면 자기를 방어하려고 하기 때문에, 두려움을 표현하기보다는 무섭게 화내는 모습을 내보이게 됩니다. 바르데츠키라는 심리학자는 화란 곧 나약하고 상처받은 자기의 표현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상처를 방어하려고 갑옷을 두르기보다는 내 안의 진실한 욕구를 가려내고 이를 건강하게 표현하는 게 훨씬 좋은 결과를 선사합니다. 마음을 들여다 보면 어떤 욕구는 상처를 방어하고 분노를 표출하고자 하는 욕구이고, 어떤 욕구는 사랑과 따뜻함을 소망하는 진실된 욕구입니다. 진실된 욕구를 가려내어 표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상처를 방어하고자 하는 욕구를 표출하게 되면 상대방에게도 상처가 되니까요. 하지만 진실된 욕구 표현에는 상대의 상처도 어루만지는 굉장한 힘이 있습니다.
 
사랑은 힘겨울 수밖에 없나 봅니다. 성숙한 마음을 요구하는 일이고요. 하지만 사랑은 하면 할수록 사람을 성숙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한 사람과 오래도록 사랑해도 좋지만, 만약 헤어졌다면 그 다음에는 더 좋은 사람을 만날 게 분명해 보입니다. 왜냐하면 그 동안 내가 더 탄탄해졌기 때문이지요. 우리에게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사랑으로 아팠음에도 다시 사랑하려 하는 나 자신에게 격려를 전해주십시오.
 
사랑하는 괴로움에 시달리던 저에게 누군가가 따뜻하게 전한 말을 나누고 싶습니다. 연애하는 두 사람은 험난한 계곡 위로 걸쳐진 다리의 양쪽기둥과 같은 존재라고 그러시더군요. 만약 한쪽 기둥이 출렁거릴 때 다른 쪽 기둥마저 덩달아 출렁댄다면 다리는 겉잡을 수 없이 위험해집니다. 하지만 한쪽이 출렁댈 때 다른 쪽 기둥이 탄탄하게 버텨준다면 출렁임은 곧 멈추겠지요. 만약 사랑하는 사람이 고통에 흔들리고 있다면, 어쩌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곁에서 탄탄하게 상대를 지켜주는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일다] 최현정   

[필자의 다른 글] ‘강박적인 삶’ 조장하는 무한경쟁체계   /  고통이 또다른 폭력을 만들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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