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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되지 않은 역사] 19대 국회, 사할린동포 특별법 제정될까 
 
75년전, 일제에 강제이주 당하고 사할린에 억류된 한인의 역사와 삶, 우리가 풀어야 할 과제를 짚는 연재. 최상구님은 지구촌동포연대(KIN) 회원으로 사할린 한인 묘지조사 후속작업, 영주귀국자 인터뷰 등 ‘사할린 희망캠페인단’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 www.ildaro.com 
 
“고향가는 길이 인생길이었습니다”
 
2011년 4월,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의원 27명에게 두 권의 책이 전달된다. KIN(지구촌동포연대)가 사할린 구석구석을 다니며 동포들로부터 받은 편지들, 그리고 국내유족과 영주귀국 동포들의 자필 편지들을 엮은 책이다. 어떤 분은 러시아어로, 어떤 분은 한글로, 한자 한자 사할린에 오게 된 사연과 부모님이 얼마나 고향을 그리워했는지 써내려 갔다. 맞춤법이 틀려도, 표현이 어색해도, 그 한결같은 마음은 똑바로 알아볼 수 있다.

▲ 사할린 한인 2세가 자필로 쓴 편지.    © 최상구 
 
“아버지와 어머니는 고향을 아주 많이 그리워하셨습니다. 매일같이 고향으로 빨리 돌아가기를 꿈꾸셨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다시 살 수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1990년에 코르샤코프에서 돌아가셨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는 우리를 두고 혼자 한국에 가고 싶지 않아하셨기 때문에, 가족과 같이 영주귀국 할 수 있는 법안이 마련되길 기다리다 결국 2005년에 사망하셨습니다. 다시 한 번 사할린 한인 가족이 이산가족이 되지 않도록, 적합한 법안을 통과시켜 주시길 간절히 부탁 드립니다.” (문인순)
 
“우리 두 언니들도 (한국으로) 영주귀국하셨습니다. 여러 형제가 같이 모여 살 때는 참 행복했습니다. 저도 부모님이 그리던 고향에 가서 형제들과 같이 살고 싶은데, 어째서 8월 15일 이전에 태어난 사람은 귀국을 하고 그 이후 사람들은 싸할린 땅에 남아야 합니까? 싸할린에 남은 2세 3세 문제를 해결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저의 간절한 이 청을 받아주세요. 싸할린 한인 특별법이 국회에서 빨리 통과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를 바랍니다.” (송계섭)
 
“지금 1세 분들 1945년 8월 15일까지 탄생한 분들은 영주귀국으로 한국으로 나갑니다. 저는 생일이 12월 5일이 때문에 영주귀국도 못합니다. 누님들은 영주귀국을 했습니다. 저도 부모님 고향으로 나가고 싶습니다. 우리 남매들이 이렇게 헤어져서 살아야 합니까! 사할린 특별법안을 속히 해결해주시기를 바랍니다.” (배명국)
 
제헌국회부터 19대 국회까지 사할린동포와 관련된 특별법안 7건, 개정안 1건, 결의안 7건, 건의안 2건이 제안되었다. 이중 법적 강제력이 없는 결의안 일부와 건의안만 가결되었을 뿐이다. (현재 19대 국회에 특별법안 1건 소관위원회 상정, 개정안 1건은 소관위원회 회부 상태.)
 
특히 특별법안은 17대 국회부터 사안의 시급성을 호소하며 ‘사할린 한인 지원 특별법’의 필요성을 제기하였지만 결실을 맺지 못하였다. 18대 국회에서는 사할린 동포 관련 4개의 법안이 발의되어 소관 위원회의 대안까지 만들어 놓고도, 법 제정에 이르지 못한 채 임기를 마쳤다. (이전 국회에서 상정된 법안은 국회 임기가 만료되면 자동폐기 된다.)
 
그리고 19대 국회에서 발의된 사할린 동포 관련 법안은 두 가지이다. 전해철(민주당, 안산) 의원이 발의한 ‘사할린 동포 지원에 관한 특별법’(2012.11.13)과 정의화(새누리당, 부산) 의원이 발의한 ‘고려인 동포 합법적 체류자격 취득 및 정착 지원을 위한 특별법안 일부 개정안’(2013.08.13)이 그것이다.
 
사할린동포 특별법이 제기된 배경은?
 
사할린동포에게 있어서 귀환은 평생의 숙원이었다. 1988~1989년에 특별기가 하바롭스크(2회부터 사할린)와 김포공항을 오가며 모국 방문과 친지들의 직접방문이 이루어졌고, 영주귀국에 대한 관심은 더욱 고조되어 갔다. 그리고 ‘88서울올림픽’ 이후에 소련의 자세도 변화하여, 가족 전체의 한국 영주귀국을 허용하였다.
 
이에 한국 정부는 ‘사할린교포 영주귀국 업무처리 지침’을 만들었는데, ‘사할린 교포(일본에 의해 징용, 징병되어 전쟁종료 후에도 사할린에 잔류된 한국 혈통의 무국적자, 소련적 소지자 및 북한적 소지자) 1세 및 1세를 포함한 가족(배우자 및 직계비속)’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에 대해 국내연고자의 재정 보증, 신병 인수가 확인되어야 했다. 그나마 최초에 고령의 독신자만 영주귀국 대상으로 하던 것에서는 한걸음 나아간 상태였다.
 
1994년, 한일 양국의 합의로 한일 적십자를 통해 영주귀국 시범사업을 하기로 결정하면서 현재의 영주귀국 형태가 갖추어진다. 이에 따라 1997년부터 2001년까지 영주귀국 시범사업을 하게 되었고, 영주귀국에 대한 요청이 끊이지 않게 되자 2007년부터 영주귀국 확대사업을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일 양국의 합의에 의한 영주귀국 대상은 1945년 8월 15일 이전에 사할린에 이주, 거주하거나 태어난 사람이다. 이른바 1세로 지칭되는 이들로만 영주귀국 대상으로 국한시키면서 ‘특별법’에 대한 요구는 싹을 틔우기 시작한다. 삼대에 걸친 이산가족이 양산되고, 2인 1가구 원칙으로 인해 갈등이 불거진 것이다.

▲ 국내 영주귀국한 사할린 한인들이 살고 있는 안산의 고향마을.  1945년 8월15일 이전 출생자, 2인1가구라는 영주귀국 조건 때문에, 가족과 또다시 이산의 아픔을 겪어야했던 사람들이 많다. © 최상구 
 
막상 꿈에 그리던 고향에 왔지만, 1세 부부만이 덩그러니 있는 아파트는 쓸쓸하고 외로운 공간일 뿐이었다. 더욱이 2인 1가구 요건을 충족하기 위해 급하게 결혼을 하거나, 동성끼리 온 이들이 연고 없이 살며 겪는 불편함은 하소연할 데도 없었다. 안산 고향마을은 방학 때나 방문한 2세와 아이들 소리가 들릴 뿐, 노인들만의 섬이 되어버렸다.
 
사할린 현지에서는 부모형제와 떨어져야만 갈 수 있는 영주귀국 사업을 ‘고려장’이라 부르며 비난했다. 가족과 떨어져서는 못 간다는 일념에 사할린에 잔류하기로 결정한 사람도 있었다. 점차 사할린동포들은 영주귀국과 관련하여 영주귀국을 희망하는 사람, 가족과 동반한다면 영주귀국을 하겠다는 사람, 사할린에 잔류를 희망하는 사람 등 세 부류로 나뉘게 된다.
 
특별법 제정의 걸림돌은 대한민국 정부?
 
해방 60주년을 맞이한 2005년에, 이러한 상황을 해결하고자 특별법이 발의된다. 한명숙, 장경수 의원이 발의하였는데, 주요 내용은 ▲영주귀국 대상 확대 ▲사할린 잔류희망자에 대한 지원 ▲사할린동포 관련 업무를 관장할 기구(사할린동포 지원위원회) 설립 ▲국가의 책무로서, 일제에 의해 강제로 적립하고 받지 못한 저금과 미수금 상환에 대해 외교적 노력을 할 것 등이 포함되었다. 이후 18대와 19대까지 발의된 사할린동포 지원 관련 특별법은 이 네 가지를 핵심으로 하고 있다.
 
사할린동포 문제는 정부가 국민에 대해 보호 의무를 다하지 못한 상황에서 벌어진 일로, 보호와 지원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17대부터 지금까지 국회나 정부 모두 공감하고 있는 바였다. 그러나 법의 취지는 동의하면서도 법 제정을 놓고는 정부 부처와 국회 간에 줄다리기가 시작된다. 관련 업무부처들은 “신중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사실상 반대하고 있는 것이다.
 
과연 어떤 쟁점 때문에 법 제정에 “신중해야” 하는 것인가? 먼저, 이번 19대 국회에 발의된 전해철 의원의 법안에 대한 외교부의 의견을 들어보자. “사할린동포에 대한 특별한 지원을 법적 의무로 규정하는 것은, 타 지역 동포와의 형평성 논란 유발 가능”하다고 하였다.
 
형평성을 이유로 사할린동포의 특수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시의 적절하게 재외동포들이 겪는 문제를 해소할 수 없게 된다. 무엇보다 사할린동포의 수가 해마다 줄어드는 상황을 감안한다면 조속한 귀환 조치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시간과의 싸움을 해야 할 사안을 가지고 8년이나 끌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미 ‘고려인동포 합법적 체류자격 취득 및 정착 지원을 위한 특별법’(2010)이 제정된 사례가 있기 때문에, 형평성이 문제가 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소련의 붕괴 이후 독립국가연합(CIS)지역에서 민족적으로 차별 받고 국적취득이 어려워진 고려인동포를 지원하는 이 법률안은, 그 대상을 ‘농업이민, 독립운동, 강제동원 등으로 구소련 지역으로 이주한 자와 그 친족으로 현재 당해 지역에 거주하는 자’로 하고 있다.
 
사살상 사할린동포도 여기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이에 정의화 의원의 개정안은 이 법률에 사할린동포가 포함되는 것을 분명히 하고, 현지에서 의료 지원, 한글교육 등 문화사업과 역사적 자료의 수집, 보존, 관리, 전시 등 기념사업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외교부는 또 “지원대상을 사할린동포의 직계비속 1명과 배우자까지 확대하는 경우, 국적국인 러시아, CIS(인구감소를 우려해서)와의 외교적 마찰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영주귀국 대상을 확대하는 것이 특별법 제정의 최대 걸림돌이다. 아니, 사실은 당연히 해야 할 지원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는 행정부의 행태가 최대 걸림돌이라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외교 마찰을 걱정해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는다는 것은, 가족과 헤어져 외로움과 고통을 호소하는 영주귀국 사할린동포들의 삶을 외면하는 것이다. 외교 마찰을 해결해야 할 책무를 가진 외교부가 되레 그 이유를 들어 반대하고 있으니, 어느 나라 외교부인지 헷갈릴 정도이다.
 
심지어 외교부는 국회 관련 소관위원회를 보건복지위원회로 변경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한다. 영주귀국 및 국내정착 지원 관련 주요 업무와 예산이 보건복지부 소관이라는 이유에서다. 사할린동포 문제는 사할린 잔류동포지원, 영주귀국 및 국내정착, 대일본 개인청구권 문제 등 외교적 사안이 산적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진행중인 한일 공동의 영주귀국 사업으로만 사할린동포 문제를 협소화시키는 것은 외교부 측의 표현대로, ‘바람직하지 않다!’
 
한국의 외교와 비교되는 패전국 일본의 외교
 
일본은 2차대전 이후 패전국의 입장에서, 이후 일-소 국교 수립 등 크게 두 번에 걸쳐 자국민을 귀환시켰다. 게다가 일본은 자의로 사할린에 잔류한 자국민에 대해서까지도 관련법 제정을 통해 귀환사업을 계속하고 있으며, 그 자손들도 영주귀국 대상에 포함시켰다. (중국잔류방인 등의 원활한 귀국의 촉진 및 영주귀국 후 자립지원에 관한 법률. 1994년)
 
그렇다면 일본은 과연 외교적 마찰을 어떻게 피했을까? 일본과 한국의 국력 혹은 국격의 차이인가? 물론 국제사회에서 제국주의 시대를 거쳐 지금까지 이어온 일본의 외교력은 한국과 차이가 있을 수 있겠지만, 대한민국이 아직까지도 재외동포를 보호하지 못할 만큼 굴욕의 시대를 지내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사할린동포들 중에는 이 법률에 따라 일본으로 귀환을 결정한 사례도 있다. 한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조부모가, 큰아들 부부와 손자 두 명과 함께(총6명) 일본으로 영주귀국한 사례이다.(KBS스폐셜 “사할린 25시” 2005년) 오랜 시간 한인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왔지만, 이제는 더 이상 한국 이름으로 살 수 없게 된 이들에게 대한민국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일본과의 과거청산, 한일관계 재정립의 계기 삼아야

▲ 안산 고향마을에 있는 동상. 제목 "기다림"   
 
현재 한일 적십자에 의해 진행되고 있는 영주귀국 사업은 일본의 ‘인도적’ 지원이 포함되어 있다. 사업의 시작은 1994년 “무라야마 담화”로 대표되는 일본의 과거청산 분위기와 관련이 있다. 사할린 문제를 적극 해결하려는 일본 정부여당의 움직임으로, 영주귀국뿐만 아니라 사할린 현지에 문화센터 건립도 결정되었다. 또 사할린 잔류 한인들에 위로금을 지급한 것도 언론에 보도될 정도였다.
 
그러나 일본 정부의 과거청산 움직임은 다시 보수정권이 들어서면서 점차 용두사미로 전락해버렸다. 영주귀국에 대한 ‘인도적’ 지원도 예산 문제를 들어 그 규모가 대폭 축소되었다. 이처럼 법적 책임을 회피한 채 진행되는 ‘인도적’ 차원에서의 지원은, 일정한 규모의 지원을 보장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2005년 한국 정부는 사할린동포 문제가 한-일 청구권 협정 대상에서 제외되었다고 확인하였다. 그러나 이와 관련하여 최근 사법부의 판단은 그 파장이 크다. 2011년 헌법재판소는 대한민국 정부가 위안부 피해와 관련하여 별다른 외교 조치나 해결책을 강구하지 않는 것에 대해 ‘위헌’임을 결정했다. (2011. 8. 30.자 2006헌마788) 영주귀국 사할린동포 2천5백명도 강제 저금과 미수금의 대일 청구권에 대하여 유사한 소송을 진행 중이다.
 
그리고 2012년 대법원 판결에서도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개인청구권은 한-일 청구권 협정에 의해 소멸된 것이 아니며, 대한민국의 외교적 보호권도 포기되지 않았음을 밝혔다. (2012. 5. 24. 선고 2009다22546)
 
사할린동포 문제를 포함하여 일본과의 과거청산 문제가 새롭게 대두되는 이 시점에서, 특별법 제정을 통해 한국정부가 사할린동포 문제를 적극 해결할 때에야 비로소 일본과의 외교 협상도 떳떳이, 공정하게 임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안산고향마을에는 김포, 천안, 부산, 오산, 화성, 원주, 인천 등 전국에 계시는 영주귀국 사할린동포 지역모임 회장들이 모였다. ‘전국 사할린 귀국동포단체 협의회’ 회의에 참석한 것인데, 안건 중 하나가 국무총리 면담 신청에 관한 것이었다. 앞으로 이들은 특별법 통과를 위해 국무총리 면담 신청을 시작으로 국회의장, 여야 대표 및 소관위원회 국회의원들도 만난다는 계획이다. 이들의 발걸음이 헛되지 않도록 행정부도, 국회도 지혜를 모아야 할 때이다.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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