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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감성 충전

지리산 종주: 산과 사람을 생각하다

그 여자들의 물결 일다 2008. 11. 24. 15:53

한치 앞도 보이지 않은 어두컴컴한 산속 길.
수십 명의 사람들이 머리에는 헤드라이트를 두르고 손에는 전등을 들고서 천왕봉으로 향하고 있었다. 살을 에듯이 바람은 날카로웠다. 그 속에 우리 11명의 일행들이 오르고 있었다. 헉헉대는 숨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오르막의 산길은 힘들었다. ‘앞이 보였다면 조금은 더 빠른 속도로 올라갈 수 있었을 텐데.’ 마음을 위로하며 천천히 올랐다. 푸르스름한 새벽기운이 느껴질 때쯤 드디어 천왕봉에 도착했다. 정말 내가 종주를 했구나 하는 기특함으로 스스로를 칭찬했다.
‘잘했다. 야리’. 가슴이 뭉클해져 왔다.
 
종주의 기쁨이 큰 만큼 아쉬운 하산 길
 

천왕봉에서 선명하고 맑은 일출은 보지 못했다. 날이 훤하게 밝아오자 우리는 하산을 결정했다. 배낭을 챙겨 매는데 ‘천왕봉’이라고 새겨진 돌덩이가 하나가 보였다. 그 돌덩이를 안으며 많은 사람들이 기념촬영을 했다. 그런데 그 기념비는 어딘지 모르게 이 천왕봉과 어울리지 않았다. 꼭 이 한가운데 돌덩이를 앉혀야 했는가 하는 불쾌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빤히 기념비를 쳐다보고 있으니 누군가가 이야기했다. “지리산에는 음기가 많아 ‘양기’가 있어줘야 음양조화를 이룰 수 있다고 판단한 옛사람들이 기념비를 박았대.”
그래 생각났다. ‘12년 동안 교과과정이 나에게 음양조화를 강조했었지. 왜 우리는 음양의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것이 이치라 여겼을까?’
 
3일 전, 우리는 전남 구례에서 지리산을 올랐다. 그러나 하산은 경남 진주로 하기로 했다. 어차피 길이 그렇게 나있었다. 3일 동안 오른 산을 5시간 만에 하산한다는 말에 어이가 없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금방 내려가 집으로 갈 수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급경사의 하산 길은 점점 지리산을 멀게 만들었다. 아쉬운 마음으로 내려온 길을 되돌아보고, 천왕봉을 올려다 보기도 했다. 가을이 한창이던 지리산의 산새를 다시금 떠올려보기도 했다.
 
올라갈 때는 언제나 대장 다음이었건만 내려올 때는 맨 끝 순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지리산 계곡을 따라 흘러내려온 도로 가에 있는 냇가에 앉아 신발을 벗고, 4일 만에 물속이라는 곳에 발을 담그며 청산유수를 외치고 있었다. 그렇게 신나 보일 수가 없었다. 물은 이가 시리도록 차가웠다. 그래도 시원했던 지라 아마도 꽤 오랫동안 멍하니 그렇게 앉아 있었던 것 같다. 내가 내려왔던 길을 다시 올려다 보며 종주=완주했다는 뿌듯함을 가졌다.
 
산행과 나, 몸이 기억하고 그리워하다
 
어릴 적 아버지의 반협박적인 강제산행으로 나는 산을 싫어하게 되었다. 중고등학교 시절 산이라면 기겁을 했더랬다. 청소년문화활동을 해오던 시민단체에서 3년 동안 활동가로 있으면서 자주 산행을 했었는데, ‘공동체’라는 이름으로 크리스마스 기념산행, 연말 기념산행, 야간산행을 간간히 했었다. 그때도 공동체의 구성원이 되기 위해 억지로 산행을 했었다. 산행 속도가 맞지 않아 애를 참 많이 태웠다.

 
그리고 3년 전 10일 동안의 히말라야 트래킹으로 결정을 내렸다. ‘다시는 산을 오르지 말아야겠다.’ 이때까지만 해도 산은 나에게 협박했고 강요만 했었다. 숨이 차오르는 것이 싫었고, 다리가 뻐근한 것이 귀찮았다. 앞사람을 못 쫓아가 힘들고 뒷사람을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해야 하는 감정이 싫었다. 산도 나도 서로를 좋아하지 않는다 생각했었다.
 
그러다 작년 여름휴가 때 산책이나 하자고 했던 것이 뒷산을 정상까지 오르게 하는 일이 발생했다. 온몸을 적셨던 땀과 숨가쁨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내가 자발적으로 산을 올랐다는 사실에 스스로 놀랐다. 누가 시켜서는 절대로 잘 되지 않는다. 나의 몸은 그 땀을 기억했고 그리워했다. 그래서 그 이후 산을 찾기 시작했다. 친구를 꼬드겨 산을 가자고 말하는 내가 되었다.
 
꼭 한번은 지리산에 오르고 싶었고 이왕이면 종주를 하고 싶었던 소망이 이루어졌다. 지리산이 나를 애타게 찾지 않았는데 나는 그녀를 찾아왔고, 그녀가 나를 안아줬다가 무사히 보내주니 그 또한 감사했다.
 
하산하고 마지막 밥상에서 나눈 이야기
 

산을 내려와 마지막 밥상에 우리는 둘러 앉았다. 산행 중에 술을 먹지 않던 지나지산과 초롱아빠도 소주 한잔을 받아 마셨다. 한잔씩 마시던 술로 취기가 돌았다. 누군가가 이야기했다. “지리산을 오르기 전, 나는 뭔가를 버리고 오자 결심했고 그렇게 할 줄 알았어. 그런데 지금 보니 버리고 온 것이 아니라 가져온 것 같아.” 눈물이 그렁그렁거렸다.

 
그 말에 생각했다. 나 역시 뭔가를 버리고 왔어야 했는가? 종주를 한다는 생각밖에는 나에 대해서 구체적인 어떤 계획을 하지 않고 산을 오른 내가 허술해 보였다. 혼자서 이런저런 생각으로 가득 차있는데 다른 사람이 이야기했다.
 
“그저 산이 좋아 오르면 되는 거야.” 그래 그 말도 맞았다. 산이 좋아 오르면 되는 것이었다. 나는 내 생각을 입 밖으로 꺼냈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왔고, 그리고 오르기만 했어요. 그 지리산을 내가 종주했다는 것에 가슴이 벅차 올라요. 그러면서 참 생각이 많아요.”
 
그 생각이라는 것은 사람관계에 대한 것이었다. 11명이 함께 지리산 종주를 했다. 같은 길을 걸었고 같은 대피소에서 나란히 누워 4일을 함께 보낸 사이였다. 그러나 자신의 배낭은 자신이 매고 올랐고 무릎, 발목, 허리의 통증은 개인이 감당해야 했다. 급경사의 오르막길을 만났을 때 치고 올라가는 것을 선택하거나 간간히 쉬며 오르는 것을 선택하는 것은 나 자신이었다.
 
6명의 한 팀과 5명의 한 팀으로 구성되어 올랐지만 다른 팀도 아닌 같은 팀인 짱가, 동점, 초롱아빠와 그리 많은 대화를 한 기억이 없다. 지금 생각해보니 나는 오르기에만 급급했던 것 같다. 제대로 지리산에 안기지 못했음을 시인한다.
 

우리의 산행은 매주 계속된다
 
동점, 지나지산, 짱가, 초롱아빠 그리고 나는 여전히 매주 화요일마다 도봉산을 오른다. 가끔 다른 산을 오르기도 하지만. 지난 주 화요일도 어김없이 도봉산을 찾았다. 도봉산은 낙엽의 강이 흐르고 있었다.
 
이제는 곧잘 이야기도 하는 야리가 되었다. 힘들다 이야기도 하고 스스로 잘 오른다 칭찬도 한다. 반드시 같은 생각으로 산을 올라야 한다는 법이 없다는 것도 안다. 잘 오를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같은 길을 가는 사람들이 있어 좋다고 생각하니 그저 좋다. ‘결국은 혼자야’라고 궁상 떨며 산을 타지는 않는다.
 
우리 일행이 열심히 산을 타서 겨울 지리산 종주도 함께 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여성주의 저널 일다] 안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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