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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스무살 여연의 공상밥상
(7) 감자전병과 즉석피클 
 
홈스쿨링과 농사일로 십대를 보낸, 채식하는 청년 여연의 특별한 음식이야기. 갓 상경하여 대도시 서울의 일상 속에서 펼쳐지는 스무살 청년의 음식을 통한 세상 바라보기, 좌충우돌 실험 속에서 터득한 ‘여연표’ 요리법을 소개합니다. www.ildaro.com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해!
 
혼자 있을 때 나는: 늦잠을 잔다. 배 위에 책을 가득 쌓아놓고 한 권 한 권 읽어나간다. 활 자세를 한다. 맛있는 걸 만들어 먹는다. 손톱을 정성스레 갈아서, 기타를 친다. 주변을 청소한다. 생 당근을 오독오독 씹어 먹는다. 해바라기씨를 한 알씩 집어먹는다. ‘왕좌의 게임’을 본다. 목욕탕에 간다. 시장구경을 하러 간다. 가만히 누워서 몇 시간이고 천장을 바라본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머릿속에서 생각들을 데굴데굴 굴리면서.
 
“혼자 있을 때 자신이 버려졌다고 생각하지는 말아요. 서울에서는 참 그러기 쉽지만.”
 
하지만 사실은 반대였다.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을 하루 중에서 가장 즐기고, 필요로 한다. 그러나 내가 지내는 공간은 늘 사람들이 드나드는 곳. 혼자가 되고 싶어도 그러기 어렵다. 처음에는 도서관에서 꽤 많은 시간을 보냈다. 밤에 잠을 안자고 억지로 혼자 있는 시간을 만들어보기도 했다. 아니면 목적지 없이 멍하니 버스를 타고 서울을 가로지르거나, 작은 카페들을 탐험했다.
 
날씨만 좋다면 바깥으로 나가는 것도 혼자 있는 시간을 충실하게 보내는 방법이다. 몇 달 전 어느 조용한 주말 오랜만에 근처 뒷산으로 산책을 나갔었다. 아직 그늘진 곳에는 눈이 그대로 쌓여 있는 쌀쌀한 초봄이었다. 햇볕이 참 따끈따끈한 날이어서, 양지바른 곳에서 녹아내린 눈이 신발을 진흙투성이로 만들었다.
 
사물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며 걷기

▲ 나의 서울 생활은 늘 사람들로 북적인다. 그 속에서 나는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기 위한 나만의 방법들을 찾는다.  ©촬영- 안준혁  
 
산책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까치 한 마리가 마른가지를 입에 물고 날아가는 모습을 봤다. 까치는 근처 나무에 내려앉았다. 그 나무 위에서는 아직 덜 지어진 둥지를 또 한 마리의 까치가 지키고 있었다. 내친김에 걸음을 멈추고 까치집이 있는 나무가 잘 보이는 벤치 위에 드러누웠다. 아직 약간 싸늘한 느낌이 드는 바람이 얼굴, 가슴, 배, 다리를 훑고 지나간다. 따뜻한 햇살과 차가운 바람의 적절한 조화가 기분 좋아서 괜히 웃음이 났다.
 
까치들 중 한 녀석이 자기 몸보다 더 기다란 나뭇가지를 부리에 물고 대담하게 둥지를 향해 출발했다. 가지 가운데를 물어야 하는데 약간 아래쪽으로 쏠려서 위태위태하다. 둥지까지 거리는 대략 어른 키의 세 배 정도, 간간히 나뭇가지 위에서 쉬어가는 까치는 힘에 겨워 보인다. 갑작스럽게 바람이 쏴 불었다. 날아가던 까치의 몸이 흔들리면서 몇 십 센티쯤 밑으로 추락하는가 싶었다. ‘가지를 놓아버려! 위험하잖아!’
 
하지만 녀석은 끝내 부리를 열지 않고, 휘청거리면서도 안간힘을 다해 날개를 퍼덕였다. 순간적인 그 힘 덕분에 까치의 몸이 위쪽으로 확 튀어 올랐다가 무사히 보금자리로 날아 들어갔다. 녀석은 적절한 장소에 가지를 끼워 넣고, 튀어나온 부분을 다듬으면서 둥지를 정리했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욕심꾸러기 같으니라고. 그렇지만 너도 한 번 시작한 일을 쉽게 포기하지는 않는구나.’
 
두 마리 까치는 삐져나온 가지를 부리로 부러트려서 모양을 전체적으로 둥그렇게 만들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문득 궁금해졌다. 새들은 왜 집을 저런 모양으로 만드는 걸까? 혹시 둥근 곡선의 아름다움을 아는 걸까? 하지만 곧바로 내 생각이 바보 같아서 피식 웃고 말았다. 당연히 실용적인 이유가 있겠지. 가지들이 삐져나와 있으면 둥지에 들어가다가 찔릴 수도 있잖아? 바깥에는 두툼한 가지들을 써서 삐쭉빼쭉하지만 안에는 마른 풀잎과 솜털로 부드럽게 새끼들을 위한 방을 만들어 놓았을 것이다. 잠시 새둥지 속에서 태어나서 자랄 아기새의 기분을 상상해 본 다음 다시 걸음을 옮겼다.
 
몇 발짝 가기도 전에 나무 뒤에서 뭔가 까만 물체가 아른거렸다. 고양이었다. 영양 상태가 좋은지 털에 윤기가 자르르 흘렀다. 녀석은 쏘아보는 것 같기도 하고, 경계하는 것도 같고, 관찰하는 걸로도 보이고, 심지어 무심한 듯도 한 고양잇과 동물 특유의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참을 서로 바라보면서 고양이도 나도 얼음땡 놀이라도 하는 듯 꿈쩍하지 않았다. 나는 손끝도 움찍거리고 눈도 깜빡였지만 녀석은 정말 수염 한 오라기, 뾰족한 귀털 하나도 까딱하지 않았다.
 
그런데 고양이 뒤에서 문득 뭔가 움직였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줄무늬가 뚜렷한 노란 고양이와 줄무늬가 희미한 노란 고양이가 나른하게 기지개를 펴고, 털을 핥기도 하면서 햇볕을 쬐고 있었다. 두 마리 다 움직이지 않으면 누런 잔디와 잘 구분이 가지 않았다. 말라붙은 잔디 위에서 숯처럼 빛나는 검은 털의 고양이 한 마리와, 노랗게 빛나는 고양이 두 마리의 모습은 내게 왠지 모를 강한 인상을 남겼다.
 
혼자 있으면 차분해진다. 차분해지면 다른 생물들과 주의 깊게 만날 수 있다. 사물들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 내 일상을 돌아보고, 주변 사람들의 존재를 고마워할 수 있다.
 
홀로 있는 시간의 ‘맛’을 아는 시인들의 노래
 
홀로 있음에 대해 노래한 시들이 있다. 나는 고독의 맛을 아는 시인들의 시를 아주 좋아한다.
 
혼자 있음을 가장 잘 표현한 시인은 아무래도 백석인 것 같다. 가장 고독하다고 느꼈을 때 나는 백석의 시들, 그중에서도 ‘반찬친구’ 라는 뜻인 <선우사>라는 시를 정신없이 사랑했었다. ‘낡은 나조반에 흰밥도 가재미도 나도 나와 앉아서/쓸쓸한 저녁을 맞는다’로 시작해서 ‘흰밥과 가재미와 나는/우리들이 같이 있으면/세상 같은 건 밖에 나도 좋을 것 같다’로 끝나는 이 시는 지금도 가슴을 찌르르 울리는 힘이 있다.
 
영국 현대시인 테드 휴즈(Ted Hughes)의 <생각-여우>라는 시도 매력적이다. 한밤중에 글 상이 떠오르는 순간을 살그머니 다가오는 여우로 묘사하다니! 그의 삶과 생각에 모두 공감하기는 어렵지만, 읽을 때마다 감탄이 나오는 아름다운 시다.

한밤중 이 순간을 숲 속이라 상상해 본다.
외로운 탁상시계와
백지 위를 움직이는 내 손가락
그것 말고도 살아있는 무엇이 있다.
(...)
어둠속 눈처럼 차갑고 예민한
여우의 코가 가지와 잎을 건드린다
두 눈이 움직임을 이끌면서, 여기,
여기, 또 여기, 또 여기
(...)
돌연 훅 하고 싸한 여우 냄새를 풍기며
내 머릿속 어두운 구멍으로 들어온다
창밖엔 여전히 별이 없고 시계는 째깍거린다
백지는 글로 채워졌다
 
     -테드 휴즈, <생각-여우> 부분

황인숙 시인의 시들에서도 고독의 냄새가 난다. 사물과 다른 생명에 대한 주의 깊은 사랑. 외로움과 약간의 슬픔, 하지만 시인은 당당하게 감정과 대면한다.

보라, 하늘을.
아무에게도 엿보이지 않고
아무도 엿보지 않는다.
새는 코를 막고 솟아오른다.
얏호, 함성을 지르며
자유의 섬뜩한 덫을 끌며
팅! 팅! 팅!
시퍼런 용수철을 튕긴다.
 
     -황인숙 <새는 하늘을 자유롭게 풀어놓고> 전문
 
오직 나만을 위한 음식을 만드는 즐거움
 
혼자 있을 때 오직 나만을 위해 음식을 만드는 즐거움을 빼놓을 수 없다. 그럴 때 나는 부엌에 있는 재료로 간단하고 영양가 있는 음식을 해먹는다. 혼자서 괜히 그럴싸한 걸 만들어 먹겠다고 계획을 빡빡하게 세우다가는 나중에 지쳐 나가떨어지는 수가 있기 때문이다. 어느 날은 감자를 갈아서 기름에 부친 다음, 김치를 넣고 돌돌 말아서 전병을 만들었다. 냉장고에 있는 야채로 재빨리 즉석피클을 만들어서 곁들였다.

▲ 혼자 있을 때, 오직 나만을 위한 음식을 만드는 즐거움도 빼놓을 수 없다. 부엌에 있는 재료로 만드는 간단하고 영양가 있는 음식, 감자전병과 즉석 피클.     © 여연 
 
*감자전병 만들기(2개 기준)
 
재료: 중간 크기 감자 6알, 밀가루 2/3 컵, 잘 익은 김치, 파, 소금, 후추, 통깨, 말린 바질 약간
 
껍질을 벗긴 감자를 강판에 갈아서 소금과 후추, 밀가루를 섞는다. 따뜻한 물을 약간 더 넣고 팬케이크 만들 때처럼 묽은 반죽을 만든다. 프라이팬에 기름을 살짝 두르고 달궈놓는다.
 
반죽을 국자로 퍼서 프라이팬 안쪽부터 조심스럽게 붓는다. 불을 약하게 줄이고 동그란 모양으로 전병을 굽는다. 전병이 두꺼우면 김치를 말 때 갈라지고, 너무 얇으면 찢어지기 쉽다.
 
그 동안 다른 팬이나 냄비에 들기름을 약간만 두르고, 쫑쫑 썬 김치를 볶는다. 다 익으면 파를 썰어 넣고 약간 더 익힌 다음 불을 끈다. 감자전병을 팬에 그대로 놓고, 한 쪽에 김치를 올린 후 계란말이 만들 때처럼 돌돌 만다. 말면서 부서지고 김치가 삐져나오면 반죽을 조금씩 더 발라서 약한 불에 다시 굽는다.

전병이 완성되면 썰어서 접시에 놓는다(팬을 기울여서 미끄러트리면 모양을 유지할 수 있다). 말린 바질 잎과 깨를 뿌려 낸다.
 
*즉석피클
 
재료: 사과, 오이, 샐러리, 식초, 유자청, 통깨
 
준비한 사과와 야채들을 손가락 한 마디 정도로 썬다. 식초와 유자청을 2:1 정도 비율로 섞어서 썰어놓은 야채에 뿌린다. 마지막에 깨를 넣고 버무린다. 5~10분 정도 식초가 스며들도록 놓아둔 다음 차갑게 해서 먹는다.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만화 <두 여자와 두 냥이의 귀촌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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