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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갈등으로 후유증 겪는 아이들을 위하여
혼인으로 구성된 가족이 배우자 사이의 갈등으로 헤어질 수 있습니다. 이 때 가족구성원으로서 아이들도 충분히 배려 받아야 한다는 사실에 모두 쉽게 동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배우자와의 이별이 당사자들에게 워낙 큰 스트레스이다 보니, 아이들에게 관심을 쏟기란 쉽지 않습니다.
부모의 갈등이나 헤어짐으로 상처와 혼란에 휩싸인 아이들을 만나게 됩니다. 물론 부부 사이에 갈등이 있다거나 서로 헤어지게 된다고 해서, 아이들에게 항상 문제가 일어난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더군다나 ‘아이 때문에’ 부부갈등을 덮어두고 사는 것은 부모 당사자들의 심리적 건강에 해로울 테니까 이도 좋은 해결책이 아닌 듯싶습니다.
또 많은 경우 우리는 특정 양육자가 부재하다는 데서 문제의 원인을 찾으려 합니다. 엄마 없는 아이 혹은 아빠 없는 아이, 혹은 이혼한 집 아이라서 말썽을 예상합니다. 그런 생각 자체가 이별의 슬픔을 곪게 하는 원인인 점은 알아채지 못한 채 말이지요.
이별 사건의 후유증은 헤어지는 고비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었는가에 따라 달라집니다. 분명히 이별이 더 나은 선택이었을 때, 수많은 다른 이별에서 그러하듯이 마음 다치지 않게 잘 이별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면 아이들은 괜한 편견으로 상처받지 않을 수 있습니다.
부모가 정직한 모습을 보이는 일이 중요해
부모가 아이들에게 얼마나 진실하게 대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아이들의 혼란스러움을 보살펴줄 수 있는가를 짚어본다면 아이와 함께 고비를 넘겨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부모가 양육자의 입장에서 현명하게 상황을 극복할 수 있다면, 아이의 고통도 덜하고 한편으로는 아이의 혼란스러움으로 인해 부모의 고통이 가중되는 상황도 예방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 부모는 아이에게 별거와 이혼이 무엇인지, 그리고 부모의 솔직한 심정이 무엇인지 숨기게 됩니다. 대개 어린아이일수록 이해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에 설명을 빠뜨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때로 부모 자신이 좌절감이나 수치심에 빠지고 주변의 비난이 거세지면, 가족이 헤어진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금기시되기도 합니다. 덮어둔 경우에 아이는 갖가지 고민에 빠집니다. 나 때문인가 죄책감에 휩싸일 수도 있고, 분노를 품으면서 우울해 질 우려도 있습니다.
아이가 이해하고 소화할 수 있는 수준에서 부모가 정직한 모습을 보이는 일이 중요합니다. 쉬운 말로 얘기해줬을 때 아이는 놀라운 이해력과 공감능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부모가 놀랄 정도로요.
첫 번째로 별거를 설명해주고, 시간이 지난 뒤에 이혼을 설명합니다. 별거 혹은 이혼의 뜻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알려줍니다. 별거를 시작하면서부터 별거가 무엇인지, 또 일이 잘 풀리지 않아 이혼이 결정되면 이혼이 무엇인지 설명해주어야 합니다. 한번으로 그치지 말고, 아이가 확실히 이해할 때까지 반복적으로 말해줍니다.
아이가 언제든 궁금한 점은 질문할 수 있도록 부모가 마음을 열어두는 것이 필요합니다. 시시콜콜한 아이의 걱정을 모두 정리해주십시오. 학원은 누가 데려다 주냐고 묻는 아이에게 지금 그게 중요하냐고 혼내기보다는, 학원은 누가 데려다 줄거니 걱정 말라고 하는 게 더 좋겠지요.
이때 가장 중요하게, 부모가 헤어진 상황에서 아이가 전혀 책임이 없다는 사실을 정확히 전달해야 합니다. 아이들은 정서적으로 힘든 상황에서 대체로 자기 탓을 하게 됩니다. 만약 헤어지기 전에 아이 학교성적으로 부모가 싸우는 모습을 보였다면, 혹시 아이가 동생과 싸우고 난 뒤에 그랬다면, 아이는 자신이 모자라고 못된 아이라서 부모가 헤어지게 되었고, 부모가 자기를 버릴 거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부모는 이를 점검하고, 아이를 안심시켜주는 일을 주저하지 말아야 합니다. 만약 아이가 이런 짐을 안고 크게 된다면, 감정을 표현하거나 인간관계 안에서 이별을 다루는 방식에 서툴러질 수 있습니다.
상대 배우자를 비난할 때 아이가 느끼는 압박감
그렇다고 부부갈등의 적나라함이나 부모가 서로에게 가진 적대감과 애증을 낱낱이 들춰내서는 절대로 안됩니다. 가장 안타까운 상황은 부모가 자기 상실감을 아이에게서 보상받으려 할 때 발생합니다. 만약 부모가 사랑을 잃은 자기 슬픔을 외면하기 위해서 아이를 자기 편으로 끌어당기고 상대 배우자를 비난하게 된다면, 아이는 극심한 혼란스러움에 빠질 수 있습니다.
어린아이일수록, 부모를 각기 독립적인 사람으로 간주하지 못하고 부모 말에 쉽게 좌우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어른들 문제는 아이가 판단할 수준을 훨씬 넘어서는 복잡하고 압도적인 것들인지라, 아이는 부모의 비난과 편가르기에 휘말리면서 자율적인 생각을 유지하지 못합니다.
특히 아이는 부모에게서 버림받을까 두려워 최대한 혼란을 숨기고 특정 부모 편을 들 수밖에 없습니다. 스스로 감당할 수 없을 때조차 특정 부모를 보호하거나 의리를 지켜야 한답시고 괜한 책임감을 지려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아이들은 자기 고통과 욕구를 숨긴 채 타인에게 헌신해야 한다는 압박감 속에서 자라기 쉽습니다.
아이의 정체성이나 사회성 발달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칩니다. 만약 엄마가 아빠를 나쁜 사람으로 매도한다면 남아는 건강한 남성역할을 배울 수가 없습니다. 때로는 남자인 자신을 비난할 위험도 있습니다. 만약 아빠가 엄마를 비난한다면 여아는 엄마와 닮은 자기 속성을 부정하면서 자신을 깎아 내릴지 모르고, 훗날에 사람과 만나고 헤어질 때 드는 감정을 감당하지 못해 힘들어할 수 있습니다. 부모의 부부관계가 성인이 된 아이에게 슬프게 기억되지 않는 편이 좋겠습니다.
부모가 아이를 위해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상대 배우자를 아이양육자로서 대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이를 위한 상대 배우자의 마음은 최대한 아이에게 전달해주고, 아이가 느낄 수 있도록 배려한다면 내가 좋은 부모라는 자신감도 커질 수 있습니다.
상실감 극복할 수 있도록, 아이만의 심리적 공간 허용해야
그러나 이해는 할 수 있다 하더라도, 아이는 통제감을 잃은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아이에게 부모의 이별이란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입니다.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부모가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할 때 드는 무력감이란 보통이 아니겠지요. 그래서 임상심리학자들은 일상의 다른 영역에서 아이의 통제감을 회복시켜주라 말합니다. 이를테면 위험하지 않는 한 아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무언가를 남겨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헤어짐이라는 상실감을 서서히 극복할 수 있는 시간을 줍니다. 마치 아기에게 ‘젖떼는 시기’가 필요하듯이, 매일 보던 엄마나 아빠를 못 보게 되었을 때 겪는 상실감을 대체할 수 있는 여유를 주십시오. 헤어진 엄마의 물건을 가지도록 허락한다든지, 아빠를 상징하는 물건을 지니고 다닐 수 있도록 해준다든지 말입니다. 아이가 애착하는 물건을 절대로 훼손해서는 안됩니다. 언제든 양 부모와 접촉할 권리를 당연히 주어야 하고, 아이의 심리적 공간도 그대로 허용해야 합니다. 가능하지 않을 경우에는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도록 설명해주어야 합니다.
무력하게 부모를 빼앗겼다거나 부모에게서 버림받았다고 느끼면 깊이 분노가 자라날 수 있습니다. 화가 나서 하지 않던 말썽을 저지르기도 하고 갑자기 애기가 되어서 칭얼대거나 때로는 배변을 못 가리는 경우도 생기지요. 이 분노 표현과 실수 중에서 혼낼 것과 감싸줄 것을 현명하게 가리는 어려운 일을 부모가 해주면 좋겠습니다.
말썽은 표면일 뿐이고 이면에 놓인 다른 이유를 찾아보아야 합니다. 이러한 화는 실은 아이 스스로도 잘 모르는 우울이나 상실감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빠가 보고 싶어서 슬픈 아이는 엄마에게 못되게 구는 방식으로 슬픔을 표현하게 됩니다. 엄마가 그 속마음의 슬픔을 감싸주면서 아빠가 보고 싶은 마음을 인식하게 해주고, 이를 화나 말썽으로 표출하기보다는 말로 슬픔을 표현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준다면 최선이겠습니다.
재혼하는 상황도 마찬가지입니다. 재혼 당사자들은 서로에게 익숙하겠지만 아이들은 응당 낯설게 느낍니다. 신중한 설명과 허용, 그리고 아이들에게 심리적 여유를 누릴 권리를 인정해 주는 것을 잊지 말아주십시오.
헤어진 당사자로서 스트레스가 이만저만 아닐 터이지만, 가파른 길 오르는 중에 아이 손을 단단히 잡아주세요. 내가 내 아이를 보호하고 있다는 느낌을 경험할 수 있다면 아마도 더 기운이 날 겁니다. 한편으로는 사랑을 잃었지만 다른 사랑을 찾으시길 바라며, 아이와의 사랑도 오래도록 든든히 지켜가시기를 기원합니다.
ⓒ www.ildaro.com [일다] 최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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