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그녀 매력에 반하다

“난, 사돈 같은 거 안 만들 거야”

그 여자들의 물결 일다 2013. 3. 13. 08:00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까페 버스정류장
] (14) 명절의 카페 풍경

[경북 상주시 함창읍 함창버스터미널 맞은편에 있는 “카페 버스정류장” 이야기.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머무는 이 까페의 문을 연 박계해 선생님은 “학교를 떠나 산골로 들어간 한 여자의 귀촌일기” <빈집에 깃들다>의 저자입니다] www.ildaro.com 

▲  겨울의 까페 버스정류장  입구   © 일다 
 
구정 다음날, 작년처럼 고향에 온 사람들이 카페에 많이 들릴 거라는 예상은 빗나갔다. 혜숙언니가 종일이다시피 소파에 앉았다 누웠다 하며 ‘아, 너무 좋다. 내가 이 카페 때문에 상주로 귀농을 결심했다니까’ 하고 치사라도 해주지 않았다면 억울할 뻔했다. 주말열차를 타고 동해 바다를 보러 가리라는 생각을 접고 문을 연 것이었으니까.
 
혜숙언니의 남편은 공무원으로 올 유월에 정년퇴직을 한다. 그래서 언니가 지난 일 년 동안 여러 귀농 강좌를 섭렵하고 귀농지를 찾아다녔다. 남편은 집에 가만히 있으면 병이 나는 사람이라 퇴직 후에 곧 할 일을 만들어두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강의 수료 시수를 일정량 채우면 정착할 때 제공되는 혜택도 있고, 무엇보다 그걸 핑계로 난생 처음 울타리 밖 생활을 즐길 수 있어 좋다고 했다. 오늘 이렇게 서울의 집을 비워두고 내려올 수 있었던 것도 상주시에서 운영하는 귀농인의 집 덕분이었다. 정착할 때까지 월세 10만원에 임시거주지로 빌려 쓰고 있는데 처음에는 강의가 있을 때만 쉼터로 삼다가 지금은 오히려 서울 집이 가끔 둘러보러 가는 곳이 되었다.
 
명절은 잘 보냈느냐는 인사에 언니는,
“몇 년 전부터는 명절이라 해도 조용해. 동서가 둘 있는데 죄다 이혼하고 별거하고... 정상적인 집은 우리밖에 없어. 그러니 오가는 사람도 없고, 우리 서방은 속상할지 몰라도 나는 차라리 편해. 이번엔 떡국 한 그릇 후딱 끓여먹고 왔어.”
 
하며 생긋 웃었다. 나는 눈을 찡긋하며 놀리듯 물었다.

“응? 알고 보면 언니네가 제일 비정상 아냐?”
 
흔히들 그렇듯 언니 역시 남편과의 성격 차로 늘 심장이 부글거리는 걸 알기 때문이다. 언니는 눈을 몇 번 깜박거리더니,

“그러고 보니 그러네, 응, 그래, 맞아, 내가 제일 비정상이야.”
 
그리곤 이어서,
“난, 울 엄마 땜에 이혼도 못해. 그런 소리하면 나보고 미쳤다고 해. 팔순이 넘은 양반을 무슨 수로 이겨먹겠어.” 했다.
 
나는 마디가 똑똑 부러지는 소리로,
“아닐걸, 엄마 때문이 아니고 안 해도 돼서 안하는 거야.” 했다.
 
언니는 한참 대답이 없더니, 그럴 거야, 라고 했다. 
 
아닌 게 아니라 사실 언니네는 지극히 정상이다. 성격 차이로 힘들어 하는 것이며, 이제 가능하면 따로 지내보려고 냉장고를 잔뜩 채워놓고 내려오는 것이며, 그 와중에도 남편이 제대로 챙겨먹는지 신경 쓰는 것까지가 다-, 중년부부의 예사로운 모습인 것이다. 그래도 당사자가 힘들다면 힘든 건 맞고, 살기 싫다면 그것 역시 이해가 된다.
힘들어하면서, 살기 싫어하면서도 미운 정 고운 정을 쌓아가리란 것까지.
 
“그 양반은 혼자서 못살아, 뭐 하나 혼자서 할 줄 아는 게 없어. 넥타이매고 출근이나 할 줄 알지, 못 하나도 못 박는다니까.”
 
“아이구, 언니, 그거, 자랑이거든.”
 
“이제 싸우기도 귀찮아서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놔둬.”
 
언니는 떠오르는 어떤 풍경을 지우려는 듯 고개를 틀며 싸늘하게 말했다. 전쟁의 책임이 어찌 한 쪽에만 있을까. 아내들도 남편들도 모두 피를 흘리고 눈물을 흘리며 이 전쟁이 끝나기를 고대하고 있다. 양쪽 다 너의 총을 내려놓아야 한다고 호소하며.
 
같이 평화롭게 사는 일이 가장 바람직하지만, 서로 전쟁을 끝내지 못하고 지나친 출혈을 감수해야 한다면 그땐 분단을 택하는 쪽이 더 나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따지고 보면 세상의 남자들은 우리의 아버지이고 아들인데, 어쩌면 나의 아들도 아내를 힘들게 할 것이고, 상심한 그녀도 내 아들을 떠날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 순간은 꼭 비극적인 풍경이어야 할까. 그들의 만남이 아름다웠던 것처럼 이별 또한 자연스럽고 따뜻하면 좋을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상처를 남기겠지만.
 
저녁을 먹으며 딸아이에게 다짐을 했다.
 
“난, 사돈 같은 거 안 만들 거야. 당연히 며느리도 사절이야. 딸의 남자, 아들의 여자라고 부를 참이니까 그렇게 알아. 명절에 내 집에 오고 싶으면 너만 와. 네가 너의 남자 집에 가는 건 상관없지만 그런 날 내 집엔 데리고 오지 마.”

“엄마, 그 말은 내가 십대 때부터 들었거든. 그리고 엄마가 명절이 어딨어? 이제 그런 거 안하잖아.”

“아, 그러네. 하하하.”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만화 <두 여자와 두 냥이의 귀촌일기> 소개

댓글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