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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감성 충전/그녀 매력에 반하다

‘독립을 축하해!’

그 여자들의 물결 일다 2013. 2. 25. 08:00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까페 버스정류장
] (13) 이혼하던 날 

[경북 상주시 함창읍 함창버스터미널 맞은편에 있는 “카페 버스정류장” 이야기.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머무는 이 까페의 문을 연 박계해 선생님은 “학교를 떠나 산골로 들어간 한 여자의 귀촌일기” <빈집에 깃들다>의 저자입니다] www.ildaro.com

2012년 12월 13일, 정오 무렵.
밀린 신문을 탁자위에 그득히 쌓아놓고 차곡차곡 읽고 있을 때 핸드폰이 울렸다. 남편이었다. 나는 보던 기사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전화를 받았다.
 
“카페는 어때, 손님은 좀 늘었어?”
“기대했던 것보단 좋아, 당신은 어때?”
“다행이다. 난 좋아.”
“밥은 잘 챙겨먹어? 혼자 지내는 거 안 힘들어?”
“어제오늘 일인가. 새삼스럽게.”
 
그리고 그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다음 주에, 이혼 신고하러 가자.” 했다.
 
나는 눈으로 더듬던 기사를 놓치며 대답했다.
“그......... 그래.”
“언제가 좋아?”
“음....... 수요일?”
“보자....... 12월 17일이네.”
 
전화를 끊고 핸드폰을 앞치마 주머니에 넣다가 바닥에 떨어뜨렸다. ‘허둥대지 말자’는 생각은 하지말자, 고 생각했다. 허둥대는 건 당연하다고.
 
수요일 오전 열한시, 그는 여느 때처럼 빈 반찬통과 선물로 들어온 샴푸며 식용유 등을 들고 나타났다. 나는 딸 나라에게 카페를 부탁하고 그의 차에 올랐다.
 
“갔다 올게.”
“잘 다녀오세요.”
“뭐 맛있는 거 사올까? 먹고 싶은 거 있어?”
“난 됐고, 두 분이서 맛있는 거 사 드세요. 기분 전환해야죠.”
 
차창 밖 나뭇가지는 바람에 마구 흔들리고 있었지만 오전 열한시의 햇살로 데워진 차안은 따뜻했다.
“법원이 어딨는지 알아?”
“상주 초입에서 왼쪽에 있는 것 같던데.”
“아, 맞아, 나도 본 것 같다.”
 
그리고 우린, 이틀이 남은 대통령 선거와, 아들이 제대한 후에 계속 대학을 다닐 것인지를 고민하더라는 등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 점심부터 먹자.”
법원 주차장에 도착하자 안전띠를 풀면서 내가 말했다. 점심을 먹기엔 이른 시간이었지만.    

우린 오분 정도를 걸어서 해물 칼국수집을 발견했다. 뜨거운 국물 때문인지 콧물이 자꾸만 맺혔고 나는 자칫 훌쩍이는 걸로 보일까봐 조심조심 잘 눌러 닦았다.    
 
접수처의 남자는 무표정한 얼굴로 우리를 쳐다보지도 않고 서류진열대를 가리켰다. 그는 이혼 란의 서류를 집어 꼼꼼히 읽더니 사인을 하곤, 서류의 맨 아래쯤에 손가락을 얹으며, 당신도 여기 사인 해, 라고 말했다. 나는 사인을 했다.
 
그가 서류를 접수처의 남자에게 내밀자, 남자는 우리가 재판을 받으러 와야 할 날짜를 적은 쪽지를 건네며 두 개의 날짜 중 어느 하루에 나오라고 했다. 쪽지에는 12월 26일과 1월 9일, 오후 두시라고 적혀있었다.
 
그날까지 열흘의 시간이 남아있었다. 카페로 보아서는 호기인 크리스마스와 연말을 코앞에 두고도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고 조용히, 나름, 자숙하는 시간을 보냈다. 
 
27년의 결혼생활 중 마지막 3년을 우리는 따로 살았고, 주변의 벗들에게서 ‘권장할 만한 태도’라고 평가받을 만큼 편안한 친구로 보냈다. 3년의 시간은, 결혼생활을 통해 점점 더 낯설어 진 그를 본래의 괜찮은 이성으로 만들어 주었지만 남은 생을 다시 부부로 살 이유는 단 한 가지도 찾지 못했다. 아, 몇 가지 이유가 있긴 했다. 부모님께 심려를 끼쳐드리지 않는 것, 남들의 입방아에 오르지 않는 것 같은, 시답잖은 이유들이.
  
12월 26일 오후 두시에 우린, 등받이가 긴 가죽의자에 나란히 앉아 판사를 바라보고 있었다. 판사는 서류에 시선을 둔 채 표정도 높낮이도 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합의 이혼입니까?”
 
우린 네, 라고 동시에 대답했고 그는 안경너머로 우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혼하셨습니다.”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대기실을 지나며 우린 쿡쿡 웃었다. 
“단어만 다르지 혼인서약이랑 비슷하네.”  
“그러게.”
 
건물 밖으로 나오자 햇살이 눈을 찔렀다. 그는 내 어깨를 툭 치며, ‘독립을 축하해!’라고 말했다. 그 순간 나는, 이 대단한 남자와 결혼했던 것이 뿌듯해서 그에게 몸을 찰싹 붙이고 팔짱을 끼었다. 물론, 그의 마음이 아플 것이므로 내 마음도 아팠다. 확신하건대 그가 이혼을 하러가자고 말한 것은, 우리 중 누구든 먼저 그 말을 하는 쪽이 더 힘들 것이어서다.
 
돌아오는 차안에서 나는 수첩에 짧은 편지를 썼지만 전해주는 대신 구겨서 내 호주머니에 넣었다.
   
취하고, 취하고, 또 취했던  당신을,
하고 싶지 않은 것은 하지 않던 당신을,
친구와 선배들을 가족보다 더 우선했던 당신을,
내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던 당신을,
돈을 벌어다 주지 않는 당신을,
 
나는 미워하고, 슬퍼하고, 아파하고, 절망하였으며,
 
아무리 큰 잘못도 품어주고,
어떤 억압이나 권위도 가진 적 없으며,
모든 것을 허용했고, 존중했고, 이해했으며,
정의롭고 투명했으며,
늘 책을 가까이 하고, 배움을 멈추지 않았던,
짐승이건 풀이건 생명 있는 것을 사랑했던,
참으로 어질고 착한 당신을,  
 
나는 존경하고, 좋아하고, 사랑했다.  
        
우리의 결혼이 그랬던 것처럼, 이혼도 가족들의 심한 반대에 부딪힐 것이다. 그래도 우린 결혼을 했고, 그래도 우린 이혼을 했다. 우리의 결혼처럼 우리의 이혼도 둘만의 일이었다. 같이 살아서 좋았고 같이 살지 않게 되어서 좋았다.
 
“잘 마치고 왔어요?”
딸아이가 물었고 우린 동시에 대답했다.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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