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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페 버스정류장] (10) 우린 시(詩)가 아닌 길을 알지 못한다 
 
경북 상주시 함창읍 함창버스터미널 맞은편에 있는 “카페 버스정류장” 이야기가 연재됩니다.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머무는 이 까페의 문을 연 박계해 선생님은 “학교를 떠나 산골로 들어간 한 여자의 귀촌일기” <빈집에 깃들다>의 저자입니다. www.ildaro.com  
 
문을 연 지 일 년하고도 한 달이 지났는데 소리 소문 없이 시작한 탓에 아직도 개업인사를 받고 있는 형편이다. 어제도 멀리 양산에 사는 지인이 화분을 안고 들어섰다.
 
“아이구, 축하합니다.”
“어머나, 어머나, 세상에....... ”
“지난달에 소식을 들었지만 시간 내기가 어렵더라고요, 남편이 상주로 출장을 간다기에 잽싸게 따라붙었어요.”
 
우린 두 팔을 휘둘러 꼭 껴안고 식지 않은 정을 확인한 다음, 차를 마시며 밀린 뉴스를 나누었다.
 
그녀와는 아이들이 초등학교를 다닐 적에 학부모이던 인연으로, 아이들 못지않은 우정을 나눈 사이다. 아이들의 정서교육을 핑계로 다섯 명의 엄마는 자연환경이 좋은 곳에 사는 연수네를 본거지로 삼아 주말학교를 만들어 모여 놀았다. 눈으로는 뛰어노는 아이들을 좇고 입으로는 교육에서부터 정치며 먹거리며 가정사까지 화제로 올려 수다를 떨었다. 봄부터 가을까지는 텃밭을 매개로 하여, 겨울에는 무논에 썰매장을 만들어 당번을 정해 데리고 다니며.

어쩌면 아이들 보다 우리가 더 엄마놀이를 즐겼던 시절이었다. 그녀의 출현으로 한 때는 나도 아이들의 엄마인 것에 최고의 가치를 두고 살았다는 생각에 새삼 안심이 되었다.
 
오후 여섯 시쯤 일이 끝난 남편이 데리러 와서 그녀는, 곧 다시 오마는 인사를 남기고 떠났다. 이렇듯 인사차 일부러 발걸음을 한 것이 두 번째의 방문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우린 또 오랜 시간을 까마득히 잊고 지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개업 인사차 들렸던 세 벗이 만든 시모임은 각별하다.

▲ 시모임이 열린 첫 날은 공교롭게도 백석 시인의 생일을 하루 앞둔 날이었다. 우리는 케이크 위에 촛불을 켜고 몇 시간 후면 밝아올 그의 생일을 축하했다. © 박계해

그들이 잘 생긴 화분과 떡을 들고 카페를 찾아온 날은 6월의 마지막 주 수요일이었다. 우리는  함께 했던 아무런 역사도 없었지만 서로를 알기위해 더 어떤 무엇이 필요 없는 관계였다. 내가 옷가게를 할 때 그들은 기꺼이 단골이 되어 주었고, 가격이며 품질도 따지지 않고 디자인과 사이즈만 주문할 만큼 나를 믿었다. 형편이 넉넉할 리 없는 내가 그저 기운내서 잘 살기를 바라던 고마운 사람들.

 
세 사람은 모두 커피를 금하는 체질이라며 권할 만한 차를 알아서 달라고 했다. 나는 노란 꽃물이 우러난 차를 각자의 잔에 따르며, 김유정의 단편소설에 ‘한창 피어 흐드러진 노란 동백꽃’이라는 문장이 나오는데 그건 이 생강나무 꽃의 다른 이름이라고 말했다. 야생화에 대해 잘 알고 있는 S가 한 마디 거들었고, 이야기는 갈매나무까지 이어졌다. 그러자  옆에 있던 J가 갈매나무는 자기가 좋아하는 백석의 시 ‘남신의주유동박시봉방’에 나온다고 했다.
 
S는 자기도 백석의 시를 좋아해서 몇 개 외우고 있는데 ‘남신의주유동박시봉방’은 다 기억날지 모르겠다고 했다. 우리는 박수를 치며 한 번 읊어보라고 졸랐다. S는 눈을 지그시 감고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하며 긴 시를 줄줄 읊어나갔다. 그러다가 마지막 즈음에  이르러 눈을 뜨더니 고개를 흔들었다.
 
나는 나머지를 들려주마고 하며 백석의 시라면 거의 전부를 다 외고 있는 M에게 전화를 했다. S는 일면식도 없는 M에게서 전화로 시의 나머지 부분을 듣게 되었고, 답례로 그에게 백석의 ‘고향’을 낭송해주었다. 나는 M에게 시를 들려주러 한 번 오지 않겠냐고 했고, 그는 당장 이번 주말에 오겠다고 했다. 그리하여 우리는 토요일 오후 4시에 첫 만남을 가졌던 것인데 그 날은 마침 백석의 100주년 생일을 하루 앞 둔 6월 30일이었다.  

우리는 나름의 지식을 동원하여 백석의 시와 그가 사랑한 자야여사 이야기도 하며 몇 시간 후면 밝아올 그의 생일을 축하했다. 첫 만남이었지만 백 개도 넘는 시를 암송하고 있다는 S와 백석의 시만으로도 밤새도록 화답할 수 있는 M덕분에 굳이 말이 필요치 않았다. 차를 마시러 왔다가 함께 자리하게 된 민지 엄마가 어느새 케이크를 사가지고 와 우리는 촛불을 켜고 생일축하 노래도 불렀다. ‘오늘은 그대의 날, 여기 그대를 위해 가난한 내 손으로 작은 촛불 하나 밝히네......’
 
그 날, 건강이 허락하지 않아 좀체 외출을 꺼린다는 S가 시모임을 제안했고 너무 무리가 가지 않게 2주에 한 번, 수요일 저녁 일곱 시에 만나기로 했다. 그 모임이 벌써 6개월에 접어들었다. S는 물론이고 J도 K도 시 암송을 즐겨하는 이들이었다. 기록하는 습관이 기네스북에 오를 수준인 J의 통계에 따르면 우리가 읊는 시는 한 번에 평균 스물여섯 개 정도라고 한다.
  
처음에 나는 그저 그들을 자주 볼 수 있으리란 사실에만 의미를 두었다. 도무지 시와는 담을 쌓고 지낸 터라 내가 외고 있는 건 고작 교과서 시 정도였고 그나마도 완벽하게 외고 있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주로 ‘개여울’이며 ‘이름 없는 여인이 되어’ 같은, 익히 알려진 시 노래를 부르는 걸로 슬쩍 순서를 넘긴 다음 그들의 낭송을 즐겼다.
 
현대시는 물론 어려운 옛시조도 줄줄 읊어대는 J와, 시의 어느 자락에서 감정을 제어 못하고 울먹일 적이 많은 감수성이 풍부한 S, 꼭 일어서서 두 손을 단전 앞으로 모으고 단어 하나하나에 숨결을 담아 들려주는 K와의 만남이 거듭될수록, 나도 시를 줄줄 외고 한 문장에 목이 메고 시를 경외하는 사람이 되리라 마음먹는다.
 
어지러운 세상사를 이야기 하다가도 ‘아, 다시 시다. 우린 시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며 시를 읊고, 캄캄한 교육현실을 이야기하다가도 ‘아, 다시 시다. 우린 시가 아닌 길을 알지 못한다’며 시를 읊는 ‘이 정한 갈매나무 같은’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누구라도 시를 사랑하지 않을 도리가 없으리라.
 
머리가 작동하려고 할 때마다 한 호흡을 멈추고 가슴으로 돌아가기를 배우는 시모임이 바로 카페 버스정류장의 목적지인지도 모른다.
 
* 어두운 시대 희망의 등불을 밝히는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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