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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이 된 이주민, 노인정책에도 ‘변화’
독일사회 50년 노동이주의 역사와 현재④ 이주와 노년

 
[유럽 최대 이민국이 된 독일의 노동이주 역사와 정책, 이주민의 현실과 독일 사회의 변화를 들여다보는 기획 기사를 4회에 걸쳐 싣습니다. 결혼이주를 통해 생겨난 다문화 가족이 최근 몇 년 급증하고, 외국인노동자 정책에 대해 인권침해 논란이 제기되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독일의 경험은 ‘국제이주’에 대한 이해를 돕는 소중한 자료가 될 것입니다.
 
필자 정용숙님은 연세대학교 사학과에서 독일사를 전공하고, 독일 보훔 대학교에서 ‘20세기 후반 노동자 가족의 사회사’에 대한 박사 논문으로 2011년 보훔 대학교 사회운동연구소가 수여하는 우수논문상을 받았습니다. 현재 한국에 돌아와 연세대 사학과에 출강하고 있습니다. – <일다> www.ildaro.com]
 
이주 1세대의 은퇴와 고령화
 
독일사회 노동이주 초기인 1960년대와 1970년대에 터키, 그리스, 유고슬라비아 등지에서 왔던 “손님노동자”는 대부분 젊은이들이었다. 여행가방 하나 들고 장밋빛 미래를 꿈꾸며 설레는 마음으로 독일 땅을 밟았던 미혼 남성, 가족을 고국에 남겨두고 홀로 건너온 기혼 남성, 그리고 소수의 미혼 여성들이었다. 대부분은 몇 년만 열심히 일해서 돈을 모아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시작된 몇 년은 몇 십 년이 되어버렸다.
 
그들이 돌아가는 대신 가족들이 독일로 건너왔다. ‘가족이주’ 단계로 넘어가면서, 수적으로 젊은 남성이 우세했던 초기 이주자 집단은 초청과 결혼을 통해 이주민 여성의 숫자가 증가하고, 현재 3세대까지 자녀 출산이 이루어지며 성비와 연령 구조가 변화하였다.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이주 1세대가 은퇴하는 시점에 이르러 최종적으로 이주자 집단의 노령화가 진행되고 있다.
 
몇 년 후 귀향하리라는 희망은 이제 은퇴 후에나 이루어질 수 있는 꿈이 되어버렸다. 그래도 많은 이주민들은 은퇴 후 노후만큼은 고향으로 돌아가 유유자적하게 보내겠다는 희망을 간직하고 고된 노동으로 점철된 삶을 버텨냈다. 그러나 그 꿈을 이룰 수 있었던 사람은 많지 않았다. 몇 십 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어느 새 자신들의 삶이 더 이상 고국이 아닌 독일 땅에 뿌리내리고 있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그들의 딸, 아들, 손자, 손녀들은 독일에서 태어나 자랐으며 앞으로도 독일에서 살아갈 것이다. 이들의 생활 터전은 독일 땅이었고, 오래 전 떠나온 고국은 낯선 곳이 되어버렸다.
 
현재 독일에 거주하는 이주민과 이주 배경을 가진 독일인은 1천6백만 명에 이른다. 이들 중 약 10%에 조금 못 미치는 수가 65세 이상이다. 독일 통계청은 이주민의 수는 앞으로도 계속 증가하여 2030년까지 2천8백만으로 늘어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주민의 고령화와 더불어 이주민 노인들의 수도 늘어날 것이다. ‘이민자’는 이제 노인 정책에서도 점점 더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이주자의 노년, 이질적 언어와 문화
 
독일에 거주하는 이주민들은 단일하거나 균질적인 집단이 아니다. 출신 국적만 봐도, 독일 내 이주민의 대명사처럼 인식되는 터키 출신은 전체의 14.2%에 불과하며 러시아 연방(8.4%), 폴란드 (6.9%), 이탈리아 (4.2%) 순이다. 이주자의 약 40%는 유럽 바깥에서 온 사람들이다.
 
이렇듯 이주민들은 세계 각지로부터 모여든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고, 이들은 다양한 문화와 종교 배경을 가지고 있다. 사회적으로도 독일어를 거의 못하는 사람부터 박사학위를 가진 학자까지, 읽고 쓸 줄도 모르는 사람부터 은퇴한 전문직업인까지 다양한 사회계층에 걸쳐 있다.
 
이주민들은 문화적으로 다양하며, 다채로운 개인사와 가족사를 가졌으며, 교육 정도나 직업 분류도 대단히 다양한 영역에 걸쳐 있다. 그러나 모든 “이주민”들이 예외 없이 공유하는 한 가지가 있으니, 그것은 이들이 독일 문화와 전통의 밖에서 온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독일 밖에 존재하는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사회 구성원으로 독일 사회에 적극 참여하며 창조적인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다면, 독일의 문화적 풍경은 훨씬 풍부해질 것이다. 그러나 이 “다름”은 사회적으로는 일종의 도전 과제가 되기도 한다. 가령 사회복지 정책 시행에서 이질적인 언어와 문화를 고려해야 하는 점이 그렇다.
 
이질적인 언어와 문화는 ‘이민자 노인 돌봄’의 중심 문제이다. 이주자들이 독일에서 맞이하는 노년은 자신들이 상상해 왔던 것과는 다르다. 노년의 삶 자체가 그들이 젊은 시절 고향에서 보고 경험했던 것과 완전히 달라진다. 이주 경험을 거치며 독일 땅에서의 새로운 삶의 조건에서 가족의 의미가 변했다. 가족 구성원들의 역할은 그들이 기대했던 것과는 다르게 흘러간다. 

▲  반 세기 전의 “손님노동자”는 이제 은퇴하여 보살핌을 필요로 하는 집단이 되었다. 사진은 베를린의 비영리 호스피스 단체 “동행”에서 실시하는 호스피스 교육 장면.  © www.dongheng.de 
 
그런 이유로 ‘노후의 삶’은 이민자 1세대들에게 새로운 과제가 되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독일 정부는 각종 공동체 네트워크와 시민단체와 적극 협력한다. 그 중심 과제는 노인 케어 서비스와 요양 시설, 주거 환경 등을 조성할 때 문화적 차이를 섬세하게 고려하는 것이다.
 
노인의 삶에는 예나 지금이나 ‘사회적 고립’이라는 보편적 특성이 있다. 이 문제는 이주자 노인들에 이르면 더욱 심각해진다. 이들은 독일 사회가 제공하는 노인복지나 시설에 대해 잘 모르는 경우가 많고, 복지 혜택을 받는 방법이나 통로에 대한 정보도 부족하다. 여기에 노인 시설에 대한 부정적인 간접 경험이 덧붙여지기도 한다. 노인을 보살피는 것은 가족이어야 한다는 이주민들의 전통적인 가치관도 한 몫 한다.
 
이 모든 것이 이주민 노인들이 복지 서비스에 접근하는 것을 막는 장벽 노릇을 한다. 특히 여성노인들의 고질적 문제인 독일어 능력 부족은 그들의 삶의 황혼을 더욱더 고립된 것으로 만들고 있다.
 
은퇴 후 삶에 활력을 불어넣을 여가와 스포츠 활동도 이주자 노인들의 고립을 해소해주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일반 독일인들에게 스포츠 클럽이나 취미 동호회는 부담 없이 여가를 보내고 소박한 사교를 즐기는 전통적이고도 대중적인 활동이다. 이를테면 매주 수요일 저녁 볼링 카페에 모여 식사와 담소와 가벼운 게임으로 자유롭게 시간을 보내는 클럽 활동은 많은 독일 노인들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그러나 이주민 출신 노인들은 이런 동호회들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잘 모르고, 따로 스포츠나 취미 활동을 즐길 기회도 마땅치 않다. 그래서 독일 올림픽 스포츠 연맹 산하 관련 부서에서는 이주민 노인들의 필요에 부응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기 위해 지방정부의 이주자 담당 부서와 이주자 클럽들의 협조를 구하고 있다.
 
일찍부터 이런 점에 주목한 단체도 있다. 라이프치히에 위치한 ‘작센의 활동적 시니어 클럽’에서는 이미 몇 년 전부터 이주민 노인들을 위한 독일어 강습 코스를 폭발적인 호응 속에 운영하고 있다. 이것은 특히 언어 장벽 때문에 고립된 삶을 사는 이주민 노인 지원 사업이 성공적으로 운영된 예 중 하나다.
 
문화 다양성을 세심하게 고려하는 노인정책
 
반 세기 전의 “손님노동자”는 이제 은퇴하여 보살핌을 필요로 하는 집단이 되었다. 그들 중 노인 시설에서 집중적 보호를 받고 있는 사람들은, 그러한 서비스를 필요로 할 것이라고 생각되는 실제 규모에 비해서는 아직 극소수다. 자신의 문화와는 다른 문화 출신 사람들의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노인들의 규모는 대단히 크다. 그런데 그들은 그런 서비스를 어떻게 받을 수 있는지 잘 모른다.
 
독일 가정에서도 마찬가지로 겪고 있는 문제지만, 이민자 가정에서 노인 케어 문제는 세대간 갈등으로 비화하는 단계에 있다. 전통적인 가족구조는 와해된 지 오래다. 독일의 여성취업률은 60%를 훌쩍 넘는다. 고용 기회를 찾아 지리적 이동이 잦은 자녀 세대에게, 노인 부양은 점점 더 힘에 부치는 일이 되고 있다. 이주자 노인들에 대한 사회적 지원이 지금보다 더 확대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런 상황에서 노인 복지 정책에 “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세심함”을 강조하는 최근의 경향은 진보적인 발전이다. 많은 지방정부에서는 복지 서비스 수혜자들의 문화적 다양성을 고려하고, 특히 노인들의 경우 시설 입소보다 지금까지 생활해 오던 익숙한 환경에서 보살핌을 받도록 하는 재가 케어 서비스로 관심을 확대하고 있다.
 
그 사례 중 하나가 이주민 거주자 비율이 40%를 넘어 독일 최대의 다문화 도시로 꼽히는 슈투트가르트 시이다. 이곳에서는 특히 터키 출신 이주민들이 그들이 쭉 살아왔던 지역에서 터키 문화에 특화된 보살핌을 받도록 배려하고 있다.
 
또한 베를린의 다문화 호스피스 단체 “동행”은 연방정부의 지원을 받아 중환자와 임종을 앞둔 이주민들을 보살피고 있다. 이곳 환자들의 대부분은 한국과 동남아시아 출신 이주민들이다.
 
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관점은 양로원과 노인요양시설에도 속속 도입되고 있다. 노르트라인 지역에 위치한 “잔트베르크 하우스”라는 다문화 노인센터는 터키, 러시아, 카자흐스탄, 폴란드, 네덜란드, 이탈리아 출신의 직원들을 필요에 따라 골고루 채용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직원들에게 정기적으로 다문화 연수를 실시한다. 기독교인과 무슬림을 위한 예배실과 다문화 도서관을 갖추고, 국가별 민속축제 등의 행사를 펼치고 있다.
 
이러한 정책들이 목표하는 바는 이주자 노인들을 사회적 고립으로부터 구제하는 것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중앙과 지방 정부뿐만 아니라 민간 차원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특히 독일인들로부터 출발한 자생적인 노인 단체들은 정기적이지는 않지만 이주자 노인들에 대한 지원사업을 펼친다. 이것은 그들 스스로를 노년의 고립과 고독으로부터 구제하는 자조 활동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이주자 노인들 스스로 단체를 결성하는 움직임이 눈에 띈다. 그 내용은 문화 클럽, 극단, 카페 정기모임 등 다양한 모습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면서 노년이라는 공통점을 기반으로 독일인과 비독일인의 사교와 교류가 활성화되고 있는 점은, 다문화 노인 정책을 확대하기 위한 청신호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정용숙)
 
        여성저널리스트들의 독립미디어 <일다> 바로가기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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