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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젠더 소년 ‘여학생’으로 입학하다
日 건강보험증 성별표기 변경 등 인권보호 움직임 

 
최근 일본에서는 트랜스젠더가 생활에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호적 상 기록된 사항과 다른 ‘성별’로 교육기관이나 의료기관을 이용할 수 있게 배려하고 있다.
 
초등학교에서 트랜스젠더 소년을 ‘여학생’으로 입학할 수 있게 해주고, 호적 상 성별 정정이 이루어지지 않은 트랜스젠더의 국민건강보험증에 성별 표기를 변경해주는 등 변화가 일고 있다.
 
“의료기관에 보험증 제시할 때마다 고통스럽다”
 
시마네현 마쓰에시에서 ‘보라색 바람’(紫色の風)이라는 트랜스젠더 인권단체의 대표를 맡고 있는 우에다 지히로(54)씨. 호적상으로는 남성이지만 ‘성동일성장애(GID)’ 진단을 받은 트랜스젠더 여성이다.
 
우에다 씨는 의료기관을 이용할 때 보험증을 제시하는 것이 고통스럽다며 보험증 성별란에 여성으로 표기해 줄 것을 후생노동성에 요청했다.
 
일본 교도통신에 따르면, 후생노동성은 7월 17일 우에다 씨의 요청을 받아들이고, 앞으로도 이와 같은 요청이 있을 경우 계속 승인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구체적으로는 카드 형 보험증 앞면의 성별란에 ‘여성’으로 표기하고, 그 옆에 기호를 붙여 카드 뒷면에 ‘호적상의 성별은 남성’이라고 기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은 2004년 “성동일성장애인의 성별 취급의 특례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어 특정한 요건을 갖추면 ‘성별 변경’이 인정된다. 만 20세 이상으로, 성동일성장애 판정을 받고, 생식능력 제거와 함께 성기와 관련된 부분이 '근접한' 외관을 갖출 것을 요구하고 있다. (여성→남성으로 성전환하는 경우 실무적으로는 성기성형 없이 성별 변경을 허가해주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우에다 씨는 수술하지 않아 호적 상 성별이 변경되지 않은 상태에서, 보험증 상의 성별을 변경해 표기할 수 있도록 요청한 것이다.
 
한국, 성기수술 등 ‘성별 정정’ 요건 너무 까다로워

 
한국도 트랜스젠더의 법적 성별 정정에 대해 일본과 비슷한 요건을 갖출 것을 요구한다. 대법원은 2006년 6월 22일 성전환자의 호적상 성별란 기재에서 성별을 수정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그 해 9월 ‘성전환자 성별정정 허가신청 사건 등 사무처리지침’을 제정했다. 이 지침은 만 20세 이상 성기 수술을 한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등 성별 정정 허가 요건을 너무 까다롭게 규정하고 있어, 극소수만이 대상자가 되고 있다.
 
우리 나라와 달리 2000년대 들어서 관련 입법을 한 영국과, 스페인, 포르투갈, 아르헨티나 등 국가에서는 생식 능력 제거를 포함하여 성확정 수술을 받지 않았더라도 법적으로 성별 변경을 인정하고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하여 2008년 국가인권위원회는 성별 변경 요건을 완화하고 이에 대한 절차를 규정한 법안을 마련하도록 국회의장에게 권고한 바 있다. 그러나 정권이 바뀐 이후 관련 논의는 계속 답보상태이다.
 
호르몬 요법이나 성확정 수술은 신체적으로도 위험하고 고통스러울 뿐 아니라,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재정문제 때문에 단념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우에다 씨의 사례는 일본뿐 아니라 한국사회에도, 성기 수술 여부와 관계없이 트랜스젠더 인권을 보장하고 삶을 배려하기 위한 정책으로 시사하는 바 크다.
 
성동일성장애 소년을 ‘여학생’으로 인정한 초등학교 

▲ 일본에서는 2006년 이후 성동일성 장애를 겪고 있는 초등학생 남자아이를 여자아이로 등교할 수 있도록 인정한 사례들이  보도되고 있다.     © 일다 
 
일본에서는 2003년 트랜스젠더임을 밝히고 도쿄도 세타가야 구의원에 출마한 가미카와 아야(44)씨가 당선되었다. 그리고 2004년 “성동일성장애인의 성별 취급의 특례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면서, 트랜스젠더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확산되었다. 가미카와 의원은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된 이후 현재까지 3선 의원으로 활발한 의정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 교육현장에서도 트랜스젠더 학생에 대한 주목할 만한 태도 변화도 나타났다. 2006년 효고현 니시하리마의 교육위원회가 성동일성장애를 겪고 있는 초등학교 입학 예정 소년을 ‘여학생’으로 입학시키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 아이는 유아기부터 치마를 입기 좋아했고 남자아이로 생활하는 것을 고통스러워했다고 한다. 입학을 앞두고 보호자가 교육위원회에 상담을 의뢰해왔으며, 교육위원회는 전문가들의 감정 결과를 참고해 ‘여자아이로 인정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교육위원회와 해당 초등학교는 아이의 입학 후 출석부나 신체측정 등에서 ‘여아’로 대우하고, 여자 화장실을 이용하도록 조치했다.
 
2010년에는 사이타마현 공립초등학교에서 성동일성장애로 진단된 초등학교 2학년 남자아이를 여자아이로서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인정한 사례가 알려졌다. 효고현 초등학생의 경우 입학 때 성별을 달리할 수 있도록 한 것과 달리, 재학 중에 성별을 바꾼 경우라 큰 화제가 되었다.
 
해당 교육위원회 담당자는 ‘아동이 안심하고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배려했다’고 밝혔다. 학교 측은 개학식 때 전교생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학부모회를 통해 같은 반 아이들의 부모에게도 이해를 구하는 과정을 거쳤다.
 
이를 계기로 2010년 문부과학성은 성동일성장애 아동이나 학생이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하고, 의료기관과 제휴할 것을 전국 초중고교에 요구했다.
 
물론 여전히 일본 학교현장에서는 성소수자 아동에 대한 지원이 턱없이 부족하고 아이들은 고립되어 고통을 받고 있다. 일본 언론 관계자에 따르면, 문부과학성의 지침이 내려오자 학교 측에서는 ‘어떻게 하면 좋은가?’ 당혹스러워하는 분위기라고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십대 성소수자들이 당사자 모임을 결성하는 등 차츰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자살시도 60% 달해…학교가 달라져야 한다
 
트랜스젠더들은 어린 시절부터 성별에 따른 위화감에 시달리며, 가정에서나 사회에서나 생활에 큰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일본 오카야마대학병원 성클리닉의 나카츠카 간야 씨가 1999년부터 2010년까지 성동일성장애를 겪고 있는 성인 1천167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가 이를 설명해준다.
 
그 결과 자신의 성별에 위화감을 가졌던 시기에 대한 질문에 ‘중학교 졸업까지’라고 답한 이가 90%나 되었다. FTM(신체적 성은 여성이지만 남성으로 성정체감을 느끼는 사람)에 한정하면 ‘초등학교 입학 전’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 전체 대상자 중에서 자살시도를 한 사람은 59%에 달했고, 자해나 자살미수가 28%, 등교를 거부한 경우도 29%나 되었다.
 
이러한 조사 결과에 대해서, 일본 여성주의 언론 <페민>의 토키코 카시와라 씨는 “초등학교 과정에서 트랜스젠더 아동들이 제대로 학교생활을 할 수 있도록, 이들을 받아들이는 체계를 정돈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 이 기사는 일다와 기사제휴 관계를 맺고 있는 일본의 여성언론 <페민>의 토키코 카시와라 씨의 도움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박희정 / 미디어 <일다>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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