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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예술가인가, 글쓰는 노동자인가?
<기록되지 않은 노동>④ 한 희곡작가의 셀프 인터뷰 
 
<일다>는 <여성노동자글쓰기모임>과 공동 기획으로, 지금까지 기록되지 않았던 여성노동자들의 일과 삶을 이야기하는 기사를 연재합니다. 희곡작가의 노동과 생활에 대해 ‘자기 인터뷰’(self-interview) 형식으로 기록한 이지홍님은 여성노동자글쓰기모임 회원이며 극작가입니다. 이 연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www.ildaro.com
 
예술가는 돈으로 일하면 안 된다?
 
인터뷰이가 된다는 건, 나와 어울리지 않는 일이었다. 내가 누군지 전혀 알지도 못하는, 익명의 그들에게 나의 생활, 감정의 일부를 노출시킨다는 건 평소라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 그럼에도 난 선택했다. 사실 그때 난 많이 욱해 있었다. 감정의 과다 배설로 정서적 탈진 상태였고, 어떻게든 정리가 필요했다. 뭘 정리해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우선 빗자루라도 들어야 마음이 안정될 것 같았다.
 
- 자. 인터뷰를 시작해 볼까? 음…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이야기해줄래?
 
“애 낳고, 취직하고. 연극 작업에서 손뗀 지 5년 됐어. 더 이상 이렇게 살면 안 될 것 같았어. 그런데 마침 공연 대본을 써달라는 제안이 들어오자 욕심이 난 거야. 게다가 어린이 극이니까 쉬울 줄 알고 덤빈 거지. 그런데 웬 걸? 너~무 너무 힘들었어. 회사 끝나고 도서관 가서 11시까지 줄창 글 쓰고, 주말에도 애는 남편한테 맡기고 일하고. 정말 피가 말랐어.
 
그렇게 3개월이 지나고 대본 작업 막바지에 계약을 하자고 계약서를 내미는데, 처음 얘기랑 전혀 다른 거야. 처음 작업을 의뢰 받았을 때는 계약금이 적은 대신 재공연 시 작품료를 주겠다고 들었는데, 제작사 쪽은 그런 전례가 없었다는 거야. 전혀 모르는 사실이라며…. 그런 내용에 대해 문제 제기했다가 ‘돈으로 일하면 안 된다’는 소리까지 듣게 되니 정말 미치겠더라고.”
 
2008년 <다홍치마>가 마지막 공연이었다. 대학로에서 세 편의 연극을 올리고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할 무렵 딸 아이가 태어났고, 다음 해 취직을 했다. 스물 셋 대학 졸업 후 서른 넷 그날까지 여러 알바를 전전하면서 12년 동안 단 한 번도 연극계 언저리에서 벗어나본 적이 없었는데, 2009년부터 2012년 8월 지금까지 나는 철저히 직장인으로 살았다.
 
그러다 공연 기회가 찾아왔고, 난 기다렸다는 듯이 덥석 물고 말았다. 단순히 돈 때문만은 아니었다, 썩은 동아줄이라도 탈출구가 필요했다. 귀향을 준비하라는 운명의 신호처럼 느껴졌다. 절대적인 작업시간 부족 속에서, 많은 이들의 도움으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고, 작업은 막바지에 다다랐다. 하지만, 문제는 뜻하지 않은 곳에서 발생했다.
 
- 계약 상 무슨 문제가 있었는지 좀더 자세히 설명해야 되지 않을까? 감정보다는 객관적 사실들을 말이야. 지금 너무 흥분해 있는 것 같아.
 
“좋아. 흠!! 예술감독님이 이번 공연을 기획했어. 난 예술감독님이 선택한 연출의 추천으로 작업에 합류하게 됐고. 작품의뢰를 받았을 때 예술감독님을 만나 계약에 대한 대강의 얘기를 들었고, 구체적인 얘기는 그쪽 기관 담당자가 연락을 준다고 했어. 하지만 3개월이 지나도록 말이 없다가 외부 스텝들 모아 놓고 계약서를 쭈욱 나눠주는 거야. 별다른 설명 없이 사인을 하라는 식이었지.
 
계약서를 보니까 애초에 얘기 들었던 거랑은 전혀 달랐어. 예술감독님이 처음 그곳에 취임하시면서 그쪽 시스템을 잘 몰랐기 때문에 오해가 생긴 것도 있지만, 제작사 쪽에서는 예술감독님이 하신 일이니까 책임이 없다는 식이었지. 예술감독님을 통해서 그쪽이랑 인연을 맺었더라도, 계약 주체로서 제작사가 계약 내용에 대해서는 작가와 협의를 했어야 하는 거잖아. 뒤늦게 문제가 발생하자 넌 예술감독 사람이니까, 예술감독님이 알아서 할 문제다. 이런 식인 거야.”
 
문제를 제기하고 몇 차례 예술감독님과 제작사와 통화를 하는 과정에서, 나는 ‘돈 밝히는 작가’가 되어갔다. 심지어 담당자는 자기네가 작가를 섭외했다면 이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며, 좀더 인지도 있는 작가를 섭외했을 거라는 말을 너무나도 예의 바르고 나긋한 목소리로 전했다. 한 마디로, 인지도 없는 작가가 까불고 있는 셈이었다.
 
그들은 언제나 갑(甲)이었다. 제작사가 대본에 대한 영구적 권리를 갖는다는 조항은, 예술감독님의 중재로 3년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재공연비에 대한 논의는 하면 할수록 서로가 치졸해지는 꼴이 되어 서둘러 마음을 접었다.
 
- 하지만 넌 이미 알고 있었던 거 아냐? 소위 관, 단체라고 하는 곳의 시스템이 말도 안 될 정도로 견고해서, 문제 제기해봤자 너만 바보 될 수도 있다는 사실 말이야. 그런데도 굳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뭐야?”
 
“납득을 위한 합의의 과정이 필요했던 것 같아. 정확히는 작가로서 존중 받지 못한다는 모욕감 같은 걸 느꼈어. 오해가 있었다면 오해를 푸는 과정이 필요한 거잖아. 그게 예의 아니니? 하지만 모든 것이 일방적이었어. 나서서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 어쩔 수 없다며 한 발 뒤로 물러서는 그런 태도가 정말 화가 났어.”
 
- 태도에 초점을 맞추는 건 옳지 않은 것 같아. 내가 보기에는 돈이 문제의 핵심인 것 같은데. 물론 넌 돈 때문만이 아니라고 하겠지만.”
 
“돈 때문에 문제가 불거진 건 사실이야. 하지만 이 문제를 단순히 돈 문제로만 바라보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 가장 큰 문제는 계약 주체인 작가가 그 모든 과정에서 소외되고 있다는 거야.”
 
일반적으로 희곡 등 공연 창작물에 대한 작가 계약은 사용 권한에 대한 계약으로, 저작권은 원칙적으로 작가에게 주어진다. 창작 의뢰를 받은 작가는 창작물에 대한 사용권리를 일정 기간 의뢰한 자에게 양도하게 되고, 그 기간이 지나면 저작권은 다시 작가에게 귀속된다.
 
간혹 저작권 자체를 넘기는 양도 계약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공연계’라는 곳이 워낙 파이 자체가 작기 때문에 계약 없이 작업이 이루어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내 경우만 해도 광주에 있는 극단이 작품 사용료로 어떨 땐 20만 원을 주기도 하고 또 어떨 땐 30만 원을 주기도 한다. 물론 계약은 없었다.
 
경우에 따라 뜻만 맞는다면 페이 없이도 작업이 가능한 곳이 바로 연극계이기도 하다. 꽤 인지도 높은 소수의 작가만이 작품 의뢰에 따른 계약을 하고, 금전적 보상을 받게 된다.
 
- 사실 계약이란 서로 합의에 따른 것이지, 정해진 정답이 있는 건 아니잖아. 게다가 돈을 받고 일을 할 수 있다는 건 어떤 면에서 축복일 수 있을 정도로 연극예술인들의 경제적 삶은 팍팍해. 이런 상황에서 너의 문제 제기라는 게 좀 속물적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니? 네가 느낀 모욕감이라는 것도 사실 어떻게 보면 너의 자격지심, 열등감, 피해의식, 뭐 그런 것들에서 비롯된 건 같고.
 
“무슨 소리야? 속물 근성이라니? 말이 너무 심하다!!”
 
- 음… 난 자꾸 보여. 네가 연기하는 모습 말이야. 좋아, 쉽게 얘기할게. 처음 일을 제안 받았을 때 넌 그 자체로 행복했어. 작품 의뢰가 들어왔다는 것, 그것도 ‘국립’이라는 글자가 붙은 곳에서 말이야. 어린이극이긴 해도 작가로서의 너의 가치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일 거라고 생각했지. 안 그래?
 
“계속해봐. 난 지금 ‘듣는 사람 1’을 연기하고 있는 중이거든.”
 
- 직장을 다녀 작업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데다가 처음 해보는 뮤지컬 작업, 게다가 각색도 아니고 역사적 인물에 대한 창작극이라니! 그때 작곡가 선생님의 제안으로 작사가가 투입됐고, 넌 안도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작가로서 작업을 제대로 못한 것이 아닌가 자격지심이 들었지.
 
“작사 영역도 전문적인 영역이야. 외국에서는 대본과 작사를 분리하는 경우도 많다고.”
 
- 물론. 하지만 네 마음 한 구석에는 그런 불안이 자리잡고 있었잖아.
 
“인정!!”
 
- 막상 계약 문제에서 이상이 생기자 넌 변했지. 너무나도 현실적이 되었어. 이번 경우의 특수성을 이해한다고는 했지만, 결코 이해할 수 없었지. 아니, 인정할 수 없었지. 작업의 가치보다도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것에 과도하게 예민해졌고, 심지어 작업을 엎을까라는 극단적인 생각도 했어. 철저히 거래였던 거야. 다시 말해 넌 작가라기보다는 ‘작가’라는 직업을 가진 직장인에 불과해. 그런 너 자신이 스스로 너무 초라해 보이고 비열해 보였는지, 자꾸 명분을 끌어들이고 있는 거 아니야? 일명, 자기 합리화! 경제적 관점을 최우선으로 작업의 가치를 평가하는 자신의 속물근성을 은폐하고 싶은 거겠지.
 

역시나 작가로서의 순수성이 문제였다. 사람들은 돈과 명예에 휘둘리지 않는 순수한, 한 마디로 ‘뼈 속까지 예술가’를 원한다. 돈보다는 예술이고, 경제적 생활보다는 예술이 우선이어야 한다. 하지만 예술가들이 겪게 되는 경제적 어려움은 매우 크다. 돈이 안 되는 직업을 가졌기에 언제나 투잡 쓰리잡을 할 수밖에 없다. 누구는 누드 모델을 하고, 또 누구는 의학실험의 대상자가 되기도 한다. 무대를 지키기 위해, 그들은 ‘알바인’이라는 배역을 묵묵히 수행한다. 
 
15년 경력의 배우가 일년 내내 바쁘게 무대 위에 선다고 해도, 고작 월 오십에 만족해야 한다. 무엇보다 일을 열심히 하고 있음에도, 경제력이 뒷받침해주지 못한다는 이유로 주변 사람들한테 무직자 취급을 당할 때는 정말 억울하다. 하지만 현실은 신성한 예술 작업에서 돈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예술가의 고매함을 스스로 저급한 장사치로 만드는 행위로 간주한다.
 
그리고 이러한 검열은 밖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순수 예술가로서의 자질이 부족하군.’ 나를 향한 스스로의 비아냥과 조소! 끊임없는 내 안의 울림이 나를 우울이라고 하는 깊은 우물 속으로 밀어 넣는다.
 
“네 말이 맞아. 나 역시 돈을 좋아해. 돈의 맛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알고 있고, 많은 돈을 벌고 싶은 것도 사실이야. 게다가 직장생활을 해보니 돈에 대한 현실 감각이 생기더라. 그런데, 정말 그러면 안 되는 거야? 난 최소한의 경제적 보상을 받으면서 희곡작가로서 집중해서 작업하고 싶어. 내가 직장에 들어 간 이유가 뭔데? 경제적 이유로 계속 알바를 하다 보니까, 시간은 시간대로 쓰는데 돈도 안 모여. 돈을 버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창작 작업에 집중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럴 바에야 직장을 다녀서 경제적인 문제부터 해결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어쩌면… 그래, 네 말대로 난 글 쓰는 노동자에 불과할지 몰라. 노동자로서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요구하는 게 무슨 문제가 되는 거지?”
 
생활전선에 본격적으로 뛰어들면서 많은 시간을 직업인 작가로 살아 왔다. 그러면서도 늘 마음 한 구석에 순수 예술가여야 한다는 명분에 시달려 왔다. 그래서 현재 하고 있는 직장 일의 가치를 폄하시켰고, 그 일을 할 수밖에 없는 나의 현실이 혐오스러웠다. 명분과 욕망의 불일치!
 
- 이제야 인터뷰할 맛이 나는데… 정말 자신을 글 쓰는 노동자라고 생각해? 네가 원하는 게 정말 그거였어? 앞으로 한 달 뒤면 2년 여의 직장생활을 끝내는 상황에서, 그 어느 때보다 더 진지하고 치열하게 작가로서의 삶을 살아가야 할 네가 직업 작가로 만족하겠다고?
 
내 무의식에 깊이 뿌리내린 작가라고 하는 환상을 벗어 던지고 싶다. 진작에 그랬어야 했다. 그 동안 ‘위대한 작가’를 흉내 내느라 스스로를 짓눌러왔다. 그래서 항상 글 쓰는 게 부담스럽고 고통스러웠다. 이제는 가볍게, 그리고 즐겁게 글을 쓰고 싶다.
 
“비록 이번 사건이 표면적으로는 소득 없는 소동에 불과했을지 몰라도, 문제 제기를 한 것 자체는 옳았다고 생각해.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네가 말한 작가로서의 명분 때문에 나 자신을 부끄럽게 여겼고, 그래서 좀더 당당하고 떳떳하지 못했다는 점. 내가 직업인으로서 작가인 나를, 글 쓰는 노동자인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못하고 포장하고 위장했다는 점. 나의 노동에 대해 권리를 주장하는 것에 대해 수치심을 갖기보다 자신감으로 여유 있게 대응했어야 했어. 정말 쿨~하게 말야.”
 
난 철저히 생활인이고 싶다. 아니, 생활인이다. 작가는 나의 직업이고, 내 전문 분야는 희곡이다. 간혹 생계를 목적으로 글을 쓰기도 할 거다. 무엇보다 난 내 노동의 정당한 대가로 내 삶을 지탱해 나가고 싶다. 그리고 아주 운이 좋아 내 작업이 인정받을 수 있다면, 그래서 예술의 경지까지 오를 수 있다면…… 더 없이 좋겠지만.
 
- 너도 늙었구나. 꿈이 너무 소박해졌다.
 
“어쩌면 나는…… 예술가는 아닌 것 같아. 흐흠~! 내 그릇이 이것밖에 안 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나니 마음이 편한 걸.”
 
정말 기분이 좋아졌다. 스팀청소기가 지나간 자리처럼 매끈해지는 느낌이다.
 
- 그래, 네 생각이 정 그렇다면!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해서는 조만간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눠야 하지 않을까? 단순히 노동자라고만 치부하기엔 나 자신이 쉽게 용납되지 않거든. 필요할 때 언제든지 불러줘. 난 언제나 네 안에 있으니까.
 
인터뷰는 이렇게 끝이 났다.

이지홍_극작가 / 미디어 <일다>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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