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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을 만나러 가는 길 (50)― 연재를 마치며
 
이혼을 하면서 두고 온 딸은 그녀에게 늘 어떤 이유였다. 떠나야 할 이유, 돌아와야 할 이유, 살아야 할 이유…. 그녀는 늘 말한다. 딸에게 못한 말이 너무 많다고. 이 땅의 여성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윤하의 고백 "딸을 만나러 가는 길"이 1년 6개월 간의 연재를 마칩니다. 필자와 독자들께 감사드립니다.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딸이 태어난 지 5개월밖에 되지 않았던 어느 날, 딸은 내가 떠먹여 주는 밥숟가락을 달라고 조른 적이 있다. 아기는 자기 스스로 먹겠다며 떼를 썼다. 무시하고 밥을 계속 먹여주려 하자, 아이는 혀를 둥글게 말아 밥을 입에서 밀어내었다.
 
나는 이런 아이의 단호한 태도에 너무 놀라, 숟가락을 딸의 손에 쥐어 주었다. 아이는 신이 나서 즐겁게 스스로 밥을 떠먹었다. 흘리는 것 반, 입으로 들어가는 것 반, 아이는 된장국에 만 밥풀을 사방으로 흩트리며 밥을 먹었다. 하지만 나는 그 다음부터는 아예 처음부터 아이에게 숟가락을 쥐어 주었다.
 
그날 스스로 밥을 떠먹던 생후 5개월의 딸을 놀란 눈으로 바라보면서 생각했다. 
‘저렇게 갓난아기도 스스로 하겠다고 주장을 하는구나!’
 
그것은 말로만 알고 있던, ‘아이는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라 독립적인 인격체’라는 사실을 가슴 깊이 체험한 사건이었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딸에게 해주고 싶었다. 그녀가 내게 어떤 존재인지, 그녀와 나눈 짧은 생활 속에서 그녀에게서 배운 것이 무엇이었는지, 그런 것들을 딸에게 얘기해 주고 싶었다.
 
‘딸을 만나러 가는 길’이란 제목으로 칼럼을 쓰며, 한참을 걸어왔다. 꼭 1년 6개월의 기간이었다. 그 기간이 결코 쉬웠던 건 아니다. 자주 ‘이런 글을 왜 쓰고 있나?’ 한탄했고, “이제, 그만 쓰겠다”는 의사를 몇 차례 편집장에게 밝히기도 했다. 이렇게 중단하고 싶어 할 때마다 편집장은 늘 따뜻하게 내게 선택권을 주었다.
 
“윤하님이 원하실 때, 언제든지 끝내셔도 됩니다.”
 
이런 편집장의 상냥한 태도는 이 글을 쓰는 것이 다른 이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서라는 사실을 늘 상기시켰다. 지금이 아니면 딸에게 해야 할 이야기를 영영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펜을 이어왔다.
 
그래서 무사히 칼럼을 마무리 지으며, 가장 고맙고 감사한 건 이 글을 쓸 기회를 주고, 계속 쓸 수 있게 배려해준 ‘일다편집진’이다. 이 기회가 아니었다면, 계속해서 내 인생이 이렇게 꼬인 이유를 끊임없이 남들 속에서 찾았을 것이고, 계속 자신을 합리화하면서 남에게 핑계를 돌렸을 것이다. 무엇보다 냉정하게 나를, 내 선택을, 내 인생을 돌아볼 수 없었을 것이다.
 
또한 이 기간 동안 새롭게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 중 먼저 누구보다도 따뜻한 위로로 내 가슴을 다독여준 많은 독자들에게 감사를 전하고 싶다. 나는 그들의 편지와 댓글들을 잊지 않고 있다. 내가 희망을 버리지 않고 더 큰 꿈을 꿀 수 있도록 도와준 건 바로 이들 덕분이다.

또 이들 못지않게 나를 매몰차게 꾸짖어준 독자들에게도 감사한다. 그들이 아니었다면, 나는 끊임없이 스스로를 변명하려 했을 것이다. 그들의 충고와 애정 어린 비판은 늘 냉정하게 나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게 돕는 나침반 역할을 했다. 길을 잃어서는 안 된다고 채찍질 해준 사람들은 바로 그들이었다.
 
이 글을 쓰면서 내 속의 또 다른 나를 만날 수 있었던 건 가장 큰 행운이다. 나는 그녀가 변해가는 걸 보는 것이 즐겁고 행복했다. 그녀는 지난 18년 동안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고 원망만 했더랬다. 그런 그녀가 조금씩 변해간 건 이 칼럼을 쓰면서였다. 글을 쓰면서 비로소 가슴 깊이 후회를 하기도 했고, 감사를 하기도 했고, 기도를 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내 경험이 다른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그들의 선택과 결정에 도움이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나는 살면서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고 자주 중얼거렸다. 딸을 만나야했고, 딸에게 하지 못한 말이 너무 많았다. 그녀가 날 어떻게 생각하건 상관없이, 내 인생 속에서 그녀의 존재가 어떤 의미인지, 아이에게 꼭 말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칼럼을 마무리 짓는 이 시점에서 진심으로, 이제는 죽을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더 이상 아이를 못보고 죽을까봐 두려워하지는 않는다.
 
내게 딸은 살아 있어야 할 이유였고, 여전히 기쁨이고 미래다. 다시 딸을 만날 기회가 온다면, 미안하다는 말을 꼭 하고 싶다. 무엇보다 그녀를 꼭 안아주고 싶다.

윤하 / 미디어 <일다>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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