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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으로 말하다

12살에 겪은 성폭력, 나는 그에게 묻고 싶다

그 여자들의 물결 일다 2012. 6. 10. 07:30

친족성폭력, 지금도 누군가는 겪어내는 일 
<꽃을 던지고 싶다> 7. 차라리 악몽이었다면 좋았을 것을 
 
* 성폭력 피해생존자의 기록, “꽃을 던지고 싶다”가 연재되고 있습니다. -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12살, ‘아빠’라는 사람의 생일이던 4월이었다. 20여 년의 세월 동안 가부장은 엄마의 생일도, 자식들의 생일도 단 한 차례 축하해준 적이 없는 사람이었지만, 당신의 생일에는 잔치가 치러져야 했다. 그 생일상이 마음에 들지 않는 날이면 어김없이 폭력이 발생하곤 했다.
 
그 날도 마찬가지였다. 친척들이 집으로 왔고, 우리 형제들은 의무적으로 생일축하 노래를 불렀다. 밤늦게까지 술자리가 끝나지 않았다. 난 사촌동생들과 함께, 우리 집과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할머니 집으로 가서 잠을 자야 했다. 밤이 늦었고 잠이 들었다.
 
잠결에 이상한 느낌에 눈을 떠보니 누군가가 나의 옷을 벗기고 있었다. 지독한 술 냄새가 풍겼다. 어둠 속에서도 선명한 실루엣, 그리고 익숙한 모습. 잠은 이미 깨었지만 그 상황을 어떻게 하면 벗어날 수 있을지 알지 못했다. 난 죽은 것처럼 눈을 감고 몸에 힘을 주어 버티었다.
 
그러나 나의 저항은 그 상황을 정지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지지 못했다.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옆에는 사촌동생들이 자고 있었고, 난 너무도 두려웠다. 어떤 상황이 발생할 지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 상황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사촌동생들이 지금 내게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아는 것이 더 두려웠는지도 모르겠다.
 
삼촌은 나를 흔들어 깨우며 자신의 성기를 만지라 하였다. 내가 잠이 깬 걸 그가 눈치 챌까 두려워 죽은 듯 누워 있었다. 나를 흔들어 깨우던 삼촌은 내가 눈을 뜨지 않자 나를 일으켜 세우고 자신의 배 위에 올리고서 나에게 말을 했다.
 
지금도 너무나 생생한 그 단어들…. 그리고 목소리.
‘괜찮아 만져봐’, ‘괜찮아’, ‘괜찮아.’
 
괜찮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무엇이 괜찮다는 것일까? 나는 그 어느 것도 괜찮지 않았다.
 
나의 몸은 굳어졌다. 나는 두려웠고, 이 상황이 멈추기를 기도했다. 그러나 나의 기도도 부질없는 것이었다. 내가 자신의 성기를 만지지 않자, 삼촌은 나의 성기를 만지기 시작했다. 두려움이 점점 커져갔다. 어떻게 해야 했을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존재했을까?
 
나의 성기에 손가락을 넣었다 뺀 후, 자신의 성기를 삽입하였다. 통증이 밀려왔다. 터져 나오는 비명을 입술을 깨물고 버텨보았다. 그는 나의 몸을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너무나 큰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나의 비명에 사촌동생이 깨어나는 뒤척임이 느껴졌다. 삼촌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나를 내려놓고 코를 골았다.
 
난 옷을 챙겨 입고 밖으로 나왔다. 빌라 안의 새벽녘은 너무나 조용했다. 나의 고통과 상관없이 세상은 너무나 평온해 보였다.
 
아무런 인기척이 존재하지 않은 놀이터의 그네에 앉아 한참을 혼자 울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도 선명한 그 날의 밤바람 소리. 그리고 바람 따라 흔들리던 그네의 움직임. 그 날의 고통은 바람이 부는 사월의 밤이면 더욱 생생하게 살아나는 듯하다.
 
한참 후 사촌동생들이 놀이터로 따라 나왔다. 그리고 나에게 물었다. 무슨 소리였는지를. 난 악몽을 꾸었다고 대답했다. 차라리 악몽이었다면 좋았을 것을.
 
항상 좋은 웃음으로 우리 형제들을 잘 대해주었던 삼촌이 어떻게 나에게 그럴 수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밤새 놀이터에서 고민을 했던 것 같다.
 
엄마에게 달려가 울고 싶었다. 너무 아프다고 투정부리고 싶었다. 그러나 난 그럴 수 없었다. 맏며느리로 시집살이를 하던 엄마에게, 그리고 우리 형제들에게 유독 잘하던 삼촌이었기에, 난 엄마가 유일하게 좋아하는 삼촌과의 관계를 깰 수 없었다. 막연하게 내가 말을 한다면 엄마가 힘들어질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날 엄마에게 이야기했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었을까?
 
성폭력 피해를 말할 수 없었던 나는 때때로 친척이라는 이름으로 방문하는 삼촌과 분리되어지지 않았고, 가해자는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우리 집에 드나들었다. 가해자와 마주치기 싫은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가해자의 방문에 맞추어서 가출을 하는 것이었다. 그 후로 난 명절이 되면 짧은 가출을 반복하는 집안의 골칫거리가 되어 버렸다.
 
내가 중학생이 되었을 때, 가해자가 결혼을 할 거라며 신붓감을 데리고 왔다. 너무도 착해 보이는 그 여성에게 나는 ‘저 사람은 어린 나를 강간했던 파렴치한이다!’ 라고 소리지르고 싶었다. 그렇게 하지는 못했지만 지금이라도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다면 나의 악몽과 불면은 사라질 수 있는 것일까? 귀가에 맴도는 그 바람소리가 이젠 고요해질 수 있을까? 환청처럼 나를 괴롭히는 그네의 삐덕임 소리가 더 이상 나를 괴롭히지 못하게 할 수 있는 것일까?
 
가해자를 처벌하고 싶은 나의 마음과 상관없이 이미 너무 지나버린 시간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고, 법은 친절히 안내해준다.
 
가능하다면 물어보고 싶다. 12살 조카인 내가 안전하다고 여겨지는 할머니 집에서 왜 그런 피해를 경험해야 했는지, 또한 열 두 살의 어린 내가 성적 대상이 될 수 있었는지, 만약 삼촌이 정신병자였다면 왜 나에게만 그런 짓을 저질렀는지….
 
한국성폭력상담소 상담통계에 따르면 성폭력 가해자의 80%가 아는 사람이고, 친족에 의한 성폭력은 12%에 달한다고 한다. 아동성폭력의 경우 대부분 피해자나 가해자의 집에서 폭력이 저질러진다. 나에게 일어났던 그 모든 불합리한 일이 지금도 누군가는 겪어내는 일인 것이다.  (너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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