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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던 가정이 좀더 빨리 해체되었더라면
<꽃을 던지고 싶다> 6. 파괴당한 가족 
 
[성폭력 피해생존자의 기록, “꽃을 던지고 싶다”가 연재되고 있습니다. -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전학과 새로운 학년의 시작을 같이하게 된 초등학교 2학년의 난 학교를 마치고, 우리 집의 생계터전인 엄마가 하시던 커다란 자동차공업사 안의 식당으로 향하였다. 점심 장사를 마치고 엄마의 손을 잡고 어떤 여자의 집으로 향했던 기억이 난다. 그 여자의 집에서 엄마는 한참을 이야기 한 후 다시 내 손을 잡고 가게로 향하였다.
 
그 다음 날 가해자는 엄마를 때리기 시작했고, 엄마의 옷은 찢겨지고 엄마는 하나의 고깃덩이처럼 이리저리 던져지고 발길질에 무방비 상태가 되어 있었다. 혼자뿐이던 나는 우는 것조차 제대로 할 수 없이 무서움에 덜덜 떨기만 했다. 갑자기 가해자의 손에 칼이 들려지는 것을 보고, 난 정신을 차리고 뛰쳐나가 다른 집들의 문을 두들겼다. 뛰쳐나가는 동안 엄마가 살아 있기를 바라는 희망과, 엄마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내가 크면 꼭 가해자를 죽여 버리겠다는 생각이 뒤엉켰다.
 
다행히도 이웃집 사람들의 도움으로 엄마는 구출되었다. 그러나 그 순간 나에게 있어 가족은 파괴당했으며, 그 후로 난 가해자를 ‘아빠’라고 부를 수가 없었고, 나를 보호해줄 엄마가 아니라 내가 보호해야 할 엄마를 갖게 되었다. 안전한 울타리와 휴식처라는 가정은 존재하지 않았다. 항상 탈출해야 할 곳이지만 내가 보호해야 할 엄마가 있기에 탈출조차 할 수 없는 감옥만이 존재하게 되었다.
 
그 날의 사건은 ‘아빠’라는 사람이 다른 여자와 살림을 차렸던 집을, 엄마가 나와 동행해 이야기를 했던 것이 원인이 되었다. 살아오면서 ‘아빠’라는 사람의 외도는 지겹도록 반복이 되었고 그 후로도 지속이 되었지만, 외도 후에는 늘 엄마를 ‘더러운 년’으로 몰아붙이고 폭력이 가해졌다.
 
폭력은 이렇게 자신의 잘못을 덮고 가부장이라는 권위를 훼손당하지 않기 위해 저질러지는 수단이기도 했다. 결혼제도 안에서 서로 성실해야 하는 의무는 남자에게는 ‘바람’이라는 이름으로 용서가 되고, 남편의 바람은 여자의 무능력으로 낙인 찍는 문화 속에서, 한국 남성의 34%가 외도의 경험이 있다 하고, 6가구 중 1가구에서 아내구타가 일어난다고 하니,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가정이었다고 치부해야 하는가?
 
내가 24살이 되었던 1998년에도 난 가해자를 죽이기엔 힘이 없었으나, 운이 좋게도 ‘가정폭력방지법’ 제정되어 가해자를 몰아낼 수 있었으며, 난 집에서 탈출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자식을 살인자로 만들지 말라는 눈물 어린 호소와, 아빠를 고소하는 패륜적 딸이 만들어낸 엄청난 성과였음에도 불구하고, 난 가해자에게서 가해진 비난과 욕설을 감당해야 했다. 가해자는 법적으로 방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집에서 나가지 않았다. 그 후로도 3년의 시간 동안 난 엄마를 데리고 병원에 가서 진단서를 끊고 경찰에 신고하는 일들을 반복해야 했다. 무엇이 가해자가 그리 떳떳하게 만들 수 있을까? 풀리지 않는 숙제였다.
 
10년이 지난 지금 가해자는 다른 여자를 만나 폭력 없는 가정을 너무도 잘 꾸리고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가해자는 악마가 아니었을까? 가해자의 말처럼 엄마가 더러운 년이었을까? 폭력 없는 가정을 꾸리고 있다는 소식은 나에게 참담한 기분을 안겨 주었다. 너무도 혼란스러웠다. 할머니의 위독함을 듣고 찾아간 병원에서, 가해자는 여전히 엄마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무엇이 이 모든 불합리함과 모순을 가능하게 하는 것일까? 한 여자의 일생을 망치고 네 자녀의 삶을 난도질한 그는 왜 혼자서만 평온하게 자신의 삶을 누리고 있는 것일까?
 
“가부장제 역할 규범에 충실하여 부부관계가 안정적이어도 관계가 불평등하므로 폭력이 발생할 확률이 높고, 역할 규범에 따르지 않아 불안정해도 그로 인한 갈등 때문에 폭력이 발생하게 된다. 결국 현재의 가족 제도에서 아내 폭력은 극단적이거나 일탈적인 현상이 아니라 구조 자체에 내재해 있다.” -정희진 <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
 
법적인 이혼 후, 엄마를 구타하던 그가 나의 신고로 찾아온 경찰에게 ‘이건 우리 가족 일이고 아무것도 아니며 집안일일 뿐이다’라고 항변하는 말 속에서, 그리고 나에게 향한 ‘아비를 신고한 파렴치한 년’이라는 욕설 속에서, 가해자에게 가족은 소유물에 지나지 않고 내 아내를 내 맘대로 때릴 수 있다는 권위가 숨어 있었다.
 
가해자가 새로 들어간 가족관계는 성장한 자녀들이 있는 곳이었고, 생계를 책임져주는 여자가 있는 공간이었기에 평등한 권력관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아비라는 권위’, ‘한 집안의 어른’이라는 권위가 사리진 것이다.
 
내가 살던 가정이 조금 더 빨리 해체되었더라면, 가해자가 조금 더 빨리 사회적 개입으로 피해자의 가정에서 추방되었다면, 아마도 내 삶의 많은 부분이 달라졌을 거라 추측해 본다.  (너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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