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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할머니도 이런 마음으로 바느질했을까
[일다] 윤하의 딸을 만나러 가는 길(44) 외할머니 이야기 
 
친할머니는 우리 자매들을 예뻐하지 않았다고 했는데, 그 가운데 나는 더 예뻐하지 않으셨다. 그 이유는 내가 엄마를 가장 닮았기 때문이다. 외가의 집안 행사를 가면, 나를 처음 보는 사람들조차도 “어머! 애는 OO 딸인가 봐! OO 어렸을 때랑 너무 똑같아!” 하며 반가움을 표현할 정도였으니, 엄마를 정말 많이 닮은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똑같은 이유로 난 친할머니로부터는 따가운 눈총을 받아야 했다.
 
내가 초등학생이었을 때다. 한번은 뭔가 먹고 있는 나를 눈을 흘기며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던 할머니가, “어쩜, 저렇게 먹는 입 모양까지 지 에미를 쏙 닮았나 몰라!” 이렇게 투덜거리시며 음식 씹을 때의 내 입 모양까지 우스꽝스럽게 흉내 내셨다.
 
이런 상황은 엄마를 닮은 게 뭔가 큰 잘못을 저지른 것 같은 죄책감까지 느끼게 했다. 그 뒤로 내 행동을 샅샅이 지켜볼 것 같은 느낌 때문에, 할머니 앞에서는 자신감 있고 환한 태도를 보일 수가 없었다. 먹을 때는 더 조심스러웠다. 물론, 이건 다 옛날의 일이다. 요즘은 ‘내가 엄마를 많이 닮았다면, 엄마는 누굴 닮은 걸까’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한다. 나는 내 어떤 점이 외갓집에서 왔는지 늘 궁금했다.
 
“어쩜! 외할머니도 그러셨다”
 
그러던 중 바느질을 하는 내 모습을 옆에서 보고 있던 어머니가 깜짝 놀라시는 일이 발생했다. 나는 뭐든 얼렁뚱땅 하기도 잘하지만, 바느질만은 완벽을 추구한다.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닌데, 바느질에서만은 서툴게 한 걸 그냥 넘기지 못하는 결벽성이 있는 것이다. 솔기가 조금이라도 맞지 않거나 바늘땀이 아주 조금 차이가 날 때조차 뜯고 푸르기에 망설임이 없다.
 
그날도 살짝 바느질이 잘못된 걸 발견하자 참지 못하고 후루룩 뜯는 모습을, 오랜만에 놀러 오신 어머니께 들키고 만 것이었다.
 
“어쩜! 외할머니도 그러셨다. 외할머니도 바느질하다가 조금만 틀리면 지금 너처럼 북북 뜯으셨다! 그러고 보니, 칼칼한 성격까지 외할머니를 쏙 닮았어!”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시며 오랫동안 흥분을 감추지 않으셨다. 내가 외할머니를 얼마나 닮았는지 잘 모르지만, 어머니의 말씀대로라면 바느질에 있어서만은 외할머니를 닮은 것이 분명하다.
 
외할머니는 바느질뿐만 아니라 다른 솜씨도 많았다.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 돌아가셨고 함께 살지도 않아서 할머니와의 기억은 별로 없다. 내가 기억하는 외할머니의 모습은 그저 단정하게 빗은 머리를 바짝 틀어 비녀를 꽂았다는 것과, 늘 한복을 입고 계셨다는 것, 또 칫솔이 대중화 되었을 때였음에도 소금을 이용해 손가락으로 이를 닦으시던 모습 정도가 전부이다.

▲ 외할머니가 왕골을 염색해 만든 바구니와, 질경이로 만든 시루바닥깔개는 내가 오랫동안 간직하며 사용해 온 물건들이다.    © 윤하 
 
도리어 외할머니의 모습은 그분이 만드셨다는 물건들 속에서 더 많이 본다. 엄마는 오래 전부터 할머니의 솜씨가 깃든 물건들을 여럿 가지고 계셨다. 모두 할머니의 솜씨를 잘 간직하고 있는 것들이었다. 엄마가 시집올 때, 할머니가 직접 왕골을 길러 짜주셨다는 돗자리는 50년이 된 지금도 제사 때마다 요긴하게 사용하고 있다.
 
내게도 외할머니가 만든 물건이 있다. 엄마한테 얻어온 것으로, 할머니가 직접 왕골을 염색해서 만든 바구니와 질경이로 만들었다는 시루바닥깔개가 그것이다. 나는 오래 전부터 왕골바구니는 양말을 담는 용도로, 시루바닥깔개는 냄비받침으로 쓰고 있다. 게다가 광목으로 만든 버선도 한 쌍 갖고 있다. 역시 이것도 엄마가 시집올 때 외할머니가 만들어주신 거라고 한다. 꼼꼼하고 맵시 있게 꿰맨 바느질 솜씨가 돋보여 엄마로부터 한 쌍 얻어온 것이다.
 
모두 너무 예뻐서 어머니께 달라고 한 것이었을 뿐, 외할머니를 특별히 좋아해서 간직하고 있던 건 아니다. 그저 이 물건들과 함께 한 세월들이 쌓이기 시작하면서, 이들과의 추억이 할머니와의 추억보다 더 내 인생에 많은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렇게 나이가 들면서는, 이 물건들 속에서 외할머니의 모습을 더 많이 찾게 된다. 물건들의 단정함과 꼼꼼한 마무리 속에서 나는 할머니의 솜씨와 성격들을 짐작할 수 있다. 그녀는 이런 것들을 만들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외할머니는 어떤 분이었을까?
 
바느질하는 내 모습 속에서 할머니를 본다
 
외할머니는 할아버지의 세 번째 아내였다. 외할아버지의 앞 선 두 부인이 모두 차례로 아이 들만 낳고 돌아가시자, 이에 충격을 받은 외할아버지는 다시 결혼을 하지 않고 서모를 들이셨단다. 그러나 서모가 살림살이하는 것이 할아버지 마음에 들지 않자, 결혼을 다시 해야겠다고 결심하고 맞이한 부인이 바로 나의 외할머니셨다.
 
외할머니는 허울만 양반인 가난한 집안의 나이 어린 처녀였고, 외할아버지는 그 집에 얼마만큼의 땅을 사주고 할머니를 데려왔다고 하니, 부잣집에 재취로 팔려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이었다.
 
외할머니는 다섯 자녀를 두었고, 앞의 할머니들이 낳은 아이들과 합해 모두 열 둘의 남매를 키웠다. 그 중 어머니가 막내였다. 외할머니는 당시에 이미 존재하고 있던 서모와도 사이가 좋았고, 할머니보다 나이 많은 앞의 할머니들의 자녀들과도 관계가 참 좋았다고 한다. 그러기 위해 할머니가 얼마나 참고 삭혀야 할 일이 많았을지 짐작이 간다.
 
할머니는 40대에 과부가 되셨고, 그 뒤에는 자식들만 의지해 사시다가 말년에는 치매까지 걸려 고생하셨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에도 난 길에서 허둥대는 모습의 할머니들을 보면, 혹시 우리 외할머니가 아닐까 하는 불안감을 오랫동안 떨치지 못했었다.
 
사실 이런 몇 가지 정보만으로 외할머니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러나 나는 바느질하는 내 모습 속에서 외할머니를 본다. 외할머니도 이러셨겠구나, 이렇게 생각하셨을 테지… 하면서 내 행동과 판단 속에서 할머니를 발견하는 기분이 나쁘지 않다.
 
지금은 새벽 2시를 넘어 3시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내가 이렇게 늦게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는 이유는 역시 바느질 때문이다. 바느질을 그만해야겠다고 재봉틀을 집어넣은 건 불과 일주일 전이다. 바느질감만 잡으면 놓지 못하고 몸이 완전히 탈진될 때까지 자신을 몰고 가는 나쁜 버릇 때문에, 내게 바느질은 늘 자제해야 하는 무엇이다. 그러나 재봉틀을 쓸 수 없게 된 나는 기어이 손 바늘을 선택했다. 재봉틀로라면 단 10분이면 끝날 것들을 두 세시간 걸려 손으로 짓고 있다.
 
‘오래 전 외할머니도 이런 마음으로 바느질을 했을까’ 생각하면서 이 깊은 밤, 바늘을 놓지 못하고 있다.  (윤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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