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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을 만나러 가는 길 (46) “아들, 넷만 낳아라!” 
 
[연재] 이혼을 하면서 두고 온 딸은 그녀에게는 늘 어떤 이유였다. 떠나야 할 이유, 돌아와야 할 이유, 살아야 할 이유……. 그녀는 늘 말한다. 딸에게 하지 못한 말이 너무 많다고. "딸을 만나러 가는 길"은 딸에게 뿐만 아니라 이 땅의 여성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윤하의 고백이 될 것이다.  <일다> www.ildaro.com
 
이혼하기 전에 살던 동네이웃인 은숙씨와 혜영씨의 이름을 알아서, 아직도 기억할 수 있는 걸 난 큰 행운으로 생각한다. 서로 친했고, 무엇보다 내가 좋아했던 그들의 이름을 모르고 지나갈 수도 있었다. 처음 그들을 만났을 때, “지윤이 엄마예요”, “한울이 엄마예요” 하며, 자기소개를 하는 그들에게 내가 말했다.
 
“저희 아기는 00이고, 저는 윤하입니다. 우리도 모두 이름이 있잖아요. 아기 이름 말고 우리, 서로의 이름을 부르면 안 될까요?” 했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20년 전인 그 때는 이웃들끼리 이름을 부르지 않고, ‘누구 엄마’라고 서로를 호칭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들도 내 제안을 모두 반겼고, 그래서 나는 은숙씨와 혜영씨를 알게 되었다.
 
첫 아이가 아들이었던 혜영씨와 달리, 둘 다 외아들 남편에 딸을 낳은 은숙씨와 나는 바로 이 점 때문에 좀 더 친했다.
 
“윤하씨는 아들 안 낳아도 돼요?” 은숙씨가 물었다.
 
“안 낳아도 되긴요? 꼭 낳아야 해요! 은숙씨는요?”
 
시어머니는 내가 딸을 낳은 것에 서운한 표정을 지은 적은 없지만, 결혼식에서 폐백을 마치고 막 며느리가 된 내게 등을 토닥이시며 하신 첫 말씀은 “아들, 넷만 낳아라!”였다. 딸을 낳고 가장 먼저 가슴이 철렁했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아무도 그렇게 말하지 않는데, 나 스스로 ‘다음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아들을 낳아야 하는구나!’ 생각했다. 더 심각한 건 막상 딸을 낳고 나니 아들을 낳을 자신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인력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을 내가, 그것도 꼭 해야 한다는 건 상당한 압박이었다. 다만 ‘나중에 생각하자!’ 하면서 미루고 있을 뿐이었다.
 
내 질문에 은숙씨도 “저도요!” 하고 맞장구를 쳤다.
 
“아들을 원한다고 맘대로 낳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 어쩌죠?”
 
나는 풀이 한껏 죽어, 하소연하듯 말했다.
 
“그러게요! 방법을 찾아야죠!”
 
은숙씨는 그렇게 대답했지만, 그 당시 우리는 방법을 찾지는 않았다. 아이는 어렸고, 바로 둘째를 출산할 이유는 없으니까. 당시에 이혼을 안 하고 그 동네에서 은숙씨와 이웃으로 좀 더 살았다면, 분명 나는 은숙씨와 합심해서 아들 낳는 비법들을 찾아다녔을 것이다. 그 뒤 난 바로 이혼을 해서 이 문제로부터 벗어났지만, 은숙씨는 아니었다. 지금은 연락이 닿지 않는 은숙씨와 유학을 가기 직전까지는 드물게 소식을 나눠, 조금이나마 그녀의 근황을 들을 수 있었다.
 
은숙씨는 그 후, 정말로 아들을 임신할 가능성이 높은 체질로 몸을 만들어주고, 아들이 수정될 가능성이 높은 날까지 점지해 준다는 병원에 많은 돈을 주고 다녔다고 한다. 게다가 그 프로그램은 만약 그렇게 임신을 했는데 임신한 아이가 아들이 아니면, 낙태까지 시켜주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고 했다. 50%의 가능성에, 아니면 낙태를 책임진다는 이 어이없는 프로그램에 매달렸다는 은숙씨의 이야기는 내 다른 인생을 들여다보는 것 같아, 바보스럽다기보다 슬프게 생각되었다.
 
아무튼 은숙씨는 이 병원에서 시키는 대로 노력을 했다고 한다. 그러다 임신을 했는데 안타깝게도 딸이었고 원한다면 낙태를 해주겠다는 의사의 제안을 거절했단다.
 
“딸이라지만, 지울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낳고 나니까, 제가 정말 잘 했다고 얼마나 생각하는지 몰라요!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이렇게 귀한 아기를 죽였으면, 어쨌을까? 하면서 내가 선택을 참 했다고 매일 생각해요!”
 
이 말을 전하는 은숙씨의 목소리는 행복감과 자부심으로 넘쳤다. 나는 은숙씨가 이래서 좋았다. 사람들은 어리석어서 누구나 시험에 빠질 수 있고, 그 속에서 바보짓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결정적인 순간 부끄럽지 않은 선택을 하는 거라고, 그녀를 보면서 생각했다.
 
나는 어땠을까? 이혼을 안 하고 좀 더 살았다면, 아니 지금껏 살았다면……. 나도 그녀처럼 아들 낳을 묘법을 찾아다녔을 테고 그래서 운 좋게 아들을 낳을 수도 있었겠지만, 만약 또 딸을 임신했다면 은숙씨처럼 했을까? 글쎄, 모르겠다. 그러서 이혼 직후, 심리적으로 한없이 위축돼 있던 상황에서도 더 이상 아들을 낳으려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 때문에 마음이 정말 홀가분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내게 이혼은 더 이상 비루하게 살지 않을 수 있게 해 준 무엇인지도 모른다. 바보 같은 짓에 온 정성과 에너지를 쏟지 않고 살 수 있게 해 준, 그래서 상처일 뿐이라고 오랫동안 생각했던 이혼이 내겐 행운이었는지도 모른다. (윤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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