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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감성 충전

맥베스와 광대극은 어떻게 만나게 되었나?

그 여자들의 물결 일다 2012.04.18 08:00

맥베스와 광대극은 어떻게 만나게 되었나?
뛰다의 시골마을 예술텃밭 13. <내가 그랬다고 너는 말하지 못한다> 
 
※ 4월 서울과 화천에서 맥베스를 재해석한 광대극 <내가 그랬다고 너는 말하지 못한다>가 공연됩니다. “뛰다의 시골마을 예술텃밭”에서는 배요섭 연출가가 광대극을 통해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를 재해석하고 그 안에서 우리의 현대사의 이면을 되새겨보게 된 과정과 의미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일다> www.ildaro.com
 
뛰다와 광대극의 만남-<클라운 맥베스>의 탄생

▲ 2009년 <클라운 맥베스> 발표회     ©뛰다  
 
2009년 엘라이 사이먼(Eli Simon: 미국 어바인 캘리포니아주립대 교수로, 연기교육에 광대연기를 끌어들여 2005년 클라운질라라는 광대극단을 창단한 뒤 세계 곳곳의 배우들과 즉흥광대극을 제작하고 있다)과 “맥베스”란 텍스트를 가지고 광대워크숍을 한 적이 있다.
 
과천에서 공연하고 있던 클라운질라(Clownzilla: ‘clown(광대)’과 괴수의 대명사 ‘gozilla(고질라)’의 합성어)를 찾아가 무작정 교환워크숍을 제안하면서 시작되었는데, 이 워크숍을 통해 우리는 지금까지 우리가 해왔던 연기의 방식이 사이먼의 광대(clown) 연기와 어떻게 통할 수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현상적으로는 웃음을 주는 존재가 광대(clown)이지만 그 근본적인 지점에는 관객과 만나려는 충동이 있고, 그것은 매우 진지하고 진실하게 발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광대의 그런 마음이 관객과 통할 때 광대는 빛을 발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그 연기를 하는 배우의 생각, 태도, 세상을 보는 관점이 아주 중요하게 된다.
 
2주간 열린 워크숍의 결과물로 40분짜리 광대극 <클라운 맥베스>(Clown Macbeth)가 나왔다. 5일간의 즉흥연습을 통해 만들어진 것 치고는 제법 완성도가 있었다. 하나의 공연으로서. 이 경험에서 우리가 발견한 가능성은 두 가지 인데, 하나는 우리가 추구해온 광대의 개념이 일반적인 연기양식으로 발전될 수 있을 거라는 것과, 또 하나는 광대라는 존재의 힘과 재능에 대한 것이다. 광대는 어떤 텍스트, 혹은 재료를 다루는 특별한 재능을 말한다.
 
이전까지 어렵고 멀게만 느껴졌던 광대의 본질을 아주 가깝게, 쉽고 접근할 수 있게 된 것은 그 이후 뛰다의 작업에서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그 이후 광대연기를 한다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깊은 고찰과 실험들은 계속 되었고, 그것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이런 고민들은 연기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다양한 방식으로 되묻게 한다.
 
맥베스 신화가 지워버린 이면의 역사를 마주하다 

▲ 뛰다의 광대극 <내가 그랬다고 너는 말하지 못한다> 중    © 뛰다 
 
워크숍 발표를 마치고 몇 달이 지난 후, 다시 한 번 <클라운 맥베스>를 돌아보고는 더 발전시켜보고 싶은 강렬한 영감이 떠올랐다. 긍정과 웃음의 대명사인 광대를 어두운 비극의 대표 격인 맥베스와 접붙이는 것이 흥미로워 졌고, 좀 더 그로테스크하게 끌고 갈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처음 붙인 이 프로젝트의 이름은 <그로테스크 클라운 쇼 맥베스>가 되었다.
 
첫 작업은 셰익스피어의 원문을 읽어보는 것이었다. 그리고 내가 느끼고, 받아들인 대로 우리말화 해보았다. 셰익스피어 원문에 가장 충실하다고 인정받는 영국 아든 판을 기본으로 하고 여러 가지 번역본들을 참조해가면서 그 원문의 리듬과 뉘앙스를 느껴보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다.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그냥 내 방식대로 번역을 하여 배우들과 함께 읽어보았다.
 
그런데 수차례 읽어보면서 뭔가 께름칙한 느낌이 들었다. 이 작품은 셰익스피어의 다른 비극들과는 조금 성격이 달랐다. 맥베스가 어떻게 주인공이 될 수 있었을까. 왜 셰익스피어는 이와 같은 인물을 주인공으로 만들었을까. 그 이면에 숨겨진 무엇이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어서 우리는 이오네스코가 맥베스이야기를 다시 쓴 <막베트>도 읽고 얀코트가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를 분석한 글 “맥베스 혹은 죽음에 감염된”을 읽으면서 광대로서 우리가 이 텍스트를 어떻게 접근하고 받아들여야 하는지 그 길을 조금씩 찾아가게 되었다.
 
권력에 대한 욕망 때문에 돌이킬 수 없는 길로 돌진하는 맥베스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우리나라의 현대사 속 ‘군주’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 정권이 바뀌는 과정에서 벌어진 엄청난 폭력사태들을 생각하고, 그 사건들은 미화되거나 은폐되었었다는 사실들을 다시 확인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우리의 관심은 한국현대사로 흘러갔다.
 
배우들과 함께 읽은 해방과 전쟁 후 현대사에 대한 책들이 이차 텍스트가 되었고, 그 자료들과 맥베스의 연결고리들을 찾아나갔다. 놀랍게도 참 많은 이야기들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알았다. 셰익스피어가 맥베스에 대해서 얘기하는 동안-인간의 권력에 대한 욕망과 그 안에서 인간적인 갈등과 고뇌, 심리적인 현상들을 이야기하는 동안-사실은 끔찍하고 처참한 사건들은 숨겨지고 지워지게 되었다는 것을 눈치 채게 되었다.
 
단순하지만 ‘맥베스=독재군주’라는 도식을 앞세워 그 이면에 있는 이야기, 셰익스피어가 맥베스라는 멋진 신화를 내세워 지워버린 역사를 들춰보기로 했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지금, 우리의 이야기와 연결되지 않으면 별 의미가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한국현대사의 수많은 사건들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5.18 광주 민중항쟁이었다.
 
이에 대한 자료들이 삼차 텍스트가 되어 배우들에게 주어지고, 그 안에서 가능성들을 연구하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맥베스는 전두환 급으로 내려앉고, 5.18의 이미지들이 하나의 장면으로 만들어졌다. 5.18은 아주 비극적인 사건이지만, 광대들은 어린아이 같이 풍자적으로 이 사건을 묘사함으로써 그 비극성을 더 아프게 강화시킨다.
 
과연 독재, 폭군의 시대는 지나갔는가? 

▲ <내가 그랬다고 너는 말하지 못한다> 중  
 
하지만 다시 의문이 드는 것은 과연 독재, 폭군의 시대는 지나갔는가 하는 것이다. 다시 눈을 돌려 지금 이 지구상의 나라들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우리는 다음과 같은 이름들의 목록을 얻게 된다.
 
베니토 무솔리니, 니콜라이 차우세스쿠, 이브라힘 바레 마이나 사라, 김일성, 사무엘 도에, 로랑 카빌라, 사담 후세인, 모부투 세세 세코, 이디 아민, 시아누크, 폴 포트, 프란시스코 프랑코, 안토니오 데 올리베이라 살라자르, 박정희, 요세프 스탈린, 수하르토, 마오쩌뚱, 슬로보단 키티카초른, 이승만, 호자, 송크람, 풀젠시오 바티스타, 오마르 알 바시르, 탄 슈웨, 김정일, 압둘라 빈 압둘 아지즈, 무아마르 카다피, 사파무라트 니야조프, 로버트 무가베, 테오도로 오비앙 은게마, 맥베스.
 
20세기 이후의 유명한 독재자들의 이름이다. 이들 중 많은 이들이 여전히 버젓이 살아있고, 죽고 죽이는 메커니즘은 여전히 유효하다. 어떤 이는 아주 대놓고, 어떤 이는 교묘하게 덩컨을 죽이는 맥베스가 된다. 게다가, 2010년 공연을 마치고 이라크와 리비아의 그 유명한 맥베스들의 처참한 최후를 목격하기도 했다.
 
이 작품은 그렇다고 독재자들이 나쁘니 그들의 만행을 폭로하거나, 그리하여 좋은 세상을 만들자고 말하지는 않는다. 그저 현실을 우리 방식대로 들여다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생각한다. 돌고 도는 메커니즘에 대해서, 우리가 속아왔던, 혹은 미처 깊이 생각해보지 못했던 현실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2012년 지금, 맥베스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2012년 다시 이 작품을 무대에 올리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광대의 안경을 끼고 세상을 바라본다. 용산에서의 참사, 천안함의 비극,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처참한 현실, 4대강을 따라 파헤쳐지는 땅, 솟아오르는 빌딩들, 고립되는 관계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어린 아이들…
 
언제 또 어떤 폭탄이 내 옆에서 터질지 모르는 지금, 우리에게, 아니 나에게 맥베스는 누구인가, 무엇인가? 경제적인 이득의 관점에서 옳고 그름이 결정되는 현실 속에서 우리가 따지고 하소연해야 할 대상은 도대체 무엇인가? 답은 찾지 못하면서 의문만 자꾸 늘어난다. 작품을 다시 만드는 과정에서 나와 배우들이 겪게 되는 고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대들은 무대에 서서 말해야 한다. 맥베스로서, 그의 칼에 살해된 무고한 시민으로서, 그를 대신해 맨손으로 다시 일어선 투사로서, 그리고 지금의 나 자신으로서.
 
두 번째로 다시 작품을 수정하면서 배우들과 함께 다룬 텍스트는 최근에 있었던 현상들이었다. 배우들은 각자 자신들의 마음을 강하게 건드린 사건들을 찾아와 함께 나누고 그것들을 소재로 즉흥장면을 보여주었다.

쌍용자동차 해직노동자들의 현실과 “와락”이라는 쉼터에서 일어난 일들, 골리앗 크레인에서 일 년을 살다 내려온 한 노동자의 이야기, 새로 건설될 핵발전소로부터 연결되는 송전탑 건설과정에서 분신자살한 한 농부의 사연, 대기업들이 분식업과 빵집까지 손을 뻗치면서 무너져가는 중소 자영업자들의 이야기, 교사의 뺨을 수십 차례 때리고 폭행한 한 여중생 사건 등의 이야기들이 우리 앞에 던져졌다. 복잡하고 답답하고 가슴 아픈 이야기들이지만, 이런 이야기들의 공통점은 있어 보인다. 이 재료들로 홈쇼핑 장면을 다시 만든다.

▲ <내가 그랬다고 너는 말하지 못한다> 중.     ©뛰다 

그렇다면 당신들에게 맥베스는 무엇인가? 당신을 폭행하는 아버지인가, 너희들의 인권을 유린하는 선생님인가, 고립시키고 절망을 안겨다 주는 일진들인가, 당신의 촛불을 뺏어가는 공공연한 권력인가, 당신의 땅을 파헤치는 불도저인가, 당신의 생존을 위한 몸부림을 매도하고 사회경제적 이익의 관점에서 당신이 밥그릇을 당당하게 뺏어가는 자본 중심의 사회인가, 좋은 삶이 아니라 성과만을 중시하는 피로사회인가, 아니면 이런 사회에 길들여지고 무감각해진 나 자신인가.
 
이 작품에는 그날 있었던 일들을 소재로 시작하는 즉흥장면이 있다. 그래서 어떤 이야기들이 나올지, 어떻게 진행될지 아무도 모른다. 광대의 힘은 즉흥적인 순간에서 빛을 발한다. 그래서 이 장면의 광대들이 좀 더 살아 꿈틀댈 수 있다. 언제 어디서 공연하는가에 따라 몇몇 장면들은 계속 바뀌어져야 한다.

앞으로 언제까지 이 작품이 살아 움직일지 알 수 없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광대들의 공력은 점점 쌓여만 갈 것이고, 그와 함께 이 작품도 더 성장해 가리라 믿는다. 이제 첫 걸음을 내디뎠을 뿐이다. 어쩌면 우린 문자 그대로의 ‘맥베스’의 현신들이 있었던 나라들을 직접 만나고 싶은지도 모른다. 아프리카와 아랍, 남아메리카의 나라들. 그들 안으로 들어가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편에서 말하고 싶다. 그게 광대들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배요섭 / 연출가)
 
[공연 안내]  "내가 그랬다고 너는 말하지 못한다"

*출연진: 황혜란 최재영 이지연 김가윤 김모은 김승준 공병준

*제작진: 원작: W.셰익스피어 | 연출.번역.대본 배요섭 | 프로듀서 김덕희 | 조연출 황혜진 | 무대감독 김혜성 | 기획 김민후 | 스크립터 김수아 | 조명디자인 이주야 | 편집디자인 주우미 | 사진 이승희

서울 공연
- 장소 : 문래예술공장 박스시어터 seoulartspace.or.kr
- 일시 : 2012년 4월 19일(pm8), 20일(pm8), 21일(pm3,pm7), 22일(pm4)

화천 공연
- 장소 : 화천 시골마을예술텃밭 야외무대 (강원도 화천군 화천읍 노신로 274)
- 일시 : 2012년 4월 27일(pm7:30), 28일(pm7:30)

문의 및 전화예약 : 시골마을 예술텃밭 0505-388-9654 cafe.naver.com/tui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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