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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듣고 말하는 것 너머 빛나는 우주(宇宙)
[일다] 영화 <달팽이의 별>을 보고 _ 고은경
▲ 두 손과 마음으로 소통하는 연인, 순호(왼쪽)와 영찬(오른쪽) ©영화 <달팽이의 꿈>
맞닿은 두 손과 마음으로 소통하는 <달팽이의 별>
거기, 그 별은 황홀한 행성, 내 언어와 사유로 표현할 수 없는 우주다. 보는 것이 보는 것이 아니며, 듣는 것이 듣는 것이 아니며, 말하는 것이 말하는 것이 아닌 세계로의 여행이다. 눈과 귀, 입으로가 아닌 손을 통해서 펼쳐지는 놀라운 세계, 마흔한 살 영찬 씨와 마흔아홉 살 순호 씨가 사는 별천지이다. 아름답고 따뜻한 영혼의 소리가 울리는 그 별의 이름은 ‘달팽이의 별.
들을 귀 있는 자 들을지어다, 라는 구절처럼 그곳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조용하지만 강렬한 미지의 언어, 문장, 대화이다. 세상의 온갖 때로 묻어있는 내 귀에 그 소리는 이렇게만 들린다. 톡!톡!톡!톡! 토독토독! 토닥토닥! 툭툭툭툭! 투둑투둑! 타닥타닥! 탁! 탁! 두두두두! 다다다다!…
그 별에 사는 영찬 씨가 다음의 시를 들려준다.
사람의 시력이나 청력이라는 것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주의 어딘가를 떠돌고 있을 뿐이다.
때가 되면 그들은 주인에게로 돌아올 것이다.
<달팽이의 별>에 두 번 다녀왔다. 그 별의 호흡을 따라 느리게 천천히 한 번 더 여행하고 싶었다. <달팽이의 별>은 시청각장애를 갖고 있는 영찬 씨와 척추장애인인 순호 씨 부부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 영화이다. 영찬 씨는 눈이 전혀 보이지 않고, 소리를 구분하여 들을 수 없는 시청각중복장애를 갖고 있는 남자이고, 순호 씨는 척추 이상으로 몸짓이 자그마한 여자이다.
이 두 사람의 대화 수단은 점화(점자수화)다. 영찬 씨의 두 손 위에는 언제나 순호 씨의 손가락이 얹어져 있다. 두 사람의 손과 손이 맞닿아 있는 화면 그득한 손은 그 어떤 장면보다 아름답고 감동적이다.
그것은 보는 것, 듣는 것, 말하는 것 너머의 세계를 보여주는 그들만의 화법이자 소통방법이다. 마음, 아니 우주의 심연 저 아릿한 곳에 무언가 차오르는 것이 있다면 이런 손의 소리이고 손의 표정이고 손의 모습일까? 그것이 사랑이라면 말이다. 장애? 여기서 비장애인의 장애 타령은 차별의식일 뿐 아무런 의미가 없다.
값진 것을 보고, 참된 것을 듣고, 진실한 말을 하다
이 영화는 영찬과 순호 두 사람이 장애의 벽과 치열하게 싸우며 살아가는 현실 이야기이다. 또한 그 속에서 서로를 믿고 보듬어주며 튼튼하게 일구어가는 달콤하고 깊은 사랑 이야기다. “저에게는 가장 소중한 사람이 있습니다”라고 홍보영상에서 말한 영찬 씨의 고백처럼, 사랑에도 차원이 있다면 ‘최고의, 빛나는 사랑 영화’라는 찬사를 보내고 싶다.
나레이션] 영찬이 양팔로 소나무를 꼭 끌어안습니다. 눈을 가만히 감고 있는 영찬이 오른손 끝으로 스치듯 위에서 아래로 조심스럽게 나무껍질을 만져봅니다. 그러더니 양 깍지를 껴서 나무를 안아봅니다. 영찬은 오른손을 나무에 댄 채 나무를 중심으로 시계방향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깁니다.
멈춰 선 영찬, 오른손을 나무에 가만히 대고 있다가 나무 아래쪽으로 더듬더듬 손을 옮겨 내려오며 쭈그려 앉습니다. 양손을 마주보도록 하고 나무에 올려놓은 영찬이 가만히 앉아있습니다. 그리고 기도하듯 두 손을 모으고 생각에 잠긴 듯 눈을 감고 그대로 있습니다.
이번엔 앉은 채로 나뭇가지가 잘린 곳에 얼굴에 갖다대고 두 손은 나무에 댄 채 나무향기를 맡습니다. 그 자세로 한참 있더니 뭔가 느꼈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리는 영찬, 여전히 나무에 손을 댄 채 앉아있는 자세는 흐트러짐이 없습니다. 영찬이 나무를 쓰다듬기 시작할 때 순호가 옆에 가서 영찬의 손가락 위에 점화를 찍어 무엇을 하느냐 물어봅니다.
순호] 뭐해?
영찬] 얘기하고 있어.
순호] 재미있어?
영찬] 데이트하고 있는 거야.
순호] 내가 방해해?
영찬] 방해하면 안 되지…
순호] …
영찬] 당신도 같이 데이트하자.
나무와 같이 데이트하자며 영찬은 순호가 나무를 끌어안게 하고 그런 순호와 나무를 영찬이 끌어안습니다.
순호] 너무 야해
영찬] 흐흐흐흐 우우우우
순호가 나무를 안고 있던 팔을 내리며 쑥스러운 듯 웃자 영찬도 따라 웃습니다.
▲ 우주에서 가장 빛나는 그들의 별에서. © 영화 <달팽이의 별>
어떤가. 토닥토닥 그들이 손으로 나누는 대화를 들어보라. 조용히 심장을 파고들어와 온몸을 전율에 휩싸이게 하는 피아노 소나타 같지 않은가. 단단한 껍질 속에 살면서 자신을 보호하고 주변을 깨끗이 정화하는 달팽이, 영화를 통해 통찰되는 그들의 일상도 달팽이의 삶처럼 가난하지만 정갈하고 소박하지만 단단하지 않은가. 촉각에만 의지해서 산다는 달팽이처럼 느리지만 천천히 그들만의 방법으로 보고 듣고 말하는 생이 거룩하지 않은가.
세상살이의 고달픔 쯤은 저만치 밀쳐두고 언제나 활짝 웃는 순호 씨, 그런 순호 씨의 팔을 잡고 세상 한가운데로 뚜벅뚜벅 걸어 나오는 영찬 씨, 스스로 우주인이라 말하는 영찬 씨가 사는 달팽이의 별에는 아마 장애의 차별과 불평등 따위 없으리라.
영찬 씨가 마지막으로 다음 시를 들려주었다.
가장 값진 것을 보기 위하여 잠시 눈을 감고 있는 거다.
가장 참된 것을 듣기 위하여 잠시 귀를 닫고 있는 거다.
가장 진실한 말을 하기 위하여 잠시 침묵 속에서 기다리고 있는 거다.
덧붙임) <달팽이의 별>(감독 이승준, 베리어프리 버전 나레이션: 김창완)은 ‘베리어프리 영화’(청각장애인을 위해 한글자막을 넣고, 시각장애인을 위해 화면을 설명해주는 음성해설을 넣어 시청각장애인들도 영화를 즐길 수 있도록 함)로 상영되고 있습니다.
2011년 암스테르담영화제 장편 경쟁부문 대상을 수상하였고, 4월 중 뉴욕에서 열리는 트라이베카 영화제 월드다큐 경쟁부문에 초청되었습니다. 더불어 한국 다큐 영화로는 최초로 올여름 미국에서 개봉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얼마 전 영상물등급위원회 ‘청소년을 위한 좋은 영상물’로 선정되어 많은 청소년들이 관람하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4월 3일, 1만 관객을 돌파하면서 개봉 3주차에 10위권 진입, 입소문을 타고 있는 중입니다. 아직 안 보신 분들, 이 영화 놓치지 말고 꼭 보시기를!! (고은경)
* 여성저널리스트들의 유쾌한 실험! 인터넷 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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