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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다> 윤하의 딸을 만나러 가는 길 37. 눈물을 닦아주던 작은 손길 
 

[연재 칼럼] 이혼을 하면서 두고 온 딸은 그녀에게는 늘 어떤 이유였다. 떠나야 할 이유, 돌아와야 할 이유, 살아야 할 이유……. 그녀는 늘 말한다. 딸에게 하지 못한 말이 너무 많다고. "딸을 만나러 가는 길"은 딸에게 뿐만 아니라 이 땅의 여성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윤하의 고백이 될 것이다.  <일다> www.ildaro.com
 
딸이 자기를 낳은 엄마가 따로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직후였다.
 
이 사실을 알려준 사람은 그녀의 사촌이다. 딸에게는 네 달 앞서 태어난 같은 나이의 사촌이 있다. 그 사촌은 손위 시누이의 딸로, 당시 이들은 중학교 2학년이었다. 시어머니의 장례기간 중에 어른들이 나누는 이야기 속에서 아이의 사촌이 “ㅇㅇ의 엄마는 외국에 있다더라”하는 말을 우연히 들은 것이었다.
 
난 유학 중, 딸의 안부를 묻는 편지를 선물과 함께 몇 차례 전남편에게 보낸 적이 있다. 그로 인해 내가 외국에 있다는 걸 시댁식구들이 알게 된 것 같다. 이 이야기를 들은 아이의 사촌도 많이 놀랐다고 한다. 그녀는 한동안 망설였지만, 이 사실만은 우리 딸이 꼭 알아야 할 것 같아서 이야기를 해 주는 거라고 했단다. 시어머니는 ‘모든 걸 사실대로 말해주고 외갓집으로 보내주마’고 하셨던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돌아가셨다고 했는데, 어쩜 시어머니는 이런 식으로 돌아가시면서 그 약속을 지키셨던 것 같다.
 
자신의 출생에 비밀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된 딸이 충격에 휩싸여 있을 때, 아이의 심리 상태가 좀 이상하다는 걸 눈치 챈 새엄마는 딸을 데리고 교외로 나가 위로를 해 주었다고 한다. 그때 그녀는 아이에게 친엄마가 누군지 자기는 모르고, 전남편과 내가 왜 이혼했는지도 모른다고 했단다. 다행히, 새엄마의 이런 위로 덕분에 아이는 생활의 안정을 되찾았다고 한다.
 
딸과 그녀가 더 무슨 말을 나눴는지 나는 모른다. 그저, 전남편이 아니라 새엄마가 딸을 위로해 주었다는 것이 오랫동안 내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새엄마가 아니라 당사자인 아버지가 설명을 해주어야 하지 않았을까? 거짓이든 진실이든, 설사 그것이 변명일지라도, 네 생모는 어떤 사람이고 무슨 이유로 이혼했는지 아버지가 직접 설명해주고 딸의 마음을 달래주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하고 늘 생각했다.
 
실제로 결혼생활 동안 남편은 아이에게 매우 다정한 사람이었다. 그는 아기인 딸에게 한없이 너그럽고 상냥했다. 시원한 바람이 솔솔 불기 시작하는 저녁나절이면 아이를 유모차에 태워 동네를 산책하는 건 그가 매우 좋아하는 일 중 하나였다. 그런 아빠를 아이도 정말 좋아했다. 나는 아이에게 곧잘 “ㅇㅇ이는 누구 딸이지?” 라고 장난스럽게 묻곤 했는데, 문장을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돌도 안 된 딸은 항상 “아빠 딸, 아빠 딸!” 했다.
 
이혼 직전 외갓집에 있으면서 아빠를 만나지 못했던 네 달 동안도 아이는 늘 “아빠 딸”이라고 대답했다. 어린 아기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눈치 채기라도 했는지 당시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지만, 한번도 ‘엄마 딸’이라고 대답한 적이 없다.

아이를 보내기 위해 남편과 함께 부산행 기차를 타고 가면서 나는 다시 딸에게 물었다. “ㅇㅇ이는 누구 딸이지?” 아이는 이 질문에는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게다가 기차가 떠내려갈 정로도 우렁찬 소리로 “아빠 딸! 아빠 딸!” 하며, 자리에서 펄쩍펄쩍 뛰기까지 했다. 오랜만에 아빠를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낸 데다가 아빠랑 엄마랑 함께 있는 것이 매우 만족스러웠던 모양이다. 그날이 우리 세 식구가 함께 시간을 보낸 마지막 날이었다.

 
나는 이 대답을 들으면서는 웃으면서 울었다. 기차가 부산역에 다다르고 있었고, 아이에게 오랫동안 서로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걸 말해주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그저 아이를 안고 울었다. 도리어 그런 내게 미소 지으며 눈을 맞춘 채, 작은 손등으로 양볼에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준 사람은, 바로 아이였다. 그렇게 아이와 헤어졌다.
 
나는 아이가 ‘아빠 딸’이라고 대답하는 게 전혀 싫지 않았다. 그녀가 나를 사랑하는 건 너무 잘 아니까, ‘아빠 딸’로 자기의 정체성을 밝히는 건 그만큼 아빠를 좋아하는 것의 표현이라고 생각했기에 헤어지는 순간에조차 아이의 대답이 조금도 서운하지 않았다. 그런 만큼 남편에게 아이의 양육을 맡기면서도 그가 잘못 돌볼까봐 걱정한 적이 없고, 아이를 사랑하는 남편의 마음을 의심해 본 적이 없다. 그래서 누구보다도 딸이 아빠와 친하길 바랐다. 물론, 여전히 그가 딸을 사랑할 거라는 걸 의심하지 않지만, 지금 가정에서 그의 역할은 많이 바뀐 것 같다.
 
아이를 통해 들은 몇 가지 정보를 통해 유추해 보았을 때, 엄격하고 무서운 부모의 역할은 남편이 맡고 다정하고 따뜻한 역할은 새엄마가 담당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새엄마가 무서운 부모역할을 맡았다면, 남의 자식이라 저러나보다 할지도 모른다. 재혼가정이라는 변화된 상황 속에서 그의 역할이 바뀐 게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지만, 아이가 출생의 진실을 알게 되어 혼란스러워하고 있었을 때만이라도 남편이 아이를 위로해 주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면 아이가 더 행복하지 않았을까?

나나 전남편이나 아이와 문제를 풀어나가는 데는 둘 다 너무 서툰 것이 분명하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아이한테 한없이 따뜻하게 대하지 못한 건 내가 더 심하니, 누구를 탓할 수 있을까?

 
오늘은 햇볕이 부드럽게 부서져내리는 창가에 앉아, 아이를 보내던 그날 내 볼에 흘러내리던 눈물을 닦아주던 아이의 작은 손등을 떠올렸다. 지금은 봄 햇볕이 내 볼을 어루만진다. 겨울을 잘 보냈다고 가슴을 토닥여 주는 봄 햇살처럼 아이를 어루만져 줄 수 있다면……. 그녀도 이 햇볕을 쬐고 있을까?

몇 년 전 딸을 다시 만났을 때, 이렇게 바로 못 보게 될 줄 알았다면, 아이의 얼굴을,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을 텐데……. 볼에, 눈에 입을 맞춰 주었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 늘 딸과 관련해서는 후회가 너무 많다. 다시 봄이다.  (윤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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