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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인생엔 선배가 필요해”
행복을 찾아가는 이 시대의 삼십 대, 노정화
 
[여성주의 저널 일다] 조이여울

처음 방문한 그녀의 집 거실엔 남편, 딸과 함께 찍은 가족사진이 있었다. 그 속에 있는 어색한 머리모양의 그녀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비로소 4~5년 전의 일이 떠올랐다. 아이 낳고서 1년쯤 뒤였나? 오랜만에 만난 그녀는 머리를 박박 밀어버린 모습으로 친구들 모임에 나타났다. 누군가를 향해 시위라도 하듯 전투적인 자세로.

 
따뜻한 마음을 원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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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밝고 활달하며 애교가 많은 성격의 친구, 노정화(34)
노정화(34). 밝고 활달한 성격의 그녀는 학창시절 “순정만화 캐릭터” 같은 모습으로 기억되는 친구다. 귀여운 보조개가 들어가는 것이, 애교 많고 붙임성 있는 그녀의 성격을 드러내주는 매력포인트다.

 
고등학교 졸업 후 서로의 소식을 몰랐는데, 어느 겨울날 그녀는 만삭이 된 모습으로 내 눈앞에 나타났다. 다시 만난 정화는 임신으로 인해 살이 좀 쪘을 뿐 여전히 귀엽고 웃음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돌이켜 보면, 당시가 가장 힘들고 우울한 시기였다.

 
“이상적인 결혼생활을 꿈꿨나 봐. 남편이라는 존재는 가장 믿을 만한 사람이고 평생 친구일 거라고 생각했지. 그런데 현실은 내 기대와는 달랐어. 너무 실망해서 어쩔 줄 몰랐지.”

 
둘은 생활습관도 다르고 성격도 잘 맞지 않았다. “남편은 여자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어. 나는 그때 아이를 임신하고, 하던 일은 기울어져서 몸과 마음이 너무 지쳐있었는데…. 그런 때 내게 잘해줘야 하잖아. 근데 그런 걸 모르는 거야. 아이가 배속에 있을 땐 꾹 참았지만, 낳고 나서 폭발한 거지.”

 
우울증이 왔다. 스트레스성 피부병도 생기고, 결벽증 증상까지 보였다.

 
“이렇게 사는 것이 힘든지. 대체 아이 키우면서 돈 많이 버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다들 아이를 대신 봐주는 부모가 있거나, 돈 주고 사람을 쓰는 거겠지? 나처럼 직접 아이 키우면서 일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거야, 그렇지? 그렇게라도 위안을 해.”

 
아이는 어린데, 가정 일과 양육을 도맡으면서 돈벌이까지 나서야 하는 상황에서 피치 못하게 수퍼우먼이 되어버린 정화는 편한 생활보다는 따뜻한 대우를 더 원했다.

 
“나에 대한 고마움이나 미안한 마음을 표시해야 하는데, 남편은 그런 게 없는 거야. 그래서 자꾸만 억울하다는 생각이 드나 봐. 관계에서 나는 잘했고 남편은 못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 남편도 밖에서 보면 나쁜 사람은 아니야. 다만 나와 잘 맞지 않는 거지. 그도 다른 여자를 만났더라면 더 잘 살지 않았을까?”

 
“경제활동을 할 때 행복을 느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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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딸 윤정(6)은 엄마의 마음을 이해해주는 어른스러운 친구다.
가정생활은 순탄치 않았지만, 딸 윤정과는 너무나 사랑하고 가깝게 교류하는 사이니 아이를 낳은 것에 대한 후회는 없다. 뿐만 아니라 그녀는 자신의 일을 “천직”이라고 할 만큼 직장생활에 만족하고 있다. 비록 정규직은 아니지만.

 
“중요한 건, 내가 경제활동을 할 때 행복을 느낀다는 거야. 천직인 것 같아.”

 
첫 직장은 모 학습지 편집실이었는데, IMF때 회사가 어려워지면서 학원강사 일에 나서게 되었다. 국어와 논술을 가르치는데 벌써 횟수로 9년째다.

 
“이 일 시작할 땐 연극적인 느낌이 있었어. 수업시간에는 내가 아이들에게 권위가 생기잖아. 아이들이 다 나를 쳐다볼 때 뿌듯하고, 나에게 더 집중하도록 만들려고 노력했지. 지금은 그만큼은 아니고, 애들이 하나라도 더 이해했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으로 가르치지.”

 
재작년에 한 유치원에서 영어를 가르쳐보라는 제안을 받았다. 어렵지 않을 거라 했지만, 막상 교육을 받아보니 보통 전문성이 필요한 일이 아니었다. 못하겠다고 거절했다가, 계속되는 요청에 결국 신입교육을 받고 작년부터 일을 시작했다.

 
“흉내내기에 불과했지만, 내가 언어적 감각은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열심히 하면 될 거라 생각했지. 가슴 떨렸어. 지금은 경력이 2년 차니까 감이 있지.”

 
정화는 매일 오전에 유치원에서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오후에는 주 2회 학원에 나간다. 아이는 놀이방에 맡기고, 보충수업을 할 때면 문밖에 앉혀놓고서 수업을 한다. 그러는 새 딸 윤정이 어느덧 여섯 살이 되었다. 양육과 일을 병행하기 너무 힘들어 학원과 유치원 둘 중 하나의 일을 줄이려고 했지만, 그러지를 못했다. 이유는 ‘사람’ 때문이다.

 
본받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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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에겐 인생의 '멘토'가 되어주는 사람들이 있다.
“유치원 지국장과 학원 원장이 너무 좋은 사람이거든. 인생의 멘토라고 하나? 닮고 싶은 사람이야. 두 사람의 가정생활은 어떤지 모르지만, 사회생활 하는 모습을 보면 참 멋져.”

 
두 사람 다 40대 초반의 여성인데, “자기관리를 잘 하고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본받고 싶다고 한다.

 
“원장은 리더십이 있어. 선생님들 인사와 상담, 아이들 시간표 관리 등을 다 맡아서 하는데. 아이들을 자신의 아이인 것처럼 사심 없이 대하고, 선생님들도 인격적으로 존중해줘. 나는 그 사람이 주는 일을 믿고 따라가지. 실망시키고 싶지 않기 때문에 최선을 다하게 돼. 내가 중요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갖도록 해주니 자신감이 생겨. 그건 참 소중한 일이잖아.”

 
가난한 아이들에겐 학원비를 감면해주어서 해마다 잊지 않고 찾아오는 아이들이 있고, 공부 못하는 아이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아서 초등학교 6학년 때 구구단을 배웠다는 아이도 있다고 했다. 돈 버는 일에 앞서 아이들을 생각할 수 있는 환경이라는 점이, 그녀로 하여금 일에 열정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드는 것 같았다.

 
“그래서 여느 학원과는 달리, 선생님들이 잘 안 나가는 편이야. 근데 첫 직장으로 이곳을 들어온 사람들은 여기가 좋다는 걸 잘 모르더라? 학원을 이곳 저곳 전전해본 사람들은 알지. 여기서 계속 일하고 싶어해. 나도 마찬가지고.”

 
그녀가 또 다른 멘토로 꼽은 유치원 지국장은 대범한 면은 없지만 “자기관리를 잘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성격은 소심한 편인데, 대신 굉장히 치밀하지. 준비를 하지 않으면 떨린다고 하면서 말이야. 나는 그런 철저한 면을 본받고 싶어. 그 두 사람을 보면서, 내가 많이 부족한 인간이구나 하고 느끼지.”

 
정화는 자신도 사회에서 만나는 후배들에게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가정생활에 있어서도 누군가 ‘가정생활은 이렇게 하는 거야’ 하고 몸소 보여준다면, 따라서 해나갈 것도 같은데 말이지. 이렇게 살아봐, 하는 모델이 있었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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