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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다> 뛰다의 시골마을 예술텃밭 5. 몸이 알려주는 길 
 
※ 뛰다는 2001년 ‘열린 연극’, ‘자연친화적인 연극’, ‘움직이는 연극’을 표방하며 창단한 극단입니다. 지난해 강원도 화천으로 이주해 20여 명 단원들이 폐교를 재활 공사하여 “시골마을 예술텃밭”이라 이름 짓고, 예술가들의 창작공간이자 지역의 문화예술공간으로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연극이 소수 관객의 문화소비 대상이 아니라, 일상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문화환경’이 되길 꿈꾸는 뛰다의 “시골마을 예술텃밭” 다섯 번째 이야기는 배우 김가윤씨가 전합니다. 
<일다> www.ildaro.com
 
시골마을 예술텃밭이 준 변화
 

▲ 물이 흐르듯 나도 하루하루를 흘러간다.  © 김가윤 

 
“몸은 길을 안다.”            
                      -최인훈, [광장]중에서-
 
물이 흐르듯 나도 하루하루를 흘러간다. 어디로 흐르는 지도 모르는 채, 언제 어디에서부터 흘러왔는지도 알지 못한 채 그저 계속해서 흐르고 있다.
 
갑자기 물 타령을 하는 이유는, 나도 그 누구도 짐작하지 못했던 ‘내가 여기에서 이 사람들과 이 시간을 함께하는 이유’를 이 한마디로 설명하기 위해서이다. “몸이 이미 길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 길을 따라 흘러왔을 뿐이다.”
 
서울에 있는 어떤 친구들은 ‘너는 왜 사서 고생하러 가냐’고 말한다. 맞다. 나는 사서 고생하러 여기에 왔다.
 
인간은 환경에 지배받는 사회적 동물임을 나를 보며 깨닫게 된 이후부터 끊임없이 내가 사는 환경에 대해 고민하고 갈등했다. 서울 토박이 시절 어느 날, 나는 삶의 방식을 결정해야 함을 절실하게 느꼈다. 익숙함에 의지해서 여기에 머무를 것인가 아니면 오지처럼 느껴지는 새로운 환경에 나를 던질 것인가! 심각하게 생각했지만 결론은 단순하게 화천에 이주한 ‘뛰다에 오느냐 마느냐’였고, 결국 나는 오지로 몸을 던졌다.
 
그렇게 1년이 넘은 이 시간, 지금의 나와 처음 뛰다에 왔던 나를 비교해보면 참 많은 변화가 있었다. 다행히도 지금의 나는 예전의 나에 비해 매우 건강하다. 물론 여기에 온 이후로는 하루도 빠짐없이 하루에도 몇 번씩 심지어 매순간 내가 송두리째 흔들림을 겪었기에 가능한 변화이다. 생활이 변하더니 습관이 변했고 습관 따라 몸이 변하더니 몸 따라 생각까지 변하며 사고방식의 체계가 달라지고 있다. 심지어 이제는 이렇게 커다란 변화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당연하게 느껴질 정도이다.
 
머리 아닌 '몸'으로 생각하기
 
이 지경(?)에 이르기까지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여기에서 배운 배우 훈련 중 하나인 ‘내가 생각하는 <움직임 명상>’을 잠깐 소개하겠다.
 
<움직임 명상>은 머리가 아닌 몸으로 생각하는 훈련이다. 의식이 몸을 움직이려는 의지를 부리기보다는 몸을 믿고 의식과 의지를 맡기는 것이다. 그래서 몸이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몸이 생각하는 것을 바라보며 그 생각이 잘 흘러갈 수 있도록 몸을 놓아주는 것이다.
 
하지만 처음 이 훈련을 시작할 때에는 현재의 내 상태를 스스로 인식하는 것조차 힘들었다. 1년이 지난 지금도 이 훈련의 문법을 겨우 익힌 정도이지만 훈련을 반복하며 알게 된 것은, 나를 제대로 보려면 먼저 먼지를 털어내듯이 나를 보기 힘들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스스로 인지하고 해결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또 그런 노력들을 계속해서 훈련하는 과정을 통해서는 ‘산을 넘으면 또 다른 산이 나오지만 산을 넘어봤다면 또 다시 산을 넘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훈련과정들이 언제부터인가 생활과도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되면서 삶의 방식에도 이 ‘훈련’이라는 단어를 들이대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요즘은 바람 잘 날 없는 하루에 대하여 “지금은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더라도 꾸준히 노력하다보면 좋아질 거야”라며 초등학교 도덕교과서를 읽듯이 말하게 된다.
 
괜찮다, 그리고 외롭지 않다
 

▲ 2011년, 나는 "괜찮다"는 말을 배웠고, 나를 가두어 놓았던 강박을 편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 뛰다 

 
2011년 한해는 나에겐 참 특별하다. 뛰다 배우로서 보내는 첫 해이기도하고, 개인적으로는 20대의 마지막 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말에는 마음이 유난히 바빴다. 개학을 앞두고 밀린 방학 숙제를 한꺼번에 하려는 아이처럼, 그동안 미뤄두었던 마음 숙제들을 30대까지 가져가기 싫어서 내 안의 먼지 쌓인 서랍들을 일일이 열어보았다. 서랍을 열기 전에는 31일 밤에 “숙제~끝!”이라고 외치리라 다짐했지만 막상 열어보니 그것들을 하루아침에 풀 수 없단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는 재미있게도 “괜찮다”라는 말을 배우게 되었다. 괜찮다는 말은 나를 가두어 놓았던 많은 강박들을 좀 더 편안하게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 덕분에 강철로 만든 벽처럼 느껴졌던 여러 가지 사회적 기준들이 점점 말랑 말랑해 지면서, 신기하게도 나 자신을 믿고 따르는 것에 좀 더 자신을 갖게 되었다.
      
내 안에 새로 생겨나는 많은 말들은 나 혼자 생각해낸 것이 아니라 그동안 흘러온 나의 시간이 이곳을 만나 새롭게 지난 한 해를 흐르며 나에게 말해준 것이라 믿는다. 앞으로 나에게도 남에게도 점점 더 많이 괜찮다는 말을 해줄 수 있길 바란다. 좀 더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자신을 믿으며 스스로의 길을 흘러갈 수 있을 거라고. 때로는 너무나 조금씩 천천히 흘러서 미처 알아차리지 못할 수도 있지만 분명히 흐르고 있을 거라고.
 
그리고 그 길에서 결코 나 홀로 외롭지 않을 것이란 걸 여기에서 만나는 이들을 통해 매일 확인한다. 우리는 함께 하루를 훈련하니까. 그래서 나의 몸은 여기에 찾아왔나보다. 이미 이럴 줄 알고.
 

※ 뛰다의 “시골마을 예술텃밭” 카페 cafe.naver.com/tuida

김가윤 / 미디어 <일다>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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