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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감성 충전

와인 라벨이 말해주는 것

그 여자들의 물결 일다 2012.01.10 07:30

스페인 스파클링와인과 맞이한 새해 첫날
여라의 와이너리(winery) 4. 만남 ② 남들의 언어 


삶이 녹아있는 특별한 와인(wine) 이야기, "여라의 와이너리(winery)" 연재가 시작됩니다. 와인전문가가 직접 편견없이 와인을 즐기고 이해하는 법에 대해 말합니다. [일다]  www.ildaro.com
 

와인은 이야기다. 끝도 없이 다양한 와인들이 모두 제각각 이야기를 지니고 있다는 점이 다른 음료나 술과 차이나는 와인의 매력이다. 물론 공장에서 찍어내는 사이다, 콜라 혹은 소주, 맥주 같은 ‘막와인’도 많다. 그렇지만 아무리 현대 과학기술로 똘똘 뭉친 사람이라도, 심지어 돈에 환장한 인간일지라도, 와인을 만들기 위해선 하늘과 땅이 베풀어주는 테두리를 넘어설 수가 없다.
 
와인을 만들 기회는 일 년에 딱 한 번밖엔 없다. 포도는 쌀처럼 이모작, 삼모작이 되질 않는다. 포도를 보관해 두었다가 와인을 만들 수도 없다. 일단 와인으로 만들어두었다가 나중에 블랜딩을 할 수는 있지만 말이다. 그래서 와인에는 한계가 분명한 인간의 땀과 기쁨과 감사, 고뇌와 갈등 이야기가 가득하다.
 
그런 점에서 와인은 우리 전통주, 그 중에서도 특히 일상에서 예나 지금이나 흔히 접하는 막걸리와 닮았다. 그 지역 누룩이 특별한 풍미를 더해준다는 점에서 더 그러하다. 지금은 세상이 좋아져 한정 생산된다는 귀한 막걸리도 전국 어디든 택배로 받아다 먹을 수 있는 것처럼, 와인도 전 세계 어디에서 생산이 되었건 식탁에 올리는 일이 꽤 쉬워졌다. 먼 나라 와인 이야기를 모르고 마신다고 누가 뭐랄 것도 없다.
 
그렇지만 요새는 농수산물의 이력도 조회하는데 와인 이력도 알고 마시면 이야기도, 밥상위의 나눔도 풍성해지지 않을까.

 
와인 라벨이 말해주는 것
 
무언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단 눈 딱 감고 달달 외우는 단순무식한 방법이 있다. 그러나 외우는 것도 매개가 있으면 훨씬 쉽다. 문학, 음악, 영화, 음식 등 사람마다 그 매개는 다르다. 나에겐 이렇게 저렇게 배운 남들의 언어가 그들을 이해하는 데에 큰 도움을 준다.
 
사실 그들을 이해하게 해줬다기보다는 그들은 모두 다양하고 제각기 다르다는 점을 인식시켜줬다는 표현이 보다 정확하다. 그리고 언어에 대한 이해에 더해, 이런저런 와인을 마시면서 비로소 세계지도가 내게 유의미하게 다가왔다. 와인 덕분에 좀 더 큰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고, 그 맥락 안에서 내 자신을 새로이 파악할 수 있게 된 경험들을 한 것이다.
 
몇 년 전 어느 화요일 저녁, 내가 여태껏 배운 언어들이 몇 가지나 되나 한 번 세어보았다. 한국말과 영어처럼 생존에 필요해서 배운 것도 있지만, 학교에서 배워야 하는 것이라 배운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런가 하면 남들은 십자수나 스도쿠를 하듯 취미로 익힌 것도 있다.
 
그리하여, 전혀 모른다고 할 수도 없는 것들까지 다 싹싹 긁어모아 합치니 열 가지다. 여기엔 각각 3주 속성으로 배웠던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매우 얄팍한 한자 지식과 고등학교 때 특별활동시간에 한 2년 배운 수화까지 따로 세어 포함시켰으니 알고 보면 그리 위화감 줄 숫자는 아니다. 제대로 명함 내밀 수 있을 만큼 잘 하는 것은 결국 몇 개 안되지만, 중구난방 익혀온 것들이 어느 날 한꺼번에 쓸모 있게 되었다. 와인 라벨을 읽을 때 꽤 유용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태리어를 꼭 배우고 싶다. 아직은 작심삼일 반복 중.)
 
와인 라벨은 상품으로서 가치를 높이기 위해 미적 측면을 고려해 만들지만, 기본적으론 ‘이름표’다. 어느 지역에서, 언제 수확한 포도로, 누가 만들었다는 정보가 적혀있다. 그 외에 알코올농도와 해당 와인이 만들어진 와이너리 연락처, 기타 법적 규제에 따라 포함시키는 내용이 더 들어 있다.
 
거기에 와이너리의 간단한 역사나 와인 이름의 배경 이야기를 더해 넣기도 하고, 포도가 재배된 곳의 기후와 토양이 이러이러해서 이러이러한 와인이 만들어졌다는 설명도 있기도 하다. 때로 친절한 와이너리에서는 ‘이 와인을 어떻게 만들었다’ 하는 자세한 성분분석을 공개하기도 한다. 와인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는 실마리가 와인라벨에 담겨있다.
 
내가 오랜 시간과 노력을 들여 익히려고 한 언어들은 공교롭게도 와인으로 유명한 지역의 언어들이다. 물론 남의 언어를 배울 땐 특별히 개인적인 계기가 있지 않는 한 영향력이 큰 나라의 언어를 배운다. 애인이 쓰는 말이 아닌 다음에야 대개 힘이 세거나, 돈이 많거나, 사용인구가 많아 써먹을 일이 많은 언어를 배우는 게 당연하다.
 
와인은 고대 로마로부터 제국의 세력과 그리스도교의 교세를 따라 전 세계로 퍼진 셈이니 와인이 중요했던 문화권은 한때 힘이 셌다. 지금도 유럽과 와인은 생산량과 영향력을 보았을 때 떼려야 뗄 수 없는 그렇고 그런 사이이긴 하지만, 그들이 전부는 아니다. 예를 들면 믿거나 말거나 중국은 오늘날 세계5위 와인생산국이다. 몇 년 전 홍콩이 아시아의 와인 허브가 되겠다는 신념에 와인 관세를 없애버린 것과 연관 지으면 중국어를 배워 와인 업에 종사하는 것도 꿈꿔볼 만한 일이다.
 
저렴하고 맛있는 스페인 스파클링와인 ‘카바(cava)’

 
▲ 까바는 대부분 바르셀로나 근교 ‘산트 사두르니 다노이아 (Sant Sadurni d’Anoia)’라는 지역에서 만든다.  까딸루냐 지방이라서 지명이 스페인어도 아닌 까딸란이다.  와이너리에 가다 네비게이션 덕분에 길을 잃고 예약을 놓쳤다.  아쉬운 마음에 경치나 구경하자 하고 언덕 위로 올라갔다.  아침 안개가 덜 걷혀 건너편 구릉이 잘 보이지 않지만,  앞에는 너른 포도밭이 펼쳐졌다.     © 여라 
 
스페인 말을 쓰는 애인을 사귄 일도 없는데, 난 이상하게도 스페인에 대한 로망이 있다. 스페인제국과 멕시코 땅이었던 지역에 오래 살다보니 음식, 문화, 언어가 자연스레 가까워진 이유도 있다. 스페인 와인을 들입다 마셔대더니 결국 스페인 와인지역을 방문한다는 핑계로 재작년 가을 17일간 여행을 확 질렀다. 그러고는 마치 사랑을 확인이라도 한 듯 그 곳에 언제 다시 가나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그래서 요새도 스페인 와인을 좋아한다.
 
새해 첫날 친구네 모여 저녁을 함께 먹었다. 주 메뉴는 매생이+굴 떡국. 그리고 떡국 만들고 남은 매생이랑, 그 전날 먹고 남았다는 삶은 오징어 두 마리의 다리와 머리 부분을 굵게 다져넣고 만든 부침개. 그날 난 얼마 전 창고형 대형할인매장에서 정확하게 17,490원을 주고 장만한 스페인 스파클링와인을 한 병 가져갔었다. 재작년 스페인 갔을 때 방문한 와이너리에서 만든 와인인데, 차려놓은 음식과 우연히도 환상의 조합이었다.
 
스파클링와인을 흔히 ‘샴페인’이라고 통틀어 부르는데, 프랑스 샴페인(불어발음으로는 샹빠뉴)지역에서 만든 스파클링와인만 ‘샴페인’으로 불릴 수 있도록 국제 법으로 보호를 받는다. 나머지는 다 그냥 ‘스파클링 와인’이다.
 
다만 나라별로 부르는 이름에 따라 프랑스 샴페인 이외 지역에서는 크레망, 스페인에서는 까바, 독일에선 젝트, 이탈리아에서는 스푸만테다. 이런 이름은 별 것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스파클링와인을 우리가 ‘뽀글이’라고 부르면 그게 이름이 될 것이다. 와인가게나 음식점에서 들어가 “까바 한 병 주세요.”하면 스페인에서 생산된 스파클링와인을 찾는다는 뜻이 된다.

▲ '프레시넷'은 ‘코도르뉴’와 함께 까바 양대 산맥이다.  동네 축제 때 끌고 나간다는 프레시넷 트럭을 스파클링 와인 코르크 모양으로 꾸며서 재미있다.     © 여라 

 
스페인 스파클링와인인 까바(cava)가 사랑을 받는 이유는 가격은 저렴한데 전통방식으로 만들어져 질은 꽤 괜찮기 때문이다. 와인은 기본적으로 포도즙을 발효시킨 거다. 스파클링 와인을 만들기 위해서는 이렇게 만든 와인을 다시 한 번 발효시키는 과정이 있다. 이 때 발생한 이산화탄소가 와인에 스며들어 뽀글뽀글 기포가 생긴다.

‘전통방식’이라 함은 와인을 만들어 병입(술을 병에 넣는 일)한 뒤에 두 번째 발효를 병 하나하나 안에서 진행시켰다는 뜻이다. 그래서 샴페인이 비싸다.

 
그럼 비전통방식은? 두 번째 발효과정을 커다란 탱크에서 진행시키고 난 뒤 스파클링와인으로 만들어 병에 넣거나, 아님 패스트푸드 가게 탄산음료기계처럼 와인원액과 탄산수를 섞기도 한다. 그러니 이태리 장인이 한 땀 한 땀 정성들여 만든 옷처럼 한 병 한 병 만들어진 전통방식은 다른 방식에 비해 맛이 더 좋을 테다.

스파클링와인도 전혀 달지 않은 (=드라이) 것부터 달달한 것까지 있으니 입맛과 상황에 따라 원하는 대로 선택할 수 있다.

여라 / 미디어 <일다> 즐겨찾기!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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