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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감성 충전

일곱 달 '나모'의 우리동네 이야기

그 여자들의 물결 일다 2012. 1. 1. 07:30

<일다> 일곱 달 '나모'의 우리동네 이야기
[
뛰다의 시골마을 예술텃밭] 4. 화천둥이 나모의 화천 일대기 

 
※ 뛰다는 2001년 ‘열린 연극’, ‘자연친화적인 연극’, ‘움직이는 연극’을 표방하며 창단한 극단입니다. 지난해 강원도 화천으로 이주해 20여 명 단원들이 폐교를 재활 공사하여 “시골마을 예술텃밭”이라 이름 짓고, 예술가들의 창작공간이자 지역의 문화예술공간으로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연극이 소수 관객의 문화소비 대상이 아니라,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문화환경’이 되길 꿈꾸는 뛰다의 “시골마을 예술텃밭”의 네 번째 이야기입니다. www.ildaro.com 

안녕하세요, 화천둥이 배이나모입니다!
 
저는 이제 일곱 달 된 배이나모입니다. 올 해 오월에 세상으로 머리를 내밀었지요. 뛰다에서 연출을 하며 살아가시는 두 분, 배 모씨와 이 모씨의 딸로 이 땅, 화천에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 승준이 삼촌은 코를 핥아주면 아주 좋아해요.  © 공연창작집단 뛰다
 

난 생기기도 화천에서 생겼다네요. 그래서 엄마는 저를 뛰다 첫 번째 '화천둥이'라고 부르곤 합니다. 제가 그다지 오래 살진 않았지만, 여기에서 지낸 시간으로만 본다면 뛰다 이모, 삼촌들과 많은 차이가 나지는 않을 거예요. 그러니, 저도 제 평생 동안 지내온 우리 마을에 대해 한 마디 하고 싶습니다, 감히.
 
커다란 샛별과 하얀 눈송이에 가슴이 콩닥거렸어요
  
제가 엄마 뱃속에 들어가기 두 달 전, 뛰다는 도시에서 이곳으로 옮겨왔답니다. 그 즈음 엄마는 몸이 좀 안 좋으셔서 많이 고생하고 계셨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날카로운 거리의 간판들이 이리저리 내쏘는 불빛들이 몸을 찌르는 듯해, 도시의 밤이 무척 힘드셨대요.
 
그런데, 전 그게 무엇인지 알지 못합니다. 제가 처음 본 밤은 샛별이 커다랗게 빛나고 있었던 하늘이었으니까요. 엄마 뱃속에서 이리저리 뒤척이던 저는 환하게 빛나는 맑은 별을 보았고, 엄마가 '샛별'이라 부르기에 그것이 샛별인지 알았습니다. 가슴이 왠지 모르게 계속 콩닥콩닥 거려서 샛별이 나올 때가 되면 엄마를 마구마구 깨웠습니다. 그리고는 엄마와 함께 샛별과 그 주위로 깊은 호수가 생기던 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보았습니다. "이렇게 이른 새벽마다 뭐가 그리 신나누?" 영문을 모르는 엄마는 둥근 배를 만지며 내게 말하곤 했습니다. 나의 첫 겨울 내내.
 
그 겨울 나를 콩닥거리게 하는 것이 또 있었습니다. 눈입니다. 여기엔 눈이 정말 많습니다. 하루걸러 한 번씩은 눈이 날렸습니다. 하얗고 하늘하늘한 눈송이들이 집 앞을 흐르는 원천강으로 쏙 빨려 들어가기도 하고, 나무와 땅에 사뿐히 내려 앉아 꽃송이가 되기도 했습니다. 참으로 고왔습니다. 이 고운 눈과 겨울에 대해서 엄마와 아빠는 하루에 한 가지씩 이야기를 만들고 그림을 그려서 제게 들려주었습니다. 엄마가 만든 이야기엔 아빠가 그림을 그리고, 아빠가 만든 이야기엔 엄마가 그림을 그렸습니다. 이야기가 많은 겨울이었죠. 물론 재미없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만, 내색하지 않고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발을 동동 굴렀습니다.
 
그러다 눈이 내려앉았던 자리에 파릇파릇 이파리들이 돋아났습니다. 엄마를 돌보시러 와 계셨던 외할머니께서는 그 이파리들 중에서 무언가를 골라 캐셨고, 그것으로 떡을 만들어 엄마를 먹이셨습니다. "내가 웅녀도 아닌데, 쑥 먹고 애 낳으러 가네." 엄마는 엄마의 엄마에게 고마움을 이리 말했다합니다.

▲ 나모의 엄마, 아빠가 만든 그림책.     © 뛰다 
 

그리고는 제가 드디어 이 세상으로 쑤욱 나왔습니다. 이 주일 동안 서울로 공연 갔던 아빠와, 뛰다 이모, 삼촌들이 다 화천으로 돌아온 바로 다음날 말입니다. 엄마는 우리 딸 효녀라 하셨고, 혜란 이모는 극단 일정을 아는 걸 보니 뛰다인답다며 칭찬하셨습니다. 다른 곳보다 많이 늦었지만, 가장 향긋하고 싱그러운 봄이었습니다.

우리 동네엔 예쁜 보건소가 있고, 정다운 시장도 있어요

 
제가 세상에 나왔더니 도시에 사시는 외할머니께서는 이래저래 걱정이 많으셨습니다. 왜 이 시골로 와서 이러고 있는지 모르시겠다고요. 우리 읍내엔 그 흔한 소아청소년과 하나 없다고도 하십니다.(제 또래의 사람들이 다니는 병원을 소아청소년과라 부른다지요.) 제가 아프면 가까운 도시인 춘천으로 차를 타고 나가야 하냐고.
 
그런데 할머니, 걱정 마세요. 우리 읍내엔 예쁜 보건소가 있답니다. 보건소에는 내가 다닐 소아청소년과도, 엄마가 다닐 산부인과도, 아빠가 다닐 내과도, 게다가 다 같이 다닐 치과까지 있다고요. 제가 예방 접종 하러도 가봤고, 건강검진 받으러도 가봤는데 간호사언니들도 친절하시고 의사선생님께서도 꼼꼼하게 저를 봐주신답니다. 질문 많은 엄마를 귀찮게 생각지 않으시고 일일이 다 자세하게 설명해주시고요. 게다가 선생님은 젊고 멋진 분이셔서, 전 울지 않고 씩씩하게 보이려고 애쓴답니다.
 
▲ 나모 백일날 마을 부녀회장님, 외할머니와 함께     © 뛰다 

 
하지만, 외할머니는 장보기가 불편하다며 또다시 걱정이셨습니다. 그런데, 그건 쉽게 풀리셨네요. 5일장을 다녀오셔서는 장날에 나온 물건들이 아주 싱싱하다며 좋아하셨고, 작지만 있을 것 다 있는 시장을 다녀오셔서는 시장분들이 아주 좋으시다고 감탄하셨습니다. 지금은 오실 때마다 시장에 인사를 가시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되었지요.
 
아, 시장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요, 저도 얼마 전에 시장으로 인사를 갔었습니다. 시장분들은 이미 절 알고 계셨거든요. 아빠가 장 보러 올 때마다 아기는 잘 크냐, 장모님은 또 언제 오시냐고 물으시며 야채를 더 넣어주시는 농촌상회 할머니와 과일가게 아주머니께 작은 눈 최대한 크게 떠서 보여드렸습니다. 입덧 심한 엄마가 아무 것도 먹지 못한다 했더니, 직접 누룽지를 만들어서 보내주셨던 생선가게를 하시는 쌍둥이네에도 고맙다 인사드렸습니다.
 
"나도 입덧 심했을 때, 주위 어르신들이 다 그렇게 챙겨주셨어요. 그대로 한 것뿐인데 뭘……. 고맙기로 치면 내가 더하지. 송이와 화천 주민들이 작년에 뛰다분들과 함께 화천 거리에서 공연을 하는 걸 보고 얼마나 자랑스러웠는데요. 고마워요." 송이언니는 지금 서울에 있는 대학에서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다고 합니다.
 
예술텃밭에서 내 마음은 초록으로 물들고 있답니다
 
▲ 뛰다의 이모 삼촌들과 <노래하듯이 햄릿> 연습에 참여하기도 했어요.     © 뛰다 

 
저의 생애 첫 나들이 장소는 뛰다 이모, 삼촌들이 있는 예술텃밭이었습니다. 저의 백일잔치와 은우 언니 돌잔치를 거기서 함께 했거든요. 아빠와 이모 삼촌들이 다시 긴 여정으로 길을 떠나시게 되어 전 백일이 되지 않았지만, 백일인 셈 치고 서둘렀어요.(은우언니는 뛰다 2세대 둘째랍니다. 기획하는 민후삼촌과 배우인 수아이모의 딸이지요. 저에게 옷과 장난감을 물려주는 좋은 언니에요.)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여름날, 동네가 훤히 내다보이는 마당에서 뛰다 이모, 삼촌들과 마을 이장님과 부녀회장님께서 저와 은우언니를 축하해주었어요. 초록, 초록 온통 초록이었지요. 내 마음도 초록물이 들었답니다. 잔치 내내 엄마는 나와 엄마를 염려하고 기도 해주던 모든 뛰다 식구들에게 고맙다고, 앞으로 나모와 은우가 뛰다 어른들의 보살핌과 사랑으로 잘 클 수 있게 해달라고 계속 생각하셨대요.
 
요즘 저는 뛰다로 매일 출근하고 있습니다. 이모, 삼촌들의 점심시간에 가서 재롱을 떨어주지요. 아직은 제 기술이 서툴러서 여러 가지 할 수 없어 가끔씩 웃어 주는 것, 눈 마주치는 것으로 때우고 있지만요. 그러다, 가끔은 이모 삼촌들의 노래를 듣습니다. 같은 노래를 계속 부르기도 어떤 때는 무서운 노래를 부르기도 하지만 재미납니다. 공연 연습하는 것을 잠깐 잠깐 보기도 합니다. 신날 때도 있고, 이상할 때도 있습니다. 저를 안고 노래를 부르며 빙글빙글 돌 때는 제가 공연을 하는 기분이 들기도 했습니다.
 
제가 재롱을 떠는 것보다 이모, 삼촌들이 제게 보여주는 게 훨씬 많은 날들입니다. 고맙습니다. 앞으로 언젠가 저도 더 많은 기술을 보여드릴 날이 오겠지요. 기다려주세요. 지난 달 태어난 뛰다 막둥이 주황이(저는 다섯 달 만에 뛰다 막내에서 벗어났습니다), 뛰다 2세대 첫 째인 솔이언니, 그리고 은우언니와 함께 텃밭 운동장에서 뛰어 다니며 이모, 삼촌들의 일손을 거들어드릴 날이 오겠지요. 꼭 온다니까요.
 
가슴이 콩닥콩닥 거리던 겨울이 다시 왔습니다. 저의 두 번째, 제 눈으로 직접 보기는 처음인 겨울입니다. 내년에 세 번째 겨울을 맞이할 즈음에 전 할 말이 더 많아 질 것 같습니다. 고운 겨울 보내세요. 엄마가 저더러 정말 수다쟁이라네요.
 
-  2011년 12월 25일에 배이나모 이야기, 이주야 엄마가 대신 씁니다.

※ 뛰다의 “시골마을 예술텃밭” 카페 cafe.naver.com/tui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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