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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고 불편한 것 너머에"
극단 뛰다의 시골마을 예술텃밭 3. 쑥스러운 이야기 두 개 
 
※ 뛰다는 2001년 ‘열린 연극’, ‘자연친화적인 연극’, ‘움직이는 연극’을 표방하며 창단한 극단입니다. 지난해 강원도 화천으로 이주해 20여 명 단원들이 폐교를 재활 공사하여 “시골마을 예술텃밭”이라 이름 짓고, 예술가들의 창작공간이자 지역의 문화예술공간으로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연극이 소수 관객의 문화소비 대상이 아니라, 일상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문화환경’이 되길 꿈꾸는 뛰다의 “시골마을 예술텃밭”의 세 번째 이야기가 찾아갑니다. <편집자 주- 일다> www.ildaro.com
 
<이야기에 앞서 간략한 자기 소개>
 
이름: 김모은 1984년 11월 11일 생. 극단 생활 2년 째. 나이서열은 끝에서 두 번째.  서울 방배동에서 태어나 서울 이곳저곳에서 26년간 살았으며, 시골생활은 1년 6개월쯤 되었음. 현재 극단 뛰다의 밥상을 책임지고 있는 '밥짱'이며, 화천의 매운 겨울이 무사히 지나길 기도하고 있음.
 
[이야기 하나: 동계훈련]
 
겨울이다. 차분히 내 몸에 농사를 지어야 하는 계절이 돌아왔다. 나쁜 것은 빼내고, 묵은 것은 툭툭 털어 차가운 겨울 햇볕을 쪼이고, 아직 덜 자란 좋은 것은 돌보고, 날이 따뜻해지면 자라날 어떤 것을 위해 거름을 줄 때이다. 그래야 일 년 동안 그 몸으로 잘 뛰어다닐 수 있다. 이 겨울을 버티지 못하고, 쓰러지면 나는 이 추위보다 더 혹독하게 나에게 실망할 것이다. 조금 각박하게 들릴 수 있지만, 버티고 발전하느냐 아니면 쓰러지고 마느냐는 내겐 햄릿의 사느냐 죽느냐의 만큼 무게가 있다. 
 

▲ 화천으로 이주하여 일으켜 세운 창작실1에서, 뛰다의 2010년 신작 <내가 그랬다고 너는 말하지 못한다>를 연습하고 있는 배우들의 모습.  가장 왼쪽이 김모은씨.   © 뛰다

몸을 움직이는 것을 그토록 두려워했던 나였다. 나도 내가 이렇게 변할 줄 몰랐다. 화천에서 맞는 두 번째 겨울. 문득 작년 겨울이 생각난다. 작년 겨울엔 최재영 선배님께서 동계훈련을 진행하셨는데, 겨우 2주 버티고 쓰러져서 회복하는데 일주일이 넘게 걸렸다. 그때는 주로 뛰었다. 운동장을 뛰고, 계단을 오르내리며 뛰고, 정해진 시간 동안 일정 구역을 최대한 많이 왔다 갔다 하려고 애쓰면서 뛰었다. 바깥 온도는 영하 10도에서 20도를 왔다 갔다 했다.
 
그렇게 2주가 지나자, 두 달이 넘게 부어 있던 편도선이 결국 문제를 일으켜서 아픈 몸을 끌고 서울에 있는 병원에 갈 수 밖에 없었다. 마음이 영 편하지 않았다. 재작년 까지만 해도 아프면 고된 훈련을 쉴 수 있어서 조금 좋아하기도 했는데 말이다. 그때 난 처음으로 내가 변했다는 것을 인지했다. 계속 열이 내리지 않자 서러워서 엄마에게 말했다.
 
“이렇게 겨울을 보내면 난 올해만큼 밖에 내 몸을 쓰지 못할 거야. 그럼 아마 가을쯤에 적은 수확물을 보면서 실망하겠지. 그건 싫어. 빨리 회복하고 싶어.”
 
그 혹독했던 화천에서의 첫 겨울을 무사히 보내고, 일 년 동안 커다란 인형을 들고 다니며 유목연극을 했다. 워낙 방방곡곡 돌아다니는 극단이긴 하지만 2011년엔 공연해야 하는 장소에 텐트치고 자면서 돌아다녔다. (예를 들어 하이 서울 페스티발에서 공연해야 하면 한강고수부지에 있는 축제 사이트에서 텐트치고 잤다.) 재밌기도 했지만 버거울 때도 많았다.
 
11월쯤에 올해의 모든 공연을 마치고, 화천으로 돌아와서 내 몸을 살펴보니 면역력은 많이 좋아졌지만 소화기관이 많이 나빠졌고 살도 조금 붙었다. 어떤 동물은 잔뜩 먹고 겨울잠을 잔다고 하는데 나는 살도 빼야 하고 나빠진 소화기관도 다스려야하고 툭하면 고장 나는 어깨며 허리를 조금 더 강하게 만들어야 한다. 배고프고 힘들지만 사실 지금 나는 이 동계훈련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나아가서는 꽤 좋아하는 것 같다. '참 힘들지만 좋다' 는 식의  고백이 왠지 조금 쑥스럽지만 말이다.
 
[이야기 두울: 시골의 밤]
 
시골의 밤은 길다. 그 긴 밤을 그냥 보내기는 어렵다. 그래서 나는 그 밤에 나를 두근거리게 하는 것을 겁내지 말고, 하나하나 해보기로 결심했다. 나를 힘들게 하는 남자 없이, 혼자서.
 
내 가슴을 뛰게 하는 일들
 
내 가슴을 뛰게 하는 일들은 누군가에겐 너무 새삼스럽거나 혹은 소소할 수 있는 그런 것들이다. 그것은 거장들의 음악을 진득하게 감상하는 것. 예를 들면 베토벤이면 베토벤 백건우면 백건우의 작품을 진득하게 듣는 것이고, 기초가 없는 나의 피아노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어린이용 반주 책을 당당히 펴놓고 꾸준히 연습하는 것이다.

또 부르고 싶은 노래를 잘 부를 수 있게 될 때 까지 적어도 100번 이상 부르는 것이고, 미뤄왔던 연극관련 서적을 읽고 함께 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며, 그들과 가끔 귀여운 음악회를 열어서 놀거나, 좋아하는 작가의 소설책을 샅샅이 찾아 읽는 것이기도 하다. 때로는 화장품이며 패션에 관한 지식을 넓히고, 고양이 관련 그림책이나 요리와 인생에 대한 기가 막힌 이야기와 그림이 담긴 책들을 모으는 것이다.

 
이렇게 그동안 하고 싶었지만 여유가 없어서 해보지 못했던 것을 시간과 노력과 꼭 필요한 돈을 들여서 해보는 것이다. 도시에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언뜻 생각해 보면 오히려 도시에서 훨씬 더 잘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생각만 해도 두근거리는 나의 다짐과 소소한 계획은 아이러니 하게도 시골의 긴 밤이 없다면 감히 생각도 못해 봤을 것이다. 친구들 어른들 선 후배들은 내가 강원도 화천에서 살고 있다고 하면 깜짝 놀라면서 하나같이 입을 모아 묻는다.
 
“우와! 밤에 뭐해? 안 심심해?”
 
이젠 이런 질문을 받으면 그냥 씩 웃고 말지만 이곳에 들어와서 내 글을 읽는 당신에겐 왠지 길게 대답하고 싶다. 나도 처음엔 시골 밤이 무척 무섭고 답답하고 힘들었다. 화천으로 이주하고 맞았던 첫 여름엔 밤새 시끄럽게 울어대는 개구리들 때문에 잠을 설쳤던 적도 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시냇물 소리 개구리 소리는 자장가가 되더라.
 
시골의 밤이 좋아진 그 날
 

▲ 연극<내가 그랬다고 너는 말하지 못한다>  연습 중. 이 작품은 화천으로 와서 처음 만든 뛰다의 레퍼토리라서 의미가 깊다.오른쪽이 김모은씨.     ©뛰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시골의 밤이 좋다고 처음으로 느꼈던 어느 금요일 밤이 있었다. 그 날 이후로 지금까지 나는 시골의 밤을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소소한 행복으로 채워가며, 외로움과의 싸움에서 지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잘 보내고 있다.
 
그날은 극단에서 꽤 오랫동안 준비했던 어떤 일이 끝난 날이었다. 일을 모두 마치니 늦은 저녁이 되었다. 서울에서 손님이 한 분 오셨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하룻밤을 화천에 머물기로 한 그 손님과 함께 소주한잔 할 수도 있었지만, 조금 피곤하여 당시 같은 집에 살았던 극단 친구와 퇴근하여 집에 갔다. 저녁으로 야채가 잔뜩 들어간 파스타를 만들어 먹고, 신나게 수다를 떨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우리 수다의 주제는 다양했다. 나를 이해해 주지 못하는 다른 사람에 대한 푸념부터 시작해서 시작이 잘 안 되는 연애이야기 혹은 잘 끝나지 않는 연애이야기 등.

 
당장 해결하기 힘든 문제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땐 마음이 많이 무거워지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는 툭툭 털고 일어나 묵묵히 빨래를 하고, 설거지를 하고, 청소를 했다. 가장 잘 나오기 때문에 고정이 되어 있는 클래식라디오를 들으며. 바닥의 먼지를 닦고, 그릇을 닦고, 깨끗하게 빨린 옷을 탁탁 털어서 건조대에 거는 것이 즐겁게 느껴졌다. 서울에선 관심도 보람도 느낄 수 없었던 집안일이었다.
 
도시의 금요일 밤이었다면?
 
문득, 도시에서의 금요일 밤이 어땠을까 생각해 보았다. 사실 이곳에서도 참 외롭지만 아마 이런 내가 도시에 있다면 더 외로웠을 것 같았다. 누군가를 만나야 할 것 같은 압박에 시달릴 것 같고, 약속이 잡혀있지 않다면 스스로를 패배자라고 생각했을 것 같다. 남자친구가 있다면 남자친구와 어딘가를 가서 뭘 먹거나 뭘 보지 않으면 큰 일이 나는 줄 알았을 것 같고, 애인이 없다면 애인을 찾아 밤새 헤맬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에겐 참 심심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심심하고 고요한 화천의 밤이 그날 처음으로 고맙게 느껴졌다. 나와 함께 이 밤을 보내는 친구에게도 한없이 고마웠다. 내가 누리는 소소한 모든 것들이 시골 밤의 별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것 같다고 느꼈던 그날 밤 이후 나는 시골의 밤이 제법 좋아졌다.
 
그렇다. 시골의 밤은 심심할 수 있다. 어떤 이에겐 너무 적막하고 고요하며 불편할 수 있다. 특히 나처럼 차가 없다면 더 불편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참을 수 없을 것 같았던 불편함과 답답함은 지나간다. 믿기 힘들겠지만 누구보다도 시골의 밤을 힘들어 했던 내가 하는 말이니 믿어도 좋다. 그리고 아마 그 답답함과 불편함이 사라진 자리에 도시에서는 쉽게 만날 수 없었던 아주 작지만 소중한 것들이 자라날 것이다. 이것도 내가 경험하고 있는 것이니 말할 수 있다.

이쯤에서 내 긴 대답의 끝을 내야겠다. (갑자기 시골 생활 전도사가 된 것 같아 몹시 쑥스러워지므로) "시골의 밤이 궁금하시다면, 일단 시골에서 살아 보시지요."

 
※ 뛰다의 “시골마을 예술텃밭” 카페 cafe.naver.com/tuida

김모은 / 미디어 <일다>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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