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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는 어떻게 ‘마녀사냥’을 이용했는가
<일다> 추은혜의 페미니즘 책장(8) 실비아 페데리치 - 캘리번과 마녀
얼마 전 우리나라 연간 무역 규모가 1조 달러를 넘어섰다는 기사를 읽었다. 무역 변방국에서 중심국가로 발돋움했다는 감격에 겨운 자화자찬들에 이어 무역이 곧 우리나라를 먹여 살리는 먹거리와 일자리의 원천이라는 대통령의 연설까지 어우러져 온통 축제분위기였다.
하지만 이제 무역 2조 달러 시대로 도약하자거나, 그 주역은 ‘우리 젊은이들’이라는 그분의 확신에 찬 어투가 왜 그렇게도 공허하게 들렸는지. 적어도 내가 아는 ‘우리 젊은이들’은 지금 무역 1조 달러라는 화려한 기록이 무색하게도, 대학 졸업을 연기해가며 취업에 전전긍긍해야하고, 해마다 치솟는 등록금에 졸업도 하기 전에 신용불량자가 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우리나라 경제의 발전은 대다수 보편 국민의 삶과는 괴리되어 있나보다. 글로벌 기업을 표방하는 국내 대기업들의 덩치는 날로 커지는데, 왜 주변에서는 먹고 살기 힘들다는 얘기만 자꾸 들려오는지. 어쩌면 그 축제는 모두를 위한 것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뉴욕에서부터 시작한 “Occupy Wall Street!(월가를 점령하라)”의 물결이 전 세계로 퍼져나가고 있는 것은, 그 모든 축제들과 경제 성장의 미사여구들이 오직 1%들을 위한 것이었음을 이제 모두가 피부로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역사 속 여성들은?
▲ 실비아 페데리치의 책「캘리번과 마녀」(갈무리, 2011)
실비아 페데리치의 책 <캘리번과 마녀>는 자본주의의 발전과정에 대해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새롭게 재검토한 작업이다. 그간 자본주의의 역사를 다룬 연구들은 농민이었던 남성들이 도시의 노동자가 되어 가는 과정들만 언급했을 뿐이지, 분명히 존재했을 절반의 여성들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설명이 부재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페데리치가 이 주제를 가지고 오랜 세월 동안 깊게 파고들었던 결과는 놀라운 것이었다. 자본주의의 시초축적(*맑스의 용어이며 자본주의가 태동하기 위해서는 노동력과 자본의 집중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에는 마녀사냥으로 대표되는 여성에 가해진 각종 폭력과 남성/국가의 강압이 필수불가결한 사건이었음을 밝혀낸 것이다. 나아가 그녀는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의 남녀 간의 권력차는 자본주의의 태동 당시 그 시스템이 원활히 작동하도록 하기 위해 국가가 강제로 개입함으로써 초래된 산물이라고 말한다.
“성이 자본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상품인 ‘노동력’의 생산자이자 재생산자였던 만큼 여성 착취는 자본주의적 축적의 과정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해 왔다. (중략) 오히려 남녀 간의 권력차는 특정 사회적 생산체제의 결과로 이해해야 한다. 여기서 남녀 간의 권력차를 만들어내는 사회적 생산체제란 노동자의 생산 및 재생산에 들어가는 무임노동의 이익을 보면서도 그것을 사회경제적 활동이나 자본축적의 원천으로 인정하지 않고, 자연자원 또는 개인적 봉사로 신비화하는 체제를 말한다.” <실비아 페데리치, 「캘리번과 마녀」(갈무리, 2011), 21쪽)>
16세기와 17세기의 유럽은 여러모로 격동의 시기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14세기 유럽 인구의 3분의 1을 앗아간 파멸적인 역병인 흑사병으로 인한 인구 위기의 여파에서 기인했다. 흑사병은 중세 봉건질서를 지탱하는 계급관계 자체를 붕괴시켰고, 경제적・사회적 안정성이 극도로 혼란스러워지면서 불안을 극복할 새로운 체제의 구축을 위해 국가는 여러 훈육조치들을 도입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여성은 철저히 패러다임의 이행을 위한 도구가 되었다.
그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여성들은 공동체 내의 공유지를 통해 공적활동을 할 수 있었고, 후일 남성의 직업군으로 간주될 여러 직종에 진출해 있었으며(세공인, 푸주한, 각종 제조업자로서), 약초 등을 이용한 피임법의 전수로 재생산에 대해 자기 통제권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격동에 시기에 이르러 사태는 급변했다. 제일 먼저 일어난 사건은 토지의 사유 재산화(인클로저)였다. 그로 인해 공유지는 상실되었고, 여성은 공적 활동 기반을 상실했다. 그리고 이어서 각 직종으로부터 배제되기 시작했다. 여성의 활동범위는 집안으로 한정되었고,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재생산 노동은 경제적으로 무가치한 것으로 간주되거나 심지어 아예 노동으로조차 간주하지 않는 인식이 엘리트층으로부터 널리 확산되었다.
또한 국가는 대대적인 마녀사냥을 통해 모든 형태의 피임, 그리고 출산과 무관한 성관계 등을 문자 그대로 악마화 했다. 16세기 중엽에는 인구가 국부를 결정한다는 것이 일종의 사회적 공리가 되어 있었고, 결과적으로 여성의 신체는 출산기계로 전락해 있었다.
“노동의 성적 분업은 여성을 재생산 노동에 가두었을 뿐만 아니라, 남성에 대한 의존을 더욱 심화시켜서, 국가와 고용주들로 하여금 여성의 노동을 좌지우지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남성의 임금을 이용할 수 있게끔 했다. 이처럼 상품생산이 노동인구 재생산과 분리되면서 무보수 노동을 착취하기 위해 임금과 시장을 자본주의적으로 이용하는 전략이 발달하게 되었다.” (121쪽)
"중세에는 여성이 다양한 형태의 피임법을 쓸 수 있었고 분만과정에서 확고한 통제를 행사했지만, 이제 그들의 자궁은 남성과 국가가 지배하는 공공영역이 되어버렸고, 출산은 자본주의 축적이라는 목적에 직접적으로 봉사하게 되었다." (146-147쪽)
“마녀사냥은 여성에 대한 전쟁이었다”
자본주의 시스템은 본질적으로 생명이 이윤생산에 종속된 것이다. 화폐로 환원할 수 없는 그 모든 것에 대해서 동일한 가치 단위로 획일화시켜 값을 매기는 체제이다. 그리고 결국 자본주의 시스템을 이끌어가는 유일하고 절대적인 동인이자 목표는 그로부터 발생하는 이윤을 최대화하는 것이다. 책에서도 언급된 미즈의 표현처럼, “자본주의 사회의 목표는 생명을 노동할 수 있는 역량과 ‘죽은 노동’으로 전환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과정은 폭력적일 수밖에 없다. 그 이전까지 (상대적으로 권력이 약했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남성과 동일하게 일을 하고 자신의 몸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었던 여성들이 하루아침에 자신의 노동은 노동이 아닌 것이 되고, 출산을 강요받았다.
시초축적을 통한 자본주의로의 이행과정에는 여성을 남성보다 더 열등한 존재로 새롭게 정의하기 위해, 그리고 그것을 진리로 만들기 위해 여성에 대한 전쟁이 요구되었다. 그리고 그 전쟁은 그 누구도 제대로 기억하려 하지 않았던, ‘마녀사냥’이었다.
“따라서 마녀사냥은 여성에 대한 전쟁이었다. 이는 여성을 비하하고 악마화하며 이들의 사회적 권력을 파괴하기 위한 집단적인 시도였다. 동시에 고문실에서, 그리고 마녀들이 죽어가던 화형대에서 여성성과 가정에 대한 부르주아적 이상이 구축되었다.” (275쪽)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모든 악의 근원이라며 비난했던 마녀사냥은, 새로운 자본주의적 노동규율에 순응하여 가족 내에서의 재산상속과 출산을 위협하거나, 노동에 들어갈 시간과 에너지를 다른 곳에 낭비하게 만드는 모든 성적 활동을 범죄화하는 광범위한 성생활의 재구조화를 위한 주요 수단이기도 했다.” (288쪽)
광적인 마녀사냥이 막을 내린 것은 그간 역사가들이 평가한 것처럼 좀 더 계몽된 세계관이 나타났기 때문이 아니다. 17세기 말엽에 이르러 마녀사냥을 주도했던 지배계급이 더 이상 마녀사냥이 존재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즉, 그들이 원하던 세계가 이제 실제적인 현실로서, 개개인의 일상생활까지 깊게 뿌리내려 하나의 진리로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것을 그들이 느끼는 시점에서 마녀사냥이 중단된 것이다.
여성들은 이제 사회의 공적인 공간에서 철저히 격리된 채로, 임금을 받지 않으면서도 가정의 재생산 노동에 일평생 복속하게 되었고, 여성의 섹슈얼리티는 수동적이며 표출되어서는 안 되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여성의 임신 및 출산은 국부와 직결된 것으로 여성 개개인이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고, 따라서 여성들의 신체와 노동에 대한 무상이용권이 전적으로 남성에게 부여되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끔찍한 사실은 피비린내 나는 마녀사냥 이후 이제 그 누구도 새롭게 재편된 질서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모든 것들은 마치 모든 것이 원래 그랬던 것인 양, 자연적인 질서로서 여겨지게 되었다.
‘1% 대 99%의 싸움’이 잊지 말아야 할 것
여성의 몸은 그 자체로 하나의 기록이며 당대 시대의 정치적 지평이다. 그리고 그러한 사실은 지금껏 은폐되고 억눌려졌던 반쪽짜리 역사 이면에 살았던 여성들의 삶에도 해당되지만, ‘여성’이라는 정체성이 현실 사회에서 우리에게 부여하고 있는 함의가 여전히 강력한 오늘날의 우리 모두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 여성이라면 으레 해야 할 것,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한 사회적 금기가 여전히 통용되고, 사회 전반적으로 위기의식을 고조시켜 국가의 번영이라는 미명 하에 여성에게 결혼과 출산을 강요하는 담론이 횡행하는 작금의 상황이 그것을 방증하고 있다.
지금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자본주의의 실상은 1% 대 99%의 격렬한 충돌이다. 16-17세기 이후 하나의 패러다임으로 정착한 자본주의가 그 사회적 관계 속에 얼마나 많은 모순과 불합리를 수반했는지에 대한 공분이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거리로 나아가게 하고 있다.
자본주의가 우리에게 빼앗은 것은 비단 소외되지 않은 순수한 노동과 화폐로 환산될 수 없는 수많은 가치뿐만이 아니다. 부르주아 대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적대를 남녀 간의 적대관계로 도치시키면서 프롤레타리아트에게는 연대하며 저항할 힘을 빼앗았고 결과적으로 여성들은 소위 ‘빈곤의 여성화’로 인한 이중 삼중의 고통을 겪어야만 하게 되었다.
“Occupy Wall Street"의 구호는 ”We are the 99%.(우리는 99%이다)"이다. 이제 빵과 장미를 원하는, ‘그저 생존하는 수준으로 떨어진’ 삶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금융권의 탐욕과 부의 편중에 맞서 연대의식을 가지고 단결하고 있다.
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자본주의라는 시스템이 이 땅에 뿌리내리기 위해 수많은 여성들이 마녀로 몰려 죽임을 당했던 역사와, 그 이후 자본주의가 심화될수록 사실상 인간의 삶을 더욱 피폐하게 만들었던 것은 남성과 여성이라는 강요된 분할이었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회복해야 할 엄연한 진실들이 자본주의 자체에 대한 근본 물음과 함께 지금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추은혜 / 미디어 <일다> www.ildaro.com
<일다> 추은혜의 페미니즘 책장(8) 실비아 페데리치 - 캘리번과 마녀
얼마 전 우리나라 연간 무역 규모가 1조 달러를 넘어섰다는 기사를 읽었다. 무역 변방국에서 중심국가로 발돋움했다는 감격에 겨운 자화자찬들에 이어 무역이 곧 우리나라를 먹여 살리는 먹거리와 일자리의 원천이라는 대통령의 연설까지 어우러져 온통 축제분위기였다.
하지만 이제 무역 2조 달러 시대로 도약하자거나, 그 주역은 ‘우리 젊은이들’이라는 그분의 확신에 찬 어투가 왜 그렇게도 공허하게 들렸는지. 적어도 내가 아는 ‘우리 젊은이들’은 지금 무역 1조 달러라는 화려한 기록이 무색하게도, 대학 졸업을 연기해가며 취업에 전전긍긍해야하고, 해마다 치솟는 등록금에 졸업도 하기 전에 신용불량자가 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우리나라 경제의 발전은 대다수 보편 국민의 삶과는 괴리되어 있나보다. 글로벌 기업을 표방하는 국내 대기업들의 덩치는 날로 커지는데, 왜 주변에서는 먹고 살기 힘들다는 얘기만 자꾸 들려오는지. 어쩌면 그 축제는 모두를 위한 것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뉴욕에서부터 시작한 “Occupy Wall Street!(월가를 점령하라)”의 물결이 전 세계로 퍼져나가고 있는 것은, 그 모든 축제들과 경제 성장의 미사여구들이 오직 1%들을 위한 것이었음을 이제 모두가 피부로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역사 속 여성들은?
▲ 실비아 페데리치의 책「캘리번과 마녀」(갈무리, 2011)
실비아 페데리치의 책 <캘리번과 마녀>는 자본주의의 발전과정에 대해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새롭게 재검토한 작업이다. 그간 자본주의의 역사를 다룬 연구들은 농민이었던 남성들이 도시의 노동자가 되어 가는 과정들만 언급했을 뿐이지, 분명히 존재했을 절반의 여성들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설명이 부재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페데리치가 이 주제를 가지고 오랜 세월 동안 깊게 파고들었던 결과는 놀라운 것이었다. 자본주의의 시초축적(*맑스의 용어이며 자본주의가 태동하기 위해서는 노동력과 자본의 집중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에는 마녀사냥으로 대표되는 여성에 가해진 각종 폭력과 남성/국가의 강압이 필수불가결한 사건이었음을 밝혀낸 것이다. 나아가 그녀는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의 남녀 간의 권력차는 자본주의의 태동 당시 그 시스템이 원활히 작동하도록 하기 위해 국가가 강제로 개입함으로써 초래된 산물이라고 말한다.
“성이 자본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상품인 ‘노동력’의 생산자이자 재생산자였던 만큼 여성 착취는 자본주의적 축적의 과정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해 왔다. (중략) 오히려 남녀 간의 권력차는 특정 사회적 생산체제의 결과로 이해해야 한다. 여기서 남녀 간의 권력차를 만들어내는 사회적 생산체제란 노동자의 생산 및 재생산에 들어가는 무임노동의 이익을 보면서도 그것을 사회경제적 활동이나 자본축적의 원천으로 인정하지 않고, 자연자원 또는 개인적 봉사로 신비화하는 체제를 말한다.” <실비아 페데리치, 「캘리번과 마녀」(갈무리, 2011), 21쪽)>
16세기와 17세기의 유럽은 여러모로 격동의 시기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14세기 유럽 인구의 3분의 1을 앗아간 파멸적인 역병인 흑사병으로 인한 인구 위기의 여파에서 기인했다. 흑사병은 중세 봉건질서를 지탱하는 계급관계 자체를 붕괴시켰고, 경제적・사회적 안정성이 극도로 혼란스러워지면서 불안을 극복할 새로운 체제의 구축을 위해 국가는 여러 훈육조치들을 도입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여성은 철저히 패러다임의 이행을 위한 도구가 되었다.
그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여성들은 공동체 내의 공유지를 통해 공적활동을 할 수 있었고, 후일 남성의 직업군으로 간주될 여러 직종에 진출해 있었으며(세공인, 푸주한, 각종 제조업자로서), 약초 등을 이용한 피임법의 전수로 재생산에 대해 자기 통제권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격동에 시기에 이르러 사태는 급변했다. 제일 먼저 일어난 사건은 토지의 사유 재산화(인클로저)였다. 그로 인해 공유지는 상실되었고, 여성은 공적 활동 기반을 상실했다. 그리고 이어서 각 직종으로부터 배제되기 시작했다. 여성의 활동범위는 집안으로 한정되었고,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재생산 노동은 경제적으로 무가치한 것으로 간주되거나 심지어 아예 노동으로조차 간주하지 않는 인식이 엘리트층으로부터 널리 확산되었다.
또한 국가는 대대적인 마녀사냥을 통해 모든 형태의 피임, 그리고 출산과 무관한 성관계 등을 문자 그대로 악마화 했다. 16세기 중엽에는 인구가 국부를 결정한다는 것이 일종의 사회적 공리가 되어 있었고, 결과적으로 여성의 신체는 출산기계로 전락해 있었다.
“노동의 성적 분업은 여성을 재생산 노동에 가두었을 뿐만 아니라, 남성에 대한 의존을 더욱 심화시켜서, 국가와 고용주들로 하여금 여성의 노동을 좌지우지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남성의 임금을 이용할 수 있게끔 했다. 이처럼 상품생산이 노동인구 재생산과 분리되면서 무보수 노동을 착취하기 위해 임금과 시장을 자본주의적으로 이용하는 전략이 발달하게 되었다.” (121쪽)
"중세에는 여성이 다양한 형태의 피임법을 쓸 수 있었고 분만과정에서 확고한 통제를 행사했지만, 이제 그들의 자궁은 남성과 국가가 지배하는 공공영역이 되어버렸고, 출산은 자본주의 축적이라는 목적에 직접적으로 봉사하게 되었다." (146-147쪽)
“마녀사냥은 여성에 대한 전쟁이었다”
자본주의 시스템은 본질적으로 생명이 이윤생산에 종속된 것이다. 화폐로 환원할 수 없는 그 모든 것에 대해서 동일한 가치 단위로 획일화시켜 값을 매기는 체제이다. 그리고 결국 자본주의 시스템을 이끌어가는 유일하고 절대적인 동인이자 목표는 그로부터 발생하는 이윤을 최대화하는 것이다. 책에서도 언급된 미즈의 표현처럼, “자본주의 사회의 목표는 생명을 노동할 수 있는 역량과 ‘죽은 노동’으로 전환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과정은 폭력적일 수밖에 없다. 그 이전까지 (상대적으로 권력이 약했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남성과 동일하게 일을 하고 자신의 몸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었던 여성들이 하루아침에 자신의 노동은 노동이 아닌 것이 되고, 출산을 강요받았다.
시초축적을 통한 자본주의로의 이행과정에는 여성을 남성보다 더 열등한 존재로 새롭게 정의하기 위해, 그리고 그것을 진리로 만들기 위해 여성에 대한 전쟁이 요구되었다. 그리고 그 전쟁은 그 누구도 제대로 기억하려 하지 않았던, ‘마녀사냥’이었다.
“따라서 마녀사냥은 여성에 대한 전쟁이었다. 이는 여성을 비하하고 악마화하며 이들의 사회적 권력을 파괴하기 위한 집단적인 시도였다. 동시에 고문실에서, 그리고 마녀들이 죽어가던 화형대에서 여성성과 가정에 대한 부르주아적 이상이 구축되었다.” (275쪽)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모든 악의 근원이라며 비난했던 마녀사냥은, 새로운 자본주의적 노동규율에 순응하여 가족 내에서의 재산상속과 출산을 위협하거나, 노동에 들어갈 시간과 에너지를 다른 곳에 낭비하게 만드는 모든 성적 활동을 범죄화하는 광범위한 성생활의 재구조화를 위한 주요 수단이기도 했다.” (288쪽)
광적인 마녀사냥이 막을 내린 것은 그간 역사가들이 평가한 것처럼 좀 더 계몽된 세계관이 나타났기 때문이 아니다. 17세기 말엽에 이르러 마녀사냥을 주도했던 지배계급이 더 이상 마녀사냥이 존재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즉, 그들이 원하던 세계가 이제 실제적인 현실로서, 개개인의 일상생활까지 깊게 뿌리내려 하나의 진리로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것을 그들이 느끼는 시점에서 마녀사냥이 중단된 것이다.
여성들은 이제 사회의 공적인 공간에서 철저히 격리된 채로, 임금을 받지 않으면서도 가정의 재생산 노동에 일평생 복속하게 되었고, 여성의 섹슈얼리티는 수동적이며 표출되어서는 안 되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여성의 임신 및 출산은 국부와 직결된 것으로 여성 개개인이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고, 따라서 여성들의 신체와 노동에 대한 무상이용권이 전적으로 남성에게 부여되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끔찍한 사실은 피비린내 나는 마녀사냥 이후 이제 그 누구도 새롭게 재편된 질서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모든 것들은 마치 모든 것이 원래 그랬던 것인 양, 자연적인 질서로서 여겨지게 되었다.
‘1% 대 99%의 싸움’이 잊지 말아야 할 것
여성의 몸은 그 자체로 하나의 기록이며 당대 시대의 정치적 지평이다. 그리고 그러한 사실은 지금껏 은폐되고 억눌려졌던 반쪽짜리 역사 이면에 살았던 여성들의 삶에도 해당되지만, ‘여성’이라는 정체성이 현실 사회에서 우리에게 부여하고 있는 함의가 여전히 강력한 오늘날의 우리 모두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 여성이라면 으레 해야 할 것,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한 사회적 금기가 여전히 통용되고, 사회 전반적으로 위기의식을 고조시켜 국가의 번영이라는 미명 하에 여성에게 결혼과 출산을 강요하는 담론이 횡행하는 작금의 상황이 그것을 방증하고 있다.
지금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자본주의의 실상은 1% 대 99%의 격렬한 충돌이다. 16-17세기 이후 하나의 패러다임으로 정착한 자본주의가 그 사회적 관계 속에 얼마나 많은 모순과 불합리를 수반했는지에 대한 공분이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거리로 나아가게 하고 있다.
자본주의가 우리에게 빼앗은 것은 비단 소외되지 않은 순수한 노동과 화폐로 환산될 수 없는 수많은 가치뿐만이 아니다. 부르주아 대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적대를 남녀 간의 적대관계로 도치시키면서 프롤레타리아트에게는 연대하며 저항할 힘을 빼앗았고 결과적으로 여성들은 소위 ‘빈곤의 여성화’로 인한 이중 삼중의 고통을 겪어야만 하게 되었다.
“Occupy Wall Street"의 구호는 ”We are the 99%.(우리는 99%이다)"이다. 이제 빵과 장미를 원하는, ‘그저 생존하는 수준으로 떨어진’ 삶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금융권의 탐욕과 부의 편중에 맞서 연대의식을 가지고 단결하고 있다.
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자본주의라는 시스템이 이 땅에 뿌리내리기 위해 수많은 여성들이 마녀로 몰려 죽임을 당했던 역사와, 그 이후 자본주의가 심화될수록 사실상 인간의 삶을 더욱 피폐하게 만들었던 것은 남성과 여성이라는 강요된 분할이었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회복해야 할 엄연한 진실들이 자본주의 자체에 대한 근본 물음과 함께 지금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추은혜 / 미디어 <일다>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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