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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으로 말하다

출생의 진실을 알 권리

그 여자들의 물결 일다 2011. 12. 16. 07:30

<일다> 윤하의 딸을 만나러 가는 길 (29) 진실을 알 권리 
 
릴(Lille)의 미리암과 에릭 부부에게 결혼여부를 묻지 않아서 이혼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고 말했지만, 솔직히 그들이 이 질문을 안 해서 좋았던 것이 사실이다. 나는 내가 이혼을 했고, 딸이 있고, 딸은 전남편과 살고 있다는 얘기를 누구에게나 스스럼없이 하지만, 묻지 않는 사람에게까지 자진해서 꺼내지는 않는다.
 
한국에서 이혼했다는 말을 꺼내기가 부담스러웠다면, 프랑스에서는 아이를 만나지 않는다고 말하기가 힘들었다.

실제로 한국에서 결혼여부를 묻는 사람들에게 이혼했다고 말했을 때,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냐’, ‘그런 말은 앞으로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조언하는 사람들도 여럿 있었다. 그들은 모두 나보다 나이가 많고, 많이 배운 사람들이었다. 마치, 그들은 내가 판단력이 부족해서 할 말과 안 할 말을 구분하지 못해, 이런 말을 부끄럼 없이 한다고 생각하는 듯 했다.

 
한번은 집안 일로 많은 친척들을 만나게 되었다. 내 결혼과 이혼 사실을 알지 못했던 먼 친척분이 내게 결혼 여부를 물었다. 그때, 부모님과 가깝게 지내고 계신 한 어른은 대답하려는 나를 막아 세우며, 대신 ‘결혼은 아직 안했어!’라고 말하기도 했다. 좀 불편한 낯으로 바라보는 내게, 마치 그 분은 나를 많이 생각해서 이렇게 하는 거라는 듯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나의 자긍심을 한없이 꺾는 이들은 바로 이런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프랑스인들은 이혼에 대해서는 그다지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 듯했다. 유학초기, 한국에서처럼 큰 결심을 하고 결연한 표정으로 이혼 사실을 이야기했다가 너무 아무렇지도 않은 반응에, 도리어 어렵게 말한 나만 어색해지는 경험들을 여러 차례 했다.

그러나 아이에 대한 질문과 이어진 내 대답의 반응은 전혀 딴판이었다.

 
한국에서처럼 ‘딸은 내가 친엄마인 줄도 모르고 있다’는 말을 했을 때, 거의 모든 사람들은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냐?”는 반응을 보였다. 나는 “아이가 너무 어렸고, 그녀가 상처받길 원하지 않고, 어쩌고저쩌고…….”하는 이유들을 늘어놓곤 했다. 그러나 그걸 이해한다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모두들 너무나 말도 안 되는 행동을 한다고 나를 꾸짖었다.
 
이런 반응을 보이는 친구들에게 나는 “상황이 너희 나라와 너무 달라!”라고 말하다가, 나중에는 이런 대화도 짜증이 나서 “보시다시피 내가 프랑스에 있어서 아이는 자주 만나지 못하고 있어!”라고 거짓말을 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내가 잘못한 것은 없는지, 생각해 보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텔레비전에서 아이교육에 관한 방송을 볼 기회가 있었다. 한 여성이 교육전문가에게 조언을 구했다. 그녀의 상황은 이랬다. ‘남편이 범죄를 저질러 감옥에 있는데, 6살인 아이는 아직 그 사실을 모른다.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질문을 듣고 나는 생각했다. ‘어떻게 하긴? 숨겨야지! 게다가 어린 아이에게 아빠가 범죄자가 되어 감옥에 있다는 말을 할 필요가 있을까?’
 
그런데 교육전문가의 대답은 이랬다. “아이에게 진실을 말해라. 어른들도 바보짓을 할 때가 있다고. 아빠가 그랬고, 그래서 벌을 받고 있다고. 처음에는 그것을 아이가 받아들이기 쉽지 않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현실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아이를 데리고 남편 면회도 가라.”
 
그러다 또 다른 날, 라디오에서 부모의 이름이 X로 표기된 아이들에게 부모가 누구인지 알려 줘야 한다는 이야기를 주제로 펼쳐지는 방송을 들었다. 나는 그때서야 프랑스에는 아이가 알면 너무 수치스럽거나 부모인 사실이 알려지면 곤란하다고 판단된 경우, 부모이름 란에 X라고 표기한 경우가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 방송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진실을 알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 아이들을 진정으로 위한다면, 그들에게 출생의 진실을 알게 해주고, 그것을 극복하고, 못하고는 그들의 몫으로 남겨 놓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질문하고 있었다.

 
‘진실을 알 권리가 있다!’ 이건 그동안 한 번도 생각하지 못한 것이었다. 나는 ‘진실’의 중요성도, ‘진실을 알 권리’의 가치도 한 번도 진지하게 고민해 본 적이 없음을 알았다. 무언가 모르고 있던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의 당혹스러움과 황당함을 모르지 않는 내가, 게다가 인생이 달린 중요한 문제를 너무나 무심하게 풀어나갔다는 것이 부끄러웠다. 게다가 딸을 항상 사랑한다고 하면서 왜 그녀에게 진실을 숨기는 폭력을 저질렀는지 미안하기만 했다.
 
그러나 너무 늦었다고, 진실을 알리기에는 늘 너무 늦었다고 중얼거리며, 세월을 보냈다. 아이가 나에게 아무런 애정도 느끼지 못하는 걸 확인한 뒤에는 지난 세월 동안 그녀를 만나지 않은 걸 후회했고, 나보다 새엄마를 더 좋아하는 걸 안 뒤에는 그녀를 키우지 않기로 한 내 선택을 후회했다. 그러고 보니, 나는 딸과 관련해 늘 후회만 하고 있었다.
 
어쩜 세월이 더 지나서는 지금이라도 아이를 만나려고 노력하지 않은 걸 후회할지도 모른다. 아니, ‘이렇게 넋 놓고 있어서는 안 되었다’고 발등을 찧으며 속상해 할 것이다. 그런데도 망설이고 있는 건 왜일까? 무엇이 나를 이렇게 주저하게 하는 걸까? 다시, 미궁에 빠진 것이 분명하다. 

윤하 / 미디어 <일다>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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